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전령
젊은 영웅이 몰락하는 사건을 목도한 호사가는 이번 사건을 늑대인간이 내린 저주라고 일컬었다. 불명예를 떠안고 비명에 스러진 그가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원한을 품고 속죄를 거부해서 하늘이 그 집안을 벌했다고 했다.
남의 불행을 반기는 그들의 입방아 탓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이번만은 그들이 하는 주장에 동조했다. 재앙이 벌어진 그 날 이후, 완전히 실성해버린 벨데케 본인도 이전에 수차례나 늑대인간이 벨데케 가문에 저주를 내렸다고 언급했던 터였다.
이젠하르트는 파혼을 선언한 당일, 세 가지 혐의로- 적기사, 가짜 설교사 살해, 동료 기사 아이케에 대한 배신-성에 있는 탑에 구금된 후, 다음날 심문을 받았다.
이젠하르트는 심문에서 모두가 한 예상을 깨고, 어떤 반박도 없이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그 후, 얼음 감옥에 투옥됐는데 그곳은 가장 불명예스러운 죄인과 광인이 살아생전에 지상에 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최후의 장소였다.
자백을 받아낸 영주는 재판을 속결하려고 했다. 사형, 영구추방 그리고 늑대인간의 형벌이 거론됐다.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경범죄만으로도 심문과 재판을 받기 전까지 몇 달에서 몇 년이나 구금을 당하기 일쑤였던 시대였다.
그러나 영주는 이젠하르트를 투옥한 다음 날 심문을 속행했고 자백을 받자마자 사형보다 더한 극형인 늑대인간의 형벌을 거론했다. 그만큼 이례적으로 신속하며 강경한 처사였다.
혹자는 막대한 재력으로 영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온 만필요트 백작이 이번에 벌어진 이례적인 재판 진행의 배후라고 지목했다.
다른 이들은 영주가 품은 사적인 분노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이젠하르트는 한낱 범속한 죄인이 아니다. 그는 이 도시에서 전무후무했던 영웅이었다. 그런 영웅이 불명예스럽게 몰락했으니 이 도시와 영주 본인이 몰락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베르나르 신부는 재판이 속결돼선 안 된다고 반대했다. 비록 이젠하르가 세 가지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됐고 자백까지 했지만, 개인의 명예뿐 아니라 이 도시의 명예가 걸린 재판인 만큼, 죄목에 대한 진위, 특히 영주를 가장 분노케 한, 동료 기사를 배신한 죄목에 관해서는 백작 말고도 다른 증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로에란그린도 신부와 동조해 판결을 유예해달라는 청원을 냈다. 그는 적기사 의혹과 가짜 설교사가 피살된 건에 관해서도 진위을 확인해주고 정상을 참작해달라고 요청했다.
적기사 건에 관해서는 지난여름과 가을에도 이웃 마을에 한 무리의 적기사가 출몰했다고 지적했다. 그들 도적 떼는 공공연하게 적기사라는 신분을 사칭했으며 농부 중에도 목격자가 있었다.
그리고 가짜 설교사는 그 실체가 뭐든 피살 당시에는 밤도둑임을 지적했다. 범인은 깃발을 노리고 수차례에 걸쳐 벨데케 가에 무단침입했으니 집주인이 밤도둑을 살해한 행위는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판결을 유예해달라는 청원이 이어지자 콘드비라무어스도 이젠하르트를 구명하려고 나섰다. 그녀는 만필요트 백작이 그간 자신의 신분을 은폐해왔음을 지적하며 이스트리엔으로 전령을 보내서 고발 내용이 사실인지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결한 품성과 미덕의 기사’인 백작도 실상은 조카를 위해 복수하려고 이 도시에 찾아왔으며 힐데가르트와 결혼하려던 계획은 복수의 일환이었다고 했다.
만필요트 백작은 반론을 펼쳤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전사로서 어떤 불명예스러운 책략이나 범죄를 행하지 않았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신은 증거물로써 죽은 조카 아이케의 깃발이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야간에 무단 침입해서 어린 한스를 습격한 사건은 가짜 설교사가 자발적으로 벌인 범죄였다. 힐데가르트와 늙은 벨데케에게 자신이 품은 호의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외려 자신은 최후의 순간- 결혼 당일- 까지도 이젠하르트가 병든 부친과 누이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서라도 과거에 지은 죄를 고해하고 속죄하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허나 이젠하르트는 기대를 저버렸다. 그는 복수에 눈이 멀어서 젊은 포겔바이데에게 살인이라는 누명을 씌웠으며 늙은 부모의 신의를 저버렸고 재물에 눈이 멀어서 어린 누이마저 희생시키려고 했다. 파혼 선언도 누이를 위한 선의가 아니라 백작 자신에 대한 의심과 협박에서 비롯됐다.
설교사의 시체를 강물에 수장했던 이젠하르트는 다음날 새벽 집 앞에서 시체를 발견한 후,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정체와 과거의 죄악이 탄로 날 위기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에 누이의 결혼식이 연기되어 백작과 만났을 때, 비로소 백작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백작은 그러고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그리스도의 전사이자 명예와 영광을 좇는 기사라면 어떠한 불의나 배신과도 드높은 성벽을 쌓아야 하며, 신께는 순결한 영혼을, 고매한 귀부인에게는 헌신적인 사랑 봉사를, 그의 군주를 위해서는 충절과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신의를 지니고서! 그러나 저 벨데케의 젊은 기사는 신의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담을 쌓은 인물이니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마땅합니다.」
이 때문에 늑대인간이라는 판결을 고집하는 영주의 결심은 나날이 확고해졌다.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서 적기사 의혹과 설교사 살해 그리고 로트에게 누명을 씌운 죄는 사면해준다 해도 그리스도의 서약을 한 기사로서 의형제를 배신한 죄는 용서받지 못할 대죄였다. 영주의 실망과 분노는 전적으로 이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기사가 영주가 내린 권고에 불만을 품고 지난여름에 백작을 부추겨서 역모를 꾀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나돌았다.
베르나르 신부는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며 기도했다. 로트에게 세 번째 편지를 보내야 할 그로서는 이제 마지막으로 기적을 바랄 도리밖에 없었다.
*
광장에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면 얼음 감옥은 암흑천지가 됐다.
이곳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태양이 비켜 갈 만큼 음습한, 절벽에 파인 동굴이었다.
얼음 감옥을 지키는 옥리는 동굴 초입에서 낙조가 드리워진 도시를 내려다봤다. 발밑에서는 빙설로 하얗게 뒤덮인 모난 돌이 발에 밟혀 바작, 바작, 소음을 울렸다.
“허헛, 제기랄. 더럽게 춥네.”
옥리는 끓는 솥처럼 콧구멍으로 김을 내뿜으며 협로를 내려다봤다. 한 사람의 어깨 폭만큼 좁은 그 길은 얼음감옥과 외부를 잇는 유일한 출입로였다. 하얗게 얼어붙은 돌멩이가 눈에 파묻혀 있었다.
허리띠에 철퇴와 단검을 찬 옥리는 묵직한 열쇠꾸러미를 짤랑대며 내뱉었다.
“쳇. 오늘도 쥐새끼 한 마리 안 오네. 이래 갖곤 내 계산이 영 글러 먹었는데.”
이 옥리는 일전에 포겔바이데 가의 후문을 지켰던 자였다.
그 당시 한몫 잡았던 그는 이젠하르트가 얼음감옥에 투옥되자 옥리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얼음감옥은 본래 모든 면회가 금지였는데 그런 조치가 무색하게 방문객이 없는 곳이다. 두려움과 혐오의 장소로써 그쪽을 보기만 해도 하늘로부터 버림받은 죄수의 액운에 화를 입는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옥리는 그런데도 치밀한 계산 끝에 자원했다. 그러나 뒤늦게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것을 깨닫고 후회막심이었다.
애초부터 그는 포겔바이데 가의 후문에서처럼 가죽 자루를 불룩하게 채울 빵이나 맥주 따위를 기대하진 않았다. 대신 새로 투옥된 죄수의 신분을 고려해서 혹시 모를 한 건을 거창하게 노렸으나 대실패였다.
“제엔장. 마귀 떼랑 쥐새끼만 득실댄다더니 사실이었군. 대머리 빼곤 누구 하나 코빼기도 안 비치는군. 흥.”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어두컴컴한 동굴 벽에 횃불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가 너울댔다.
옥리는 안쪽으로 들어가서 발소리를 내는 사람에게 물었다.
“오늘은 오래 걸리셨네요.”
“험, 그랬나.”
베르나르 신부가 대답했다.
옥리는 조그만 눈을 번뜩이며 기둥 같은 두 다리로 신부의 앞을 가로막았다. 심통도 나고 심심하던 차에 신부의 낯빛이 수상쩍다. 초조한 눈치였다.
“그럼요. 꽤 오래 계셨는데요. 안에서 뭘 하셨어요?”
“함께 기도를 드렸지 뭘 했겠나. 그나저나, 여보게?”
신부는 수염에 서리가 붙은 옥리가 미심쩍게 조그만 눈을 굴리자 말을 돌렸다.
“도대체 어쩌자는 겐가. 자넨 불행한 저이들을 동사시킬 작정인가.”
“불행한 저이들이라뇨? 죄수들 말인가요?”
“그렇다네.”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글쎄, 불이야 땔 수 없다지만 눈이 있으면 가서 좀 보게. 이런 추위에 금수처럼 헐벗고 있는데, 얼어 죽지 않고서야 배길 수가 있나. 자네를 보게. 두꺼운 양모를 너덧 겹이나 껴입고도 수염에 고드름이 맺혔구먼.”
“허참, 큰일 날 소리 하시네!”
옥리는 기가 차서 언성을 높였다.
“여기가 궁전이랍니까. 여긴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제 발로 걸어 나갈 수 없는 얼음감옥이에요. 이런 데 누가 온답니까? 저자들은 전부 미치광이거나 흉악한 금수 아니면 버러지 같은 죄수들입죠. 저치들한테 깃털 이불이라도 갖다 주라고요? 그랬다간 영주님께서 제 목을 매달 겝니다.”
“어허! 자네가 심판관인가. 자네는 옥리로서 저이들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잖은가?”
“쳇, 그거야 죄수 나름이죠.”
옥리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전 배를 곯으면서도 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어요. 이런 덴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지만 저는 자원했지요. 왜냐! 저치들을 불쌍히 여겨서 배를 채워주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단 말예요. 그런데도 불평불만이 많다니! 정 못 참겠으면 사면을 받으면 되잖습니까. 이런 날씨엔 따땃한 비단 금침 속에 누워 계셔야 할 분이 뭐 하러 저기 계시 답니까?”
옥리가 만만찮게 대들자 신부는 그의 비위를 거슬러봤자 죄수에게 이롭지 않음을 알고 한 발 물러섰다.
“험, 뭐, 전적으로 자네 책임이란 소린 아닐세.”
“그럼요. 제 탓은 아니죠.”
“자네도 이런 날씨에 고생이 많구먼. 큼. 그런데, 뭐 소식 좀 들은 게 있나?”
“전령 말인가요?”
신부를 눌러 의기양양해진 옥리는 거만하게 되물었다.
신부는 가슴을 졸이며 그렇다고 말했다.
“아뇨. 전혀 없었어요.”
옥리는 태평하게 말했다.
“아마 가다가 죽었을걸요. 벌써 돌아왔어야 하는데 감감무소식이잖습니까. 도적 떼한테 당했겠죠. 쳇. 그 치도 더럽게 재수가 없군. 어차피 늑대인간이 될 텐데, 괜한 고생을 하다 개죽음을 당했군.”
“어허! 감히 벌 받을 소리를!”
신부가 호통치자 옥리는 살짝 꼬리를 내렸다.
“하, 참, 뭘 그리 화를 내세요. 전령 녀석이 감감무소식인 게, 뭐, 제 탓인가요. 전령이 출발하자마자 눈이 몹시 내렸으니 필시 얼어 죽었으려니 했죠. 이스트리엔이 좀 먼가요? 천리마가 달린다 해도 눈보라를 뚫고 빙산을 넘어 다녀오려면 한 달은 걸릴걸요. 그리고 내일 당장 전령이 돌아와서 사면이 된다 쳐요. 저런 존귀한 나리님께선 앞으로 살아남기 힘드실걸요. 연약한 몸뚱이의 썩은 지체는 잘라낸다 쳐도 무너진 자존심 때문에 속병이 단단히 나실 테니까요. 이 얼음감옥에 행차하신 나리님들치고 헤까닥해서 죽지 않은 분이 있었던가요? 없었죠? 거 보세요.”
동일한 우려를 품고 있던 신부는 반박할 기운을 잃고 비통한 한숨을 내쉬었다.
동굴 초입으로 가자 눈송이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성채는 눈에 파묻힌 오두막 같았다.
무릎까지 쌓인 협로의 눈 더미를 보면서 신부는 오늘도 기적을 바라며 철야 기도를 하리라고 다짐했다.
“참, 젊은 포겔바이데 나리는 찾았대요?”
옥리는 귀갓길에 오른 신부를 협로 초입까지 따라가서 물었다.
신부는 살을 에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도 모르겠네. 수소문을 해봐야지.”
“죽었을걸요?”
“허! 또 벌 받을 소릴!”
“아, 왜 자꾸 저한테만 성을 내세요? 제가 한 말이 아닌데요. 높으신 나리님들이 다 그러셨어요. 그러게 왜 무고한 분을 엄동설한에 추방했대요? 얼어 죽든 도적 떼한테 털려서 죽든 나가 죽으라는 소리죠. 세상에 그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 젊은 나리는 인심도 꽤 후하고, 뭐, 누구처럼 대단한 명성도 없고 존경은 못 받았을지언정 웬만한 여편네들 귀여움은 독차지했더군요. 쫓겨나는 날에도 방문객이 얼마나 드글드글 하던지! 그런 분을 영구 추방했으니, 존귀하신 나리님들과 하느님께서 큰 실수를 하셨네요.”
“험, 가보겠네. 내일 다시 옴세.”
옥리가 쏟아낸 비판을 무시하고 신부는 협로에 쌓인 눈 더미를 헤치고 나갔다.
“또 오신다고요? 그럼 곤란한데요.”
옥리는 그의 등에 대고 외쳤다.
“아시다시피 이 얼음 감옥은 면회가 일절 금지예요. 맥주 한 통과 사슴 뒷다리를 구워 와도 전부 쫓아낼 판인데도 신부님은 제가 공짜로 봐 드렸다죠. 하지만 더는 곤란해요.”
눈에 파묻혀 허덕이며 내려가던 신부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동굴 초입에 홀로 남은 옥리는 멸시의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저 대머리도 어지간히 헛수고를 하는군. 그래 봤자 도적 기사 놈 따위를!”
날이 저물자 눈이 내렸다. 바람에 날려 온 눈이 동굴 입구에 작은 둔덕을 이뤘다.
옥리는 장작불에 앉아서 사슴고기 파이와 맥주로 배를 채웠다. 목구멍까지 파이가 들어차자 불길에 달궈진 얼굴이 벌게졌다.
식사를 마친 그는 나무통을 들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묵직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허리에 찬 철퇴와 열쇠 꾸러미가 부딪쳐 쩔거덩, 쩔거덩 음산하게 메아리쳤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악취가 심해졌다.
옥리는 철창이 박힌 굴 앞에서 이따금 발을 멈추며 차례로 지났다. 그가 굴 앞에 서면 철창 사이로 튀어나온 새카만 손이 조그만 그릇을 내밀었다. 한 덩어리로 엉긴 죽 한 술이 그 안에 철퍽, 떨어지자 그릇은 잽싸게 사라지고 굴 안에선 게걸스럽게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옥리는 마지막 굴 앞에 섰다. 그곳은 통로의 횃불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철창 너머로 두 개의 거무스름한 실루엣만 보였다.
“야.”
작은 들짐승처럼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죄수는 옥리가 부르자 고개를 쳐들었다. 새카만 얼굴에서 안광이 반짝반짝 빛났다.
옥리는 치를 떨었다.
“야. 죽이야. 처먹어.”
족쇄와 목줄을 찬 죄수는 멍하니 입만 벌렸다. 옥리는 바닥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나무 그릇 중 하나에 죽 한 덩어리를 내던졌다.
“저 자식은 식인귀야, 벙어리야. 이놈아, 오늘은 어떤 별미를 맛보고 싶냐? 내 팔뚝이라도 하나 끊어주랴?”
옥리는 그러고서 벙어리 죄수의 반대편을 돌아봤다. “야, 처먹어.” 라는 입에 밴 말은 두 번째 죄수를 보자마자 목구멍에 걸렸다.
그는 허리에 찬 철퇴를 만지작대며 권위를 되살리려고 애썼다. 어차피 이 얼음 감옥의 군주는 저다. 미친 식인귀는 물론이고 족쇄를 찬 기사도 복종해야 한다. 그런데도 기사가 뿜어대는 위압감이 만만치 않다.
“여봐요. 식사요.”
침묵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예상하고서도 자존심이 상한 옥리는 신랄하게 쏴붙였다.
“하, 참! 또 안 먹을 거요? 이 양반 독하시네. 당신이 지금 입맛 가릴 입장이요? 우린 날마다 먹는데 당신이라고 못 먹을 이유가 뭐요?”
이젠하르트가 감은 눈을 뜨지도 않았으므로 옥리는 오기가 치밀었다.
“아, 그럼 관둬요. 마음대로 단식을 하라지. 금세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나 본데 꿈 깨요. 내가 장담하는데 전령은 죽었어요. 스무 날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인데 돌아올 줄 알아요? 쳇! 꿈도 크시지. 영주님께서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고 했어요. 야, 식인귀! 넌 복이 터졌어. 네놈이 날마다 두 몫을 먹어치우니 살이 통통하게 쪘군.”
스무날 동안 이젠하르트에게 무시당한 옥리는 빈 통을 흔들어대며 발길을 돌렸다.
“쳇. 벙어리끼리 잘 만났구나. 저런 으스스한 상판이라니 꿈에 볼까 무섭군. 뭐, 신의와 명예의 기사? 그럼 난 대천사 미카엘이다.”
옥리는 동굴 초입으로 가버렸다.
하루에 한 번뿐인 요란한 배식이 끝나자 태고부터 빛 한줄기 닿지 않은 굴 안은 오싹하리만치 고요해졌다. 굴 밖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공명이 들렸다. 그에 답하듯 굴 안 곳곳에서는 간혹 갓난애 울음 같은 신음과 괴성이 흘렀다.
식인귀라고 불린 죄수는 옥리가 사라지자 족쇄와 목줄이 닿는 한 가까이 손을 뻗어 자기 죽 그릇을 집었다.
죽은 얼어붙은 돌덩이였다. 그걸 한입에 삼킨 죄수는 맞은편 돌벽에 기대앉은 이젠하르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젠하르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죄수는 원숭이가 먹이를 채가듯 살그머니 두 번째 죽 그릇을 집어 올렸다.
“여보세요.”
죄수는 남이 들을세라 한껏 숨을 죽여 그를 향해 속삭였다.
“요걸 먹어봐요. 맛이 좋아요.”
“치워.”
이젠하르트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대꾸했다.
죄수는 샛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가 먹어도 돼요?”
“그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죄수는 꿀떡, 죽을 삼켰다. 이윽고 비어 버린 두 개의 죽 그릇을 품에 안고 물었다.
“여보세요? 당신은 숲의 파괴자죠?”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처럼 침묵이었다.
죄수는 그릇 바닥을 뾰족한 혀로 싹싹 핥으며 물었다.
“난 옛날에 광장에서 당신 아버님을 본 적이 있어요. 내게 거위 알을 하나 주셨어요. 참 친절하신 분이었어요. 하나 더 달래면 줄까요? 근데 여긴 뭐 하러 왔어요?”
이제까지 수백 번 되풀이 된 질문을 처음 하듯이 캐물은 그는 대답이 없자 죽 그릇 두 개를 나란히 내려놓고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가 운신할 때마다 족쇄와 목줄이 바닥에 끌리고 몸뚱이에 밴 악취가 피어올랐다.
이젠하르트는 계속 눈을 감은 채였다.
죄수는 앙상한 두 팔로 무릎을 껴안고 속삭였다.
“기도해요. 주님께 빌면 구해줄 거예요. 난 글렀어요. 배가 고파서 남의 집 갓난애를 삶아 먹었어요. 난 어린애인 줄 몰랐어요. 새끼 돼지인 줄 알았어요. 너무 배가 고팠거든요.”
“…….”
“여기는 참 좋아요. 하루에 한 번씩 죽을 줘요. 난 침묵의 맹세를 했어요. 석 달 내내 고문을 받았지만 절대로 자백하지 않았어요. 영주님이 날 강물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입을 뻥긋하지도 않았어요. 자백하면 말뚝에 박혀 죽어요. 자백하면 풀어준다고 구슬렸지만 거절했어요. 난 천사님이 데려갈 때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굶어 죽거나 말뚝에 박혀 죽느니 여기가 좋아요. 당신은 왜 여기 왔어요?”
“시끄러우니까 저리 가서 먹어.”
“다 먹었는데요. 당신은 굶어 죽을 거예요?”
침묵의 서약을 고집해서 십여 년째 미결구금 중인 죄수는 이젠하르트가 투옥된 이래로 주야를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말을 걸거나 독백했다.
그러다 저 멀리서 묵직한 옥리의 발소리가 들리면 완벽히 벙어리 행세를 했다. 새카만 얼굴에 박힌 파란 눈은 항상 물기가 어려 있고 흐리멍덩했다.
“굶어 죽어선 안 돼요.”
죄수는 슬퍼하며 말했다.
“죽고 싶어요? 안 돼요. 자살하면 지옥 불에 떨어진대요. 난 천사를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은 누굴 기다려요?”
“입 닥치고 자.”
“누굴 기다려요? 전령이 뭐예요? 누군지는 몰라도 안 올 거예요. 아무도 안 올 거예요. 기다리지 말아요. 난 여기 오래 있었어요. 얼마나 된지는 몰라요. 영주님의 따님이 조그만 소녀였을 때 들어왔어요. 그동안 이곳엔 아무도 온 적이 없었어요. 대머리 신부님은 요번에 처음 뵈었어요. 이곳에는 나 같은 식인귀랑 요괴만 살아요. 누굴 기다려요?”
어두컴컴한 맞은편에서 미세한 기척이 느껴지자 죄수는 벼락을 맞은 듯이 몸을 떨며 말을 끊었다. 조그만 몸뚱이 전체가 귀가 됐다. 꽉 조여 맨 족쇄와 목줄 때문에 벽에 달라붙어 해골이 돼버린 시체처럼, 족쇄를 찬 채 밤낮없이 앉은 자세 그대로 요지부동이던 이젠하르트가 팔을 움직인 것이다.
“그건 뭐예요?”
그가 손에 쥔 것을 보고 죄수는 겁에 질려 물었다.
“뭐예요? 약이에요?”
“…….”
“약이에요?”
“시끄러워.”
“약이에요?”
“그래.”
“신부님이 주셨어요?”
“그래.”
“먹고 죽으려고요?”
“잠이나 자.”
“독약이에요?”
“미치겠군.”
“독약이에요?”
“제발…….”
“독약을 먹고 죽으려고요?”
“빌어먹을! 제발 그 입 좀 다물지 못해!”
호소에 가까운 협박을 했음에도 죄수는 죽을 거냐고 또 물었다.
이젠하르트는 이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다음부터는 자기 죽을 자기가 먹겠다고 선언했다.
효과는 강력했다. 죄수는 즉시 입을 닥쳤다.
죄수가 입을 다물자 이젠하르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벽에 뒷머리를 기댔다. 평온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뒤틀리던 오장육부의 격통이 일시적이나마 가라앉았다. 살갗에 달라붙는 듯한 집요한 시선은 여전했지만, 입을 닥친 죄수에게 감사의 키스라도 해주고 싶었다.
얼음감옥에 투옥된 후로 그는 예기치 못한 고문에 시달렸다. 기적으로 이곳에서 벗어난다 해도 몸에 배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악취나 뼛속을 얼리는 냉기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저 식인 죄수의 질문과 독백이었다.
밤낮을 구분할 수 없는 굴 안에서 속삭이듯 끊임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 어떤 고문보다 더 집요하고 가혹했다. 단 한 순간의 안식, 수면은커녕 방심도 허락지 않는 그 소음은, 조금씩, 서서히, 끊임없이 뇌 속에 흘러드는 물방울처럼 그의 예민한 신경을 갉아댔다. 기력이 쇠해가는 육체보다 극한으로 몰리는 정신의 분열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이젠하르트는 손에 쥔 약병을 쓰다듬으며 사고력을 모았다. 조그만 약병의 표면은 매끄럽고 차가웠다. 분열 직전인 의식이 점차 맑아졌다.
‘누구를 기다리느냐고?’
죄수가 던진 질문을 떠올리며 그는 자문했다.
‘저승사자를 기다린다. 그가 나루터의 저편에 발이 묶여 있다면 달려가서 맞이하고 싶어.’
재판 속결 반대파가 해댄 청원이 무너지려던 마지막 순간에 영주는 판결 유예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스트리엔으로 전령을 보냈다. 이젠하르트의 군주였던 이스트리엔 후작에게 기사 아이케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확인 서한을 보낸 것이다.
베르나르 신부는 이젠하르트가 사면을 얻게 되리라며 기도했다.
그러나 이젠하르트는 기도 중에 눈물을 흘리는 신부 곁에서, 자신은 사면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적진에 홀로 뛰어든 기사 아이케는 피로써 제 무모함이 불러일으킨 대가를 치렀다. 아이케는 자신이 최후를 맞이하리란 걸 알았다. 이젠하르트 그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막아서지도 뒤쫓아 달려가지도 않았다. 주인을 잃은 깃발은 이젠하르트의 목전에서 피에 물들고 찢겼다.
이제 또 다른 피의 주인이 그에게 대가를 요구한다고 이젠하르트는 생각했다. 숙적 포겔바이데, 바로 그놈이었다.
이제껏 복수욕에 사로잡혀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창과 방패로 세상을 정복했듯이 복수가 이뤄지기를 원했다. 포겔바이데 가의 멸족이 목적이었다. 힐데가르트는 제물이자 미끼였다. 정당한 목적에는 신의 뜻이 따른다고 믿었다. 강자가 승자였다. 힘이 신의 정의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치욕과 불명예의 주인은 자신이었다. 원수의 부러진 깃발은 승자의 영광 대신에 자멸을 선사했다. 무력과 교지로 획득한 복수의 달콤한 과실은 제 살을 갉는 해충을 품고 있었다. 교활한 책략가는 놈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궁지에 몰리자 적의 급소를 노리는 맹수처럼, 벼락이 치던 그 밤에도 원수의 광기를 도발했다. 그로써 놈이 자멸하기를 꾀했다.
그날 시합장에 선 원수의 꼴은 어떠했던가.
승패는 하늘의 뜻이라고 그는 이후로도 몇 번이고 자신에게 다짐했다. 놈은 죄악의 노예요, 패배와 굴욕의 주인이었다. 자신이 승자였다.
하지만 복수의 창은 되돌아왔다. 승패가 가려진 후, 그에게 되돌아온 건 병든 부친의 절망과 눈물이었다. 어린 누이의 비탄과 원망이었다.
「이 담벼락은 우리를 가로막은 망령이야. 해묵은 원한이라는 집요한 망령이지. 배가 주리면 배를 채우고 싶어지듯, 피를 갈망하는 생리적 욕구가 불러낸 복수의 망령 말야. 피해의식과 맹목적인 복수심에 사로잡힌 너는 명예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워 자신의 불운에 대한 화풀이를 하려는 거야. 애꿎은 옛 친구에게 말야. 아냐? 충고하건대, 그런 앙심은 품으면 못 써. 복수는 거꾸로 된 창이야. 던지면 널 찌를 거야. 안쓰럽고 비참한 자멸이지.」
결국 놈이 옳았다. 승자는 자신이 아니라 놈이었다.
영원히 씻어낼 수 없는 죄책감을, 부친의 눈물과 누이의 비애를 말라버린 심장에 각인시킨 그놈이었다.
동굴에 사무친 냉기에 온 몸이 뼛속까지 굳는다.
몸을 잔뜩 웅크린 죄수는 문득 전해지는 기척에 맞은편을 쳐다봤다. 번뜩이는 흐리멍덩한 파란 눈은 죽 그릇을 향했다가 다시 맞은편으로 그리고 다시 죽 그릇으로 향하길 반복했다. 가죽만 남은 얄팍한 갈빗대 안에서 불현듯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여보세요?”
죄수는 한참 후에 이젠하르트를 불렀다.
“왜 그래요?”
언제나처럼 대답은 없다. 기척마저 뚝, 끊겼다.
죄수는 족쇄를 질질 끌면서 살그머니 그쪽으로 다가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그래요?”
수염이 덥수룩한 죄수의 새카만 턱 아래로 입안에 고인 침이 흘렀다. 죄수는 닿을락 말락 손을 뻗어 이젠하르트의 발을 만졌다. 반응이 없다. 돌덩이 같다. 또 한 번 건드렸다. 역시 마찬가지다.
이때 이젠하르트가 손에 쥔 작은 약병이 눈에 띄었다.
“……!”
죄수는 허겁지겁 제자리로 돌아가서 무릎을 껴안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모로 젖힌 채 죽은 듯이 벽에 기대앉은 이젠하르트를 망연히 쳐다봤다.
밤이 되자 눈보라가 심해졌다. 두꺼운 눈구름은 천막처럼 도시의 상공을 덮고서 사납게 흩날리는 눈송이를 뿌려댔다. 새벽 무렵에야 강풍은 잦아들고 눈발이 약해졌다.
붉은 모닥불이 타오르던 동굴 초입은 어둑하고 고요했다.
모닥불 앞에서 밤을 새운 옥리는 묵직한 목을 추처럼 가슴팍에 늘어뜨린 채 잠이 들었다. 모닥불에서 잔 불씨가 연기를 피워 올리다 꺼졌다.
들짐승이 덤불을 뚫고 튀어나오듯 동굴 입구에 기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는 연기를 손으로 휘저으며 동굴 안을 휘둘러봤다. 검은 튜닉을 입은 로트였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헤치고 온 터라 튜닉 후드부터 끝자락까지 온통 백색이었다.
연기가 피어나는 곳을 보고서 로트는 모닥불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철퇴를 허벅지 옆에 늘어뜨린 옥리는 우렁차게 코를 골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로트는 어리둥절했다. 이때 바로 앞에 펼쳐진 암흑 공동이 눈에 띄었다. 무저갱의 입구 같은 그곳에서는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고하듯이 음산한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든 로트는 달려가서 안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에 머리가 멍해지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차고 맑은 새벽 공기가 가득 찬 폐는 경종을 울리듯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빌어먹을.’
로트는 유난을 떠는 제 오장육부를 저주하며 첫 번째 굴로 달려들어서 안을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캄캄해. 암흑천지야.’
발 닿는 대로 첫 번째, 두 번째 굴에 달려든 그는 쇠창살에 두 뺨을 짓눌러대며 안을 들여다봤다. 통로를 비추는 횃불 덕에 가까스로 시야가 트이자 야간에 해매는 들짐승처럼 안광이 번뜩이는 죄수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들은 낯선 발걸음 소리를 경계하며 몸을 도사렸다. 뒤로 물러서느라 족쇄가 바닥에 지익, 지익 끌렸다.
로트는 피 끓는 가슴을 억누르고 모든 굴 안을 샅샅이 살피며 전후좌우로 이리저리 날뛰었다. 마지막 토굴에 닿았다. 그곳에는 정수리에 덤불을 얹은 듯이 수염과 머리칼이 산발인 죄수가 한 구석에서 두 팔로 무릎을 껴안고 앉아 있었다.
로트는 통로 입구 쪽으로 달려가며 또 다른 입구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다른 굴 입구는 없다. 이곳이 유일한 굴이었다.
감격한 그는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이뤄졌다. 반신반의하면서도 불길함을 떨칠 수 없었는데 기원이 이뤄졌다. 이젠하르트는 이곳에 없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영광을!’
기뻐 날뛰며 그는 동굴 초입으로 나갔다.
‘이런 곳에 걷혔을 리가 없어. 이젠하르트는 저주받은 미치광이 따위가 아니니까.’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새로운 근심에 휩싸인 로트는 주정뱅이처럼 휘청대다 통로의 돌 벽에 얼굴을 처박았했다.
‘그럼 어딜까. 역시 그 탑일까. 제기랄, 거길 어떻게 뚫고 내려가나.’
자신이 구금됐던 성채의 탑이 떠오르자 그는 망연자실했다. 외벽에 있는 탑의 유일한 출입구는 바로 위층, 성의 수비대장이 머무는 숙소 마룻바닥에 있다. 그곳에서 출입구 뚜껑을 열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창이라고는 손도 닿지 않는 곳에 뚫린 손바닥만 한 환풍구뿐이었다.
‘우선 여기서 나가자. 무슨 방법이든 있겠지. 날이 밝기 전에 잠입해야 해.’
무모한 충동과 흥분에 휩싸여 머리보다 두 발이 먼저 앞선 그는 통로를 벗어나기 직전에 갑자기 서버렸다. 이곳에 없는 이젠하르트가 저를 부르는 것 같다.
‘아!…….’
때론 열망이 환상을 일으킨다. 간절한 기도와 염원은 불완전한 오감을 기만한다. 이 순간 날벼락을 맞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로트의 낯빛도 그걸 뜻했다.
로트는 뒤로 돌아서 뛰었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걸려 구르고 기면서 마지막 굴로 다시 달려가자 죄수는 좀 전 그대로 정면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이젠하르트!”
그 시선을 따라서 맞은편 벽을 쳐다본 로트는 양손으로 철창을 움켜쥐고 괴수처럼 부르짖었다.
“이젠하르트!”
-!
난데없는 절규가 메아리치자 굴 안 여기저기서 괴성이 터졌다.
꿈쩍하지 않는 철창을 뽑으려던 로트는 두건을 푹 뒤집어쓰고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벌떡대는 심장이 흉곽을 뚫고 나와 바닥을 쾅! 쾅! 두들겼다. 그 요란한 고동이 귀에까지 두근두근, 울렸다.
천만 다행히도 옥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죄수들의 동요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내가 미쳤구나! 또 미친 짓을 했어.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들킨다는 위험보다는 제 경솔함에 놀라서 그는 돌바닥에 불덩이 같은 이마를 식혔다.
옥리가 깨어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수도사로 변장한 이유는 이젠하르트 때문이다. 천사로 둔갑해서 강림한들 자신이란 것을 알면 반길 리가 없다. 더군다나 자신은 피앙세의 의무를 진 추방자였다.
‘혹시 내 목소리를 알아챘을까.’
굴 안은 그러나 조용했다.
안도한 로트는 살그머니 일어서 그 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죄수들이 쇠사슬로 돌 벽을 쳐대며 괴성을 질렀는데도 마지막 굴 안은 예사롭지 않게 고요했다. 무릎을 껴안고 미동 않던 죄수도 그대로였다.
이젠하르트는 그 맞은편 어둠 속에 파묻혀 있다. 벽에 기대앉아서 앞으로 내뻗은 두 다리가 보였다. 그 모습과 침묵이 이상했다.
‘자는 걸까?’
로트는 생각했다.
‘아니면 기절했나. 왜 저러고 있지?’
자고 있다면 깼을 것이다. 이 난리에도 곰처럼 자고 있을 그가 아니다.
로트는 죄수를 불렀다.
“이봐요.”
식인 죄수의 목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이리와 봐요.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언제부터 저랬어요? 왜 꼼짝을 안 하지?”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이라서 로트는 철창 사이로 얼굴을 짓눌러대며 재차 불렀다.
“여봐요, 내 말이 안 들려? 이리 와 봐요.”
“…….”
“이리 와보라니까? 뭘 멀뚱멀뚱 보고만 있어요? 벙어리야? 이봐!”
식인 죄수는 역시 무반응이었다. 언성을 높였는데도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무시무시한 생각에 로트는 허겁지겁 동굴 입구로 달려갔다.
옥리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양모를 겹겹으로 껴입은 비대한 몸뚱이가 모닥불 위로 고꾸라질 모양새다.
후드를 뒤집어쓴 로트는 발소리를 죽이고 미끄러지듯 옥리 곁으로 다가섰다. 옥리의 가죽 허리띠에 달린 열쇠 꾸러미가 보였다. 단검을 쥔 손이 허리띠로 향했다.
“누구냐!”
옥리가 번쩍 고개를 쳐들고 고함쳤다. 부리부리한 눈알이 매섭게 좌우를 휘둘러봤다.
“죽여 버린다! 마귀의 자식들! 덤벼라……. 이 녀석들……. 쩝.”
드르렁-
부릅뜬 옥리의 눈에 눈꺼풀이 내리 덮였다. 그의 정수리 위에서는 치렁치렁한 튜닉 소매가 어른댔다.
로트는 옥리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머리 위로 치켜든 두 손에는 서슬 퍼런 단검이 쥐여 있다.
옥리가 다시 코를 골자 로트는 뒤로 물러서다 튜닉 자락을 밟고 주저앉았다. 핏발이 솟은 초록색 눈알이 초점을 잃었다. 이마는 불덩이처럼 끓어올랐다.
단검을 떨어뜨린 그는 입구로 달려가서 움켜쥔 눈 더미를 맨 얼굴에 비볐다.
옥리는 오늘 천운을 얻었다. 고개를 뒤로 살짝만 돌렸어도 정수리가 쪼개졌을 것이다. 발광의 전조가 다시 시작됐다. 목로주점을 떠난 이래로 로트가 수없이 혀를 깨물며 맞서 싸운 광란의 전조였다.
로트는 눈 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기도했다. 제발 오늘만은 이성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잠시 후 그는 굴로 되돌아갔다. 자물쇠를 따는 손이 덜덜덜 떨렸다.
‘……. 이젠하르트.’
안으로 들어간 로트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망설이며 이젠하르트의 팔을 건드렸다.
축 늘어진 팔을 스친 손이 목덜미에 닿으려던 때였다. 벽에 기댄 이젠하르트의 고개와 상체가 벽을 타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로트는 반사적으로 달려들어서 그를 품에 안았다. 얼굴을 살폈다.
이젠하르트의 몰골은 처참했다. 두 눈과 뺨은 움푹 파이고 모자를 쓰지 않은 맨 머리칼은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다. 진흙과 먼지에 찌든 결혼식 예복은 악취를 풍겼다. 손끝과 몸뚱이는 돌처럼 차갑고 딱딱했다.
“아…….”
조심스레 그를 부둥켜안은 로트는 이젠하르트의 몸뚱이를 으스러져라 껴안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목울대가 오르내리며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이젠하르트의 가슴팍 옷자락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성 베르나르여, 나를 벌하소서!”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흘리며 로트는 소리쳤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리라는 두려움 따윈 이미 없다. 심장이 깨지듯 균열이 인 가슴에는 오직 자책과 회한만이 범람했다. 기원은 산산조각이 났고 후회는 영원한 그의 주인이었다.
“아아, 참으로 가혹해!”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읍소했다
“이 꼴이 뭐냐. 하늘도 무정하지! 그토록 영예로 빛났던 기사를 얼려 죽이려고 하다니. 이 바싹 마른 몸뚱이를 봐라. 단식하다가 기절했구나. 추위와 배고픔으로 의식을 잃었어! 아아…….”
로트는 목 놓아서 울다가 검은 튜닉을 벗어 이젠하르트의 몸뚱이를 감쌌다. 아무리 강건한 육체도 이곳 얼음감옥의 냉기와 굶주림에는 맞설 수 없다. 그토록 강인한 신체와 의지를 지닌 이젠하르트가 동사와 아사의 위기에 처했다.
또르륵.
이때 이젠하르트의 손에서 뭔가 떨어져 저만치 굴러갔다.
“이게 뭐지?”
로트는 조그만 병을 집어 들고 살폈다.
동시에 뒤쪽에 있는 죄수의 쇠사슬이 요란하게 땅에 끌렸다. 로트는 병을 든 채 죄수를 돌아봤다. 어떤 동요도 없이 묵묵부답이던 식인 죄수는 병을 쳐다보고는 허둥지둥 구석으로 물러났다.
로트는 이젠하르트와 병을 번갈아 바라봤다. 작은 갈색 병이었다. 표면은 매끄럽고 한 손에 잡히는 낯익은 약병이었다.
“이젠하르트가……. 이걸 마셨나?”
그는 죄수에게 물었다.
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약병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몽롱한 기억을 더듬으려 애쓰던 로트는 심장에 말뚝이 박힌 사람처럼 전율했다.
그러다 불시에 이상한 표정을 짓고 히죽, 웃었다. 기괴한 미소가 일그러진 입가에 번질수록 두 뺨에는 핏기가 가셨다. 병을 쥔 손등에는 울퉁불퉁한 핏줄이 불거졌다.
“그랬군. 이걸 마셨구나. 이걸 마신 거야……. 신부님께서 다녀가셨겠지……. 그래……. 제기랄……. 이젠하르트!…….”
이젠하르트의 몸뚱이를 부서져라 껴안고서 로트는 뜨거운 숨을 내뿜었다. 비로소 이젠하르트의 몸뚱이 전체가 돌처럼 딱딱하고, 핏기를 잃은 뺨은 빙설보다 차고, 사지는 마른 가죽처럼 뻣뻣한 게 느껴졌다.
“아아, 이젠하르트! 이젠하르트! 나의 기사여…….”
로트는 이젠하르트의 얼굴을 부서져라 움켜쥐고 오랫동안 울다가 히죽 히죽, 웃었다. 초점을 잃은 눈은 풀려가고, 불덩이가 치밀어 아릿한 목구멍에서는 자조적인 조소와 쉰 음성이 드문드문 두서없이 흘러나왔다.
“내가 늦었어. 너무 늦었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냐……. 이젠하르트, 눈을 떠 봐. 누가 네 무덤을 판 거냐. 누가 윤기 나는 네 금발을 이렇게 퇴색하게 했을까. 나다! 내가 너의 무덤을 팠어. 내가 비열하게 도발하지 않았다면 넌 영생에 이르는 영광을 누렸을 텐데……. 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야 해. 네가 쓸쓸히 죽어갈 때 난 어디에 있었나. 그렇게나 맹세를 해댔으면서도 내가 너무 늦었구나……. 이젠하르트, 넌 알고 있었나? 그놈은 죽었어. 흰바다매 말야. 놈은 비참한 절망과 고독 속에서 쓸쓸히 굶어 죽었지. 너처럼. 이 무서운 참극의 원흉은 바로 나! 매사냥꾼도 흰바다매의 최후를 뒤따랐지. 그렇다면 나도 너를 따르는 수밖에!”
한쪽 팔로 죽은 이젠하르트를 가슴에 안은 로트는 뚜껑을 따고 약병을 쳐들었다. 고개를 뒤로 젖힌 목울대가 꿀럭꿀럭 움직였다.
죄수는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그를 구경했다.
갈색 병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병을 내던진 로트는 바닥에 주저앉더니 이젠하르트를 힘껏 부둥켜안고서 급사했다.
이 느닷없는 소동에 죄수는 넋이 나갔다. 침묵의 서약으로 봉해진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렀다. 이 굴에서 십여 년을 살아왔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벌어진 소동은 처음이었다.
죄수는 한참이나 숨을 죽이고 있다가 살그머니 로트 쪽으로 접근했다.
“여, 여보세요?”
그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속삭였다.
“여보세요? 죽었어요?”
“제기랄!”
“……!”
“하늘은 최후까지도 내 편이 아니구나. 간에 기별도 안 가니!”
자기 팔을 톡, 건드린 죄수가 벌러덩 나자빠진 줄도 모르고 로트는 바닥에 떨어뜨린 약병을 내던져서 벽에 박살냈다. 즉사하기에는 독약의 용량이 너무 적다. 혀끝만 축였더니 미치게 쓰기만 했다.
낙심한 그는 또 한 차례 눈물을 흘리다 허리춤을 뒤적였다. 단검이 사라진 칼집은 텅 비어 있다.
두 번째로 몹시 낙담한 로트는 머리를 바닥에 쿵, 쿵, 찍었다. 그러고서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 죽은 이젠하르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생에 가장 비장한 순간에조차 짓궂은 운명이 보란 듯이 저를 희롱하니 회한의 눈물만 자꾸 흘렀다.
“……. 이젠하르트……. 네가 이렇게나 불행한 최후를 맞도록 너를 홀로 내버려 둔 나를 벌해다오. 이 고집쟁이야,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버렸으니 난 누구에게 용서를 빌지? 지난 날에 네가 세운 찬란했던 명성과 무공은 누가 영원히 기려줄까? 아, 이 차디찬 입술, 얼어붙은 청동상 같은 몸뚱이……. 내가……. 내가 녹여주마……. 너의 이 싸늘한 주검을……. 너의 빙설처럼 찬 입술을……. 내 끓는 피로……. 최후의 입맞춤으로 네 싸늘한 입술을 뜨겁게 데워줄게…….”
로트는 두 뺨에 흘러내린 이젠하르트의 머리칼을 걷어냈다. 그러고서 이젠하르트의 입술에 입 맞췄다.
용광로처럼 뜨겁고 거친 입술이 대리석처럼 싸늘한 입술에 닿자 걷잡을 수 없는 비애가 밀려왔다. 한 번 입을 맞춘 그 입술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고 미약한 숨결마저 느껴졌다.
“이젠하르트! 이젠하르트!”
로트는 이젠하르트의 이마에 뺨을 비비며 저희 두 사람의 영혼을 구제해달라며 최후의 기도를 올렸다.
마침내 신호가 왔다. 미약한 용량일망정 맹독이 드디어 위세를 발휘했다. 수면에서 부유하듯이 정신이 몽롱해지고 몸뚱이가 무거워졌다. 약효가 이제 시작됐으니 서서히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다.
드디어 의식이 흐릿해지자 로트는 더럭 겁이 났다. 죽는 게 무섭다. 지옥 불이 눈앞에 어른댄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자신은 죽어 마땅했다. 저의 죄악이 참극을 빚어낸 이승에 대해서 미련을 품는다면 더욱 파렴치한 죄다.
그는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죽은 이젠하르트의 입술에 한 번 더 입 맞췄다. 그러고는 바닥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눈이 멎었다.
두꺼운 눈구름 틈으로 아침 햇살이 비출 무렵에 토굴에 있던 식인 죄수는 일평생 결코 잊어본 적이 없는 배고픔마저 잊고서 제 앞에 펼쳐진 광경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로트는 돌바닥에 모로 쓰러져 있다. 이젠하르트는 그의 품에 안긴 채 깔려 있다.
죄수는 살그머니 기어나가려다 허둥지둥 뒤로 물러섰다. 별안간 로트의 팔이 꿈틀대서다.
이젠하르트는 가슴을 짓누르는 로트의 팔을 밀쳐내고 일어나 앉았다.
‘빌어먹을.’
그는 무릎을 세워 팔꿈치를 괴고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예상은 했지만 약은 무용지물이었다. 약효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과민한 신경은 망각의 늪을 건너려는 의식을 끝없이 물고 늘어지며 방해했다. 사지는 납처럼 무거운데도 흐릿한 의식의 저편에서 신경을 긁어대는 이명이 울려댔다.
‘머리만 아프군…….’
나른한 몸을 가누기 힘들어서 벽에 기대려고 뒤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물컹한 물체가 손에 닿았다. 깜짝 놀라 윤곽을 더듬어보니 사람이다. 옆구리에 바싹 밀착해서 자빠져 있었는데 손끝에 닿은 맨살이 뜨거웠다.
‘신참이군.’
그는 씁쓸히 뇌까렸다.
‘이 도시에 미치광이가 이토록 많은 줄은 몰랐는데.’
이젠하르트는 신참 죄수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옆으로 밀어냈다. 몹시 무겁다. 지금이야 체중이 제법 무겁다지만 이틀만 지나면 앙상한 장작개비가 될 터다.
부질없는 연민을 떨치며 죄수를 밀어내던 그가 소리를 지른 건 로트의 몸뚱이가 뒤집힌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 포겔바이데!”
족쇄가 발목을 죄도록 이젠하르트는 황망히 일어서서 뒤로 물러섰다. 이 짧은 순간에도 로트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았다.
“이게 뭐야. 이놈이 왜 여기 있지? 왜 여기 있어?”
“죽었어요.”
“뭐라고?”
속삭이는 음성에 이젠하르트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살그머니 구석에서 벗어난 죄수는 더욱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 사람, 죽었다고요.”
“……. 이놈이, 죽어?”
“네. 좀 전에 꼴까닥, 하고 죽었어요.”
죄수는 이젠하르트가 말 상대를 해주자 기뻤다.
“당신을 얼싸안고 막 이름을 불러대더니 갑자기 죽었어요. 자기가 당신을 죽였다고 울었어요. 약을 먹더니 머리를 바닥에 찧고 죽었어요. 난 당신도 죽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언제 저 사람이 당신을 죽였어요? 당신은 살아 있잖아요? 여기요. 저 사람이 요걸 마셨어요. 당신도 요걸 마셨죠?”
죄수는 유리 파편을 주워서 내밀었다.
이젠하르트는 그게 갈색 유리임을 확인하고 바닥에 내던졌다.
죄수는 흥분해서 말했다.
“저 사람이 그 약을 쪽쪽 빨아먹었어요.”
“이걸 다 마셨다고?”
“네. 다 마셨어요. 그러더니 머리를 돌바닥에 쿵쿵 찧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쓰러져 죽었어요. 머리가 깨졌나 봐요.”
“빌어먹을. 제기랄.”
이젠하르트는 널브러진 로트를 황망히 보다가 깨진 곳을 찾느라 다급히 그의 머리를 더듬었다.
그런 다음 제 머리를 움켜잡고 벽에 털썩 기대앉았다.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핏기 잃은 입술 새로 괴롭게 흘러나왔다. 놀라움과 의문이 가시자 두통이 심해졌다. 뛰어오른 탓에 족쇄에 긁힌 발목도 시큰시큰했다.
‘신부님 말씀 그대로군.’
그는 쓰러진 로트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자신이 틀렸다. 약효는 강력했다. 신부 말대로 황소도 쓰러뜨린다더니 사실이었다.
‘그걸 전부 다 마신 거냐.’
그는 기가 막혀 읊조렸다.
‘한 방울로도 장정 다섯을 쓰러뜨린다던데 그걸 네가 왜 마셨지? 여긴 왜 왔어? 왜 네놈이 여기 있어?’
문득 검은 튜닉이 눈에 띄었다. 로트는 얇은 속셔츠와 양말 바지 차림이었다.
그 꼴을 보자 왜 저게 바닥에 나뒹구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 그는 손을 다시 뻗어서 로트의 이마와 두 뺨, 목덜미를 차례로 더듬었다. 놈의 몸뚱이가 불처럼 뜨거웠다.
‘제기랄…….’
욱신대는 이마를 짚고서 그는 사고를 집중하려 애썼다.
‘대체 왜 이놈이 여기 있지? 왜 저 꼴을 하고 있어?……. 제기랄……’
투옥된 오늘까지 수만 가지 잡념에 시달렸지만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몹시 기가 막히고 당혹스러웠다.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놈이 가장 뜻밖인 상황과 장소에서 바로 곁에, 이상한 꼴을 하고 널브러져 있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죄수가 물었다.
“수도사님이에요?”
죄수는 갑작스레 입을 다물었다. 옥리가 있던 동굴 입구에서 어렴풋이 말소리가 들렸다.
웅성대던 그 소리는 고함이 됐다. 이윽고 소란한 발소리가 다가와서 죄수는 급히 구석에 몸을 숨겼다.
“지크프리트!”
고함이 동굴 천장에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지크프리트, 어디 있어? 죽었어?”
“아휴, 나리! 자꾸 왜 이러세요?”
옥리도 고함쳤다.
“누가 여기 왔다고 이래요? 글쎄 여긴 아무도 안 왔다니까요!”
“시끄러워! 저리가, 이 백정아!”
“전 백정이 아니에요. 성실한 옥리라고요. 저리들 가세요! 여기 책임자는 접니다. 여긴 나리님들이 함부로 오가시는 곳이 아니에요! 영주님께 잡혀가고 싶으세요?”
“에잇 귀찮군. 묶어버려!”
“으악! 뭔, 뭔 짓을 하시는 거예요? 사람 살려!”
“시끄러워. 입도 틀어막자.”
“억? 으압!”
옥리의 고함이 뚝 끊긴 잠시 후에 발걸음이 여럿 울렸다.
“지크프리트! 어디 있어? 우리가 왔어!”
“저기 횃불이 있군.”
선두에 선 이터는 통로를 비추는 횃불을 빼들고 차례대로 굴 안을 샅샅이 비췄다.
시뻘건 불길이 확, 들이닥치자 죄수들은 눈을 가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런 소동을 듣도 보도 못한 그들은 천재지변을 맞이한 듯이 놀라서 날뛰었다.
“이터, 찾았어?”
카이렛은 이터를 쫓으며 소리쳤다. 등에는 묵직한 자루를 매고 있다.
수건으로 코를 틀어쥔 로에란그린은 이터가 지나친 굴 안을 거듭 살폈다.
카이렛은 이터에게 달려갔다. 그는 마지막 굴 앞에 서 있었다.
“로트를 찾았냐니까?”
카이렛이 되물었다.
“없지? 그거 봐. 내 말이 맞잖아. 설마 그 꼴로 여기에 혼자서 왔겠어? 도중에 어딘가에 쓰러져 기절했을 거야. 어쩌면 협로에서 실족해서 죽었을지도 몰라. 어휴, 로트 망할 녀석! 그새를 못 참고 혼자 내빼냐.”
“저기 있군.”
“엇? 정말?”
“응. 로트야.”
“제기랄! 역시 여기 있었군. 근데 어디 있어? 응? 왜 그래?”
마지막 굴로 달려온 카이렛은 이터의 시선을 좇아서 굴 안을 들여다봤다.
“뭐야? 로트? 거기서 뭐 해? 왜 안에 들어가 있어?……. 로트?”
이터가 쳐든 횃불을 뺏어 안으로 바짝 들이대자 굴 안에 펼쳐진 광경이 훤히 드러났다.
이젠하르트는 뒷머리를 벽에 기댄 채 카이렛을 힐긋 쳐다봤다. 그의 오싹한 몰골과 바닥에 드러누운 로트의 부동자세를 보고서 카이렛은 사태를 파악했다.
“죽, 죽었구나…….”
그는 새파래진 입술을 떨며 중얼댔다.
“죽었어……. 로트가 죽었어……. 저놈이 결국 로트를 죽인 거야……. 이 못된 자식!”
“카이렛!”
“이 나쁜 새끼야! 너도 죽어라!”
굴 안으로 뛰어들려는 카이렛을 로에란그린이 붙들었다.
횃불을 떨어뜨린 카이렛은 몸부림치며 악을 썼다.
“이 악마야! 네놈이 죽였구나! 네놈이 로트를 죽였어! 추방으로도 성에 안 차서 기어코 죽였냐? 나쁜 새끼! 냉혈한 악마! 왜 죽였어? 로트는 너 때문에 돌아왔는데 왜 죽였어? 이걸 봐! 그 녀석이 신신당부해서 이걸 가져왔어. 네놈을 준다고 망할 놈의 종달새 구이를 가져오라고 해서 부랴부랴 구워왔다고! 네놈의 더러운 몸뚱이를 덮어준답시고 내 옷을 훔쳐 가려고 해서 내 망토까지 집어왔단 말야! 그랬는데도 죽였냐? 이 냉혹한 악마야!”
“그만해, 카이렛!”
“저 자식을 내가 죽일래! 은혜를 모르는 놈! 적기사! 살인 누명을 씌우고도 로트를 죽였어! 의형제를 찌른 칼로 로트를 찔러 죽인 거야! 너도 내 칼에 죽어봐라!”
“카이렛! 진정해!”
“놔! 놔아! 다 죽여 버린다!”
울부짖는 그를 이터와 로에란그린이 만류했다.
발작적으로 악을 쓴 카이렛은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커서 금세 탈진했다. 고함이 메아리치던 동굴 안은 카이렛의 애처로운 통곡으로 들썩댔다.
“성미가 역시 급하군.”
잠시 후, 이젠하르트는 통곡하는 카이렛을 향해 내뱉었다.
“유유상종이라더니. 누구랑 꼭 닮았군.”
“뭐? 저 새끼가 뭐라는 거야? 죽일 테다! 저 새끼를 죽일래! 나를 놔줘! 놔!”
“마음대로 해.”
이젠하르트는 짜증스레 받아쳤다.
“죽이든 말든 너희 마음대로 해라. 그전에 이놈이나 데려가. 얼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뭐?”
“너희의 절친한 친구께서는 잠이 드셨으니까 소란 피우지 말고 데려가란 소리다. 시끄러워 죽겠군.”
발광하던 카이렛은 울음을 뚝 그쳤다.
이때 죄수가 살그머니 기어 나와서 속삭였다.
“이 수도사님은 안 죽었어요. 약을 먹고 자고 있어요. 코를 골고 있잖아요.”
무심코 침묵의 맹세를 깬 죄수는 지레 놀라 비명을 내지르고 구석으로 물러갔다.
로에란그린은 안으로 들어가서 로트를 안아 들고 맥을 짚었다. 두 귀공자의 시선이 쏠렸다.
“자고 있어.”
로에란그린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신열은 그대로인데 살아있어.”
카이렛은 괴성을 부르짖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터는 로트를 짊어지고 굴 밖으로 나갔다. 기진맥진한 카이렛은 로에란그린이 부축해 동굴 입구로 데려갔다.
잠시 후 이젠하르트는 발소리를 들었다.
이터가 자루를 짊어지고 되돌아왔다. 그걸 굴 안쪽에 내려놓은 그가 물었다.
“몸은 좀 어때?”
“보다시피 말짱하다.”
이젠하르트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이터는 쓴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군. 허세를 부릴 기력은 남았으니. 자네 부친과 누이가 당한 일은 유감이야. 두 사람이 곧 쾌차하길 나도 기도할게.”
“그따위 입에 발린 말이나 하러 여기까지 왔나.”
“아니.”
이터는 시선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는 이젠하르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난 절대 이런 토굴에 올 마음은 없었지. 카이렛과 로에란그린 우리 셋 다 그랬어. 누가 이런 감옥에 자청해서 오겠어. 악마한테 잡아먹히는걸. 그런데도 올 수밖에 없었어. 저 미친 바보가 펄펄 끓는 몸뚱이를 끌고서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잡으러 오는 수밖에.”
“할 말이 뭐냐?”
“저놈을 용서해줘.”
이터가 속삭였다.
“저놈이 발광이 났을 때 자네한테 어떤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용서해줘. 원수를 용서하면 자네 또한 축성할 수 있으니 아무리 죄인이라도 실낱같은 구원의 희망을 얻을 수 있겠지.”
“…….”
“닷새 동안 우리는 눈보라를 헤치고 왔어. 난 저놈을 때려눕혀서 볼로냐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발광해대서 그러지 못했어. 저놈은 이제 쭉정이만 남았어. 육신과 영혼이 전부 홀쭉해졌다고. 자네가 여기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서 저놈은 눈물을 흘렸어.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눈물을 전부 다 쏟아버렸다고.”
“…….”
“로트 저 녀석은 천치바보야. 눈물이 날 만큼 어리석어서 곧잘 정열과 망상에 휘둘려 제 무덤을 파지만, 자네가 오해하는 만큼 악의를 품은 놈은 아냐. 어차피 자네의 운명은 재판으로 판결이 나겠지. 지은 죄가 있다면 속죄하면 되고. 하지만 저놈 목숨은 자네한테 달렸어. 자네가 용서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수 없어.”
“…….”
“자넨 구원을 바라지 않아? 무고한 놈에게 살인 누명을 씌웠으니 자네도 저놈에게 빚을 졌어.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저놈을 용서해줘. 죄수인 자네의 처지도 유감이지만 저놈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아득해.”
“감격스러운 우애군.”
이젠하르트가 대꾸했다. 조롱조였지만 날이 무뎠다. 가라앉았던 위가 또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터는 씁쓸히 웃었다.
“저놈 짓이 아냐.”
이터가 말을 이었다.
“저놈이 자네 누이를 희롱했다는 소문은 거짓이야. 모두 나 때문이지. 내가 힐데가르트랑 로트를 고의로 마주치게 했어. 몹쓸 장난이었고 그 대가를 엉뚱하게도 저놈이 치렀지.”
“…….”
“내게 명예란 게 있다면 그걸 자네가 신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걸고 맹세하건대, 자네 누이의 순결과 명예는 이 세상 그 어느 귀부인의 것보다도 깨끗하고 드높아. 그러니 로트는 결백해. 두 사람은 서로 밀회한 적도, 얼굴 한번 제대로 마주친 적이 없어.”
“…….”
“로트를 용서한다고 지금 한마디만 해줘. 내가 전해줄 테니.”
이젠하르트는 고개를 숙인 채 함구했다.
끈질기게 답변을 기다린 이터는 결국 동굴 입구로 되돌아갔다. 사지가 밧줄로 결박당한 옥리는 뇌물과 협박으로 입단속을 당한 후에 풀려났다.
로트는 이터의 등에 실려서 얼음 감옥을 떠났다.
모두가 떠나자 굴 안은 영겁과도 같은 침묵 속으로 다시 잠겨 들었다.
이젠하르트는 돌 벽에 힘없이 머리를 기대고 바닥에 널브려져 있는 튜닉을 응시했다.
로트가 추방을 당하기 하루 전이었던 밤이 떠올랐다.
이어진 회상은 영주의 수목원에서 로트를 처음 만났던 날로 되돌아갔다.
명치께에서 번지는 통증이 격심해졌다.
이젠하르트는 이 밤에 일생에서 가장 길고도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
판결이 유예된 지 한 달이 되어갈 무렵, 영주에게 이스트리엔으로 보낸 전령이 도중에 살해됐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영주의 측근은 이것이 하늘의 뜻이며 이젠하르트는 신명재판(죄의 유무를 신의 심판이나 운명에 맡김)을 받았으니 늑대인간 형에 처하는 선고를 내려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베르나르 신부는 백방으로 이젠하르트를 구제하려고 나섰다. 몇몇 사람도 전령을 다시 보내자고 청원했지만 영주는 인근에서 벌어진 영지 전쟁을 빌미로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동쪽 영주들이 벌이는 선후 보복이 여전히 극심한 탓이었다.
결국 이젠하르트의 운은 다한 듯했다. 사람들은 늙은 벨데케가 임종하는 날 기사의 운명이 판가름 나겠거니 믿었다. 기도와 청원도 그를 구명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오직 영주의 동정을 얻는, 실성해서 죽어가는 늙은 아비만이 아들의 마지막 방패였다. 의식 불명에 빠진 벨데케도 아비의 직감으로 그것을 알아챘는지 스러져가는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태우며 죽음과 싸웠다.
어느덧 이젠하르트가 투옥된 지 40여 일이 됐을 때였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얼음감옥을 지키는 옥리는 이젠하르트가 생명이 위독하다고 보고하며 종부 성사를 해줄 신부를 보내 달라고 청했다. 신부와 벨데케 일가는 마지막으로 기사를 사면해달라고 청원했지만 영주는 거부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이젠하르트가 갑작스럽게 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단 하룻밤 새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반전이었다.
사람들이 이 급격한 사태의 반전에 어리둥절한 사이, 다음과 같은 내막이 밝혀졌다.
영주가 사면을 내린 당일이었다. 새벽종이 울리고 시문이 열리자마자 한 전령이 말 옆구리에서 후끈한 김을 피어 올리며 영주의 성으로 내달렸다. 전령의 신분은 시토회 수도사였다.
그는 영주에게 이스트리엔 후작이 보낸 서한을 전했다. 후작은 그 서한에서 이젠하르트를 사면해달라고 청원했다. 신의의 기사 아이케는 전장에서 명예롭게 전사했다고 증언하며 ‘주님이 낳게 하시고 주님이 거두셨다’는 비문까지 덧붙였다.
후작이 보낸 서한에는 서한 한 장이 더 있었다. 발신인은 후작의 딸인 리아세였으며 수신인은 만필요트 백작이었다. 서한이 어떤 내용인지는 백작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의형제인 기사를 살해한 죄목에 관해서 이젠하르트는 결백함이 이렇게 극적으로 입증되자 모두의 이목이 백작에게 쏠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땅히 항소하리라 여겼던 백작은 뜻밖에도 무고죄로 자신을 처벌해달라고 청원했다. 그러고서 서로의 명예훼손에 대해 이젠하르트가 결투로 청산하고자 한다면 그 뜻에 겸허히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작은 얼마 후에 도시를 떠났다. 결투는 이젠하르트가 거부해서 성사되지 못했다.
백작과 기사단이 시문 밖으로 나갈 때, 가로 양측에 모인 군중은 진심 어린 동정과 연민을 품고 그를 배웅했다. 심지어 백작의 정체를 의심했던 몇몇 호사가조차도 그를 동정했다.
죽은 조카의 악혼녀이며 이제는 수녀가 된 리아세가 보낸 서한을 받고서 백작은 어린애처럼 눈물을 터뜨렸는데, 그 눈물이 멈췄을 때는 오랜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난 듯이 보였다는 후문이 전해졌다.
벨데케는 아들이 사면되자마자 고통 없이 안식을 얻었다.
벨데케 부인과 힐데가르트는 수녀원으로 출가했다.
이젠하르트에게는 적기사 건과 로트에 대한 무고죄가 남아 있었다.
영주는 그가 건강이 극히 나쁜 데다 벨데케 가문이 처한 불운을 참작해서 벌금형을 선고했다.
*
파란 많았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음에도 이젠하르트는 봄에 고향을 떠났다.
집행유예 중이던 탐파니스는 영주에게서 사면을 받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고향에서 종적을 감췄다.
만인의 골칫덩이였던 로트는 무고한 희생양으로 판명돼 영구추방에서 풀려났으며 극적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그러나 그는 고향이나 볼로냐 근처에 얼씬대지도 않았다. 겨우내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다.
동행자였던 이터도 행방이 묘연했으나 볼로냐의 어느 매춘굴에 처박혀 있으리라는 추측이 대세였다.
로트의 행방은 초봄까지도 미궁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만찬회장에서 영주가 물었다.
“자네들, 그래, 뭐든 그의 소식을 좀 들었는가?”
“아뇨.”
로에란그린과 카이렛은 근심하며 입을 모았다.
“그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는 저희도 모르겠어요.”
카이렛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으며 펑펑 울었다.
“추방당한 후로 통 연락이 닿지 않아요. 겨울에 머물 예정이었던 수도원으로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습니다. 그 불쌍한 친구는 아마 죽었을 거예요. 추방을 당하자마자 도적 떼한테 잡혀 죽었겠죠. 어쩌면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죠. 어헝, 가여운 로트. 잘 가게! 천국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