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This Year (5/13)

This Year

좌르륵, 놈이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쳤다. 척 봐도 아주 오래된 물건이었다. 몇몇 지명이 바뀐 곳도 있었고, 표기법도 요즘 쓰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놈은 지도의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짚더니 주욱 하고 지도의 끝까지 끌고 갔다.

“여기 있네.”

“어디 봐 봐.”

진짜였다. ‘세상의 끝.’ 지도의 가장 외진 끄트머리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실제로는 아주 작은 섬이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기도 하고.”

“나는 지도에서 이런 섬 한 번도 못 봤던 것 같은데.”

“그야, 이건 이 섬을 발견한 탐험가가 개인적으로 기록한 지도니까. 실제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 맞아. 다른 지도에서는 아예 섬 위치조차 표시가 안 되어 있는 경우도 파다하지.”

놈을 쳐다봤다. 물에 젖은 셔츠가 그 상체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훤히 비치는 근육들이 오히려 벗은 것보다도 야했다. 물론, 내 꼴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놈이 둘러 준 도톰한 담요 한 겹을 끼고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나는 놈의 은근한 눈길을 피해 담요를 여미며 물었다.

“그래서, 여기가 정말로 세상의 끝이야?”

“그럴 리가.”

“그럼 왜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그러자 놈이 손가락을 조금 더 끌었다. ‘세상의 끝’을 지나쳐 지도로부터 벗어 난,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 위를 짚었다.

“이 너머까지 간 사람 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그렇다면 과연,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도 했다.

“너는 어떻게 이 섬을 알게 된 건데?”

“내가 돈 주고 샀으니까.”

“……지도를?”

“아니, 섬을.”

내가 표정 관리에 실패한 걸 본 놈이 웃었다. 그 미소에 나는 오랜만에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기억해 냈다. 놈은 갖은 종류의 지랄을 마스터했지만, 그중 유독 빛을 발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는 걸 말이다. 다름 아닌 돈지랄이었다.

“경매에 나온 걸 생각보다 헐값에 살 수 있었어. 실존하는지조차 모르는 섬을 돈 주고 살 미친놈은 드무니까 말이야.”

“너도 너 스스로 미친놈이라는 자각이 아예 없지는 않구나.”

“아무튼, 여기라면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나도 내가 주인이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곳이니.”

그 말에 어쩐지 묘한 감상이 들었다. 정말로 놈하고 세상의 끝까지 도망쳐 온 거구나. 달리 말하면, 여기 외에는 더 갈 곳도 없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이 근방에서 마법이 불능이라는 것은, 일종의 배수진을 친 것과도 같았다. 마법을 못 쓰게 되는 건 상대뿐만 아니라 놈 역시 매한가지일 테니까.

문득 테이블 위로 탁 하고 컵 하나가 올려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사용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꾸벅하고 묵례했다. 컵을 들고 냄새를 맡았다. 따뜻하고 달콤한 게 코코아 같았다.

“그건 혹시 뭐 들었을까 하는 걱정 안 하고 마셔도 돼, 자기야.”

“……딱히, 그런 걱정은 안 했는데.”

그 빌어먹을 젤리, 찔리는 게 있어서 말을 더듬었는데 놈은 그걸 무슨 뜻으로 알아들었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 사용인들은, 아주 엄격하게 관리하거든.”

놈을 쳐다봤다. 놈의 기준으로 ‘엄격하게’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놈이 테이블 위에서 지도를 거둬 가 돌돌 말면서 말했다.

“여기에서 있던 일, 단 한마디라도 밖으로 새어 나가면 혀를 잘라.”

“뭐?”

“혀가 잘린 뒤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고막을 터트리지. 보통 두 번 이상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아. 그즈음 되면 아무리 멍청한 놈들도 깨닫는 바가 있거든.”

“…….”

“그리고 세 번째가 되면, 마지막으로 눈을 파내. 그렇게 되면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없어. 아무 데서도 써 주지를 않으니까. 한평생을 이 조그만 저택에 바치는 게 되는 거지."

관대한 건지 잔인한 건지 모를 처사였다. 놈이 가죽끈으로 잘 갈무리한 지도를 또 다른 사용인에게 넘겨줬다. 그리고는 잠깐, 하고 사용인을 멈춰 세웠다.

“여기 보여? 이 목에 걸린 리본.”

“응.”

“이게 첫 번째라는 표식.”

나는 나도 모르게 내게 코코아를 가져다줬던 사용인을 쳐다봤다. 그의 목에도 고운 리본이 감겨 있었다.

“두 번째는 귀에 귀걸이를 하고 다녀.”

“그럼, 세 번째는?”

“이 리본이랑 같은 리본으로, 눈을 가리지.”

그러고 보니 놈이 바닷가에서 이 저택으로 나를 데려왔을 때, 처음 든 감상이 바로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저택의 규모에 비해선 지나치게 사용인이 많았고, 사용인이 많은 것에 비해선 지나치게 고요했다. 그런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니,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이 저택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은 많아. 처음 계약할 때 몇 번이고 주의 사항을 되짚어 주는데도 이 저택에서 일하기를, 그리고 실수를 저지르기를 선택한 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지야.”

나는 손안에서 잠시 컵을 굴렸다. 놈은 내가 새삼 자신의 잔악함에 질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사실 나는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린 채였다.

놈은 보통 ‘실수’는 두 번째에서 끝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두 번째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실수가 아닌 고의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세 번째가 되면 ‘마지막’으로 눈을 파낸다고 말했다. 그 말은, 놈의 관대함이 허락하는 것도 세 번까지라는 소리였다. 네 번째 실수를 저지른 사용인이 어떻게 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뻔했다.

결국, 정리하자면 여기서 일하는 사용인은 총 세 번의 기회를 갖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고로 전할 수 있는 것도 총 세 마디의 말. 나는 이 저택에서 눈을 가리고 다니는 사용인들이 과연 그 세 마디의 말로 무엇을 전했을지, 그게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그때였다. 열린 문틈 너머로 어떤 눈동자가 보였다. 눈동자의 주인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소리도 없이 재빠르게 사라졌다. 체구가 작은 게 어린아이 같았다. 저택에서 일하는 어린아이라……. 나는 호로록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얼핏 보였던 아이의 귀에는 선명하게 반짝이는 귀걸이가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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