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6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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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게르마니아의 혼란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심해져 갔다.

마리우스에게 계급을 받은 이들이 서로 뭉치면서 집단을 만들었고, 다른 집단을 배척하면서 다툼이 이어지고 있었다.

예전에도 분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전이라면 분란이 생겼을 때 서로 간에 대화를 통해서 잘 해결하고 대화가 실패했을 시에나 전쟁이 벌어지고는 했지만···.

“대화는 지랄···.”

“주군, 병사들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백작님이라고 부르랬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거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됐어.”

파라몬드는 투구를 뒤집어쓰며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병사들 앞에 섰다.

병사들 또한 그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족장님, 우리 싸움도 아닌데 우리가 왜 가야 합니까요?”

“예전처럼 조용히 살면 안 되겠습니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공작께서 전쟁을 원하시고 게르마니아가 피를 원하고 있다.”

파라몬드의 말 대로였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게르마니아는 솥 안의 물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합병이 끝난 게르마니아는 크게 다섯 개의 세력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라인강 건너편에 다섯 개의 왕국이 생겼다는 말이었다.

“가자.”

파라몬드는 프랑크의 편에서 검을 들었다.

정확히는 프랑크 공작의 휘하에서 부르군트족과 싸웠다.

그는 싸움의 원인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공작과 맺은 계약 때문에 전쟁터로 불려 나와야 했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들과 싸워야 했다.

전쟁은 나날이 치열해져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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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일이 심각해졌군.”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신성로마제국처럼 서로 견제하면서 교류도 하고, 나중에 쳐들어올 훈족 놈들의 방파제쯤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지금 자기들끼리 죽일 듯이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

“이를 어쩐담···.”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세 가지나?”

데키무스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로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겁니다.”

“내버려 둔다?”

“예, 어찌 되었건 저들이 싸우는 동안에는 우리 쪽은 평화로울 게 아닙니까?”

사루스가 끼어들어 물었다.

“그러다가 저 아수라장을 통일하는 놈이 튀어나오면 어찌할 건가.”

“그런 놈이 안 튀어나오게 조절하면 되지.”

“당장 내부에서 날뛰려는 이들조차 제어하지 못하면서 강 건너의 일에 손을 댄다고.?”

“강 건너의 생각 없는 야만인들쯤이야 간단하지.”

사루스와 데키무스는 금방이라도 싸울 듯이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만하고 다음 거나 말해보게.”

“예, 각하.”

데키무스는 사루스를 한번 흘겨보고서는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로는 저들의 사이를 중재하는 것입니다.”

“중재? 중재라···. 그게 가능하겠나?”

“가능합니다. 지금 강 건너의 야만인들에게 각하의 영향력은 각하께서 생각하시는 것 이상입니다.”

“그 정도인가? 좀 비약이 있는 것 같네만.”

데키무스는 고개를 저었다.

“각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야만인 중에서 각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까지 따라 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니, 그걸 왜 따라 한단 말이야.”

“아무래도 이 근방에서, 제일 세력이 크고 성공한 사람이 각하이니 따라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판노니아에서 고트족과 드잡이질을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 게르만 놈들이 나를 따라 한다고 한다..

웃음이 안 나올 리가 있을까?

“그래서 내가 중재한다고 치자.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지금처럼 강 건너 야만인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영향력?”

“예, 싸움을 말리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각하의 재판을 받게 하는 겁니다.”

“흠···. 나쁘진 않은데···.”

“놈들이 각하의 말을 순순히 따르겠습니까?”

이번에도 사루스였다.

데키무스가 다시금 사루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따라야지. 안 그러면 어쩐다는 말인가.”

“중재는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했어야지요. 싸움이 한창이고 피가 흐르는데 누가 각하의 말을 따르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내가 사루스의 말에 동의하니 데키무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각하, 어차피 게르마니아에서 우리보다 군대가 많은 이들은 없습니다. 당장 사루스 휘하의 게르만군단이나 세르비우스 경의 3군단, 막시무스 님의 22군단에 베루스 경이 이끄는 14군단까지···.”

듣고 보니 데키무스의 말이 일리가 있다.

과장 조금 보태서, 당장 내 휘하에 있는 군단들이 서로마 전체 군단의 절반이 넘었다.

나머지 절반은 초토화된 달마티아 쪽이나 히스파니아,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등지에 흩어져 있으니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호노리우스를 끌어내리고 내가 황제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장 동부를 꽉 잡은 에우트로피우스가 내 장인이었고, 동방 친위대의 대장인 파비우스도 내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음···.”

“각하께서 마음만 먹으신다면 황도도 노릴 수가 있을 겁니다.”

데키무스의 말에 사루스가 발끈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각하께서 그런 판단을 내리시면 따르겠다는 말이지. 뭘 그렇게 놀라는 건가?”

“허···. 충성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종자 같으니.”

“야만인이 충성심을 논하다니 궤변이야.”

“이놈이···.”

둘은 금방이라고 검을 뽑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날 앞에 두고 지금 뭐 하는 건가, 몸이 근질거린다면 당장 훈련장으로 따라 나오게 내가 직접 상대해주지.”

내 말에 사루스와 데키무스가 움찔거리더니, 서로를 노려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일한 둘이었지만, 물과 기름처럼 섞이질 않는 것이 참으로 답답했다.

“제발 그 만들 좀 싸우게, 하루가 멀다고 싸워대니, 보는 내가 다 답답해!”

“끄응···. 죄송합니다. 각하.”

“으음···. 죄송합니다.”

“됐어. 앓느니 죽지···. 그리고 데키무스.”

“예, 각하.”

“황제 폐하를 폐위한다느니 그런 헛소리할 거면, 당장 군복 벗고 가서 농사나 지어. 군인이라는 사람이 허튼 생각을 가져서야 하겠나?”

내 말에 데키무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각하, 저는 그저 각하를 향한 충성심에···.”

“알아. 안다고, 그런데 선은 지켜야 할 것 아니야? 자네는 내 부하이기 이전에 로마의 군인일세 그걸 잊지 말게.”

“예, 각하···.”

데키무스의 얼굴에는 불만의 기색이 보였다.

고위장교가 이 모양인데 병사들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뻔했다.

아무래도 조만간에 병사들의 정신교육이 필요해 보였다.

“아무튼, 두 번째 건은 넘어가지, 애초에 중재할만한 상황을 벗어났어.”

“예, 각하 그럼 세 번째 방법을 말하겠습니다.”

“그래.”

“세 번째 방법으로는 무력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전부 때려잡자는 말이로군.”

“솔직히 말하자면, 적들이 분열되어있고 혼란스러울 때 역으로 치고 나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데키무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각하께서 가장 원하시는 방법인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허허···. 사람 참. 날 뭐로 보고?”

그렇게 말하는 내 입은 웃고 있었다.

라인강의 수비 - 12

“슬슬 협상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 족장의 말이었다.

무리를 이끌고 있는 자리에 앉은 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안된다.”

“공작님!”

“지금 저들과 협상하자고 나간다면, 저들이 우리를 얼마나 업신여기겠나! 나도 마음 같아서는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공작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쓸모도 없는 산 하나를 차지한다고 벌써 오백이나 죽었어! 그런데도 저 산에는 적들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데 협상?!”

“공작님 더 이상의 공세는 무리···.”

“협상을 하고 싶으면 저 산을 넘던가, 최소한 적장의 목을 가져와.”

이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파라몬드가 말했다.

“로마인들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파라몬드로 향했고, 공작 또한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로마인? 생각해둔 이가 있나.”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모두 알고 있다고···?”

족장들의 웅성거림이 커지면서 파라몬드의 말이 묻혔고, 이를 보다 못한 공작이 탁자를 연신 내리치면서 말했다.

“조용, 조용, 조용! 다들 예의는 전쟁터에 두고 온 건가? 다른 이가 말할 때는 경청하라던 각하의 가르침을 잊었는가?”

“바로 그겁니다.”

“뭐?”

파라몬드는 전에 없는 진중한 모습이었다.

“총독 각하께 중재를 부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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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참으로 여유로운 하루였다.

처리해야 할 일도 없었고, 매일같이 싸워대던 사루스와 데키무스도 오늘따라 조용했다.

“하루하루가 딱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네.”

“아빠! 저기 조랑말!”

오랜만에 안토니나의 손을 붙잡고서 아그리피넨시스의 시내를 돌아다녔다.

처음 왔을 때보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늘어났고, 상점의 가판대에 널린 물건들의 가짓수도 많이 늘어난 게 인상적이었다.

비루하고 수척했던 사람들의 모습에도 활기가 돌고 있는 것이 나름대로 일한 보람이 있었다.

“올려줘!”

“으음···. 좀 위험하지 않을까?”

“말 타고 싶어요!”

“이럴 때만 존댓말이 나오는구나···.”

안토니나와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 때쯤.

데키무스가 병사들과 함께 나타났다.

“빡빡이 아저씨!”

“어허, 안토니나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아빠가 가르쳐줬잖···.”

황급히 안토니나의 입을 틀어막으며 데키무스를 돌아봤다.

다행히도 못들은 모양인지 데키무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각하, 동부 공작 브레누스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걔가 누군데.”

“강너머에서 제법 세력을 갖춘 프랑크족 공작입니다. 휘하에 있는 부족민들의 수가 제법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발 하루도 쉴 틈을 안 주는구나.”

“돌려보낼까요?”

“아니, 응접실에서 한 시간만 기다리라고 해. 금방 갈 테니까.”

데키무스가 경례를 올리고는 자리를 떠났다.

벗어나려고 내 품 안에서 발버둥 치는 안토니나를 내려주며 말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네.”

“벌써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래.”

나름대로 설명했지만, 이미 안토니나의 입은 오리 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잔뜩 화난 모습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다음에는 아빠랑 다 같이 놀러 가자.”

“......”

말은 없었지만, 손은 잡는 안토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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