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프리드릭은 다른 이들보다 먼저 성벽을 넘었다.
눈앞에서 자신에게 창을 내지르는 로마 병사의 공격을 노련하게 방패로 흘리고는 자세가 무너진 병사의 목에 검을 꽂아 넣으니,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벽 아래로 떨어졌다.
“내가 제일 먼저 성벽에 올랐다!”
프리드릭이 자신만만하게 몸을 던지면서 로마군을 밀어내니, 뒤를 이어서 하나둘씩 성벽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프리드릭은 자신만만하게 무기를 휘두르면서 로마군의 사이로 뛰어들었지만, 곧바로 뛰어온 마리우스의 방패에 얼굴을 얻어맞고서는 그대로 걷어차여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야만족 새끼들은 싸우지 말고 그냥 밀어버려!”
“예!”
마리우스는 바쁘게 성벽을 돌아다니면서, 아군을 도왔다.
곳곳에서 고트족이 기어 올라오면서 성벽 위에서 난전이 벌어진 덕분에, 적의 투석기나 궁수들의 공격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고트족이 하나둘씩 올라오면서, 천천히 밀리고 있었다.
아직은 성벽 위로 올라온 고트족 병사가 몇 없어서 병사들이 힘을 합쳐서 손쉽게 사냥했지만, 적은 끝없이 기어오르고 있는 데다가, 적의 지원도 매서웠다.
“끓는 기름은 어디 갔어! 빨리 가져···. 억.”
“폴로!”
폴로는 어디선가 날아온 눈먼 화살에 맞아 쓰러졌고, 그걸 본 마리우스가 황급히 폴로에 다가가니, 폴로의 오른팔에 화살이 꽂혀있었다.
다행히도 갑옷이 제구실을 해준 것인지 화살은 그렇게 깊게 박힌 것 같지는 않아 보였던지라, 마리우스는 한숨을 돌리면서 말했다.
“뒤로 빠져서 치료받고 오게.”
“끄응···. 죄송합니다.”
“쯧···. 빨리 꺼져!”
마리우스는 비틀거리는 폴로를 뒤로한 채, 이제 막 벽을 넘어온 이름 모를 고트족에게 검을 휘둘러 베어 넘기고는 장대를 들어서 온 힘을 다해 사다리를 밀어내니.
사다리에 매달려있던 수많은 고트족 병사들이 온갖 비명을 지르면서 사다리가 넘어갔다.
“시발, 끝도 없이 몰려오네.”
“마리우스 님!”
“뭐야!”
마리우스는 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병사를 돌아보니, 얼굴에 온갖 핏자국과 먼지가 엉겨 붙은 어린 병사가 덜덜 떨면서 말했다.
“저, 적이 성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에라 시발, 비켜!”
마리우스는 병사를 밀치고서는 성벽으로 달려가 성문 쪽을 바라보니, 어디서 구한 것인지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임시 충차를 여러 명이 함께 들고 성벽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기름, 기름 어딨어!”
“창고에 있을 겁니다.”
“어느 창고, 아니다. 그 활 나주고 네가 가져와!”
“예? 어어···.”
마리우스는 병사의 활과 화살을 뺏어 들고서, 충차를 들고 열심히 성문을 두들기는 고트족 병사들에게 화살을 날렸다.
그렇게 마리우스의 활 솜씨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극도로 집중한 덕분인지, 아니면 적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쏘는 족족 적에게 빨려 들어가듯이 명중했고, 충차를 들던 병사 몇이 쓰러지니, 자연스럽게 충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병사들이 쓰러졌다.
“헥헥헥···. 가져왔습니다!”
거기에 확실하게 기름까지 붓고는 횃불을 던져 불을 붙이니, 적이 임시로 만들어놓은 충차가 불이 붙으면서 성문 앞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리나 싶었는데, 안심하기가 무섭게 투석기에서 날아온 돌들이 연신 성벽을 때려대기 시작했다.
“아니, 저 새끼들은 아군은 신경도 안 쓰는 건가?”
“마, 마리우스 님 성벽이 흔들립니다!”
“걱정하지 마, 너 뒤질 때까지는 안 무너지니까!”
“예?!”
“살고 싶으면, 걱정할 시간에 창이나 한 번 더 찔러!”
마리우스는 멍하니 서 있는 병사의 뒤를 노리던 고트족의 얼굴에 검을 찔러넣으며 말하고는 날아오는 화살들을 피하고, 쳐내면서 성벽을 내달렸다.
“시발!!”
투석기에서 쏘아진 돌들이 연신 성벽을 두드리다 보니, 점점 성벽이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었고.
일이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마리우스가 다급히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성벽에서 내려가! 빨리!”
마리우스의 다급한 외침에도 병사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고, 이내 투석기에서 쏘아진 돌 하나가 다시 성벽을 때렸다.
작은 균열에 정통으로 될 탄환이 들어 박자, 이전과는 다른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고 순식간에 성벽 일부가 무너져버렸다.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하늘 높이 피어올라 파랬던 하늘이 노랗게 변해버렸고, 성벽 위에 있던 로마군은 물론이고 인근에 있던 고트족 병사들까지 휩쓸려서 곳곳에서 앓는 소리와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콜록콜록.”
“아으으으-”
“캑캑···.”
무너지는 성벽 위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마리우스는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안간힘을 써가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곳곳에서 병사들이 무너진 성벽을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어찌할 줄 몰라고 있었다. 적들 또한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저들을 지휘하던 지휘관이 사고에 휩쓸렸는지, 어찌할 줄 몰라고 하고 있었다.
“시발, 좆됐네.”
마리우스는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면서 절망했다.
이제 저곳으로 무너진 댐처럼 적이 밀고 들어올 텐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저 병사들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안채에서 재집결! 뒤로 물러나!”
“재집결!”
“안채로!”
마리우스가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병사들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다른 병사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이미 성벽 위에서는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던지라, 제때 물러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
전투 장소에서 제법 멀찍이 떨어져서 이를 지켜보던 베린하르트와 부관은 성벽이 무너진 것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장군,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래, 대족장께서 해내셨어.”
“이제 병사들을 투입해서 문을 열겠습니다.”
“내가 앞장서지.”
“예, 장군!”
베린하르트가 말을 몰고 앞장서니 부관이 뒤를 따랐다.
수많은 병사를 헤치고 들어가니, 성벽 안쪽은 이미 고트족 병사들이 들어와 전장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아직 살아남은 몇몇 로마군이 한데 모여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파도처럼 몰려오는 고트족 병사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거나, 사로잡힐 뿐이었다.
“대충 정리가 끝나는 모양이야.”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조그마한 요새를 손에 넣으려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갔던지···.”
“쓸데없는 소리 말게나, 혹시라도 대족장께서 들으신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아, 예! 조심하겠습니다.”
베린하르트는 부관에게 가볍게 주의하라고 경고하고는 고개를 돌려 안채를 봤다.
굳게 닫힌 안채의 정문에는 언제 끌고 온 것인지 제법 큼직해 보이는 통나무로 연신 문을 두들기면서 문을 열려 했지만, 잘 안되는 것으로 보였다.
“잔당들이 안채까지 기어들어 가서 농성 중인가 보군.”
“곧 끝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베린하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성안으로 들어와서야 느낀 것이지만, 고작 이 정도의 조그마한 요새를 위해서 흘린 피가 얼마였던가.
이 요새가 과연 그들의 핏값을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요동쳤지만, 그는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빨리 끝내고 술이나 진탕 마시고서 쉬고 싶군.”
“하하하, 왜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실컷 마시고 죽어보시지요.”
요새 안의 고트족은 요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로마인들이 세워둔 조각상이나 기념물들을 마구 때려 부수면서 저들끼리 낄낄거리거나, 아직 숨이 붙어있는 로마군을 잔혹하게 괴롭히거나 조롱했다.
그들은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
쾅-
그리고 또다시
쾅-
저 지랄 맞은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안채에 있는 부상병들이 공포에 질린 소리가 들려왔다.
안채에 마련된 황제의 조각상 앞에 주저앉으니,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들끓었다.
병사들은 안채에 남은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으면서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지만, 적의 충차가 문에 부딪힐 때마다 점점 끝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리우스 님, 금방이라도 문이 부서질 것 같습니다!”
“후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까?”
병사들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에는 기대감과 희망이 보였지만, 불행하게도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제군들, 우린 심히 좆됐다.”
“......”
“다시 말하지만, 우린 좆됐다. 밖에는 제군들과 내 멱을 따려는 고트족 야만인 새끼들이 문을 열려고 지랄 중이시고, 남은 사람들은 제군들을 제외하면 죄다 부상병들이다.”
“...시발.”
“어차피 뒤질 거, 난 여기를 무덤으로 정했다. 제군들은 어떤가, 저 뒤에 계신 황제 폐하께 목숨을 구해달라 할 텐가, 아니면 나와 같이 여기서 죽겠나!”
병사들은 말없이 무기를 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에 했다.
뒤에서 쓰러져 신음하던 부상병 중에서도 몇몇이 몸을 일으켜서 대열에 합류했고, 폴로 또한 팔에 붕대를 감고서 내 곁에 섰다.
“폴로, 아직 살아있었군!”
“마리우스 님 보다 빨리 죽으면 그게 무슨 창피한 일이겠습니까.”
“그래, 죽더라도 내가 제일 먼저 죽어야지. 안 그렇나!”
“예, 그렇습니다. 빨리 뒤지십시오!”
“하하, 개새끼들!”
어디서 구해왔는지, 폴로가 내게 대대장의 투구를 건네줬다.
“주인이 놓고 간 모양입니다.”
“마침 필요했는데 잘됐군.”
대대장의 휘황찬란한 투구를 머리에 쓰니, 절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돼버렸다.
“투구가 정말 예술이십니다.”
“칭찬인가? 그렇게 듣지.”
“하하하, 적들 눈에 아주 잘 띄겠습니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문이 부서지면서 고트족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제일 먼저 앞장서서 고트족을 향해 내달려서 그대로 몸을 던지니, 제일 선두에서 달려오던 병사와 부딪히면서 그대로 녀석의 목이 꺾였다.
뒤를 따라온 아군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고서는 힘으로 적을 밀어붙이자, 적들은 당황했는지 엉거주춤하더니 그대로 밀려 나갔고, 몇몇은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지기까지 했다.
“밀어붙여!”
적들을 밀어붙이면서 정문을 뚫고 나오니, 고트족 병사들이 한꺼번에 밀려 나가면서 뒤로 넘어졌고, 전면의 대열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나는 대대장의 투구에 달린 철제마스크를 내리면서 얼굴을 덮고서는 쓰러진 고트족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주변을 약탈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던 적군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우리의 모습에 당황하면서 휩쓸려버렸다.
“포로는 필요 없다!”
“어차피 잡을 수도 없잖습니까!”
“그게 그거지.”
눈앞에 보이는 족족 적을 베어 넘기면서 앞으로 치고 나가니, 갑작스러운 습격에 당황한 적군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눈이 뒤집혀버린 우리는 도망치건 말건, 눈앞에 보이는 고트족들의 머리를 깨부수면서 앞으로만 달릴 뿐이었다.
******
“자, 장군 적군이···.”
“무의미한 발악이군.”
“우리 병사들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아이고 저런···.”
“쯧···. 부관, 병력을 다시 정돈시켜. 내가 나서겠다.”
베린하르트가 검을 뽑아 들고서 말을 몰았다.
육중한 흑마가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속도가 붙으면서 맨 앞에서 고트족을 도륙 내는 마리우스를 노리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마리우스 또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베린하르트를 보고서는 옆에 있던 쓰러진 고트족 병사의 창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창을 한 손으로 움켜잡았고, 베린하르트를 향해 뛰어갔다.
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만 갔고, 마리우스가 창을 던졌다.
“아니!”
베린하르트의 말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물체에 놀라서 속도를 줄였지만, 창은 말의 목을 스치고 지나서, 베린하르트의 오른쪽 어깨에 박혔다.
창을 맞은 베린하르트가 말에서 떨어지니, 놀란 말이 그대로 도망가버렸다.
홀로 남은 베린하르트에 마리우스가 다가가니,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부관이 황급히 말을 몰고서 베린하르트를 도우려 했다.
“장군!”
마리우스는 조용히 다가왔다.
“네가 이곳의 대장인 모양···.”
베린하르트는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마리우스는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장군!”
부관이 분노하며 마리우스에게 검을 휘둘렀지만, 부관의 검은 마리우스의 방패를 긁고 지나갔을 뿐이었고, 오히려 마리우스의 검에 말의 배에 상처가 쩍하고 벌어지더니, 부관은 말에서 떨어지면서 목이 꺾여버렸다.
순식간에 둘을 해치운 마리우스의 모습에 고트족들이 겁을 집어먹었고, 이내 주변을 정리하고선 온몸에 피를 묻히고 나타난 다른 로마 병사들의 모습에 고트족 병사들이 잔뜩 긴장했다.
“마리우스 님, 괜찮으십니까.”
“보다시피, 아직은 멀쩡하네.”
“하하하, 아직은 말이죠.”
고트족 병사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로마 병사들을 포위하면서, 점점 긴장감이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고트족 병사들은 금방이라도 로마군을 쳐죽일 듯이 고함을 질러댔지만, 로마군은 코웃음을 치면서 되받아쳤다.
“베린하르트 님의 원수를 갚자!”
“형제들의 원수!”
“부족의 원수!”
“쟤네 뭐라는 거냐.”
“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쯧쯧, 요새 야만인들은 무기 다루는 것보다 욕하는 법부터 배우는 건가?”
고트족 병사들과의 대치가 점점 이어질 무렵에 저 멀리에서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시발, 지겹게도 몰려오는군.”
“그러게 말···. 잠깐, 이건···. 이건 고트족 나팔소리가 아닙니다!”
“뭐?!”
마리우스는 폴로의 말에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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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금 늦은 것 같군.”
“조금이 아니라 많이 늦은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지, 브레누스 자네는 좌측을 맡아. 단번에 적을 쪼개버리자고.”
“예.”
흙먼지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 잿빛 하늘 아래로 물고기 모양을 한 깃발을 든 가우덴티우스의 기병대가 전장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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