소설리스트

90화 (7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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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께서 정신을 잃으셨다! 각하를 모셔라!”

데키무스는 황급히 병사들을 불러모아 마리우스를 안전한 후방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비디메르를 바라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저 상태로 움직인다니···.”

[모두 덤벼라! 판노니아의 대전사 비디메르가 여기 있다!]

비디메르는 마치 곰처럼 포효했다.

가슴팍에는 부러진 창이 박혀있었고, 등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검이 꽂혀있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댔다.

“저 녀석만 잡으면, 우리도 팔자 피는 거라고.”

“셋에 덮치자고···. 알았지?”

“하나, 둘···.”

“셋!”

전공을 노린 여러 병사가 한꺼번에 비디메르를 덮쳤지만, 비디메르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비디메르는 자신에게 덤벼드는 모든 이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며 자리를 지켰다.

[고작 그런 얄팍한 수로 나를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으음···. 저 상태로 움직일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놈이 입고 있는 갑옷이 보통물건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런 상처에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우선은 저놈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합니다. 저놈 하나 때문에 아군 진형이 흔들리고 있어요!”

브레누스와 사루스의 눈이 마주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민첩하게 움직였다.

둘은 정면에서 병사들이 시선을 끄는 동안 비디메르의 좌우로 흩어져 동시에 덮쳤다.

“죽어라. 곰 같은 놈아!”

[어딜!]

브레누스는 기세 좋게 검을 휘둘렀지만, 비디메르의 검에 틀어막히면서 이어진 비디메르의 주먹질에 코피를 흘리면서 나가떨어졌다.

그 빈틈을 노린 사루스도 비디메르의 겨드랑이를 노리고 검을 찔러넣었다.

[크윽···.]

[비디메르···. 이만 쉬어라.]

[사···. 루스···.]

비디메르는 피가 묻은 손으로 사루스의 목을 조르려고 했지만, 미쳐 손이 닿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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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 겁니다.”

“내 손으로 못 끝낸 게 아쉽군.”

“각하, 이번에는 팔 하나를 잃을 뻔하셨잖습니까 이제 전투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뒤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일에 열중해주십시오.”

“누가 그래! 난 멀쩡하다고! 비디메르 고놈이 휘두른 도끼는 그냥 생채기만 난 거야.”

멀쩡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왼팔을 빙빙 돌려보려 했지만, 조금만 들어도 팔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터질 듯이 붉어졌지만, 악으로 팔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어, 어때! 멀쩡하지···.”

“각하, 무리하시면 몸에 안 좋습니다. 의원의 말로는 도끼가 뼈에 막혀서 팔을 건사하신 거라고 했습니다.”

“내 뼈가 좀 튼튼하긴 하지···. 그래서 아군피해는 어떤가.”

사루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유인역할을 맡은 병사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게르만 군단의 병사 중 절반 이상이 죽거나 크게 다쳤고,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자도 제법 됩니다.”

“다른 이들은.”

“다른 병사들의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적들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던지라···.”

“그래, 그렇단 말이지···. 후우···.”

이번 작전에서 병사들의 희생이 제법 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내가 이끌었던 병사들이 절반 이상 죽거나 다쳤다는 말에 죄책감을 느꼈다.

물론 내가 나서지 않았어도 큰 피해를 보았을 수도 있고, 역으로 내가 나선 덕분에 아군의 큰 피해를 막은 걸 수도 있겠지만, 결국엔 내 탓이었고 내 잘못이었다.

“유족들에게···. 아···.”

생각해보니 그들의 가족들 또한 내 손으로 때려잡지 않았던가?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별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괜스레 죄책감이 들었다.

아들이 생겼다는 기쁨 인지 모를 감정에 마음이 약해지기라도 한 건가 싶었다.

“창고를 열어서 유족들에게 후하게 보상하고, 다쳐서 일을 못 하게 된 병사들에게는 이번 전투에서 포로로 잡은 이들을 노예로 부릴 수 있게 해줘라.”

“각하, 그건 너무 관대한 처사가 아닐는지요? 각하께서 아무것도 하사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미 각하께 목숨을 구원받은 이들은 각하의 관대함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일세, 그러니 군말하지 말고 나눠주게나.”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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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아프리카에서는···.

“로마가 우리에게 뭘 해줬습니까!”

“억압과 수탈!”

“우리는 로마에 무얼 해줬습니까!”

“의무와 헌신!”

“이제는 우리에게 매어진 억압이란 이름의 사슬을 끊고 새롭게 나아가야 합니다!”

“와아아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규모도 컸고, 그 기세 또한 흉흉했다.

로마군은 그런 그들을 불안하게 지켜봤다.

“평소보다 좀 더 거친 것 같지 않아?”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내버려 둬~ 어차피 조금 떠들다가 돌아갈 놈들이야, 뭘 하려고 했으면 진즉에 했겠지.”

“그것도 그렇긴 한데···. 오늘따라 좀 불안한데.”

“잠깐, 저게 누구야.”

“누구?”

“저기 단상 위에 저 사람···. 길도 아니야?”

“길도? 그 양반이 누군데.”

한 병사의 얼빠진 질문에 다른 병사가 그의 머리를 후려치면서 말했다.

“이 멍청이야, 넌 여기서 몇 달째 근무하는데 길도를 모르냐?”

“모를 수도 있지, 넌 태어났을 때부터 다 알고 태어났냐임마?”

“왜 싸우고들 그래~ 진정해.”

“그래서 길도라는 놈은 뭐하던 놈인데 그래.”

“그 사람이 이 도시 민병대 대장이야.”

“뭐야, 고작 민병대 대장한테 겁먹은 거야?”

한 병사의 말에 조금 전 뒤통수를 때렸던 병사가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고작 민병대 대장이 아니야! 우리가 오기 전에는 북아프리카 속주에서 형이랑 같이 왕이나 다름없던 사람이라고.”

“맞아, 그리고 이 지방이 돈이 썩어나게 많아서 휘하의 병사들도 말이 민병대지, 잘 무장한 정규군이나 다름없다고 하던데.”

“뭐야···.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야?”

“그래 인마! 저 사람이 여기 떴다는 건 뭔가 문제가 생겨도 단단히 생겼다는 거지.”

병사들은 언제라도 도망갈 준비를 하면서 단상 위에 올라선 길도를 주목했다.

“카르타고의 시민 여러분. 모두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길도님···!”

“길도님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러 오셨다!”

“와아아-”

길도의 등장에 시민들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만큼 북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이 강한 사람이었고,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한 북아프리카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여러분의 분노나 슬픔은 저도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흘렸을 눈물을 생각하면 저도 눈물을 흘리고는 한답니다.”

길도는 준비해뒀던 자그마한 과일 조각을 손에 숨겨서 눈가에서 한 방울 짜내고는 소매로 눈물을 닦는척했다.

그의 가짜눈물에 시민들이 숙연해졌고, 길도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우리가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를 짓밟고, 괴롭히고, 억압한 이들에게 우리의 분노를 알려야 합니다!”

“옳소!”

“로마놈들에게 죽음을!”

“로마놈들은 집으로 꺼져라!”

“집으로 돌아가라!”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뒤에서 지켜보던 로마군이 개입했다.

그들은 빠르게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가 길도를 붙잡으면서 소리쳤다.

“이자는 로마에 반하는 반역자이니, 지엄한 국법을 통해 심판받을 것이오!”

“모두 물러나시오!”

“모두 길을 비키시오!”

“아이고 길도님···.”

“로마놈들이 길도 님을 끌고 가려고 한다.! 막아!”

로마군과 시민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주변에서 구경하던 로마 병사들이 뛰어들어서 시민들과 다툼이 벌어졌고, 시끌벅적해진 사이에 로마군이 길도를 데리고 광장을 벗어났다.

어느 한적한 골목에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로마 병사들과 길도는 자연스럽게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연기였네.”

“아닙니다. 길도 님께서야 말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 대단하십니다.”

“별 것 아니야. 그저 머리를 이용한 것뿐이지.”

“이제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그래, 시민들에게 소문을 퍼뜨리게.”

길도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오늘 밤 길도가 처형당할 거라고 말이야.”

로마의 휴일 - 2

길도가 잡혀갔다는 소문은 곧 카르타고 시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아니 글쎄, 로마놈들이 길도님을 처형하려고 잡아갔다는구먼.”

“그게 정말인가? 내 이놈들을···.”

안 그래도 나빴던 민심은 길도의 체포를 기점으로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들인 로마군은···.

“길도 그 녀석이 어디로 간 거냐고 묻지 않느냐?!”

“장군, 저희도 백방 찾아보고 있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애초에 누가 내 명령도 없이 그놈을 사로잡은 건가, 대체 누가!”

그러나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다들 입을 꾹 닫고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다들 꼴도 보기 싫으니, 전부 나가서 길도인지 뭔지 하는 새끼 당장 내 눈앞에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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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로마군이 각하를 잡으려고 시내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고 합니다.”

“멍청한 놈들···. 차라리 지금이라도 짐 싸서 돌아갔으면 무사했을 것을···.”

길도는 로마군을 비웃었다.

그는 카르타고를 벗어나 인근의 마을에서 카르타고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카르타고 시는 예상대로 거리 곳곳에서 시민과 로마군사에 마찰이 발생했고, 사망자도 생겨날 정도였다.

“형님, 이제 슬슬 병사들을 끌고 가시지요. 저는 조금 있다가 합류하겠습니다.”

“그래, 동생아 너무 늦지 않게 오거라.”

마르켈은 미리 준비시켜뒀던 병사들을 이끌고 카르타고로 향했고, 길도는 그런 형을 비웃었다.

“자기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잘도 가는구나.”

“장군.”

“그래, 소문은 잘 퍼뜨렸고?”

“예, 마르켈 님이 길도님을 구하기 위해서 군대를 일으켰다는 소문이 카르타고에 쫙 퍼진 상태입니다.”

“형님이 로마군과 같이 죽어주면, 우리는 빈 땅에 가서 깃발만 꽂으면 될 일이야.”

하지만, 마르켈은 길도의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대로 로마군에게 항복한다.”

“예? 그게 무슨 소 리습니까.”

“길도가 우릴 팔아넘겼어. 카르타고로 들어가자마자 로마군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한 배에서 나고 자란 형제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나, 내가 그놈의 뒤통수를 치고 싶어 지었을 때는 그놈도 내 뒤통수를 치고 싶을 테지.”

“고작 그런 이유로···.”

마르켈은 부관을 비웃었다.

“고작이라니, 내가 그놈과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그런 것도 모를까.”

“그렇게 말씀하셔도 믿기지 않습니다. 길도 님께서 형제분을 사지로 밀어 넣는다니···.”

“아무튼, 우리 부대는 로마군과 마주치면 바로 백기 들고 항복한다.”

하지만, 일은 마르켈의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분명 카르타고의 입구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로마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카르타고의 시민들이 그를 환영하고 있었다.

“해방군이다! 해방군이 왔다!”

“마르켈님 만세!”

“로마군은 어디로 간 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르켈은 지나가던 시민에게 물었다.

“로마군은 어디로 갔습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바쁘게 돌아다니었던데, 오늘은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흐음···. 로마군이 안보인 다라···.”

“장군, 어쩌시겠습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으음···. 일단 흩어져서···. 아니지, 흩어졌다가 습격을 받으면···.”

마르켈은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분명 그의 계획대로라면, 지금 로마군과 마주쳐서 항복 의사를 밝히고 동생을 진압하는 그림이 나와야 했다.

“이, 일단 관청으로 간다.”

마르켈과 그의 병사들은 카르타고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관청으로 향했지만, 그곳 또한 아무도 없었다.

경비병 몇 명이 남아서 떨리는 손으로 마르켈에 창을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시, 신분을 밝혀라!”

“북아프리카 민병대의 대장 마르켈이다. 총독 각하를 뵈러 왔는데···. 안에 계시는가!”

“마, 마르켈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비병이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총독궁의 문이 열리며 경비병이 뛰어나왔다.

“오셨습니까!”

“총독께서는 안에 계시느냐?.”

“그, 그것이···. 각하께서는 지금 출타 중이십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 상황에 자리를 비우셨다고?”

경비병의 말에 마르켈은 혼란에 빠졌다.

로마군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길도나 마르켈, 둘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쪽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었다.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졌어야 할 카르타고는 평화로웠고, 거리 곳곳에서는 시민들이 만세를 외치면서 새로운 지도자를 환영하고 있었다.

관청 앞에 세워진 황제의 동상이 쓰러질 때.

이를 지켜보던 마르켈과 길도는 일이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좆됐다.’

‘씨발, 멍청한 총독 새끼! 그냥 형님이랑 같이 죽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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