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정거장에는 한 우울한 낯의 사내가 서 있었다. 품에는 보따리로 꽁꽁 싸맨 무언가를 안고, 어깨 위에는 까마귀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누가 봐도 사연 있어 보이는 남자. 그게 바로 나였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바닷물의 짠 내가 맡아졌다. 그건 아마 이곳이 바다 위에 임시로 세워진 간이 정류장이기 때문일 터였다. 발아래서 잔잔하게 물결이 일렁였다. 문득, 놈과 함께 추었던 엉망진창의 왈츠가 떠올랐다. 그러나 추억의 본질은 부질없다는 데 있으므로, 나는 조용히 그 기억을 목 뒤로 삼켰다. 곱씹지도 못한 채 넘긴 기억에서는 시금떨떨한 맛이 났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덜컹거리며 다가오는 열차가 있었다. 오랜만에 정거장에 손님이 서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열차는 물살을 헤치며 내 앞에 느릿느릿 멈춰 섰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새까만 정복을 입은 차장이 나타났다. 예전에 까마귀도 저 옷을 입고 등장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 위에 자리 잡은 까마귀를 쳐다봤지만,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대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열차에서 내린 차장은 내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차표를 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런 게 수중에 있을 리가 없으므로, 나는 대신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그 손바닥 위에 쥐여 주었다. 세 개의 보석 중 두 개가 빛을 잃은 백금 반지였다.
반지를 받은 차장은 그것을 햇빛 아래에 이리저리 비추어 보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그걸 도로 내게 건넸다. 그러나 나는 그걸 받아 들지 않았다. 나는 이 열차를 꼭 타야만 했고, 달리 지불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난감해하는 차장 뒤로 고개를 내민 노인이 있었다. 그녀는 차장에게 왜 열차가 출발하지 않는지 물었다. 차장은 그저 몸을 돌려 정거장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여 줄 뿐이었다. 소중한 걸 끌어안듯 보따리를 끼고, 까마귀 한 마리를 동반하고 있는 꾀죄한 행색. 그 꼴을 한참 내려다보던 노인은 선심 쓰듯 말했다.
“내가 저 애의 찻삯을 낼 테니, 대신 그 반지 나에게 주우.”
그러자 차장은 손가락으로 내 어깨 위에 앉은 까마귀를 가리켰다. 노인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주머니에서 차표 두 장을 건네 차장에게 건넸다. 찰칵, 찰칵, 차장은 그 차표를 받아서 구멍을 뚫었다. 그리곤 약속대로 노인에게 반지를 건네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봤다. 정말로 괜찮겠냐는 뜻이었다.
나는 놈이 저 반지를 건네며 내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세 번째 보석은 자신에게로 돌아올 때를 위한 것이라 했던가. 그러나 놈은 지금 내 품 안에 있으므로 이제 더는 세 번째 보석을 쓸 일이 없었다. 즉, 그 반지는 내게 이미 쓸모를 다한 것과 마찬가지기에 나는 미련 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마침내 반지는 노인의 앙상한 손아귀 안으로 떨어졌다. 노인은 그 반지를 받자마자 누군가 훔쳐 갈 새라 꼭 움켜쥐고는 자신의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나는 열차 안에 발을 올릴 수 있었다. 노인은 나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홱 하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다른 객실은 이미 만석이우. 내 객실을 같이 쓸 거면 따라오든지.”
거절할 이유 없는 호의였다. 나는 조용히 노인을 뒤따랐다. 객실 안에 들어서서, 맞은편 의자에 앉은 나를 두고 노인이 물었다.
“그래서, 젊은이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찻삯으로 그렇게 번쩍거리는 반지를 덜컥 내놓수?”
“……애인이 죽었거든요.”
사실, 그건 노인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렇게 말한 까닭은, 그 말로 노인이 내게서 관심을 꺼 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노인의 호기심은 내게 전혀 달가운 것이 아니었고,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젊은 미망인이었으니까.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노인은 끈질기게 말을 붙여 왔다.
“그 보따리 안에는 뭐가 들었길래 그렇게 소중히 끌어안고 있고?”
나는 조용히 뇌까렸다.
“제 애인이에요.”
그제야 노인은 침묵했다. 아마 내가 품에 끼고 있는 게 유골함 따위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 그녀가 이 보따리를 열어, 아직도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듯한 수프 한 그릇이 들어 있는 걸 확인한다면 더더욱 말이 없어질 게 분명했다. 나는 가만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면서 정거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방문한, ‘세상의 끝’에 있는 놈의 저택을 떠올렸다.
저택에 있던 그 많은 사용인들은 모조리 빠져나간 뒤였다. 마지막에 그 사달이 나고, 저택의 주인인 놈도 함께 종적을 감추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선생님들’ 몇 분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자(啞子)인 정원사도 있었다.
정원사는 용케도 내 얼굴을 알아보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는 이제 더는 저택의 하얀 꽃을 붉게 칠하지 않았다. 나는 간단히 정원사의 인사를 받고는, 놈과 함께 돗자리를 펴고 앉았던 나무 아래로 가서 섰다. 이곳에서 펼쳤던 단란한 피크닉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과 같았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저택에 남은 사용인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나는 아이가 비로소 흰색 리본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자신의 삶을 찾았길 바랐다.
짧은 방문이 끝나고, 나는 저택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떠나기 위해 까마귀의 도움을 빌렸다. 아우로라의 집에서부터 날 따라온 까마귀는 내 요청에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리더니, 두 발로 나를 단단히 움켜쥐고는 천천히 날아올랐다.
발아래에서 점점 멀어져 조그매지는 저택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흠이 없어 비인간적인 모양새였다면, 지금은 확실히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와 같은 모양새였다.
아마 이 섬은 저택에 남은 사용인들과 명을 함께할 터였다. 존재의 소멸만이 죽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무도 아는 이 없고, 찾는 이조차 없다면, 그곳이야말로 존재하지 않는 곳일 게 분명했다. 그곳에서 놈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아직 가 볼 곳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젊은이는 어디에서 내리우?”
퍼뜩 상념에서 깨어난 것은, 노인이 내게 그리 물으며 손가락을 까닥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얼결에 노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노인은 내 손바닥 위에 빨간 젤리 하나를 떨궜다. 공교롭게도, 기차에서만 파는 그 싸구려 젤리는 놈이 일전에 내게 사 주었던 것과 같은 젤리였다. 동시에 나는 그 젤리 맛 입맞춤을 떠올렸다.
“……아카데미요.”
노인에게 무심코 사실을 말한 것은, 그래서였다. 적당히 거짓으로 둘러대도 되는 걸, 뒤늦게 후회해 봤자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오래전에 폐쇄된…….”
“알지, 알지. 내 아들도 거기 출신이거든. 그런데 지금은 폐허뿐인 곳에 젊은이는 뭣 하러 가나?”
“거기서 애인이랑 처음 만났거든요.”
나는 작게 웃었다. 그 폐허가 바로 내가 사랑한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저택에서부터 아카데미까지, 나는 의도치 않게 내가 떠나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여정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되돌아가 죽는 짐승처럼. 내가 죽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감시자를 한쪽 어깨 위에 얹은 채 말이다.
“이봐, 젊은이. 사랑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우.”
그런 내 웃음에서 무언갈 읽은 건지, 혹은 그저 애인을 잃고 상심한 젊은이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 주고 싶었던 건지, 노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나도 한때는 사랑이 세상 전부인 줄로만 알았지. 그래서 내 사랑에 오른팔을 바치기도 했고.”
노인이 겉옷으로 가려졌던 부분을 들춰 보여 줬다. 정말로, 노인은 한쪽 팔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깨닫고 말았다우.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넓고, 사랑이 목숨보다 중요치는 않다는 걸. 그러니 이 나이까지 여행이나 즐기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수?”
노인은 낄낄 웃었다. 그 웃음소리와 열차가 멈춰 서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어느새 내릴 역이 되었다.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그러면 만약, 만약에…… 사랑과 목숨을 둘 다 포기해서라도 따라야 할 게 있다면요? 그럴 땐 어떡해요?”
“글쎄, 그건 겪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맥 빠지는 대답이었다. 나는 늦지 않게 열차에서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등 뒤에서 노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내가 장담할 수 있다우, 젊은이. 이 세상에 현명한 선택 따위는 없다는 걸.”
“…….”
“인간은 언제나 멍청한 선택을 한다우. 단지, 우리는 모두 조금 덜 멍청한 선택을 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 뿐.”
그건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아우로라의 말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닫히는 열차 문 너머의 노인을 뒤돌아봤다. 그제야 비로소 노인의 얼굴이 기이하게도 낯익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가 저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
그러나 열차는 내가 그걸 떠올릴 때까지 기다려 주는 대신 매정하게 경적을 울리며 출발했다. 덜컹덜컹, 서서히 내게서 멀어져 가는 열차가 놈이 내게 매어 둔 족쇄, 맹세의 반지를 싣고서는 떠나갔다. 나는 그 순간 자유로움이나 해방감보다는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과 허무함을 느꼈다. 이제 정말로 내게 남은 건 놈과 까마귀가 전부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이제 가자.”
나는 괜히 어깨 위의 까마귀에게 말을 걸었다. 까마귀는 그 말을 알아들은 척 까악 하고 대답했다. 몸이 가붓해지면 가붓해질수록, 발걸음에는 지체가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아카데미까지는 금방이었다.
쇠창살로 된 정문 앞에는 출입 금지 푯말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손으로 민 것만으로 너무나도 손쉽게 열린 문은, 이젠 이곳을 관리하는 이조차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했다. 나는 본관 대신 야외에 있는 장미 정원을 향해 걸었다. 마지막으로 장미가 피지 않는 그 황량한 정원에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었다.
물론 하잘것없는 추억팔이나 하며 나 자신을 더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아직도 알량한 희망을 버리지 못해서였다. 그곳에서 놈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봐, ‘자기야, 왜 이리 오래 걸렸어.’ 하며 여느 때와 같이 나를 반겨 줄까 봐. 결코 그럴 일이 없을 걸 알면서도 ‘혹시라도’, ‘만약에’ 따위와 같은 말을 붙이며 나는 구질구질하게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멈춰 선 곳은 물이 말라붙은 지 오래인 분수 앞이었다. 그곳에는 당연하게도, 기대했던 놈은 없고 부서진 천사상만이 세월과 함께 스러져 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조각상은 내 기억보다도 훨씬 작고, 초라하며, 볼품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놈과 함께한 모든 곳이 찬란했던 게 아니라, 놈과 함께했기에 그 모든 곳이 찬란했던 거라고.
비로소 결심이 선 나는 그 분수대 위에 끼고 있던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있잖아, 이게 멍청한 선택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러길래 누가 나를 혼자 내버려 두래. 툭 하고 손끝으로 보따리를 치며 놈을 책망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때라도 나를 말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조용히 돌아섰을 텐데, 아무도 그래 주지를 않아서, 나는 기어이 그 한마디를 내뱉고야 말았다.
“너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네가 아니어서, 너만큼 완벽하질 못해서, 최고의 선택을 내리는 방법 따위는 몰랐다. 그저 내가 내리는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길 바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너를, 사랑하지 않아.”
놀랍게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문득 가슴께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건 쥐어짜는 듯한 통증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도 아니었다. 묵직하고도 둔탁한, 멍이 드는 듯한 통증이었다. 비익조가 둘로 뜯겨 나가는 듯한 통증이었고, 연리지가 둘로 쪼개지는 듯한 통증이었다. 내가 꽉 쥐고 있던 무언가를, 실수로라도 놓치는 일 없도록 온 힘을 다해 품 안에 끼고 있던 무언가를, 오로지 내 의지로 손에서 놔줄 때의 통증이었다.
울컥, 그렇게 내 사랑이 쏟아져 내렸다.
혹은, 네 사랑이었던가. 후드득, 입에서 피가 흘렀다. 어디 입뿐이겠는가. 귀에서도, 코에서도 피가 흘렀다. 다만 눈에서만은 맑고 투명한 물이 떨어져 내렸다. 꼭 비가 내리는 것처럼 바닥에 동그란 물 자국이 남았고, 그 위를 장미 꽃잎이 피어나듯 벌건 핏방울이 수놓았다. 그걸 보며 나는 하하 웃었다. 마침내 장미 정원에 다시 장미를 피운 자의, 개운하고도 황홀한 웃음이었다.
“그래, 내가 너를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겠어.”
나는 이제야 네 말을 이해했다. 그 모든 것을 고작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줄 알았냐는 너의 말을. 내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아니, 우리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이런 게 사랑일 리 없었다. 이렇게 지독하고, 모질고, 고극하고, 참혹한 것이 사랑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너를 사랑하지 않기를 택하겠다.
목에 뭔가가 걸린 듯 꽉 메어 왔다. 욱, 우웩, 구역질 끝에 토해 낸 것은 주먹만 한 핏덩어리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펄떡펄떡 뛰고 있는 심장이었다. 고작 저것이었구나, 고작 저것이었어. 나는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제자리에서 쓰러졌다. 기울어진 시야로, 마른 땅바닥 위 내팽개친 그 뜨끈하고 질긴 살점이 차갑게 식어 가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것과 함께 호흡했다.
렌탄도, 데크레셴도, 소그난도, 그리고, 모렌도.
아마 우리에게 다음 생 같은 건 없을 테다. 우리에겐 지옥조차 허락되지 않을 테다. 다행이었다. 우리가 영원히 다시 만날 일 없어서,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서, 그리고, 내 마지막 숨과 맞바꾸어 네 이름을 내뱉을 수 있어서. 네 이름은 너무나도 찬란해서, 입에 담는 순간 혀끝이 타들어 갔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 웃을 수 있는 까닭은, 네 이름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