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187)

마리우스와 8인의 도둑들.

황궁으로 오는 출근길.

지난밤의 기억이 떠올라, 스틸리코의 집 앞을 피했다.

그 탓에 출근 시간이 조금 늦어졌지만.

그래도 그쪽 가문 사람들을 안 마주쳤으니 다행이었다.

“마리우스.”

그런데 정작 황궁 입구에서 스틸리코와 마주쳤다.

“장군.”

“이제 왔는가.”

“예···.”

스틸리코는 단단히 무장한 채로 부하들을 이끌고 있었다.

날 잡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자네 몸은 괜찮은가? 안색이 창백하고 땀이 나는데.”

“괘,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로···?”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그놈의 편지가 뭐라고···.

“죄, 죄송합니다. 장군!”

“그래,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기다리게 했으니 그래야지.”

“그, 그렇지만 편지 하나 때문에 이러시는 것은···.”

“편지? 무슨 편지?”

“아닙니까?”

스틸리코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혀를 찼다.

“쯧쯧쯧···. 어제 아칸과 어울려서 술을 진탕 마셨다고 하더니···. 정신 차리게!”

“그럼 저를 기다리셨다는 건···.”

“선제께서 승하하신 후로 내부의 일은 어느 정도 눌러놨네, 이제는 외부를 둘러볼 때야.”

“외부라···.”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걱정됐다.

지금 아칸이 그가 자리를 비우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자리를 비운다면은 바로 황도를 뺏기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말이다.

“알프스를 넘어 라인강 인근을 둘러보고 오겠네.”

“장군, 지금은 한겨울입니다. 이 추운 날에 군을 움직이시다니요.”

스틸리코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바람처럼 다녀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리고 수도에는 자네가 있지 않은가.”

“장군! 듣는 귀가 많습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스틸리코는 그런 내 모습에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이 주변에는 믿을만한 자들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그렇다니 편히 말하겠습니다. 장군께서 자리를 비우신다면은 아칸과 그 무리가 일을 꾸밀 것입니다.”

“그들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야.”

“어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그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리고 자네가 있지 않은가?”

스틸리코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떠났다.

스틸리코를 떠나보낸 후.

병영에 있는 내 집무실로 오니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 마리우스 님이 이렇게 출세할 줄 몰랐는데 말입니다.”

“폴로!”

“하하하 정말 오랜만입니다. 마리우스 님!”

“어허, 이제는 장군이라고 해야지.”

“그렇습니까? 하하하!”

구석에서 졸고 있던 부관도 잠에서 깼는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면서 군례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장군···.”

“데키무스 와서 인사하게나, 자네와 같이 일할 폴로라고 하네.”

부관은 측은하다는 듯이 폴로를 바라봤다.

“반갑습니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제 인사는 끝났으니, 일할 시간이야.”

“예?”

그 뒤로 며칠간은 바쁘게 보냈다.

우선 병사들을 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동안 전선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현재 로마의 주적인 게르만족은 매복과 습격에서는 강했지만, 정면으로 대형을 갖춰 싸우는 것에는 약했다.

그래서 요사이에 로마군이 게르만족의 전술에 맞춰 똑같이 매복과 습격을 선호하고는 했는데, 그 결과로 로마군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점이 무뎌지고 있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장점을 갈고 닦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존의 개인훈련보다는 집단훈련에 중점을 두려고 하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바꾸려 하시는지요.”

“기존의 방식으로 회귀합시다. 제식훈련을 강화하고 개인훈련을 병행한다.

“그러면 병사들이 싫어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방법이 있네, 훈련에 참여할 때마다 훈련비 명목으로 조금씩 포상금을 주는 것일세.”

“포상금 말입니까? 부대 재정이 빠듯한데···.”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내 사비로 낼 터이니.”

“그렇다면야 뭐···.”

그 뒤로 훈련시간은 예전과는 다르게 FM으로 진행되었다.

훈련마다 수십 킬로의 장비를 무장한 채로 제식훈련이 이어졌고, 병사들은 실제 장비보다 두 배는 무거운 나무 방패와 목검을 휘둘러야 했다.

“10분간 휴식.”

“으아아아-!”

“수고하셨습니다.”

“씨벌 뒤지겠네.”

훈련이 끝나자 병사들은 훈련장 곳곳에 마련된 모닥불로 모여들어 얼어붙은 몸을 녹였다.

“윗사람이 바뀌더니, 시발 훈련 한 번 더럽게 빡빡해졌네.”

“운동도 되고 좋구먼, 뭘 그러십니까.”

“너나 좋지, 힘들어 뒤지시겠다.”

“그래도 훈련비는 쏠쏠하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 겨울에 구르려니까 뼈마디가 쑤셔.”

“하하하, 뼈가 쑤신 건 어쩔 수가 없지요. 이참에 전역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무슨 놈의 전역이야! 아직 먹여 살려야 될 가족만 몇 명인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병사들은 집합 나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시작이네.”

“어휴···. 후딱 끝내자.”

“먼저 가보겠습니다.”

훈련은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갑작스러운 훈련 일정에 병사들이 항의하곤 했지만, 훈련비를 준다고 하니 고된 훈련도 묵묵히 해냈다.

역시 돈이 최고야.

며칠 동안 병사들의 훈련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부대 내의 장인들을 닦달해서 등자를 만들어내서 기병들에게 보급했다.

처음에는 꺼리던 기병들도 한 번 써보더니 그 편의성과 유용함에 너나 할 것 없이 등자를 받아갔다.

“데키무스, 신병모집은 잘 되고 있는가?”

“예, 기존 군단에서 데려오는 것은 반대가 너무 커서 인근에서 새롭게 뽑고 있는데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습니다.”

“그래? 그것참 다행이로군.”

“그리고 등자 덕분에 기병대 인원이 제법 늘었습니다.”

“전투마는 안 모자라는가?”

“갈리아와 히스파니아에서 말들을 사 오고 있는지라 아직은 괜찮습니다.”

“말은 동방의 말이 좋지 않은가, 어째서 갈리아와 히스파니아에서 말을 데려오는 건가.”

분명 내가 기억하기로는 페르시아 말들이 성능이 좋다고 들었는데. 정작 이베리아반도나 프랑스 쪽에서 말을 들여온다니 의문이 들었다.

“히스파니아 말들은 크기는 다른 말들에 비해 조금 작은 편이지만 날렵하여 경기병용으로 제격이고, 갈리아의 말들은 덩치가 크고 힘이 센 편이라 중기병용으로 적당합니다.”

“그런가?”

“더군다나 페르시아 쪽의 말들은 돈을 주고 구하려고 해도. 페르시아놈들이 팔지를 않아서···.”

“그런가, 듣고 보니 자네 말에 일리가 있네.”

“장군께서 도입하신 등자 덕분에 숫자가 늘긴 했지만, 아직 가르쳐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당장 진형을 맞추고서 이동하기만 해도 대열이 흩어지니, 해야 할 게 너무 많습니다.”

“그, 그런가?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데키무스의 강렬한 눈빛을 뒤로한 채로 폴로에게 말했다.

“폴로, 보병대는 어떤가?”

“낡고 망가진 장비들을 전부 폐기 처리하고, 새로운 장비들을 지급했습니다.”

“병사들 월급에서 깐 것은 아니겠지?”

“저도 목이 하나인지라 장군의 사재에서 털었습니다.”

“허허···. 그래 참으로 당당하구나! 폴로.”

“장군께서 마음껏 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마음대로 쓰라고는 했지만, 막상 그 사실을 들으니 속이 쓰려왔다.

어차피 아칸에 받은 돈들에 비하면은 새 발의 피정도지만 그렇다고 아깝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에 환장하는 건가?

“후···. 그래 그 이야기는 그 정도로 하고, 폴로.”

“예, 장군.”

“아칸은 지금 뭘 하고 있나.”

“듣자 하니 앓아누웠다고 합니다.”

“앓아누워?”

스틸리코가 자리를 비운, 이 상황에 앓아눕는다니,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물론 진짜로 아픈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매일같이 몸에 좋다는 건 다 처먹는 사람이 아프다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칸을 찾아가 봐야겠는데.”

“예?”

“폴로, 데키무스. 난 이만 가볼 테니 자네들도 적당히 눈치 보다가 들어가 보게.”

그렇게 말하고서는 곧바로 아칸의 저택 향했다.

급히 말을 타고서 아칸의 저택에 도착하니, 노예들이 나를 맞이했다.

“마리우스 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칸님께서 편찮으시다고 들었네. 한번 뵐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아칸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뭐?”

기다리고 있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황급히 안내하는 노예를 따라서 아칸에게로 가니, 이게 웬걸. 병에 걸렸다던 아칸은 헤라클리우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분명 편찮으시다고···.”

“허허허···. 내가 뭐랬습니까 장군.”

“이거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수십 년을 같이한 자들보다 며칠 되지 않은 저 친구가 더 빨리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십니까.”

한참을 웃던 아칸이 내게 말했다.

“내가 아프다는 소문은 스스로 낸 것일세.”

“예? 아···.”

그 말을 들으니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눈치챘다.

아칸은 스틸리코가 자리를 비운 이때를 노리지 않고, 역으로 아프다는 소문을 흘려서 다른 이들을 떠본 듯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달려온 게 나였고 말이다.

“역시 금세 눈치챈 모양이구먼.”

아칸은 흡족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얼굴을 굳히면서 말했다.

“한데, 나와 같이하겠다고 한 이들은 어찌 얼굴도 안 보일 수가 있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기다려봤자 의미 없네, 어차피 그자들은 권력을 보고 뛰어든 불나방들 아니겠는가.”

아칸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사연 없는 무덤도 있다던가? 오려고 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왔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마리우스?”

“그, 그렇지요.”

정작 나도 스틸리코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나에 대한 아칸의 신뢰도가 올라간 듯싶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 스틸리코가 떠나던 날에 대화를 나눴다지?”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말을 했나?”

“별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래? 아닐 텐데···.”

아칸은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때 스틸리코가 분명 말했다.

주변에는 자신이 믿는 이들뿐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 아칸은 내가 스틸리코와 만났다는 정황만을 가지고 날 떠보려는 것이었다.

“정말 별말 없었나?”

아칸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하나 있긴 합니다.”

“역시 아무 말도 안 했을 리가 없지! 그게 무엇인가.”

“그것이···. 며칠 전에 술에 잔뜩 취해서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날 집에 있던 술들을 전부 동내 버렸으니까 말이야 하하하.”

“그날 밤에 저도 모르게 편지를 썼지 뭡니까?”

“편지? 무슨 편지.”

“하하하···. 뭐 그렇고 그런 편지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무엇인고?”

“하하하. 어르신 그 왜 있잖습니까, 젊은이들끼리 주고받는 편지 말입니다.”

아칸은 그제야 알아차린 듯이 손뼉을 쳤다.

“호오···. 그래, 그럼 그 편지를?”

“예, 테르만티아에 보냈습니다.”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다.

내 개인사를 남에게 밝히는 게 말이다.

하지만 말을 하고 나니 아칸과 헤라클리우스의 얼굴이 한결 밝아진 것이 보였다.

“그래그래, 젊은 남녀끼리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스틸리코가 자네와 만난 것도?”

“예, 그 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하하. 그것참 재밌구먼. 스틸리코쯤 되는 사람도 가족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 보군.”

“또 크게 혼이 났겠구먼 끌끌···.”

“하하하···. 뭐 그렇지요.”

아칸이 멀쩡하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는 빠질 타이밍이었다.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아칸에 말했다.

“아칸님이 아프시다기에 급하게 달려왔는데, 멀쩡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으음? 아, 그렇게 고맙네! 역시 자네뿐이야 하하하.”

“저는 남은 일이 있어서 돌아가 보려 하는데···. 괜찮은지요?”

“그래그래, 나랏일 하는데 바쁜 사람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버렸구먼. 미안허이.”

“아닙니다. 헤라클리우스 님도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서 자연스럽게 방을 빠져나왔다.

******

“이보게 헤라클리우스, 저 친구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으이.”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오늘 스틸리코와 만나서 이야기가 오갔다고는 하는데, 내게 들려오는 말이 없으니 참으로 수상하지 않은가.”

“그래도 나리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더 의심스럽다는 게야.”

“예?”

헤라클리우스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히려 충성스러운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마리우스는 우리와는 다른 족속일세. 겉으로는 욕망에 충실한 척하지만, 충성심이 깊고 곧은 인물이야.”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뒷조사를 해보면 다 나온다네.”

“그, 그렇습니까.”

아칸은 긴장한 헤라클리우스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자네는 걱정 안 해도 되네.”

“가, 감사합니다.”

“아무튼, 내가 아프다는 소식에 제일 먼저 달려온 건 둘 중에 하나야.”

아칸은 두 손가락을 피더니, 하나씩 접으면서 말했다.

“내가 걱정돼서 찾아온 사람.”

“내가 죽었는지 확인하러 온 사람.”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