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187)

나라에 도둑놈이 너무 많습니다.

“자네는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예, 물론입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확신에 찼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 방법이 로마를 구할 길이고, 앞으로도 내가 편하게 살길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스틸리코의 입에서는 내 예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는데.

“아니, 자네는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어.”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자네가 내 추천으로 그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굳이 따지고 보자면 자네는 혼자야. 그런데 무엇을 책임지겠다는 건가?”

“어차피 다쳐도 저 혼자로 끝날 일이 아닙니까?”

“아니지, 아니야···. 자네가 하려는 행동은 아칸을 자극할 것이야, 그리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겠지 그 모습을 아칸이 가만히 내버려 두겠나?”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스틸리코의 입으로 들으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일이 진행된다면 아칸은 날 죽이려 들것이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세상천지에 죽는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필시 미친놈이거나 정말 잃을 게 없는 놈일 거다.

스틸리코는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코웃음을 쳤다.

“자네는 그라쿠스 형제에 대해 알고 있는가?”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들의 최후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군.”

“예···.”

그라쿠스 형제.

그들 또한 로마의 잘못된 토지제도를 뜯어고치려다가 기득권의 미움을 받고서는 형은 로마의 광장 한가운데서 동료 의원들에게 맞아 죽었고, 뒤를 이은 동생은 원로원의 최종권고를 받고 그를 지지하던 지지자들과 같이 죽었다.

스틸리코가 말하자고 함은.

이 건에 대해서는 나 혼자로 끝날 일이 아니고, 수많은 피가 흐를 것을 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네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스틸리코의 말을 들으니 한가지 의문도 들었다.

당장 내목숨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굳이 그들을 챙겨야 하는가?

“제가 책임져야 합니까?”

“뭐?”

“저들이 누군가가 앞장서서 가자고 해야 움직이는 이들이라면, 그 끝까지 당연히 함께하여야 하지 않습니까?”

“허···. 자네는 시민들을 위해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전혀 아닙니다. 제국을 다시 살리고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보신을 위해섭니다. 껍데기뿐인 제국에서 권력을 잡아봤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내 말에 스틸리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결국에는 권력을 원한다는 말이군.”

“예, 황궁에 들어와 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돌아가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곳에 제자리만 없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하하하 내 살아오면서 자네처럼 솔직하고 뻔뻔한 사람을 만나게 될 줄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스틸리코가 웃음을 터뜨렸다.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한참을 숨이 넘어가라 웃고 있는 스틸리코에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권한은 딱 한 가지입니다. 완전히 무너져버린 군을 재건할 권한을 주십시오.”

“하하하, 자네가 제국군을 재건한다고? 어림도 없는소리! 그건 자네가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스틸리코는 생각보다 강경하게 반응했다.

자신의 밥그릇에 손을 댄다고 생각한 것인지 조금 전의 웃음기는 얼굴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째서입니까, 지금의 군을 개혁하려면···.”

“그래, 필요하겠지. 그런데 자네에게 이런 막대한 권한이 주어진다고 하면 총독들과 군단장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 봤나?”

“그거야···.”

생각해보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의 로마에는 외적과 싸울 군대는 없지만, 반란을 일으킬 부대는 있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서류상에서나 존재하거나 존재 자체를 모를 부대들도 많았다.

당장 뭣도 모르는 얼뜨기가 군의 감찰권을 쥐고서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기득권을 때려 부술 텐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문제가 생긴다면 스틸리코 또한 자신을 지켜주기보다는 내 목을 기득권자들에게 던져주고 새로운 인재를 찾아 나설 것이 분명했다.

“...실언이었습니다.”

“조금 전의 것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자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네는 너무 조급해 보여.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게나.”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가 한몫한 것도 있었지만, 지금이 로마제국의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조급하기만 했다.

당장 스틸리코에게 로마는 이제 백 년도 못가서 망하고, 당신은 10년도 못가서 목이 잘린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스틸리코는 지금의 상황을 자신이 통제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듯했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에 지금의 로마는 위태로운 모래성과 같았다.

당장 스틸리코가 죽거나 실각한다면, 로마의 정계나 군부의 중심을 잡아줄 인물이 없어 빠르게 붕괴할 것이 뻔히 보였다.

“장군, 그렇다면 친위대의 모든 실권을 제게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실권 말인가? 이미 자네가 친위대를 전부 통솔하고 있지 않은가.”

스틸리코가 재밌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스틸리코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요 며칠간 내가 부대 내의 모든 장부와 병사들을 뒤집어 본 바로는 스틸리코가 친위대 이곳저곳에 손을 뻗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태연하게 모르는 척하는 스틸리코의 모습을 보니 헛웃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친위대를 온전히 제 통제하에 두고 싶다는 말입니다.”

“허허···. 그건 자네의 능력에 달린 일이 아니겠나. 그걸 어째서 내게 말하는지 모르겠군.”

“장군께서 부대 내에 손을 뻗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관심을 놓아주시지요.”

“허허허···.”

스틸리코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나는 그런 스틸리코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고 말이다.

한참을 웃던 스틸리코는 돌연 웃음을 멈추면서 말했다.

“내가 자네를 어찌 믿고서 친위대를 맡기겠는가.”

스틸리코는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친위대라는 존재는 황제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장집단이자 거대한 무장집단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은 지금의 황제를 몰아내고서 도시 내에 있는 모든 시민을 죽일 수도 있는데 그런 이들을 견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저는 장군과 황제 폐하께 충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는지요?”

“모자란다. 그것도 한참.”

“친위대가 완전히 제 손에 떨어진다면은 아칸과도 조금 더 친해질지 모를 일입니다.”

“허, 자네는 내가 아칸 그 녀석을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닙니까?”

스틸리코는 내 마지막 말이 거슬렸는지 이마에 힘줄이 잔뜩 튀어나오면서 목이 시뻘게졌지만, 평소처럼 무덤덤한 얼굴을 유지하면서 말했다.

“고양이가 쥐를 두려워하던가? 내게 아칸의 존재는 그저 귀찮은 쥐새끼일 뿐이야. 그를 내버려 두는 것도 순전히 어린 폐하의 호의 때문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틸리코의 세력으로는 완전히 아칸을 눌러버릴수가 없었다.

그의 뒤에 황제가 있는데 제국섭정이라고 한들 마음대로 그를 팽하는게 어찌 쉽겠는가.

“아칸을 제거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자네를 이용하라고 할 생각이면 꿈도 꾸지 말게. 자네는 아칸을 상대할 수 없어.”

“해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단정을 지으십니까.”

“후우···. 아칸은 지금의 폐하께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일세. 그런데 그런 이를 자네가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불가능한 건 또 뭡니까 저는 로마의 뒷골목에서도 살아남았고, 그 지랄 맞았던 판노니아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스틸리코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다.

“좋아, 자네를 믿어보겠네.”

드디어 스틸리코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장군!”

“단, 조건이 있네.”

“조건 말씀입니까?”

“별건 아닐세.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의미로 말이야.”

역시 스틸리코는 아직 날 완전히 믿지 않는 듯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칸이 꾸미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알아 오게.”

“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칸이 일을 꾸미고 있다니?

스틸리코에 눌려 조용히 지내는 그가 무슨 일을 꾸민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장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최근에 마실리아에서 한 척의 배를 나포했는데, 그곳에 재밌는 물건들이 실려있었다네.”

스틸리코는 책상 위의 서류를 한 장 집어서 내게 건넸다.

받아든 서류 안에는 배에 실렸던 품목들이 적혀 있었는데 하나같이 향신료와 식자재뿐이었다.

“이게 무엇이 특이하다는 것입니까?”

“그 품목 말고 그 배가 향하던 곳을 봐주겠나?”

서류에 적힌 도착지는 [카르타고]라고 되어있었다.

이렇게 보니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카르타고와 그 일대는 이집트에 비견할 바는 아니었지만, 현재 로마의 빵 바구니 역할을 해주는 동네였다.

자연스럽게 식자재나 향신료의 값도 이탈리아 본토보다 훨씬 쌌고 말이다.

“그렇군요. 조금 이상합니다. 이 항로로 움직인다면 큰 손해만 볼 게 뻔할 텐데.”

“바로 그것일세, 선원들을 심문해봤으나 그들 또한 물건을 전해주기만 할 뿐. 팔지는 않는다고 했네.”

“전해준다고요···? 누구에게 말입니까.”

“그건 알 수가 없네, 그들의 말로는 현지에 있는 상단의 직원이라는데 이름을 알고 있는 자가 없어.”

“듣고 보니 이상하긴 합니다만···. 이게 왜 아칸이 일을 벌이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지요.”

“그건 자네가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

“예?”

스틸리코의 말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그 말씀은 제가 카르타고에 다녀오라는 말씀입니까?”

“그럴 리가 있나. 자네 같은 인재를 외부로 돌렸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스틸리코는 농담 식으로 말하면서 웃었다.

“그럼 이곳에서 조사하라는 말씀이시군요.”

“당분간은 아칸과 어울리면서 나를 멀리하게나.”

“장군, 갑자기 그렇게 한다면은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내게 좋은 방법이 있네.”

스틸리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치더니 퇴근을 준비했다.

갑작스러운 스틸리코의 행동에 당황하면서 멍하니 그를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준비를 마친 스틸리코가 태연하게 말했다.

“저녁은 아직이겠지?”

“예 그렇습니다만···.”

“잘됐군. 오늘은 우리 집에서 해결하세나.”

“예?”

“자네는 그저 예 알겠습니다. 장군 하면서 따라오기만 하면 되네.”

“???”

스틸리코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앞장서서 걸어가 버렸다.

뭐야 저 양반.

******

그렇게 얼렁뚱땅 스틸리코의 저택에 도착하니, 그의 가족들이 우리를 반겨줬다.

스틸리코의 부인과 그의 아들과 딸들까지 나를 반갑게 맞이하니 굉장히 불편했다.

“장군, 갑자기 이게 다 뭡니까?”

“허허허, 다 생각이 있으니 그저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네.”

“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려주셔야 할 것이 아닙니까!”

“자네는 오늘 식사시간부터 계속 질문을 던질 것이야, 자네는 대답만 하다가 내 마지막 질문에만 반대하면 된다네 알아들었나?”

“예??”

그렇게 굉장히 불편한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식탁 위에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고, 노예들은 바삐 움직이면서 물건들을 나르고 있었다.

“자 이곳에 앉게.”

“가, 감사합니다.”

스틸리코의 과도한 친절에 당황하면서 그가 배정해준 의자에 몸을 기대니 스틸리코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 마리우스 황궁의 일은 좀 어떤가.”

“황궁의 일 말입니까?”

“그래, 이곳에는 나와 가족들뿐이니 편히 말해보게나.”

도대체 저 양반이 무슨 뜻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당혹스러웠다.

“그럭저럭 할 만합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스틸리코는 노예가 떠먹여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서 계속해서 나에 관해 물었다.

내 가족은 있는지, 정확히 어디 출신인지, 결혼은 했는지와 같은 내 개인적인 일들에 관해 물어봤다.

“그래그래···. 자네의 고향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네.”

“그렇게 느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래···. 내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스틸리코로부터 신호가 왔다.

여기서 반대하면 된다고 했다.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아니 씨발.

스틸리코는 이 자리에서 내게 망신을 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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