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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야만인들의 침공은 없을 듯싶습니다.”
“그래? 그것참 다행이로군.”
기지개를 쭉 켰다.
게르마니아에 부임한 지 1년하고도 몇 달이 흐른 시점이었다.
국경은 안정적이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비실비실하던 시민들은 제법 살이 붙었다.
이제야 뭘 해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 이번 분기 세금은 얼마나 걷혔나?”
“솔리두스 금화로 200닢 정도 걷혔습니다.”
“음···. 생각보다 적은 것 같은데···?”
“어쩌겠습니까, 이것저것 메우고서 처음으로 걷는 세금인데요.”
“으음···. 그중에 절반만 올려보내고 나머지는 여기서 쓰지.”
“알겠습니다.”
게르마니아에는 여전히 돈이 모자랐다.
그동안은 아예 세금이 안 걷혀서, 내 자비를 투입해서 시민들을 먹여 살릴 지경이었다.
허리가 부러지도록 돈을 쏟아부어서 겨우 멀쩡하게 만들었나 싶었지만, 아직도 위태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뭔가 팔아먹을게 필요해.”
말 그대로 팔아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 게르마니아에서 나는 식자재들은 게르마니아의 시민들을 먹여 살리고, 남는 것은 야만인들에게 팔아치울 뿐이었다.
야만인들이 아무리 덩치가 커봤자, 로마의 속주와 비교하기에는 그 경제력이 형편없었다.
이제는 야만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로마시민들에게 팔만한 것이 필요했다.
“뭐가 있을까···.”
한참이나 고민에 빠져서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애타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안토니나.”
자세를 낮추니, 안토니나는 전력으로 달려와서 내 품에 안겼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지낸 덕분인지, 그 충격이 상당해서 부딪히자마자 뒤로 넘어질 뻔했다.
“히히히”
“우리 공주님. 오늘은 뭐 하셨을까요?”
“오늘은 엄마랑 시장 둘러봤어요!”
“엄마? 누구?”
“큰엄마요!”
아멜리아와 놀았던 모양이다.
“잘했어요.”
“히히히···. 아빠, 그런데 있잖아요.”
“응?”
안토니나는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서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사탕이 이제 없대요.”
“사탕?”
지금 사탕이 있었나.
머릿속에 혼란이 찾아왔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 중에서 단맛이 나는 거라고는 납을 조금 첨가해서 단맛을 내던 괴이한 음식뿐이었는데 말이지.
“이거요.”
안토니나는 주머니에서 거무튀튀한 흙빛의 덩어리를 꺼내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빨아먹고 있었다.
“아···. 설탕?”
“사탕!”
“그래, 사탕.”
누굴 닮았는지 고집은···.
“시장에 사탕이 없대요.”
“그래? 그거 아쉽겠구나, 어차피 그런 거 많이 먹으면 이빨이 전부 썩어버려요.”
“사탕 먹고 싶은데···.”
“오늘 일은 끝나셨나 봐요?”
“엄마다!”
정겨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테르만티아가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큼직한 일들은 끝났지 뭐···.”
“잘됐네요. 마침 안토니나가 사탕이 떨어졌다고 얼마나 칭얼대던지.”
“안 그랬어!”
“보세요.”
“그런데 저건 어디서 구한 건데?”
“콘스탄···. 코스···.”
“콘스탄티노플.”
“맞아요. 거기 시장에서 샀어요.”
콘스탄티노플이라···.
아무래도 동방에서 건너온걸 우연히 안토니나가 산 모양이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로 건너오는 대부분 물품이 중국이나 인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니, 이 설탕도 인도에서 온 게 분명하겠지.
“설탕이라···.”
이런 걸 만들어서 팔 수 있으면, 돈 좀 만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무슨 방법이 없으려나?
“아빠, 사탕-”
“저녁 먹을 때 봐요.”
“사탕!”
사탕···.
안토니나가 떼를 쓰는 통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던 중에 머리에 번개가 꽂히듯이 정신이 번쩍 들면서 짜릿짜릿했다.
“사탕무···!”
“사탕?”
“그래, 그게 있었지!”
“사탕 있어?”
보채는 안토니나의 머리를 쓰다듬고서는 발걸음을 옮겼다.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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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게으른 창고지기의 볼기짝을 걷어차서 깨우고는 사탕무가 쌓인 창고로 향했다.
다행히도 사탕무들은 수북이 쌓여있었다.
“지금 사람들 불러모을 수 있겠나?”
“시키면 해야죠···.”
“당장 불러.”
사탕무로 설탕을 만들 수 있다는 그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는 몰랐다.
그런 내가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하나였다.
“너희에게 제안하겠다.”
공터에 모인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용. 내가 너희에게 제안하고자 하는 바는 딱 하나다.”
손에 든 사탕무를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이걸로 설탕을 만들어 오는 이를 변천시켜주고, 제법 중요한 직책을 내리겠다. 하겠나?”
“그렇게 말씀하셔도···.”
“어떻게 만드는지를 모르는데···.”
“지금 일도 편하고···.”
“그냥 하라면 해!”
참으로 피곤한 하루였다.
라인강의 수비 - 11
마리우스가 사탕무로 설탕을 만든다고 한창 삽질하고 있을 때. 브리타니아에서는 아칸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칸이 지난 1년 동안 공들인 일은 단 하나였다.
브리타니아에 주둔 중인 6군단을 회유하는 일.
아칸은 지난 반란에서 병력의 부족으로 스틸리코에게 패배한 뒤 광적으로 군사에 집착했다.
메디올라눔에서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친 이후로 아칸은 더 완벽한 계획에 집착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카르타고에서 토착세력의 불만을 자극해 반란을 일으켜서 스틸리코를 끌어낼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바꿔서 브리타니아로 도망쳐왔다.
거기에 기존부터 끈을 유지하고 있던 카티우스까지 끌어들이면서 브리타니아로 불러들였다.
“아시겠습니까?”
“아칸···. 당신이 이런다고 스틸리코 장군께서 눈 하나 깜빡일 것 같소?”
“그거야 모를 일이지요.”
아칸의 앞에는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아칸을 노려보는 장군이 묶여 있었다.
아칸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면서 웃음 지었다.
“6군단의 장병들은 저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허, 돈으로 산 충성이 얼마나 갈 것으로 생각하나?”
“글쎄요. 최소한 당신의 목숨보다는 오래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카티우스가 조용히 검을 뽑아 들었고, 아칸은 방긋 웃으면서 물었다.
“지금이라도 저와 함께하신다면, 살 수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끝나지 않을 무궁한 영광을 함께할 수도 있겠지요.”
그는 그런 아칸을 비웃었다.
“내 복수는 스틸리코 장군과 로마가 할 거다.”
“......유감이군요.”
칼이 내리치고, 목이 떨어졌으며, 또 하나의 로마인이 세상을 떠났다.
“잘 묻어주게. 그래도 로마인 아닌가.”
병사들이 조심스레 시신을 수습해갔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헤라클리우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시는 겁니까.”
아칸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아니, 아직이네! 곧 신호가 올 거야.”
“신호 말입니까···?”
“그때가 되면 알 수 있을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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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프루스는 오늘도 바빴다.
주인을 따라 게르마니아로 온 뒤로 마리우스 휘하의 노예들을 지휘하면서 그의 가정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이걸로 설탕 만들어와.”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요구였지만, 코프루스에는 거부권이 없었다.
주인이 시키면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다들 무슨 좋은 생각이 없는가?”
“일단 잘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볼까요?”
“아니면 가루로 만들어서 끓여보는 것도···.”
“즙을 짜서 수액으로 만들어 볼까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코프루스가 말했다.
“일단 전부 해보지.”
“오래 걸릴 텐데요.”
“돈도 많이 들고요.”
“괜찮아, 주인께서 만들라고 하셨을 때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으셨겠나?”
코프루스의 지휘하에 설탕 제조는 박차를 가했다.
몇 주 동안 사탕무를 끓이고, 찌고, 말리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한 끝에야 사탕무에서 당액을 뽑아낼 수 있었다.
“성공했다고?”
“예, 어르신.”
한 어린 노예의 솜씨였다.
코프루스가 그런 소년을 기특하게 여기며 물었다.
“수고가 많았구나, 어떻게 한 것이냐?”
“사탕무를 썰어서 오랜 시간 동안 끓였더니, 물에서 단맛이 났습니다.”
“그렇게나 간단하다고?”
“예, 그···. 설탕을 만드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달콤한 맛만 뽑아낼 생각을 했더니···.”
코프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칭찬했다.
“장하구나! 나도 설탕을 만든다는 생각만 했지, 다른 방법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어쩌다 보니 생각한 것입니다.”
코프루스는 곧바로 당악을 마리우스에게 바쳤다.
“이게 금화 80닢 자리 당액이란 말이군···.”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그렇습니다.”
한 모금 마셔봤다.
확실히 사탕무를 생으로 먹을 때보다는 달았지만, 풀냄새가 심하게 나는 것이 영 먹기 불편했다.
“풀냄새가 심하게 나는데.”
“몇 번 걸러낸 다음에 졸이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걸리려나?”
“어림잡아 한 달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완성되면 최대한 빨리 가져오게, 안토니나가 사탕 달라고 아우성이야.”
“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