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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에우독시아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로 골골거렸다.
“적당히 드셨어야죠.”
“으어···. 부족장들은···?”
“다들 돌아가기 전에 당신을 뵙고 싶다는 걸 억지로 돌려보냈어요.”
“끄응···. 그래도 다행이구먼···.”
“평소에는 술은 입에도 안 대시던 분이 무슨 바람이 불었대요?”
에우독시아의 질문에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갔다.
“다 이유가 있지.”
“그래요? 그게 뭔데요.”
“그건···.”
라인강의 수비 - 9
“애태우지 말고 말해줘요.”
“별거 없어. 그냥 좀 친해지겠다는 거지.”
“겨우 그것 때문에···.”
“경우가 아니지 아일라.”
감았던 눈을 뜨고 에우독시아와 눈을 맞췄다.
“첫 번째! 놈들과 친해진다.”
“그게 뭐예요.”
“그리고 두 번째.”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과 굉장히 친해진다.”
“그래서요?”
“쓸만한걸 뜯어오는 거지, 북부의 농사법이나 놈들의 전투방식 같은 거 말이야.”
“그런 게 쓸모가 있을까요?”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으니까, 두고 보면 쓸데가 있겠지.”
에우독시아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니 나는 더 신나서 떠들었고, 말이다.
“들어봐 그놈들의 걱정거리가 뭐겠어?”
“글쎄요. 야만인들처럼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안전, 명예 이 두 가지 아니겠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공교롭게도 내가 둘 다 채워줄 수 있지!”
“그래요?”
에우독시아는 중간부터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저 내가 입고 있는 옷의 맵시를 잡아주면서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혼자 신나서 떠들었고, 말이다.
“작은 부족 놈들이랑 계약부터 하는 거지!”
“무슨 계약이요?”
“음···. 대충 이런 거야. 이 땅에 대한 권리를 모두 너한테 넘겨주고 나중에 내가 필요로 할 때 병사 몇 명을 보내고, 수입의 삼 분의 일을 세금으로 바치라는 거지.”
“그럴듯하네요. 잠깐만 움직이지 말아봐요.”
“그렇지? 내가 또 머리를 안 써서 그렇지. 한번 쓰면 모두 깜짝 놀란다니까?”
“다 됐어요.”
그녀가 옷을 털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 너무 괴롭히지 마시고요.”
“내가 언제 그랬다고.”
“오늘은 제 차례인 거 아시죠?”
“어, 벌써 시간이···. 나 가볼게!”
“잠시만요.”
그녀가 나를 불러세우고서는 볼에 입을 맞췄다.
“잘 다녀와요.”
문밖에는 데키무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일 있으십니까?”
“응?”
“평소보다 편안해 보이십니다.”
“흠흠···. 족장들은 전부 잘 돌아갔나?”
“예, 혹시 문제가 생길까 봐 강을 건너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수고했네.”
“그런데 그놈들을 왜 그리 챙겨 주신 겁니까?”
데키무스는 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내 업무를 하는 거지.”
“예? 그건 무슨 소리십니까.”
그 자리에 멈춰서서 데키무스를 돌아봤다.
하지만 데키무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말했다.
“야만인들 기강 다지기.”
“그건 또 무슨···. 각하!”
데키무스가 물어보려 했지만, 속도를 높여 멀리 달아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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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마시우스가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오던 날.
수많은 시민이 그를 반겼다.
그리고 그의 병사들을 반겼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황도의 풍경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환영합니다. 장군.”
티마시우스는 박살 난 황궁에 대해 에우트로피우스에 물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고작 몇 달 사이에 이게 무슨···.”
“음···.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루피누스, 그 사람 짓입니까? 그 새끼를 당장!”
“아아···. 진정하시지요. 장군.”
“진정은 무슨 진정입니까! 아무리 급해도 그 녀석부터 처리했었어야 했는데, 제가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에우트로피우스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장군, 루피누스는 죽었습니다.”
“뭐요···?”
티마시우스는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무서운 얼굴로 에우트로피우스에 물었다.
“아는 대로 말하세요. 전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우선은 장군께서 해야 할 일을 하시지요.”
에우트로피우스는 병사들을 가르쳤다.
어느 정도 재건되기는 했지만, 무너져있는 황궁을 본 병사들 또한 티마시우스만큼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전부 설명하셔야 할게요.”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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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동안 낮에는 정신없이 게르마니아의 현황파악에 주력했고, 가끔 인근의 부족장들을 불러모아 연회를 열면서 그들과 교류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만나는 횟수가 두 자릿수가 되어갈 때쯤에 입질이 왔다.
“각하!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응? 뭐가.”
흔히 볼 수 있는 부족장 간의 다툼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달랐다.
“저는 각하께서 처음 불렀을 때부터 참석했는데, 오늘 처음 온 이와 겸상을 하라니요?”
“음···. 문제 있나?”
“있지요! 있고말고요! 제가 각하를 만나 뵌 것도 벌써 반년이 넘었습니다.”
“으음···. 그렇지.”
최대한 고민하는 척하면서 웃는 얼굴을 가렸다.
다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감정이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아니면, 본심이 나오는 걸 수도 있고.
“듣자 듣자 하니, 말이 너무 한 것 아닙니까?”
“먼저 온 게 대수요!”
“네놈들이 눈치 볼 때, 우리는 행동으로 보여줬어!”
“자기들 좋을 때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놈들이 말이 많아!”
“이놈이···!”
“한판 해보자는 거냐?”
부족장들은 둘로 나뉘더니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듯했다.
각자 숨겨 들어온 무기를 뽑아 들었고, 주변에서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 황급히 따라 들어오면서 살벌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만!”
한창 대치 중이던 이들 사이로 술잔을 던지면서 소리치니,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손님으로 와서 이게 무슨 추태인가?”
“저놈이 먼저···!”
“누가 먼저 했건 상관없다!”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는 척하며 부족장들을 내려다봤다.
아직은 술이 덜 깬 듯이 조금 흥분한 얼굴이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았다.
“나는 자네들을 좋게 대접했는데, 자네들은 손님 된 자로서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저희 잘못입니다.”
그래도 아직 정신이 있는 몇몇이 고개를 숙이니, 다른 이들 또한 무기를 집어넣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말없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술 먹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법이지. 내가 술기운에 좀 심하게 말한 것 같군.”
“아닙니다!”
“흠···. 흥이 다 깨졌으니 오늘의 연회는 여기까지만 하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취기 때문에 머리가 핑 돌았지만, 튼실한 하체로 버텨냈다.
아마 부족장들은 마음이 무거워졌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여태까지의 총독 중에서 나만큼 그들과 잘 어울린 이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잘 대해줬는데, 한순간의 실수로 사이가 틀어지게 생겼으니 말이다.
“각하, 연회를 망친 놈을 잡아다가 혼을 내시지요.”
“내버려 둬.”
“예? 이건 각하를 무시한 행위입니다. 감히 손님이라는 자가 주인의 앞에서 연회를 망치다니요!”
“괜찮아. 오히려 이걸 기다리고 있었다네.”
“예?”
데키무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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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족장님 어쩌자고 그러셨습니까!”
“끙···. 그럼, 브레누스 그놈이 옆에 떡하니 앉는데 화가 안 나겠어?!”
“참으셨어야죠!”
“참기는 무슨···. 그놈이 우리한테 한 일을 잊었단 말이냐?”
“그래도 총독 앞에서 그러시면 안 되셨습니다.”
“그건, 그렇지···. 끙···. 각하께서 많이 화가 난 모양이던데.”
부족장은 전전긍긍하면서 해결책을 고민했다.
“어쩌겠습니까. 선물이라도 바쳐서 화를 푸시지요.”
“선물? 무슨 선물? 너도 보지 않았더냐, 총독이라는 놈은 궁전 같은 곳에서 잘살고 있는데, 우리 선물이 눈에나 들어오겠어?”
“그거 있지 않습니까?”
“그거라니.”
“씹으면 단맛이 나는 거 말입니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족장이 화를 냈다.
“말 먹이를 총독에게 바치자는 거냐?”
“어차피 말 먹이인 줄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걸 총독이 좋아하겠나?”
“모습이 이래도 먹어보면 달짝지근한 것이 나름 먹을 만합니다.”
“끙···.”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음 연회 날.
아그리피넨시스는 강 너머에서 몰려온 이민족들로 인해 인산인해였다.
다들 나름대로 부족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전사들과 함께했고, 약소하게나마 왕을 칭하는 족장은 제법 많은 수행원을 데려왔다.
그러다 보니 연회 날만 되면은 아그리피넨시스에는 활기가 돌았다.
거리 곳곳에서 프랑크 인과 부르군트인들이 연회를 기대하면서 여관을 잡거나, 대장간에 들러서 로마산 강철농기구와 무기를 사들였다.
처음에 게르마니아 의회는 이들과의 거래와 도시 출입을 막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지만,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거래 수익에 입을 다물었다.
교류가 이어지니, 처음에는 이민족들을 꺼렸던 시민들도 어느샌가 연회 때마다 놀러 오는 이민족들을 탈탈 털어먹기 시작했다.
“아니, 지난번에는 은화 세 닢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달에 남쪽에서 올라오는 밀가루가 줄어들어서 어쩔 수가 없다네.”
“그래도 그렇지. 은화 다섯 닢이면 거의 두 배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열 포대를 사면 한 포대를 얹어준다고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