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49/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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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올라눔의 전투결과는 몇 주 사이에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황도가 야만인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이러했다.

“그런데 야만인들이 어떻게 황도까지 올 수 있었던 거지?”

“그러게, 전선의 군인들은 뭘 했던 건데.”

“뻔하지, 야만인들이 지나갈 때까지 벌벌 떨고 있었겠지 뭐!”

“그래도 스틸리코 장군께서 병사들을 지휘해서 물리치셨다니 다행이지 않은가?”

“메디올라눔에 숙부님이 사시는데 괜찮으실지 모르겠네.”

대부분은 병사들을 욕하면서도 적들을 물리친 스틸리코를 칭찬했으나, 일부는 이렇게도 말했다.

“그런데 이번 전투에서 제일 활약했던 사람이 마리우스? 그 사람이라던데.”

“그건 또 누구래.”

“친위대 장군이라는 데 힘이 엄청 세다고 하던데.”

“아, 나도 들어본 것 같아. 듣기로는 무시무시한 야만인이라고 하던데···. 키가 8 페스(약 236cm)정도라고 하던데?”

“어마어마하구먼···.”

마리우스의 이름 또한 제국 전역으로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소문이 소문을 낳는 헛소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마리우스라는 이름만큼은 로마인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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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올라눔에서 전투가 끝난 지 며칠 뒤에 데키무스가 이끄는 동부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데키무스와 병사들은 박살 나 있는 성벽과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보고서는 말을 잊었다.

“그러니까 장군께서 적의 본진을 털어먹고, 적의 후방으로 돌격해서 전투를 끝내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참으로 대단했지요.”

데키무스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세르비우스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고작 기병 이천을 데려가서 수만 명의 적을 모조리 도륙 냈다는 겁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적이 겁에 질려서 항복했지.”

“겁에 질렸다고요···?”

“그냥 가서 창 몇 번 휘두르니까 하나같이 무기를 내던지면서 오줌을 지리더군.”

데키무스가 세르비우스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 원래 저런 분입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진짜라니까 그러네.”

한참이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으니 꽁꽁 묶여있는 라다가이수스가 끌려왔다.

전차 경기장에 가득 모인 포로들 앞에 라다가이수스가 무릎 꿇려졌다.

어제 종일 얻어맞았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잘 지냈나?”

“......”

“지난번엔 잘만 말하던 놈이 입을 다문 다라···.”

마리우스가 손짓하니 포로들 틈에서 라다가이수스의 어린 딸이 붙들려 나왔다.

마리우스는 다시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나?”

“가족은···. 가족은 내버려 둬라.”

“자기 가족은 소중하다···. 뭐 그런 건가?”

“나 하나만 죽이면 될 일이 아닌가, 십자가에 매달든지 사지를 찢어버리든지 마음대로 해! 다만···. 내 가족들과 부하들만은 살려다오.”

“좋아, 그게 소원이라면 들어주겠다.”

“장군?”

세르비우스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마리우스는 손을 들어서 그를 제지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

“준비해라.”

마리우스의 말에 지난 전투에서 팔다리를 잃은 병사들이 몰려들어 일렬로 섰다.

다들 영문을 모른 채로 마리우스만을 바라봤다.

“저들이 누군지 아나?”

“......”

“지난 전투에서 네놈의 욕심 때문에 앞으로의 삶이 힘들어진 친구들이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지.”

“어허,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도 이해를 못 한 모양이구나.”

마리우스의 손이 떨어지고 라다가이수스의 딸이 비명을 질렀다.

딸의 비명에 라다가이수스가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병사들이 붙잡았다.

“이놈! 이런 천하의 미치광이야!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다음.”

“아버지!”

“나한테···.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라다가이수스의 두 눈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다.”

“도대체 뭘 원하는지를 말해!”

“말이 짧아.”

“아아악-!”

“이런 미친 새끼야!!”

라다가이수스는 침을 줄줄 흘리면서 두 눈의 핏줄이 터졌는지 붉어진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야, 야만인도 가족이 죽는 건 슬픈 모양이지?”

“제발···. 제발 그만둬 주십시오···. 이렇게 빌겠습니다.”

라다가이수스가 연신 고개를 땅에 받았다.

곁에 있던 병사들이 말리려 했지만, 마리우스가 손을 들어서 그를 제지했다.

라다가이수스의 머리가 바닥과 부딪힐 때마다 큰 소리가 나더니 이내 피가 터져 나왔다.

“그만.”

병사들이 머리를 박으려는 라다가이수스를 제지했다.

“이제 말할 생각이 드나?”

“예, 뭐든···.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부디 가족과 부하들만은···.”

“음···. 교육의 성과가 드러나는군!”

라다가이수스는 눈이 반쯤 풀어진 상태였다.

이마는 제대로 깨졌는지 움푹 들어가 있었고, 깨진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데키무스나 세르비우스는 잔혹한 모습에 고개를 돌렸고, 마요리아누스는 대놓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다시 묻겠다. 저들이 누구인지 알겠나?”

“로마···. 로마의 병사들입니다···.”

“그래, 네 욕심 때문에 인생을 망친 이들이다. 이제 저들은 얼마 안 되는 푼돈을 받고 전역하겠지.”

“죄, 죄송···. 합니다···.”

“내가 아닌 저들에게 용서를 빌어라.”

팔다리가 묶인 라다가이수스는 힘겹게 땅을 기어가 병사들 앞에 꿇어앉았다.

그리고는 힘겹게 바닥에 머리를 박으면서 사죄를 청했다.

“죄송합니다! 저의 욕심 때문에···!”

“아, 아니···. 그게···.”

병사들은 당황하며 라다가이수스를 말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우스는 덤덤하게 물었다.

“그를 용서하나?”

데키무스가 끼어들어 마리우스를 말렸다.

“장군, 애초에 전투에서 다친 것일 뿐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데키무스, 조용하게.”

“아닙니다. 장군님의 말이 맞습니다. 모든 것은 저희가 전투 중에 방심하여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군.”

마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물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 저들이 방심하고 모자라서 저런 꼴이 된 것인가?”

“......”

“다들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미 지난 일을 따져서 무엇합니까!”

한 병사의 말이었다.

그는 한쪽 다리가 없었다.

“이미 제 다리는 떨어졌습니다. 인제 와서 잘잘못을 따진들 무슨 소용입니까.”

“그 말이 옳다.”

마리우스가 손짓하니 코프루스가 낑낑거리면서 커다란 궤짝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궤짝을 열어젖히니 누런빛의 금괴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안에는 로마를 위해 헌신한 제군들의 보상이 담겨있다. 필요한 만큼 마음껏 가져가서 가족에게로 돌아가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

마리우스의 말에 병사들은 눈물을 흘렸다.

“장군···. 먹고살 길이 막막했는데, 이리 도와주시다니···.”

“장군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비록 이제는 보잘것없는 농부지만, 장군께서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달려오겠습니다.”

마리우스는 눈물바다가 된 병사들을 뒤로한 채로 포로들에게 걸어갔다.

수많은 눈동자가 마리우스에게로 향했다.

“너희들에게도 묻겠다. 왜 국경을 넘어서 이역만리 타국에서 개죽음을 당했나?”

“...먹고살기 위함입니다.”

포로들 중에서 한 사내가 일어나 말했다.

병사들이 제지하려 했지만, 마리우스가 막아서며 물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사루스···. 사루스라고 불러주십시오.”

“라틴어가 제법이군.”

“아버지께 조금 배웠습니다.”

“좋다 사루스. 너는 왜 국경을 넘었나.”

“배가 고팠습니다. 제가 굶는 것은 참겠지만, 가족이 굶주리는 것은 보지 못하겠더군요.”

“그 말은 다시 배가 고프면 국경을 넘겠다는 말이로군.”

“솔직히 말하자면···. 예, 그렇습니다.”

“저놈이···!”

마리우스는 웃으면서 물었다.

“로마로 넘어올 생각은 하지 못했나?”

"내 아버지는 군단병들의 손에 들개 밥으로 던져졌고, 내 어머니는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노예로 팔려가셨습니다. 두 분 다 안식을 얻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겠지요. 그런 내가 자식들에게 같은 운명을 물려줘야 합니까?"

사루스의 말에 울분이 가득했다.

“안된 일이군.”

“이게 다 로마놈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언제나 빼앗기만 합니다. 왜 우리는 언제 나 빼앗겨야 합니까?”

“자신의 것을 지키고 싶은가.”

“저는 언제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뺏었습니다.”

“좋다. 자네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주겠네.”

마리우스의 말에 세르비우스가 발끈했다.

“장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사루스. 로마제국의 친위대장인 나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새로운 로마 시민들을 대표하는 너에게 묻겠다. 세상의 모든 것을 빼앗을 준비가 되어있나?”

“....예, 가족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것입니다.”

“좋다. 너는 로마의 시민들과 황제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

“......”

마리우스의 말에 세르비우스가 경악했다.

그가 하는 말은 로마군에 입대할 때 처음으로 하는 선서였다.

“바치겠습니다.”

“다른 이들도 그런가!”

눈치 빠른 한 병사가 재빠르게 통역했다.

[맹세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내게 하사하신 권한에 따라 오늘부로 너희 모두는 로마의 시민이자 친위대의 일원이다.”

“장군, 이게 무슨 경우란 말입니까!”

“뭐가 말입니까, 포로를 징집했습니다.”

“아니, 그걸 그렇게 마음대로···.”

“문제라도?”

마리우스의 뒤의 수많은 눈동자가 세르비우스로 향하니, 그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마리우스는 세르비우스의 어깨를 두들겨주면서 피를 흘리는 가축들과 그 곁에서 벌벌 떨고 있는 라다가이수스의 아이들을 지나치면서 말했다.

“새로운 시민들을 위한 축제를 열어야겠군!”

라인강의 수비 - 2

마리우스가 게르만 포로들을 휘하로 편입시켰다는 소식은 빠르게 스틸리코에게 전해졌고, 지휘부의 인원들은 저마다 불만을 터뜨렸다.

“마리우스 놈을 가만 두고 보자니 너무한 것 아닙니까? 포로의 처우는 스틸리코 장군의 일인데, 제 놈이 무슨 권한으로 부대에 편입시킨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포로들의 처리는 장군의 권한이지 놈의 권한이 아닙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스틸리코가 물었다.

“다들 잔뜩 화가 난 모양이군.”

“장군, 마리우스가 딴 마음을 품은 게 확실합니다. 놈이 선수를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놈을 쳐야 합니다.”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소장이 앞장서겠습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방안의 장교들은 하나같이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당장 스틸리코의 명령이 떨어진다면 금방이라도 마리우스에게로 달려갈 모습이었다.

그런 이들을 보며 스틸리코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 자네들의 말이 바르다고 가정해보지, 당장 마리우스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적은 누구이고 아군은 누구인가.”

“메디올라눔의 모든 병사는 장군을 따르고 있습니다. 동부에서 온 병사들 또한 장군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따를 것입니다.”

“마리우스 놈에게 있는 거라고는 친위대뿐인데, 고작 한 줌의 친위대로 무얼 하겠습니까?”

스틸리코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창가로 향했다.

수많은 병사와 시민들이 모여, 마리우스를 연호하고 있었다.

“자네들은 저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저들의 지지는 일시적일 뿐입니다···.”

“약간의 황금으로 얻은 지지가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아니지, 저들이 황금을 받은 것에 주목할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저들이 요구할 때 황금을 내어주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스틸리코의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하였다.

“황금이야 저희도···.”

“그래, 자네들에게도 황금은 있지···. 그런데 그 황금을 저들에게 나눠줄 생각을 해봤는가?”

“저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누구나 생각할 수는 있지만.”

스틸리코가 고개를 돌려서 장교들을 바라봤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지. 그래서 내가 마리우스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고 말이야.”

“장군, 너무하십니다. 저희가 장군과 함께한 세월이 몇 년인데···.”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스틸리코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자네들의 의견도 일리가 있군. 그럼 이렇게 하는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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