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68/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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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 놈이 대규모의 해군을 키웠다는 말씀입니까?”

“예,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저 사람을 좀 데려올까 싶어서 갔더니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래요···?”

아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느긋하고 단순한 카티우스의 성격상 거짓말이나 허풍을 떨 리가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칸은 손가락을 펴고 하나씩 접으면서 곰곰이 무언가를 세더니 이내 헤라클리우스에게 물었다.

“자네는 2년 안에 해군을 재건할 수 있겠나? 기존의 게르마니아 함대를 위협할 수준으로 말이야.”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마리우스는 해냈어···. 어떻게?”

“배를 만들고 병사를 조련하는데 육군과 비교하면 몇 배는 돈이 더 들어가는데 그 돈을 어디서 끌어모았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그렇지···. 카티우스 자네가 게르마니아의 밀 한 톨까지 긁어모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카티우스는 굉장히 억울하다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그곳의 생산량이라고 해봐야 갈리아나 북아프리카와는 비교조차 안 되고, 하다못해 판노니아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뿐입니까? 강 너머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야만인들이 침범해와서 제 목을 노리는 통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입니다!”

“그건 그렇지···. 그래서 자네가 우리 쪽에 붙은 게 아닌가.”

“그런 곳에서 3년 치 세입을 한 번에 당겨왔습니다. 그런데 여유가 있겠습니까? 당장 야만족을 막을 힘도 없었을 겁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헤라클리우스가 물었다.

“그러면···. 마리우스는 게르마니아에서 몰려드는 야만인들을 때려잡으면서, 박살 난 재정상황도 복구한 뒤에 이전보다 튼실해진 재정으로 해군을 복구했다···. 뭐 그런 거로군요?”

“그게 말이 되는···.”

아칸은 저도 모르게 헤라클리우스를 핀잔주려다가 입을 닫았다.

“말이···. 되지요···?”

“그렇군.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되지 않는가.”

“놈이 우리에 대해서 파악했을까요?”

“함대를 준비한 걸 보면 거의 확실하지.”

“그럼 이번에 게르마니아로 출병한 것도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기만이었던 겁니까?”

아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계가 보통이 아닙니다. 하마터면 함대를 전부 잃어버릴 뻔했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마리우스가 브리타니아 원정을 준비 중인 거라면···. 우리도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6군단의 재편은 어떻게 되었나.”

“카티우스 경이 가져온 재물을 풀어서 론디니움과 그 인근의 시민들을 징집해서 두 개 군단을 신설한 뒤에 6군단의 병사들을 잘게 찢어서 배분했습니다.”

“훌륭하군.”

“아직 북부에서 저항 중인 잔존 병들을 제외한다면 브리타니아는 완벽히 우리 수중에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잔존 병이라는 말이 아칸을 거슬리게 했다.

“잔존 병이라니? 처음 듣는 말이로군.”

“카티우스 경이 설명해주지 않았습니까?”

“들은 기억이 없네만.”

헤라클리우스와 아칸이 동시에 카티우스를 바라보니, 카티우스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 그것이···.”

“분명 카티우스 경께서 나리께 손수 전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나리께서는 모르시는지요?”

“음···. 그게···.”

“답답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보게.”

카티우스는 안절부절못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사실대로 말했다.

“실은···. 6군단 잔존 병을 처리하러 북상했다가 픽트족의 습격에 크게 당했습니다.”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십니까, 픽트족이 왜 갑자기 튀어나온다는 말입니까?”

카티우스는 우물쭈물하면서 말을 이어갔고, 그의 입이 열릴 때마다 아칸의 혈압이 용솟음쳤다.

“그것이···. 다들 저마다 내세울 만한 전공이나 업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는 자랑하거나 내세울 만한 게 돈뿐이더군요···. 그래서···.”

“그, 그게 무슨···.”

“그럼 이번에 말도 없이 게르마니아로 출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나···?”

“후···.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그런 면도 있지만···. 지난 픽트족과 싸움에서 병사들이 여럿 상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을 보충하고자···.”

“보충···? 이보게 카티우스, 도대체 북쪽에서 얼마나 많은 병사를 잃은 건가?”

카티우스는 눈치만 볼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 반응에 헤라클리우스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도대체 얼마나 해먹은 겁니까···?”

“배로 따지자면 20척 정도의 병사들이···.”

“스, 스물··· 그래, 그 정도야 뭐···.”

아칸은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6단 갤리선으로···.”

“끄어어억─”

“나으리!”

그 뒤는 견디지 못했다.

토이토부르크로 가는길 - 8

아칸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무렵.

파라몬드는 병사들과 알비스 인근을 둘러보고 있었다.

병사 한 명이 숲속에서 꽁꽁 묶인 병사 한 명을 끌고 와 파라몬드에 보여주며 말했다.

“적은 트레바에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까지 병사들이 돌아다닐 정도면···.”

파라몬드는 황급히 지도를 꺼내 들었다.

지도에서 트레바와 마리우스가 주둔 중인 파비라눔까지는 지척이었다.

“제법 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작정하고 달리면 하루면 닿을 거리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더 둘러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돌아가시겠습니까.”

“적들의 동향은 어떤가?”

“아직 우리의 존재를 모르는 듯합니다. 들어보니 최근에 있었던 전투에서 부상병과 포로가 많아서 수습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파라몬드는 고민했다.

이대로 빨리 돌아가서 보고할 것인지, 아니면 적의 동태를 조금 더 파악하고 돌아갈지 말이다.

각자 장단점이 있었는데, 전자는 아군이 한발 먼저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적이 어떻게 나올지를 알 수 없었다.

후자는 적의 동향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는 있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시간이 늦어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오늘 밤, 강을 건너간다.”

“...알겠습니다.”

파라몬드는 긴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다.

여태까지 모은 정보들이 부실하기도 했고, 조금 전에 사로잡은 포로의 말대로라면 지금 알비스 너머의 적군은 지난 전투 이후로 많이 어수선한 상태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빈틈을 잘 찌르고 지나간다면 괜찮은 성과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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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병이 제법 많습니다. 지난 전투에서 선봉에 나섰던 부대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이가 극히 드물 정도입니다.”

“많이 상했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사기에 영향을 줄 정도는 됩니다.”

“일단은 새로 얻은 로마군 장비를 병사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장인들에게 갑옷과 무기를 더 많이 만들어 내라고 재촉하게.”

“재료 수급에 문제가 있어서 아무리 재촉한다고 빨리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으음···. 게르마니아에 오래 있어서 좋을 것이 없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시간을 끌면 끌수록 다른 부족들이 힘을 합쳐서 대항할 겁니다.”

“앞으로가 문제인데···. 강 너머로 정찰병들을 보낸 건 어떻게 되었나?”

“눈치 좋고, 잽싼 놈들로 보내뒀습니다만···. 몇몇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비디메르의 눈이 빛났다.

“도망친 건가?”

“판노니아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온 전사들로만 보냈습니다.”

“그럼···. 강 건너에 뭔가가 있기는 한 모양이군.”

“생각보다 게르마니아에 대한 로마의 영향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지난번에 사로잡은 부족장들 기억하십니까? 자신들 스스로 공작이라고 칭하던 이들 말입니다.”

비디메르는 잠시 기억을 뒤져보고는 대답했다.

“기억하네만···.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는가.”

“다른 이들도 그들을 공작이라 칭하고, 몇몇 족장들은 다른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지금 게르마니아에 국가가 세워졌다. 뭐 이런 말인가?”

부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추측해보자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정도이지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쯧···. 일단 병사들을 재정비하게, 쓸모있는 녀석들을 잘 추려내서 장비를 갖춰주고 훈련해.”

“예, 알겠습니다.”

부관이 비디메르에게 인사를 올리면서 자리를 떠났다.

“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야, 근무제대로 서게.”

“알겠습니다.”

부관은 자신의 천막으로 향하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생각했다.

‘처음 보는 얼굴 같았는데···. 병사가 부족해서 다른 놈들을 데려다 놓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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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나?”

“갔습니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어.”

“나중에 발목을 잡기 전에 미리 처리해둘까요?”

“아니, 일단은 작전대로 간다.”

전투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군영이 혼란스러웠던 탓에 파라몬드와 그의 부하들은 안전하게 비디메르의 군영에 섞여들 수 있었다.

그리고 몇몇 고트족 병사들을 구석진 곳에 재워두고서는 옷을 빼앗아 입고 지휘 천막 앞의 경비를 서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저자는 알란 공작 휘하에 있던 사람입니다.”

“저놈은 반달공작의 오른팔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았었나? 그새 줄을 갈아탄 모양이군.”

“저자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주변이 어두워지자 파라몬드와 병사들은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자네는 부하들을 이끌고 식량창고와 무기창고를 불태우게.”

“같이 가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파라몬드는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 들며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지휘관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 하지 않겠나? 목도 따간다면 전하께서 기뻐하시겠지···.”

“병사들을 붙여드릴까요?”

“아니, 혼자가 편해.”

“그래도 뒷정리에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제 쪽은 여유가 많으니 세 명 정도만 데려가시지요.”

부관의 말에 파라몬드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기노, 에길, 아기!”

“세쌍둥이인가?”

“예, 서로 합이 잘 맞고 충성심이 깊은 친구들이니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을만하겠지.”

파라몬드는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품속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서 부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혹시라도 날이 밝기 전까지 약속한 곳에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걸 부인에게 전해주고, 아들이면 클로디오, 딸이면 시네부르그로 지어달라고 전해주게.”

“주군···. 그게 무슨 소 리습니까, 부인께서는 직접 전하셔야지요.”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지···. 알아들었으면 빨리 움직이게, 이번 작전은 속도가 생명이야.”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전하께서 시키신 일은 정찰이었잖습니까.”

부관의 말에 파라몬드가 그 자리에서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전하의 휘하에는 이름 높은 전사들과 족장들이 즐비한데, 어린 내가 그분의 눈에 띄려면 큰 공적을 세워야 하네.”

“주군···.”

“그게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부족을 위한 길이자, 내 출세와 태어날 아이를 위한 길이야.”

“몸조심하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파라몬드는 대답 없이 몸을 돌려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부관은 파라몬드가 사라진 쪽을 향해 한참이나 경례를 올리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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