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43/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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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취-”

“감기 걸리셨습니까?”

“코가 갑자기 간지럽네. 누가 내 욕하나.”

“너무 많아서 누군지 모르겠군요.”

“데키무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전방주시나 제대로 하도록.”

마리우스가 이끄는 부대는 어느덧 달마티아에 이르렀다.

제법 속도를 낸 탓에 병사들이 지치긴 했지만, 보름 정도 될 거리를 밤잠도 아껴가면서 일주일로 단축했다.

물론 이곳에서 메디올라눔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가야 했지만 말이다.

“이곳이 11군단 주둔지인가?”

“마요리아누스의 말대로라면 이 근처에 언덕이라고 했습니다.”

“언덕이라···.”

내 눈에 보이는 언덕만 해도 다섯 개가 넘었다.

이걸 하나하나 올라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쯤, 정찰을 보냈던 정찰병이 돌아왔다.

“장군!”

“그래, 11군단의 잔존 병들은 찾았나?”

“그것이···.”

정찰병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못 볼 것이라도 봤는지 잔뜩 겁에 질리고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뭔가, 편하게 말해보게.”

잠시 고민하던 정찰병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앞장서.”

정찰병의 뒤를 따라서 올라간 곳의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나름 판노니아에서 못 볼 꼴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보인 광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국에서 봤던 고러한 공포영화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군영 곳곳에는 문자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죽어있는 병사들과 해진 헝겊처럼 너덜너덜한 시체들이 가득했다.

신병들이 대다수였던 근위 군단의 병사들은 곳곳에서 토악질해댔고, 나름 고참병들인 3군단의 병사들 또한 안색이 좋지 못했다.

“제가 20년쯤 군에 몸담았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군요···.”

“찢어 죽일 야만인들 같으니···.”

“쓸데없는 소리 하기 전에 무키우스 경이나 찾읍시다.”

병사들은 시체에 손을 대는 것조차 두려워했기에 어쩔 수 없이 친위대 병사들을 동원해서 시신을 뒤졌다.

“씨발 새끼들···.”

“도대체 무슨 원한을 맺었기에···. 이런···.”

조심스레 시신을 하나하나 뒤지던 중에 탑처럼 쌓여있는 병사들 시체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루시우스의 목을 찾았다.

“루시우스님···.”

특유의 건들건들한 얼굴 그대로였다.

매번 근무쯤 때리던 기억만 가득한 이였지만, 이런 모습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씨발···. 티투스 님?”

그 옆에는 온몸이 난도질 되어있는 티투스도 보였다.

얼굴이 뭉개져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평소 그의 갑옷에 달려있던 접시 모양의 훈장들 덕분에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격렬하게 싸운 듯했다.

“개새끼들.”

“장군! 군단장님의 시신을 찾았습니다!”

시체들 사이에서 간신히 찾은 무키우스의 시신은 들짐승들이 파먹은 지 오래였고, 남은 부분은 그의 신분을 증명하는 인장 반지가 끼워진 오른손뿐이었다.

“장군···.”

“전원 출발 준비한다.”

“예?”

“아군의 시신은 수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놈들이 행한 일은 놈들 스스로가 책임져야지···. 우리가 할 일은 이 짓을 한 새끼들 목에 개목걸이를 채워서 데려오는 일이다.”

그 뒤로는 그 누구도 내 말에 군소리를 덧붙이지 않았다.

친위대는 적지에서 행군한다. - 7

라다가이수스가 이끄는 게르만 군대가 공성 병기를 조립하는 데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메디올라눔의 성벽을 제대로 측량할만한 기술자가 없어서, 대략 계산해서 조립한 공성 탑들은 제각각 크기가 달랐고, 그나마 커다랗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충차가 인상적이었다.

라다가이수스의 병사들은 로마의 심장을 공격한다는 생각에 다들 들떠있었고,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왕의 눈에 띄고자 장비와 방패에 요란한 무늬를 그려 넣고는 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라다가이수스는 누런색의 말에 올라서 병사들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용맹한 역전의 전사들이었고, 노련한 숲의 전사들이었다.

“우리는 오늘 로마를 무너트린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라다가이수스의 말에 병사들은 저마다 무기로 방패나 땅을 두드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병사들의 흥분이 최고조로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리던 라다가이수스는 검을 뽑아 들고서는 메디올라눔의 성벽을 가르치면서 외쳤다.

“가라! 가서 로마의 깃발을 가져와라!”

[우오오오오!!]

그의 말과 함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성벽 위에서 바라보던 로마 병사들은 개미 떼가 움직이듯이 바글바글하게 몰려있는 야만인들의 모습에 질려버렸다.

“저게 사람이야 벌레떼야···.”

“그러게 말이여···.”

“살벌하구먼.”

폴로는 동요하는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걱정하지 마라! 마리우스 장군께서 우릴 도우려고 오시고 계신다. 모두 힘을 내라!”

“마리우스 장군?”

“그분이 오신다고.?”

마리우스라는 이름은 동요하던 병사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 충분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의 숫자에 겁을 먹던 병사들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성문은 큰 걱정거리였다.

폴로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부실한 성문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주일, 아니 며칠만 버텨다오···.’

라다가이수스의 병사들은 우렁찬 함성과 함께 공성 병기들을 밀면서 성벽으로 밀고 들어왔다.

“공성 탑부터 깨트려야 한다. 투석기는 멀었나?!”

“준비 끝났습니다!”

“목표는 전방의 공성 탑. 사격개시!”

성벽에서 날아드는 큼지막한 돌덩어리가 게르만 병사들의 머리 위로 무자비하게 떨어졌다.

돌에 정통으로 맞은 병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뭉개졌고, 비켜 맞은 병사들은 여지없이 비명을 지르면서 울부짖었다.

가끔 성벽에서 날아온 돌들이 공성 탑을 두들겼지만, 운이 나쁘지 않은 이상에야 한두 방 정도는 견뎌냈다.

“어어···!”

“무너진다.!”

다만, 그 운 없는 몇몇 공성 탑이 무너지면서 안에 있는 병사들은 물론, 주위에 있던 병사들까지 휩쓸리는 대참사가 벌어지고는 했다.

그렇다 해도 게르만족의 피해는 전체에 비하면 극히 소수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게르만 병사들은 성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준비되는 대로 쏴!”

라다가이수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우리 투석기들은 무엇을 하고 있어!”

“곧 준비가 끝날 겁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사로잡은 로마 병사들과 장인들을 협박해서 만든 투석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성벽을 향해서 큼지막한 돌덩어리들이 날아갔다.

“뭐가 날아오는···.”

“모두 숙여!”

라다가이수스의 진영에서 쏘아진 돌덩어리들은 대부분 성벽을 넘지 못하고 애꿎은 성벽을 두들겼지만, 몇몇은 성벽을 가뿐히 넘겨 성벽 위의 로마군과 그 너머의 민간인 구역에 떨어졌다.

도시 내로 떨어지는 돌덩어리들을 보면서, 황도에 남은 시민들을 혼란에 빠졌고, 거리 곳곳에는 비명과 절규가 쏟아졌다.

“누가, 누가 제 아들 좀 구해주세요!”

“노나? 어디 있어 노나!”

“어머니!!”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어지럽게 뛰어다녔고, 지나가는 병사들의 길을 막으면서 이동을 방해했다.

“길 막지 마십시오!”

“군사작전 중입니다. 거리에서 비키세요!”

“모두 진정하시고 집에 계세요. 거리는 위험합니다.”

황도의 순찰대가 나서서 시민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건물을 활활 태우는 불길에 물 한잔을 뿌리는 정도였다.

성벽 위에서는 병사들이 바쁘게 화살을 쏘고, 무기들을 옮기고 있었다.

“화살이 더 필요해!”

“나도 화살 좀!”

“물 다 끓였습니다!”

“그런 건 보고 안 해도 되니까, 그냥 쏟아부어!”

“악! 나 맞았어!”

성벽 위의 로마군이 한 명 쓰러질 때마다 성벽 아래에서는 수십의 게르만 병사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병사들이 그려놓은 피의 길을 따라 무사히 성벽까지 도착한 공성 탑과 성문에 도착한 충차는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공성 탑이 성벽에 붙었다!”

“시발! 기름, 빨리 기름 가져와!”

“전원, 백병전을 준비해라!”

지휘관의 명령에 성벽에 있던 궁수들이 물러나고, 뒤로 물러나 있던 병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이윽고 공성 탑의 도개교가 내려가고, 게르만 병사들이 뛰어내렸다.

“발사!”

하지만, 미리 대기 중이던 궁수들의 집중사격에 무방비하게 뛰어 내려오던 게르만 병사들은 고슴도치가 되어 성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뒤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성벽으로 뛰어내리면서 본격적인 백병전이 시작됐다.

“내가 먼저 성벽에 올랐다! 캑.”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올라와!”

게르만 병사의 숨통을 끊은 백부장이 다급하게 주변의 병사들을 둘러보면서 소리쳤다.

“기름 가져오라고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이야!”

“여깄습니다!”

병사들이 성벽에 달라붙은 공성 탑에 기름을 뿌리면서 불을 붙이려 했으나 성벽 아래에 있던 궁수들과 성벽 위의 병사들이 기를 쓰고 막아섰다.

“교두보를 만들어야 한다.!”

“아악!”

“이새끼 뒤로 보내!”

성벽 위에서는 연신 비명과 악에 받친 절규가 뒤엉키면서 기괴한 하모니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성문에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충차를 태워야 한다! 기름은 아직이냐!”

“창고에서 꺼내오는 중입니다!”

“미리 준비해두라니까!”

폴로는 짜증을 삼키면서 활을 당겼다.

사다리를 기어 올라오던 게르만 병사가 화살에 맞아 팔에 힘이 풀렸는지 비명을 지르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성벽 쪽은 아직 로마군이 유리했지만, 이게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었다.

성문 쪽은 단단히 준비한 야만인들의 충차가 연신 성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하나, 둘!”

충차의 단단한 머리 부분이 성문에 부딪힐 때마다 성문은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고, 몸으로 성문을 틀어막는 병사들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 시발새기들!”

“위에서는 뭘 하는 거야!”

“전부 아가리 닫고 막기나 해!”

성문을 막는 로마군이 힘든 만큼 충차를 끌던 라다가이수스의 병사들은 더 힘들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화살 비를 충차의 지붕이 막아준다고는 했지만, 쏟아지는 돌덩이들에 지붕의 몇몇 부분이 무너지면서 틈이 생겼고 병사들은 계속해서 쓰러졌다.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러 간 병사들도 쏟아지는 집중사격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나자빠졌고, 말이다.

“빈자리를 채워! 계속 들어가!”

지휘관들은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병사들을 사지로 들이밀었다.

어차피 죽는 것은 병사들이었고, 전체적으로 보자면 큰 손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충차 주변에 시체들이 쌓이면서 엄폐물 비슷한 공간들이 생겨났고, 게르만 병사들은 동료의 시체를 엄폐물 삼아서 계속해서 성벽을 두들겼다.

“어어···!”

몇 번이나 같은 지점을 두들기니, 단단했던 성문도 조금씩 움푹 패더니 사람 하나가 간신히 기어들어 갈 만한 애매한 구멍이 뚫렸다.

성문을 지키던 백부장은 다급하게 병사들을 끌어모았고, 궁수들은 구멍 너머로 보이는 야만인들에게 활을 쏘아댔다.

“억-”

“다들 모여!”

게르만 병사들이 다급히 뭉쳤고, 성문에 뚫린 구멍을 보고 신이 난 지휘관은 계속해서 병력을 들이밀었다.

“성문을 열어라! 조금만 더하면 된다.!”

지휘관은 자신의 공적을 생각하면서 흥분했지만,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의 숫자만큼이나 사기가 꺾여버린 병사들은 그의 명령을 무시하면서 도망쳤다.

성벽 위에서도 지겨운 공방전이 이어질 뿐, 딱히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싸움이 길어질수록 적이나 아군이나 뻣뻣해지면서 지루하게 싸움을 질질 끌 뿐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라다가이수스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명령을 내렸다.

“후우···. 퇴각 나팔을 불어라.”

전장에 울려 퍼지는 나팔소리에 병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뒤로 물러났고, 무질서한 퇴각을 지켜본 폴로가 소리쳤다.

“지금이다! 적의 뒤를 쫓아라!”

대기 중이던 예비대가 성벽에 있는 쪽문을 열고서 도망가는 게르만 병사들의 뒤를 덮쳤고, 큰 피해를 주고서는 유유히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군···?”

라다가이수스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면서 말했다.

“이번 공격을 지휘했던 지휘관들을 전부 불러와.”

“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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