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Man in the Mirror
고아원이 소란스러웠다. 한 아이의 침대 베개 밑에서 칼 한 자루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고아원에서 암살자를 키운 적 없다!”
원장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하고 우는 아이를 끌고 원장실 안으로 사라졌다. 원장실의 육중한 나무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닫히자 그 광경을 지켜본 아이들이 일제히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들킨 거래?’ 끌려간 아이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어쩌면 우리 안에 밀고자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묘한 긴장감이 허공을 맴돌았다.
나는 아이들이 서로를 의심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끌려간 아이의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침대 위에는 대로한 원장이 미처 챙기지 못한 칼이 그대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것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고 방을 나섰다.
‘나는 우리 고아원에서 도둑놈을 키운 적 없다!’
나를 다그치는 원장의 목소리가 어렵지 않게 상상됐지만, 나는 무시하고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요즘 고아원에서 떠도는 소문 하나를 떠올렸다.
‘입에 칼을 물고 자정에 거울을 바라보면, 미래 배우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문의 출처는 뒷골목에 사는 엉터리 주술사였다. 그의 솜씨는 형편없었지만, 그마저도 주술사의 존재는 뒷골목에서 귀했다. 그는 때때로 아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허무맹랑한 얘기들을 해 줬는데, 그 얘기들은 사실일 때도 있었고 사실이 아닐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야깃거리에 굶주린 아이들에게 그 진위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그가 해 주는 얘기들이 하나같이 흥미롭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은 그가 고양이는 아홉 번을 산다는 얘기를 해 줬다. 그날로 고아원의 아이들은 뒷골목의 고양이를 포획하는 데 혈안이 됐다. 그러나 고양이가 아홉 번을 산다는 그 말은 거짓으로 판명 났다. 그때 나는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고양이의 사체를 모아 한곳에 묻어줬다.
그런 식으로 주술사가 해 준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항상 고아원에 새로운 유행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고아원의 아이들이 늘 심심하기 때문이었다. 술래잡기나 역할 놀이에는 신물이 난지 오래였다. 그나마 아이들이 여전히 재밌어하는 놀이는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아 그날 온종일 따돌리는 것인데, 걸리는 것은 언제나 나뿐이었기 때문에 그마저도 슬슬 지루해하고 있었다.
나는 아까 원장실에 끌려가던 아이를 떠올렸다. 그 아이는 따돌림 놀이를 할 때마다 언제나 나를 지목하고 나섰다. 나는 그러면 무작위가 아니지 않냐고 항의했지만, 내 항의는 처참히 묵살되기 일쑤였다. 그 아이가 주술사의 얘기를 듣고 어디선가 구해 왔다며 자랑한 칼을 침대의 베개 밑에 숨겨 놓는 걸 보고, 그 사실을 원장에게 넌지시 알린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원장은 자신이 아이들을 학대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뒷골목을 놀이터 삼는 아이들이 언젠가 자신에게 복수하려 들지는 않을까 항상 경계하고 있었다. ‘무작위’의 뜻도 모르는 멍청이는 알 턱이 없는 얘기였다. 결국, 아이가 어렵게 구한 칼은 지금 내 손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낄낄거리며 다락을 올랐다. 다락은 고아원에서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곳이었다. 사람이 찾지 않는 다락의 오래된 자물쇠가 아주 헐겁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혼자 다락에 누워 있으면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에 한 뼘 정도 더 가까워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혼자라는 감각은 달콤했다. 혼자는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태평하게 누워 있을 시간이 없었다. 따로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락의 낡은 서랍장 밑을 더듬거렸다.
“아얏.”
그러다 손끝이 따끔해서 꺼내 보니 조금 깊게 찔린 상처가 나 있었다. 피가 흐르는 손끝을 쪽 빨아 먹었다. 짭짤하고 비린 피 맛과 텁텁한 먼지 맛이 함께 났다. 나는 다시 서랍장 밑의 캄캄한 어둠 속으로 손을 뻗었다.
그제야 한 움큼의 먼지와 함께 숨겨 놨던 깨진 거울 조각이 손에 잡혔다. 거울 조각은 매음굴 어귀에서 얻어 온 것이었다. 그곳에선 작부건 손님이건 패악질이 끊이질 않았고, 부서진 물건 따위를 거리에 내놓는 일 또한 빈번했다. 그중 누군가 내놓은 깨진 거울에서 조각 하나를 떼어 올 수 있었던 것은 퍽 운 좋은 일이었다.
나는 주술사가 해 준 말처럼 입에 칼을 물고 거울 조각을 노려봤다. 그 안에는 비쩍 마르고 독기 가득한 어린아이 한 명이 서 있었다. 자정이 지난 지는 벌써 한참이었다. 나는 주술사의 얘기를 비웃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걸 누가 믿냐, 바보도 아니고!’ 그러나 그들도 내심 속으로는 솔깃해하던 것을 알았다. 특히나 이번 얘기는 고아원 아이들을 열광시킬 이유가 충분했다.
가족.
그것은 고아원 아이들이 항상 바라지 마지않는 것이다. 지금은 혼자인 처지일지언정 미래 내 곁에는 누군가 있어 주리라는 얄팍한 희망은 아이들을 손쉽게 매료시켰다. 사실 그들 중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이는 드물고, 배우자를 맞을 정도로 어엿한 어른이 되는 이는 더더욱 드물다는 걸 알면서도, 나 역시 그 희망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희망의 본질은 덧없다는 데에 있다. 칼을 문 입이 저려 올 때까지도 거울 속에는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비치지 않았다. 거울 조각이 너무 작은 것이 문제였을까? 그도 아니면, 자정을 정확히 맞추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아니다. 사실, 문제가 뭐인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그래, 평생 혼자일 게 당연한 삶이었다. 바보 같기는. 나는 거울 조각을 들고 있던 팔을 내렸다.
그때였다. 거울 조각 뒤에 있던 유리창에 희미하게 내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내 얼굴보다 더 먼 곳에 다른 누군가의 얼굴이 비쳤다. 나는 뒤를 휙 돌아봤다.
“형편없네.”
놈의 첫마디는 그랬다. 그 목소리가 지독히도 낮았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놈의 말마따나, 형편없는 모양새였다.
“이런 형편없는 주술에 응해 줄 사람이 어딨겠어, 응?”
놈이 무어라 떠드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다만 천장이 머리에 닿는지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는 놈이 신경 쓰였다. 그 산만 한 덩치로 나를 굽어보는 시선에 목이 메었다. 놈은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무릎을 굽혔다. 그제야 눈높이가 맞아떨어졌다. 놈이 샐쭉 웃으면서 두 손으로 제 턱을 받쳤다.
“바로 여깄지.”
순간 물고 있던 칼을 놓쳤다. 자칫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기가 막히게 허공에서 칼을 잡아채는 손이 있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 한 번 깜빡일 동안 내 입에서 놈의 손으로 칼이 순간이동 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런 위험한 건 또 왜 물고 있고.”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놈이 보여 준 기예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놈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쓴 괴물이 아닐까? 그 생각은 꽤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뒷골목에서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는 녀석들도 저런 몸을, 저런 눈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딱히 내게 험히 대한 것도 없는데 그 위압감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놈은 나와 엄연히 다른 종(種)처럼 보였다.
“자, 돌려줄게.”
놈이 칼을 빙글 돌려 내게 손잡이 부분을 내밀었다. 놈은 먹이가 가까이 오길 기다리는 뱀처럼 숨을 죽이고 오로지 눈으로만 내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놈이 내미는 칼을 받아 들려고 했다. 그때, 놈이 내 손목을 확 낚아채 자신의 쪽으로 끌었다. 나는 중심을 잃고 그 품 안으로 쓰러졌다.
“확실히, 작네.”
놈은 내 손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품평하듯 말했다. 놈의 큼지막한 손안에 붙잡힌 손목이 바스러질 듯 아팠다.
“자기가 좀 더 크면, 나한테서 칼을 뺏기는 일은 곧 죽어도 없을걸.”
고개를 들자 놈의 얼굴이 바로 코앞일 정도로 가까워진 채였다. 놈의 한쪽 입꼬리는 비뚜름히 올라가 있었는데, 얼핏 보이는 뾰족한 송곳니가 참으로 사나워 보였다. 그제야 나는 여태 그림자로 가려져 있던 괴물의 얼굴이 상상 이상으로 잘생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놈이 과연 저 낯짝으로 사람을 몇 명이나 홀려 잡아먹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곧이어 아차 싶은 마음에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나 역시 놈에게 잡아먹힌 희생자 중 한 명이 되고 싶진 않았다.
“자기야, 눈 떠 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눈 떠 보래도.”
괴물은 이제 목소리까지 이용해 나를 꾀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살살 어르는 그 목소리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흠, 이래도 안 뜰 거야?”
쪽, 뺨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았다 떨어졌다. 그 가붓한 움직임이 세 번쯤 반복됐을 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번쩍 눈을 떴다.
“아, 떴네.”
놈은 웃고 있었다. 나는 놈이 왜 웃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왜 나를 잡아먹지 않는 건지, 왜 내 볼에 제 입술을 비빈 건지 또한 알지 못했다. 혹시, 내가 비쩍 곯은 아이라 먹을 것도 없어서 그냥 맛만 본 건가? 그렇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나는 조금 용기를 얻어 말했다.
“아파…… 요.”
내 말에 놈이 인상을 찌푸리자 서둘러 존댓말을 붙였다. 그러나 놈은 내 말투를 지적하는 대신 그저 내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는 붉게 짓눌린 피부를 엄지로 슬슬 문질렀다.
“미안, 애들은 약하다는 걸 까먹었어.”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까까지 통증으로 욱신거리던 손목이 아무렇지 않아진 것이다.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물었다.
“마법이에요?”
“왜, 마법 처음 봐?”
나는 순순히 ‘처음 봐요.’ 하고 대답했다. 만약 놈이 뻐기는 어조로 물었다면 대꾸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놈의 말투는 정말 궁금해하는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 놈은 내 대답을 들은 뒤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멸시나 조롱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럼, 그쪽은 마법사예요?”
“글쎄, 어떨 것 같아?”
“방금 마법을 썼으니까 마법사겠죠.”
“마법을 썼다고 다 마법사는 아니야. 자기도 방금 주술을 부렸지만, 주술사는 아닌 것처럼.”
그렇게 말한 놈이 내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아까 베였던 내 손끝에는 검붉은 피딱지가 맺혀 있었다. 어쩐지 놈이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 나는 손끝을 잡아 빼며 답했다.
“아는 주술사가 가르쳐 줬어요.”
“그 주술사랑 친해?”
“아뇨.”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지 마.”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애들한테 이런 걸 알려 주는 주술사가 제대로 됐을 리 없잖아.”
“상관없어요, 이곳에 제대로 된 인간 따위 없으니까.”
뒷골목은 부서지고, 망가지고, 버려진 자들의 집이다. 그곳에서 제대로 된 인간을 찾는 게 더 웃긴 일이었다. 그러나 내 말에 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제대로 된 인간이 뭔데?”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그쪽이 먼저 그랬잖아요.”
“아니, 난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한 적 없어. 제대로 된 주술사라고 했지.”
시답잖은 말장난이었다. 나는 그 말에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그보다 놈이 입을 여는 게 더 빨랐다.
“자기는 방금 부린 주술이 뭔지 알아?”
“……뭔데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불러들이는 주술이야.”
그 말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놈을 위아래로 훑었다. 역시, 놈이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쓴 괴물이라는 내 추측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괴물이 아니라면 악마라든가, 마귀라든가, 아무튼 사람을 홀리는 취미를 가진 것일 게 분명했다.
“가장 고약한 점은, 다른 게 아니라 주술사 본인을 미끼로 쓴다는 거지. 피 냄새를 풍겨서 상대를 살살 꼬드기는 거야. 원시적이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한 방법이니까.”
피 냄새라, 나는 내 손을 내려다봤다. 우연히 손끝을 베인 게 주술의 완성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지만 그걸 가지고 고약하다고 말하기엔 고작 피 한 방울일 뿐이었다.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놈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그 정도 피로는 어림도 없지. 나야 자기가 부르면 언제 어디든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이렇게 온 거지만, 원래는 사지 중 절반을 내놓아도 부름에 응해 줄락 말락 할걸.”
나는 이런 형편없는 주술에 응해 줄 사람이 어딨겠냐며 놈이 투덜거렸던 것을 떠올렸다. 그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됐다.
“설령 소환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다음이 문제야. 부름에 응했다는 건 이미 피 냄새에 홀릴 대로 홀렸다는 건데, 자기가 부른 것에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딨어?”
“…….”
“그러니까 이딴 주술을 알려 준 주술사랑은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아.”
나는 뒷골목의 엉터리 주술사를 떠올렸다. 그는 다른 어른들처럼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귀찮아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찾아올 때면 언제나 앞니가 하나 빠진 웃음을 보여 주며 흥미로운 주술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주술의 실체는 알고 보니 끔찍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배신감이 들진 않았다. 속는 놈이 바보인 세상이었다. 나는 눈앞의 괴물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그쪽도 절 잡아먹을 거예요?”
그러자 놈이 웃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즐거워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글쎄.”
“…….”
“일단 지금은 그럴 생각 없어. 이렇게 조그만 걸 잡아먹어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그럴 생각 없다는 건, 나중엔 어떨지 모르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나마 고아원에서 주는 식사로는 살이 찌기가 더 어렵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도 자기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놈이 일그러진 내 미간 사이를 검지로 꾹꾹 눌러 피면서 말했다. 그 손길에도 내 미간에 파인 골은 깊어져만 갔다. 놈이 내게 궁금한 게 대체 무엇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탓이었다.
“자기는 뭘 부르고 싶었던 거야?”
“네?”
“뭔가 부르고 싶은 게 있으니까 이 주술을 부린 거잖아. 아냐?”
그 말에 움찔했다. 부르고 싶었던 것. 나는 고개를 들어 놈의 눈을 들여다봤다. 여전히 섬뜩한 눈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놈이라면 내 얘기를 듣고도 나를 비웃지 않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들었다.
“……미래의 배우자요.”
“미래의 배우자?”
“입에 칼을 물고 자정에 거울을 바라보면, 미래 배우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어요.”
‘피 얘기는 없었지만요.’ 하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놈이 묘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무어라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뭐, 미래의 배우자도 따지고 보면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속하니까. 주술로 불러내는 게 무리는 아니겠네.”
다만 그렇게 말할 때 놈은 어쩐지 조금 즐거워 보였다. 혹시 그런 허황한 소리에 넘어간 나를 우습다고 생각하는 중인 건 아닐까. 나는 재빨리 변명했다.
“진짜로 믿은 건 아니에요. 애초에 저 같은 게 배우자를 둘 수 있을 리도 없고…….”
“자기 같은 게 뭔데?”
나 같은 게 뭐냐니,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 가며 대답했다.
“고아에, 가진 것 하나 없고, 평생 혼자 살 사람이요.”
그래, 평생 혼자인 것도 나쁘지 않았다. 혼자는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날 괴롭히는 사람도 없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도 없었다. 어쩌면 주술을 부린 것은, 정말 미래의 배우자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이리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서일지도 몰랐다.
“평생 혼자 살 사람이라.”
놈은 내가 한 말을 되풀이하며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픽 하고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자기야, 자기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
“원래 모든 사람은 다 혼자야.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지. 다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환상에 빠져 사는 것뿐이야. 나와 꼭 맞는 퍼즐 조각이 있을 거라는 환상, 운명의 상대가 날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환상, 우리가 둘이라는 환상. 사람이란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여서, 그런 환상이라도 꾸며 내지 않고서는 삶을 견뎌 낼 수가 없거든.”
그렇게 말하는 놈의 어조에는 비웃는 기색도, 동정하는 기색도 없었다. 마치 자신은 사람이 아니기라도 하는 양 건조하고도 무심한 말투였다.
“어차피 사람은 저마다의 삶을 살게 되어 있어.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지. 그렇지만 영원히 맞닿지 않을 평행선을 달리면서도,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자그마한 위안을 얻는 거야.”
비관적인지 낙관적인지 도무지 모를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놈이 내 뺨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처음 듣는 소리라는 눈치네. 마지막 말은 자기가 나한테 해 준 말인데.”
“제가 언제요?”
“음, 꽤 옛날에. 아니지. 자기한테는 먼 미래이려나.”
영문 모를 소리에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니 놈이 퍽 귀여운 꼴을 봤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기야, 자기가 또 하나 틀린 게 있다면 바로 미래의 자기 곁에는 아주 훌륭한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이야.”
그렇게 말하며 놈이 두 팔을 펼쳐 보였다. ‘짜잔’ 하는 효과음이 퍽 어울리는 동작이었다. 나는 그 동작의 의미가 뭘지 한참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설마 그게 그쪽이라고 하지는 않겠죠?”
그러자 놈이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질 나쁜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놈의 태도는 천연덕스럽기 그지없었다.
“미래의 배우자를 보게 된 소감은 어때?”
놈이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쐐기를 박았다. 나는 무어라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러나 말을 채 뱉기도 전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고개를 푹 숙였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자기야, 왜 울어. 날 만난 게 그렇게 감동적이야?”
놈은 퍽 당황한 눈치였다. 허둥거리던 손이 내 두 뺨을 감싸더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놈의 눈동자에 퍽 못난 몰골의 내가 비쳤다. 피가 몰려 시뻘게진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놈의 손아귀 안에 갇혀 짜부라진 찐빵처럼 보였다. 나는 흐으, 흐으 울면서 말했다.
“나, 나 진짜로 열심히 살았는데. 어쩌다가 저런…….”
“……‘어쩌다가 저런’이라니.”
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그러나 웃거나 질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뚝 그치라며 내 눈꺼풀 위에 가만히 입을 맞춰 올 뿐이었다. 얼핏 내 속눈썹에 맺힌 눈물방울을 혀로 훔쳐 간 듯했으나, 그저 기분 탓이려니 여기고 말았다.
“울려 버렸으니까, 대신 선물을 줄게.”
놈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오르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 낡은 구석이 있었지만, 여전히 고풍스러운 면이 남아 있는 오르골은 경매에나 나올 법한 골동품이었다. 그러나 놈은 장식용으로 고이 모셔 둬도 모자라 보이는 것을 퍽 함부로 다뤘다. 성의 없이 돌린 태엽에 몽환적인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르골의 두 인형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는 게 신기하여 눈물이 쏙 들어갔다.
“원래는 한참 후의 미래에 줄 선물이었지만, 뭐, 지금 줘도 상관은 없겠지.”
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오르골을 받아 들었다.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춤추는 인형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꾸벅꾸벅 눈이 감겨 왔다.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렸다. 그러자 놈이 아예 손으로 내 눈 위를 덮어 버렸다.
“괜찮아, 졸리면 자도 돼.”
놈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이켜 보면 놈은 줄곧 저런 목소리를 냈다. 조금도 언성을 높이는 일 없이 나를 어르고 달래기에 바빴다. 존재 자체로 위압감이 넘쳐서 문제지, 나를 위협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놈이 내 미래의 배우자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필이면 자기를 소환한 사람이 잡아먹으려 해도 시원찮은 어린애인 게 분해서, 나를 골려 주려고 그러는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이유도 그래서였다.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잠깐이나마 그 말에 혹한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였다. 나의 간절함이 누군가의 유희 거리가 된다는 게 억울했고, 그런데도 항의 한마디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억울했다.
그러나 그 모든 걸 차치하고도 놈의 말에 위로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넌 혼자가 아니라는 상투적인 말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에 너만 혼자인 건 아니라는 말이 더 듣기 나은 까닭이었다. 운명의 짝이 없어도 나는 괜찮을 거라고, 그리고 어쩌면 운명의 짝만큼 낭만적이진 않아도 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 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해 준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홀로 조용히 결심했다. 언젠가 내가 나만큼이나 외로운 아이를 보게 된다면, 기필코 이 말을 전해 주고야 말겠다고. 설령 내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네 곁에서 함께 걸어 주겠노라 약속하겠다고.
그 순간, 어떠한 기시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내기도 전에 놈이 말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날 만난 일은 전부 잊어버리게 될 거야. 그래도 괜찮아. 이 오르골은, 내가 왔다 갔다는 흔적은, 여기에 남을 테니까. 비록 자기는 이걸 누가 준 건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놈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왠지 모르게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놈은 분명 내 지척에 있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 오르골을 열 때면 언제든 사랑스러운 연인 한 쌍이 춤을 출 거야. 둘 중 어느 한쪽이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세상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이들은 영원히 함께일 테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점점 늘어지는 음악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렸다. 렌탄도, 데크레셴도, 소그난도, 그리고, 모렌도. 문득 오르골 위를 빙글빙글 도는 인형이 제 꼬리를 무는 뱀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마구잡이로 뒤섞이는 기분이었다. 무엇이 먼저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나중에 일어난 일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놈의 말마따나, 사랑스러운 연인 한 쌍은 영원히 함께이리라는 것.
“잘 자, 좋은 꿈 꿔. 기다리고 있을게.”
무엇을? 그 물음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는 걸까? 그도 아니면,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린다는 걸까? 그러나 나는 곧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나는 다락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눈을 떴다. 아침의 썰렁한 냉기가 몸을 휘감았다. 내가 잠든 뒤에도 한참이고 곁을 지켜 준 온기가 있었던 것도 같지만, 기분 탓이려니 여기고 말았다. 간밤에 기묘한 꿈을 꾼 것 같기도 했지만, 그 역시 흔하디흔한 착각이려니 여기고 말았다. 자기 전에 그런 해괴한 짓을 벌이고 잤으니 꿈자리가 뒤숭숭할 만도 하지. 나는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거울 파편과 칼을 주워 들었다.
그때였다. 달그락 소리와 함께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의아함에 주워 보니 그것은 오래된 오르골이었다. 내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이 어디서 난 물건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원래부터 다락에 있었거나 아니면 언제나 그렇듯 길바닥에 있는 걸 주워 왔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오르골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아침 식사 시간 전까지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젯밤 어디 있었냐는 추궁을 피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다 다락을 나서기 전, 문득 손에 쥔 거울 파편을 내려다봤다. 거기엔 내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저 멀리, 다른 누군가의 얼굴이 비친 것 같기도 했다. 휙, 뒤를 돌아봤다. 다락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낮은 천장 아래에 낡은 가구들이 있었고, 작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먼지가 반짝일 뿐이었다. 나는 목덜미를 긁적이며 뒤를 돌았다. 문을 닫기 직전, 내 귀에 환청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쿵,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