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69/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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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몬드가 열심히 뛰어다닐 무렵.

마리우스 군영 내에서는 격한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병사들을 왜 당신들 휘하에 편입한다는 말입니까?”

“각하께서 게르마니아의 총독이시니, 그 휘하에 있는 자네들을 우리 군단의 보조 군으로 편입하려는 게 아닌가!”

“보조군인지 지랄인지 나는 모르겠고, 내 병사들은 내가! 지휘할 겁니다.”

세르비우스의 합류 이후에 지휘권을 누가 쥘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다섯 시간째 다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임명하면은 게르만 부족들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게 뻔했고, 또 로마인과 공평하게 대우해준다고도 말한 것도 있어서 자기들끼리 정하게 했는데,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각하, 도저히 말이 통하질 않습니다. 각자 휘하의 병사들을 따로 움직이는 게 맞을 듯합니다!”

“누가 할 소리! 전하, 저 욕심 가득한 로마놈의 병사들은 필요 없습니다. 제 병사들은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정말 내 골치를 썩이게 하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로마에 떨어지고 뒤죽박죽인 지휘권 때문에 판노니아에서 고생하던 게 떠올라 더욱 말릴 수 없었다.

“그만! 그동안 한 말이 있어서 자네들을 가만히 내버려 뒀는데, 더는 안 되겠다. 지휘권과 군제에 관한 것은 전부 내가 결정할 것이니 자네들은 내 명령을 기다려!”

“각하···!”

“전하···!”

세르비우스와 족장들이 반발했지만,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한마디 하는 거로 진압했다.

“불평은 받지 않겠다. 나는 너희들에게 자유를 줬으나 너희들은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니, 잠시 가져가겠다.”

“각하께서 그러시다면야···.”

“그래도 병사들을 전부 가져가시는 건 좀···.”

아직도 군소리가 튀어나왔지만, 조금 전보다는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내가 가져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둘의 능력을 비교해야겠지.”

“능력을···.”

“비교한다···?”

모두 의문을 표할 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당장 오늘 저녁에 로마군과 게르만 군이 모의 전투를 벌여서 이기는 쪽이 지휘권을 갖는 거로 하지.”

“그러니까 한판 붙어보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각하의 혜안이 실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내 생각대로 조금 전까지 나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각하, 곧 큰 전투가 있을 텐데 아군끼리 다투는 건 그리 좋은 판단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데키무스, 전투 중에 서로 다투는 것보다는 전투 전에 한 번 크게 터뜨려주는 것도 방법이야.”

“그렇습니까.”

“자네는 누가 이길 것 같나?”

“세르비우스 경이 더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수십 년 동안 로마의 국경을 지킨 장군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저 친구들은 수십 년 동안 로마의 국경을 위협하던 자들이지.”

내 말에 데키무스는 의문을 표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원래라면 저 둘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어야 정상이라는 말이지.”

“......!”

“저 둘이 이 자리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말싸움하는 것부터가 기적이 아니겠나.”

데키무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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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리코는 또다시 집무실로 쳐들어오는 콘스탄티우스의 모습에 마른세수하며 물었다.

“또 무슨 일인가.”

“황제 폐하를 말려주십시오.”

“말려? 왜?”

콘스탄티우스는 전에 없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콧김을 씩씩거리며 스틸리코에게 말했다.

“연금술인지 뭔지, 폐하께서 철을 금으로 바꾸시겠다고 재산을 펑펑 써대시는 통에 거리의 물가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요 며칠간 그런 보고는 올라온 적이 없는데, 어디서 들은 말인가?”

“원로원 의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귀찮게 구는 통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스틸리코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 그들이 뭐라고 했던가.”

“최근에 유리값과 노예 값이 너무 올라가서 물건을 담아둘 유리병을 구하기도 힘들고, 농사짓는 것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통에 어휴···.”

“하하하. 어차피 농사야 노예들이나 그들이 부리고 있는 농부들이 짓는 것이고, 유리야 일반인들은 비싸서 사지도 못하는 게 아닌가.”

“그들에게 그런 게 중요하겠습니까? 당장 불편하니 해결해달라고 말은 해야겠는데, 장군과는 사이도 나쁘고 무서우니 제게 달라붙었습니다!”

콘스탄티우스는 굉장히 열 받은 얼굴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스틸리코는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듣고 보니 문제가 있긴 하군.”

“그렇지요? 제발 빨리 해결해주십시오. 며칠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몇 년 동안 매일같이 떠들어 대는 통에 일도 못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폐하께 잘···. 마침 오시는군.”

“숙부님!”

애벌레가 고치를 벗듯이 한층 어른스러워진 호노리우스가 유리병 하나를 손에 쥐고 스틸리코에게 달려왔다.

“숙부!”

“헉헉···. 폐하, 왜 그리 급하게 달려 가십···.”

그리고 그 뒤를 폴로가 따르고 있었다.

스틸리코에게 인사한 폴로는 곁에 있던 콘스탄티우스의 모습에 혀를 찼다.

“자네도 있었군.”

“오랜만입니다.”

“폐하, 이곳까지는 어찌한 일로 오셨습니까.”

“숙부한테 신기한 거 보여주려고 그랬죠!”

“폐하, 곧 국혼이 예정되어있는데 그렇게 방정맞게 뛰어다니시면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합니다.”

“괜찮아!”

몸은 컸지만, 호노리우스는 여전했다.

아니 조금은 바뀐 점이 있었다.

이전에는 스틸리코의 앞에서 눈도 못 마주치고, 그의 말에는 소심하게 고개만 끄덕였지만, 동방에서 돌아온 뒤로 시간이 지날수록 호노리우스는 변했다.

스틸리코와 눈을 마주치면서, 그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마리우스 놈이 순수했던 폐하를 아주 단단히 망쳐놨어···.”

“응? 뭐라고 했어요?”

“아닙니다. 폐하, 혼잣말이었습니다.”

“늙으면 혼잣말이 늘어난다는데, 숙부도 많이 늙으셨네!”

“으음···. 폐하, 아직은 정정합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아무튼, 이거 한번 보실래요?”

호노리우스는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스틸리코의 탁자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지난번에 철로 금을 만든다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가 만들었어!”

“폐하, 그건 마리우스 놈의 헛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지 숙부. 이걸 잘 보세요.”

호노리우스는 품속에서 녹이 잔뜩 슬은 쇳조각을 꺼내서 바닥에 내려놓고는 그 위에 정체불명의 용액을 뿌렸다.

“이게 무슨···.”

액체와 쇳조각이 만나자마자 거품을 일으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앉았고, 폴로가 준비해두었던 물을 뿌리니 말끔해진 쇳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숙부, 제 휘하에 있던 이가 녹을 지우는 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신기하긴 한데···. 녹을 지우는 것 말고는 다른 사용법은 없습니까?”

“사람한테 쓰면 고통스러워하던데요.”

“지난 삼 년간 이걸 만드느라 그렇게나 많은 돈을 쓰시고, 사람을 끌어다 쓰신 거로군요.”

스틸리코는 영 못마땅한 얼굴로 호노리우스에게 쓴소리했다.

“폐하, 이제 폐하께서도 한 가정의 주인이 될 나이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노는데 집중하시니 제 마음이 다 아픕니다.”

“아프시면 이번 기회에 은퇴하시고 푹 쉬시는 건 어떠세요?”

“......폐하.”

“이 일을 시작하니 신기한 물건을 많이 찾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그만두면 그동안 썼던 돈이 아깝지 않을까요?”

“폐하, 지금의 제국은···.”

“제국이 왜요. 북방에서는 마리우스가 든든히 버티고 있고, 히스파니아에는 최근에 갈리아에서 새로 모집한 군단이 있잖아요.”

“아칸이 아직 살아있잖습니까, 그자는 제국을 위협할 인물입니다.”

스틸리코의 말에 호노리우스는 해맑게 웃으면서 맞받아쳤다.

“숙부께서 아칸을 찾는다고 북아프리카를 뒤집어놓는 통에 속주 민심이 돌아서고 있는 거나 신경 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폐하!”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숙부께서는 숙부의 일에나 신경 쓰시지요.”

스틸리코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 했지만, 호노리우스는 몸을 돌려서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후···.”

스틸리코는 의자에 기대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고, 콘스탄티우스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의 눈치를 볼 뿐이었다.

두번째 토이토부르크 - 1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 위에 두 군대가 진형을 나눈 채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각하, 준비가 끝났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군대를 이끌고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시간 없으니 간단한 규칙만 설명해주겠네.”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서로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면 안 되니, 무기는 실제 장비와 비슷한 무게의 목검과 방패로 제한하지. 훈련용으로 쓰는 장비가 충분히 있으니 그걸 쓰면 될 거야.”

“그것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아, 끝나는 건 내가 판단하기에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거나, 한쪽이 항복하면 끝날 거야. 전투는 10분 후에 시작하겠네, 다들 건투를 빌지.”

로마군의 대표는 세르비우스와 사루스가 맡았고, 게르만 군의 대표는 브레누스와 게지카가 각각 군을 이끌었다.

“사루스 경, 자네가 중앙군을 맡아서 적을 물고 늘어지면 내가 그 틈을 타고 좌우 군을 기동해서 적을 포위하겠네.”

“적들이 당해줄까요.”

“게르만 인들에게 전술은 돌격이고, 전략은 더 멀리 진군하는 것 아니겠나? 나를 믿게.”

“예, 알겠습니다.”

반면 게지카와 브레누스는 시작부터 싸우고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적진으로 달려나가면 된다니까 그러네?”

“그렇게 무식하게 돌격만 하니까 매번 나한테 지는 거지. 자네는 생각이란 것도 안 하나?”

“뭐? 무식!”

브레누스가 발끈했지만, 게지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로마군보다 유리한 점이 뭐가 있고, 저놈들보다 불리한 게 뭔지부터 생각해야지.”

“우리가 로마놈들보다 유리한 게 있었나?”

“머릿수는 우리가 더 많아.”

“숫자가 많다고 항상 이기는 건 아니잖아.”

게지카는 브레누스를 비웃으며 말했다.

“숫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선택지도 늘어난다는 말일세, 싸움을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는 말이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구먼.”

“시간 없어서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뭔데 네가 명령 질이야.”

브레누스는 투덜거리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자네가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놈들과 한판부터, 그러면 로마놈들이 준비해뒀던 전술을 쓸 거야.”

“뭐야, 그러면 나 혼자 죽으라는 거야?”

“끝까지 좀 들어보게 이 사람아, 자네가 전투에서 지고 도망가면 적들이 쫓아오겠지? 그렇게 적들을 숲으로 유인해서 한 번에···.”

게지카는 오른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면서 말을 대신했다.

“오···. 그럴듯한데···. 과연 저놈들이 속을까?”

“쯧쯧쯧···. 놈들이 의심이나 하겠나? 자네에게 항복을 받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텐데 말이야.”

“그런가?”

“그렇다니까!”

“음···. 내가 매복하지, 자네가 미끼 하게.”

“뭐?”

브레누스는 무슨 심경변화인지 미끼를 거절했고, 게지카는 이에 당황하며 물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상황인지 알고 하는 말인가?”

“당연하지! 그리고 부끄럽지만, 무식한 나보다는 조금이라도 영리한 네놈이 유인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

“으음···. 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군.”

“거기다가 전하의 앞인데, 나도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않겠냐 이 말이야.”

브레누스의 솔직한 말에 게지카의 웃음이 터졌다.

“전하께서는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데, 뭘 그리 걱정하나.”

“이 사람아, 전하께서 나를 장군으로 이뻐하시느냐와 술친구로 이뻐하시는 건 다르지 않나?”

“그건···. 그렇지.”

“그럼 자네가 미끼 해.”

태연한 브레누스의 모습에 게지카는 피식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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