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Save Me From Tear
눈이 잔뜩 묻은 발을 오두막 안에 들여놨다. 곧이어 내 뒤를 따라 놈이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문이 작은 모양인지 고개를 슬쩍 숙인 채였다. 그래도 높이만 부족한 게 어딘가 싶었다. 너비까지 모자라서 그 어깨가 걸리기라도 했다면 코미디가 따로 없었을 테니까.
통나무집 내부는 좋은 말로 하면 아늑하고, 나쁜 말로 하면 비좁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놈 하나만 들어서도 꽉 차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놈은 낮은 천장이 거슬리지도 않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벽난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놈이 딱 하고 손가락끼리 맞부딪치자 너울거리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를 향해 후우 입김을 불자 불꽃이 조각조각 부서져 흩날렸다. 그게 장작에 닿는 순간, 게걸스럽게 땔감을 먹어 치우는 것처럼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가라앉더니, 마침내 꾸물꾸물 느린 몸짓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붙잡고 불 앞으로 이끌었다. 불가의 공기는 훈훈하게 데워지고 있었고, 불꽃은 타닥거리며 튀는 소리를 냈다. 그제야 나는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가 진짜로 어딘데.”
입이 얼어붙을 정도로 눈밭에 오래 서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쩐지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던 것은, 아마 이곳의 압도적인 정적과 고요 때문일 터였다. 눈은 소리를 흡수한다고 하던가.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사방이 새하얀 이곳은 어쩐지 현실감이 떨어지는 구석이 있었다. 저무는 해만 아니면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를 것 같았다.
“글쎄, 여기를 어디라고 해야 할까…….”
“신혼집이라고만 하지 말고, 위치를 말해.”
물론 놈이 데려온 곳이니만큼 범상치 않은 곳일 건 알았지만. 쓸데없이 뜸을 들이는 게 괜히 불안감을 자극했다.
“자기야, 내가 저번에 해 준 말 기억나? 그 섬이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 말이야.”
그거라면, 세상의 끝을 넘어간 사람 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던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놈이 빙글 웃으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세상의 끝, 그 너머야.”
놈의 말에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우리, 세상의 끝을 넘어왔어.”
놈이 확인 사살을 하듯 재차 말했다. 당황은 잠깐이었다. 하긴, 놈은 세상의 끝을 넘어간 사람 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다고만 했지, 세상의 끝 너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이해를 마치고 놈에게 물었다.
“세상의 끝을 넘어간 사람 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다고 했잖아.”
“으응, 그렇지.”
“그러면 우리는, 우리도 못 돌아가?”
그 질문에 놈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놈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자기야, 돌아가고 싶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어디로 돌아갈지가 문제였다. 내게 돌아갈 곳이 남아 있긴 하던가? 그렇다고 여기서 놈과 함께 영원히 살고 싶냐고 하면, 그것 또한 마뜩잖았다.
세상의 끝 너머라는 건, 달리 말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곳이라는 소리다. 들리는 것이라곤 놈의 목소리뿐이고, 느껴지는 것이라곤 놈과 나의 온기뿐이고, 맡아지는 것이라곤 놈의 냄새뿐인 이곳에서, 내가 과연 영원의 무게를 견뎌 낼 수 있을까.
내가 대답 대신 얼굴을 굳히고만 있자, 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는 반지가 끼워져 있는 내 약지를 감싸 쥐었다.
“여기, 반지에 박힌 보석 세 개 보여?”
나는 놈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백금 반지에는 자그마한 보석 세 개가 나란히 박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빛이 꺼진 채 죽어 있었고 나머지 둘은 여전히 영롱한 빛을 품은 채 반짝이고 있었다.
“하나당 순간이동 마법 한 번이야.”
“뭐?”
나는 기겁을 하며 놈을 쳐다봤다. 그 태연한 얼굴이 아무래도 농담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갑자기 반지가 끼워진 약지가 지나치게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반지 하나에 순간이동 마법이 세 개나 걸려 있다니, 못해도 그 가치가 작은 왕국쯤은 할 터였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냉큼 내 손가락을 잘라 가려고 하지 않을까.
“너, 반지 원정대를 소재로 3부작 소설이라도 쓰고 싶었어?”
“그럴 리가.”
“절대 반지를 만들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왜 반지 하나에 순간이동 마법이 세 개씩이나 필요했던 건데?”
그러자 놈이 의뭉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또, 또, 저런 말로 어물쩍 넘어가려 들지. 내가 짜게 식은 눈으로 놈을 멀거니 쳐다보자 그제야 놈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첫 번째 보석은 처음 여기로 올 때, 두 번째 보석은 자기가 나를 떠나고 싶을 때를 위한 거야.”
그러니까, 이미 거멓게 죽어 버린 보석 하나는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 쓴 것이고, 남은 두 개 중 하나는 여기를 떠나고 싶을 때 쓰라는 것이다. 세상을 저버리고 놈을 선택한 걸 실수라고 느끼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때 내게 그 모든 걸 되돌릴 기회를 쥐여 주겠다는 말이었다. 놈답지 않은 관대함에 의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럼, 마지막 하나는?”
“마지막 하나는, 그 모든 방황의 끝이 결국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를 위한 거지.”
놈이 내 손을 들어 반지 부근에 쪽 하고 입을 맞추더니 속삭였다. 그에 헛웃음이 절로 터졌다. 그래, 관대함은 개뿔. 그건 차라리 도망치려면 얼마든지 도망쳐 보라는 자신감에 가까웠고, 그래 봤자 결국 나는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확신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보다 무서운 게 있다면, 그 근거 없는 믿음조차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놈은 내 손가락을 놓아주더니 이제 목표를 바꿔 내 머리카락 쪽으로 손을 뻗었다. 놈의 손끝이 제법 긴 머리카락 사이를 사부작거리며 돌아다녔다.
“자기야, 슬슬 머리 자를 때가 됐네.”
“말 좀 정확하게 해 줄래? 머리 말고 머리카락이라고.”
놈은 무척 재미난 농담을 들은 듯 웃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저 새끼는 실제로 내 대가리를 어딘가에 팔아먹은 전적이 있으니까. 나는 놈의 손을 옆으로 치워 내고는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머리를 자를 때가 됐긴 됐다. 사실 머리를 잘라야지 생각한 건 기차 안에서부터였는데, 어쩌다 보니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놈은 그런 나를 내버려 두고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둘둘 말린 가위 집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테이블 위에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를 좌르륵 펼쳐 놓으니 각양각색의 날붙이들이 번뜩거리며 빛을 발했다.
“……그건 또 어디서 났냐?”
“쉿, 가업 비밀이야.”
“가업은 무슨. 네 집이 내 집이고, 내 집이 내 집인데.”
“자기야, 드디어 우리 살림 합친 걸 인정하는 거야?”
“네 살림이 일방적으로 내게 귀속된 것도 살림을 합쳤다고 표현하나?”
놈은 그 말을 듣고도 좋다고 까르륵 웃어 대더니, 들고 온 흰 천을 펄럭이며 내 목에다가 둘러 주었다. 그 가벼운 발놀림과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제법 신이 난 사람처럼 보였다. 이윽고 놈은 내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내리며 기장을 가늠하더니, 이내 가위 집에서 가위 하나를 빼 들었다. 완벽하게 관리된, 그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은 놈의 손에 걸려 있는 게 퍽 어울렸다.
“자기야, 고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으로 놈을 쫓고 있었나 보다. 놈이 틀어진 고개를 바로 돌려 주더니, 곧이어 목덜미 쪽에서 사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위질하는 놈은 드물게도 신중해 보였고, 몰입한 것처럼 보였다. 그 나직하고, 가붓하고, 부드러운 가위 소리에 불쑥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너는, 이제 머리 안 길러?”
“글쎄.”
그 짤막하고도 여상한 대답은, 얼핏 들으면 놈이 머리를 자르는 데 집중해서 그런 것 같았지만 내게만은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그 대답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은 머리를 안 기르는 것이 아니라, 못 기르는 것일 거라고.
머리카락이 길어지고, 손톱이 자라고, 심장이 뛰는 것. 그건 모두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와도 같았다. 그러나 놈의 머리와 손톱은 항상 한결같은 길이를 유지했고, 그 가슴우리 안은 굳이 갈라 보지 않아도 텅 비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살아 있는 것들만의 권리를, 놈이 과연 누구한테 양도했을지 생각해 보자면 답이야 뻔했다. 그러자 놈이 내 길어진 머리를 손수 잘라 준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다.
이윽고 놈이 내 앞으로 돌아왔다. 앞머리 쪽으로 다가오는 손길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간간이 이마를 스치는 놈의 손이 간지러웠다.
눈을 감고 있어도 이 순간의 풍경을 그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밖에는 눈이 잔뜩 쌓여 있고, 허름한 통나무집 안에서는 작은 불꽃이 타닥거리며 벽난로를 지키고 있고, 놈은 내 머리를 잘라 주고 있는, 그런 평화로운 풍경. 문득 지금 재채기를 하면 놈의 심장을 토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 다 됐다.”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솔이 콧잔등이며 귓바퀴, 목덜미 따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코앞에는 놈의 얼굴이 있었다. 내가 그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내심 놀라건 말건, 놈은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싸더니 요리조리 돌려 보며 자신의 솜씨를 감상했다. 그리곤 결과물이 제법 만족스러운지 한쪽 입꼬리를 씨익 비틀어 올렸다.
“응, 예쁘네.”
말과 동시에 콩 하고 놈이 이마를 박아 왔다. 몹시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듯한 그 두 눈에, 어딘가 심장 한구석이 덜걱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놈은 문득 생각난 게 있는 듯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자기야. 자기한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
보여 주고 싶은 것? 뜬금없는 말을 내뱉은 놈은 창가로 척척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기껏 벽난로가 데워 놓은 훈훈한 공기를 비집고 창문 밖에서 찬 바람이 들이닥쳤다. 놈이 창문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봐 봐.”
나는 그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열린 창 너머로는 눈밭이 펼쳐져 있었고, 그 끝에는 새하얀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오색찬란한 베일이 걸려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 기현상에 시선을 뺏겼다. 그건 마치 비밀을 숨기기 위해 누군가 내려놓은 녹색의 커튼 같기도 했고, 하늘에서 추락하는 천사의 궤적 같기도 했다.
“세상의 끝을 넘어온 사람들은 모두 저걸 목격하고 죽었어.”
“……세상의 끝을 넘어온 사람들을 죽게 만든 원인이 바로 저거란 소리야?”
“글쎄, 어떨까. 그저 우연히 사실과 사실이 맞물린 걸 수도 있고.”
달리 말하자면, 그저 우연히 사실과 사실이 맞물린 게 아니라 정말로 둘 사이에 어떠한 인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은 다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 눈앞의 장관으로부터 눈을 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본디 아름다움이란 불길하면 불길할수록 더욱 매력적인 법이었으니까.
“저걸 목격한 사람들은 저게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추는 춤이라든지, 선한 용과 악한 용이 천상에서 벌이는 결투라든지, 그도 아니면 엄청나게 빠르게 달리던 여우의 꼬리에 불이 붙어서 하늘을 밝게 비추는 것이라고 믿었어.”
“그중에서 네가 제일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는 뭔데?”
“제일 그럴싸하다고 생각한다기보단, 제일 좋아하는 얘기가 있지. 저게 어떤 여신의 망토 자락이라는 이야기야.”
나는 놈이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굳이 묻는 대신, 잠자코 놈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택했다. 그러자 놈은 ‘옛날 옛적에’ 하는 상투적인 말로 이야기의 시작을 열었다.
“옛날 옛적에, 어떤 한 여신이 필멸자만을 사랑하게 되는 저주에 걸렸어. 이윽고 그녀는 정말로 한 인간과 사랑에 빠지게 됐는데, 그와 언제까지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에게 불사의 생을 나눠 주려 했어.”
“말하는 투를 보니까 일이 그렇게 잘되지는 않았나 보네.”
“응, 여신이 한 가지 놓친 게 있었거든. 인간은 불사의 생을 얻게 됐지만, 불로의 생은 얻지 못했어. 그래서 여신이 원하던 대로 비로소 둘은 영생을 함께할 수 있게 됐지만, 한쪽은 끊임없이 늙어 가고 다른 한쪽은 그러지 않았지.”
“그래서, 결국 여신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인간에게 다시 죽음을 돌려주기라도 했어?”
그 말에 놈이 웃었다. 마치, 순진한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낯이었다.
“아니, 여신은 인간을 골방에 처박아 두곤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았어.”
“…….”
“인간에게 다시 죽음을 돌려주면, 영원히 함께할 수 없게 되잖아. 여신은 늙어 가는 인간을 볼 때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슬퍼하고, 한없이 비참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신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게 된 건 아니었으니까. 인간을 늙어 가는 걸 보는 게 고통스럽다면, 그냥 그 인간을 보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지.”
그 말에 등골에 비죽 소름이 돋았다. 여신의 비인간성에 새심 잔혹함을 느껴서는 아니었다. 놈이 덧붙인 말 또한 이야기의 한 부분인지, 아니면 이야기에 대한 놈의 일방적인 해석인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렇게 마침내 여신과 인간은 영원을 함께할 수 있게 됐어. 비록 인간을 가둬 둔 골방에선 한동안 여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소리가 났지만, 이내 잠잠해졌지. 그때 우연히 여신의 이름을 엿듣게 된 사내가, 마침내 세상의 끝을 넘어 저것을 목격했을 때 감히 그 여신의 이름을 붙이기로 마음먹은 거야.”
“……그 여신의 이름이 뭔데?”
어느새 놈은 창가를 등지고 서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놈의 시선이, 마치 내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놈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난 뒤에도 놈이 왜 내게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 왜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신에게 시험당하는 인간들이 그러하듯, 대체 내게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고 따져 묻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내가 간신히 놈에게 물어볼 수 있었던 건, 고작해야 여신의 이름 정도가 전부였다. 마침내 놈이 입을 열어 답했다.
“아우로라, 밤의 장막을 걷고 우리에게 새벽의 빛을 가져다주는 위대한 신.”
“…….”
“그게 여신의 이름이야.”
‘아우로라.’ 나는 속으로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때마침 창가에 기대선 놈의 등 뒤로 펼쳐진 녹색의 장막이, 정말로 휘날리는 망토 자락처럼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에게 이름을 붙인 모든 인간이 죽어 없어진 뒤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빛나고 있는 여신의 망토 자락은, 놈에게도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