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87)

백부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주둔지에서 벌어진 전투는 당연하게도 군단장에게 보고가 올라갔다.

로마 11군단의 군단장 플라비우스 무키우스는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야만족과의 전투에 고민 중이었으나, 현재 중앙정부도 혼란스러운 상태인지라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야만족 녀석들은 하루가 멀다고, 로마 국경을 넘고 있네, 그리고 휘하의 부대들은 하나같이 지원을 요청하고 있고.”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부관이 말했다.

“장군, 그렇다면 차라리 흩어져있는 대대들을 불러모으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니겠습니까?”

“불러모은다.?”

“예, 우리가 대대별로 주둔지에 흩뿌려놓은 덕에, 소규모 침공은 성공적으로 저지했지만, 야만족들이 대규모로 몰려드는 경우가 종종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번만 해도 4천에 이르는 야만족이 일시에 국경을 넘었으니, 다음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는 법이 있습니까.”

무키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관의 말에 답했다.

“자네의 말도 일리가 있군,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판노니아 방면은 완전히 포기하게 되는 셈 아닌가?”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무키우스는 자신의 말을 끊는 백부장에게 눈을 흘겼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발언을 허락했다.

“어차피, 판노니아 방면은 지킬 수도 없는 땅입니다. 속주가 풍족하다고는 하나 다키아나 동방 속주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인 데다가 우리에게는 달마티아와 카르타고가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지금의 판노니아는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세금조차 제대로 걷을 수 없는 실정이 아닙니까?”

이에 부관 중 한 명이 발끈하며, 백부장에게 손가락질했다.

“로마인들이 사는 땅을 어찌 그렇게 쉽게 포기하라는 말인가!”

하지만 백부장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차피 지킬 수도 없는 땅입니다. 차라리 그곳에 사는 백성들을 안으로 불러들여 방어선을 재편성해야 하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그만하게, 이곳은 모여서 군사 전략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지, 싸움이나 벌이는 시장판이 아니란 말일세.”

“끙···. 죄송합니다. 장군.”

부관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한 무키우스는 백부장에게로 눈을 돌리며, 계속 말하라는 듯이 손짓하니, 백부장은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판노니아는 지킬 수 없는 땅입니다. 차라리 중앙에 보고하신 뒤에, 반달족이나 고트족에게 로마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넘기시는 편이 현명한 처사일 것입니다.”

“자네의 말도 일리가 있군.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키우스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지만,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저 방법 말고는 더 나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자신의 입으로 땅을 버리자고 했다가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기에 입을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후우···. 다들 말이 없는 걸 보니, 동의한 거로 알겠네. 로마의 시민들과 황제께서 내려주신 내 권한으로 판노니아 내의 모든 대대들에 원대 복귀를 명령한다. 퀸투스?”

무키우스의 부름에 곁에 있던 젊은 장군이 대답했다.

“예, 장군.”

“자네는 내가 편지를 한 장 써줄 테니, 황제께 전해드리면서 판노니아 방면에서의 철군을 허락받고 오게.”

“장군, 이런 일은 하급자들을 시키는 것이 맞을 듯한데···.”

무키우스의 눈썹이 거칠게 휘어졌다.

“지금이 전선에서 바쁘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나마 여유가 있으면서도 군단 내에서 계급이 높은 자네를 보내고자 함인데 어찌 불평하는가?”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변명은 필요 없네, 자네는 배워야 할 처지 아닌가. 투정 부리지 말고 다녀오시게.”

“...알겠습니다.”

퀸투스가 군례를 올리고는 회의실을 벗어나자, 무키우스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장군, 그래도 원로원에서 보낸 사람 아닙니까.”

“중앙에서 입씨름만 하는 원로원이 무얼 안다고! 멀쩡했던 이들도 원로원에만 들어가면 정신을 못 차리니 원···.”

“장군···.”

“듣기 싫네, 다들 내 명령에 따라. 각 대대에 전령을 보내서 군단 주둔지로 돌아오라 명령하게, 이동 중에 습격당할 염려가 있으니 대대별로 뭉쳐서 움직이라는 것도 잊지 말고.”

“예, 장군!”

무키우스는 회의실을 나가는 부하들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앞에 있는 보고서에 적힌 마리우스라는 이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흐음···. 마리우스라.”

* * *

“오셨습니까.”

“어휴···. 의무대가 편했는데.”

의무대에서 짧지만 달콤했던 휴식을 끝마치고 돌아오니, 폴로와 병사들이 반겨줬다.

막사를 둘러보니, 예전보다 빈 침상이 몇 군데 있었지만, 그래도 아는 얼굴들이 제법 보이는 것이 생각보다 저번 전투로 죽은 이는 얼마 없어 보였다.

“전부 아는 얼굴들이구먼.”

“마리우스 님, 오후에 목책 보수작업이 있습니다.”

“난 빼줘.”

“안됩니다. 지금 사람 없으신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니, 병사들이랑 작업 나가는 백부장이 어딨어!”

“사람이 없는 걸 어쩌겠습니까. 지금 대대 절반이 부상인지라, 의무대도 못 들어가고 막사에서 치료받는 병사도 있습니다.”

“나도 방금 돌아온 거야, 아직 다 낫지도 않았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은 전부 투입하라는 대대장님의 특별지시입니다.”

“대대장은 어떻게 인생에 단 한 번도 도움이 안 되냐!”

한숨을 내쉬면서 침상에 앉아, 병사들이 작업을 위해 장비를 챙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이유 모를 분노와 서운함이 들끓었다.

분명, 자신은 전투마다 활약도 하면서, 임시라고는 해도 현대로 치면 위관급 현장 지휘관이자 부대 내 행보관인 백부장자리까지 올라왔다.

당시에 전투가 끝나고서, 살아남은 나와 폴로에게 대대장은 로마 시민권을 쥐여주면서 임시로 백부장으로 임명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름만 백부장이지 하는 일은 기수로 일하던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백부장이 누려야 할 권리 또한 없었고, 급료는 아직 받지 않았지만 안봐도 뻔하겠지.

대대장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고 날 임시 백부장에 임명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인생무상이구나.”

“마리우스 님, 이제 갈 시간입니다.”

“후우···. 그래, 시발 가야지.”

폴로가 건네준 도끼를 받으면서 천막을 나오니, 완전무장한 병사 두 명이 천막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뒤따라 나온 병사들도 무슨 상황인가 싶어 가만히 보고만 있으니, 눈앞의 병사들이 머뭇거리면서 서로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또 뭐냐?”

“제6 백인대 백부장 가이우스 마리우스님 맞으십니까?”

“그래, 무슨 일인데.”

병사들은 군례를 올리면서 말했다.

“대대장님께서 간부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마리우스 님만 오지 않으셔서 저희를 보내신 건데···.”

“간부회의? 무슨 회의, 들은 거 없는데.”

이제는 나를 빼놓고 자기들끼리 회의하는 건가?

돌겠네! 진짜.

“어, 음···. 전달 중에 착오가 생긴 모양입니다. 저희와 같이 가시죠.”

“같이?”

뒤를 돌아보니, 병사들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있었다.

안 그래도 사람이 없는데 나까지 빠져버린다면 저들이 더 고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서, 나 없다고 해.”

“예?”

“난 목책 보수 가야 하니까, 그냥 없다고 하라고. 어차피 나 없어도 회의에 문제없잖아.”

“아니, 그건 저희가 정할 일이 아닌데···.”

“못 찾았다고 하던가.”

“그건, 명령 위반입니다.”

눈치를 보던 폴로도 슬쩍 내 곁으로 다가와 말하길.

“마리우스 님, 저희는 괜찮으니 다녀오시지요.”

“쯧···.”

폴로가 내 손에 있던 도끼를 뺏어가 버리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부하들의 슬픈 눈을 뒤로한 채 병사들의 뒤를 따라서 회의실로 향했다.

병사들을 따라 도착한 회의장은 바깥까지 그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그럼 저희는 이만.”

“어, 그래.”

안내해주던 병사들이 돌아가 버리고, 심호흡하며 회의실의 문을 열어젖히니 시장바닥처럼 서로에게 삿대질하면서 다투고 있는 백부장들과 그걸 언짢은 얼굴로 바라보는 대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단 말입니다!”

“아직 명령도 내려오지 않았는데, 섣불리 자리를 벗어났다가는 자칫 불순한 움직임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럼, 여기서 저 밀려오는 야만족의 파도에 휩쓸려야 한다는 겁니까!”

백부장들은 내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싸우고 있었던지라, 발소리를 죽이며 슬그머니 빈자리로 가서 앉으니 대대장이 헛기침하면서 둘을 진정시켰다.

“흠흠, 다들 너무 달아올···.”

“내가 군 생활만 몇 년인데, 그런 것 하나 모르겠나!”

“루시우스님만 오래 하신 줄 아십니까?! 저도 충분히 오래 했습니다!”

“내가 백부장이 된 뒤로 황제만 다섯 번이 바뀌었어!”

“그마아아안!”

대대장은 몹시 화가 난 듯한 고함에 두 백부장의 입이 다물어졌고, 곧 천둥 같은 대대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기는 회의실이야, 회의실! 시장판이 아니란 말일세! 내가 잠자코 봐주려 했더니, 더는 못 봐주겠군!”

대대장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둘 다, 나가!”

“어, 음···.”

“대대장님···.”

“변명은 듣지 않겠다. 지금 안 나가면, 내 손수 채찍질로 다스릴 테니, 그리 알게!”

대대장의 말에 두 백부장은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군례를 올리고서는 회의실을 나가버렸고, 덕분에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경직돼버렸다.

대대장은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조금 더 씩씩거리면서 회의실 문을 노려보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후우···. 못 볼 꼴을 보였군.”

“아닙니다!”

“마리우스, 왜 늦은 건가.”

갑작스럽게 나에게로 모이는 시선에 당황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의무대에서 바로 복귀한 터라 연락을 늦게 받았습니다.”

“그래? 벌써 다나았나 보군.”

“그렇기도 하지만, 의무대에 자리가 없다 하여 제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내 말에 주변에서 날 보는 시선이 조금 호의적으로 변했다.

대대장 또한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감탄성을 터뜨리며 말했다.

“호오···. 자기보다 다른 이들을 먼저 하는 그 태도. 아주 보기 좋네.”

“감사합니다···.”

대대장은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백부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난 전투에서 우리 대대원의 손실이 너무 크네, 이에 군단에 보고서를 올렸더니 이러한 명령장이 날아왔지.”

대대장은 파피루스 하나를 팔랑거리면서 보여줬고, 티투스가 조심스레 받아서 읽었는데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판노니아 방면(지금의 헝가리 지방쯤)에 주둔한 모든 대대는 달마티아 방면(지금의 크로아티아 해안가 지방쯤)으로 재집결하라는 것이었는데, 사실상 판노니아를 야만족들에게 내어준다는 말과 같았다.

다른 백 부장들은 심히 불편하다는 모습이었지만, 다들 아무 말도 없었고, 그렇기에 나도 입을 다문 채로 자리를 지켰다.

애초에 내가 이런 자리에서 발언하기에는 이제 겨우 군 생활 6개월을 넘기는 짬찌가, 군 생활만 15년이 넘어가는 베테랑들 앞에서 무엇을 말하겠는가?

“다들 부담 없이 편하게 의견을 말해보시오.”

대대장의 말에도 백부장들의 입은 빗장이 걸린 듯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다들 입을 다문 채로 대대장의 다음 말만을 기다렸다.

물론, 나는 오늘 저녁으로 나온다는 멧돼지고기를 상상하면서 어떻게 먹을지를 고민하느라 별생각이 없었다.

“다들 왜 아무 말이 없는 것입니까, 다들 말 좀 해보세요!”

대대장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면서 소리쳤지만, 백부장들의 입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던 대대장은 멍한 얼굴로 저녁을 생각하던 나를 바라보더니, 말하길.

“마리우스, 그래 자네가 있었지. 자네가 한번 말해보게, 우리 대대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제, 제가 말입니까?”

“그래, 편하게 말하게나.”

대대장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나를 지켜보는 다른 백부장들의 눈빛은 살벌하기만 했다.

마치, 말 한번 잘못하면 다음 날 변사체로 발견될 것 같은 위기감에 식은땀이 절로 흘렀고,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대장은 나를 채근했다.

“자네도, 내 명령을 무시하는 건가? 어서 대답하게!”

“저, 그것이···. 저는···.”

눈을 돌려보니, 주변에서 바라보는 눈빛이 아주 살벌했다.

나한테 왜 그래···.

“저는, 군단장님의 방침이니···. 아무래도 따르는 것이···.”

내 말에 다른 백부장이 책상을 치면서 반박했다.

“로마의 영토를 지금 버리자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군단장님의 명령이니 따르는 편이 더 맞지 않는가 하는···.”

“그게 영토를 포기하겠다는 것 아닌가!”

“크흠, 너무 흥분했네.”

대대장의 질책에 일어났던 백부장이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찮네, 그래 마리우스.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왜긴, 군단장님 명령이라면서!

아까도 그렇게 말했는데 왜 다시 물어보는 거지?

대대장은 아무래도 나를 희생양 삼아, 부대를 물리고 싶은 모양인 듯싶었다.

여기서 대대장의 의도대로 희생양이 되던가, 아니면 대대장마저 적으로 돌려 야만족이랑 드잡이질하던가, 죽음의 이지선다에 놓이자 말 그대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 음···. 그게···.”

정신이 아득해지니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떠오르는 대로 그냥 지껄이면서 대충 분위기를 탔다.

“군단장님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이 판노니아 방면을 군단 하나로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군단장님께서도 아신 거겠지요. 이 판노니아에 퍼져있는 야만족들만 해도 몇이고, 우리가 박살 낸 부족만 해도 몇 개입니까, 그런데도 적들은 잘라내고 잘라내도 다시 솟아나는 히드라처럼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대대장은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다른 백부장들 또한 속사포처럼 이어진 내 말에 반박할 시점을 놓쳐서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된 상황이니, 점점 우리 군의 피해는 누적되고 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피해를 제대로 수복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군단장님은 선택과 집중을 택하신 겁니다.”

“선택과 집중?”

“예, 어차피 판노니아 지방은 지속적인 야만족들의 침략으로 세금조차 제대로 걷을 수 없고, 속주민들의 불만도 높아서 반란도 자주 일어나는 지역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그래서 이 지역에서 챙길 수 있는 것만 챙기고, 풍족한 달마티아 방면으로 물러난 후에 군을 정비하고, 새로운 방어선을 만드시려는 계획이신 겁니다.”

“새로운 방어선이라···. 그럼 그게 어디가 되겠나?”

거리낌 없이 일어난 나는 벽에 걸려있는 로마제국의 속주 전역이 그려진 지도에서 달마티아와 노리쿰(현재의 오스트리아 지방)의 사이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군단장께서는 판노니아의 돌출부를 제거해서 생긴 병력의 여유를 노리쿰과 달마티아에 투사코자 하는 것입니다!”

말이 끝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고, 이내 떨리는 눈으로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이게 제, 제 의견입···. 니다···.”

짝짝짝

내 말이 끝나자, 회의실의 정적을 깨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손뼉을 치는 이를 돌아보니, 프리무스 필루스(1대대 1백부장)인 티투스가 손뼉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훌륭하네, 마리우스.”

“가, 감사합니다.”

“마리우스의 말대로입니다. 어차피 우리 군은 이곳을 오래 지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티투스가 다른 이들을 돌아보니, 티투스의 카리스마에 눌린 다른 백부장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고, 대대장 또한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었다.

“대대장님.”

“으, 응?”

“군단장님의 명령대로 하시는 게 옳을 듯합니다.”

“그, 그래 그렇게 하지. 다들 반대의견 있나?”

회의실은 여전히 죽을 것 같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고, 대대장은 뻘쭘한 듯 말을 줄였다.

“그럼, 군단장님의 명령에 따라 정확하게 3일 후에 달마티아 방면으로 이동한다. 병사들에게 그렇게 알리도록.”

대대장의 말과 함께 말 많았던 회의가 끝이 났고, 티투스는 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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