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Christmas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었다.
코끝에 스치는 건 시큼한 병원 특유의 냄새…… 면 좋으련만, 어쩐지 비릿한 피 냄새였다. 씨발, 벌써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나 그냥 모른 척하고 다시 잠들면 안 될까?
그러나 그러기도 어려운 게, 온몸이 끈적거려서 불쾌감이 장난 아니었다. 슬쩍 손을 들어 보니 손가락 사이사이로 끈적한 진액이 늘어졌다. 누운 자세였던 탓에 손끝의 액체가 똑 하고 뺨 위로 떨어졌다. 상당히 기분이 더러워졌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등 뒤에서 배기는 물컹물컹한 것들이었다.
몸을 일으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물컹물컹한 것을 손으로 짚은 순간, 묘하게 따듯하기까지 한 감각에 더욱 소름이 끼쳤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조금이라도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좆된다는 걸 말이다.
가능한 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며 몸을 일으켜 세우니, 이번에는 녹진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 점성이 있는 액체가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빌어먹을 중력 같으니라고. 그러니까 지금 나는, 말하자면 갓 태어난 아기처럼 진액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천 쪼가리 한 장 걸치지 않은 알몸인 건 말할 것도 없고.
한바탕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여기에서 울기까지 하면 정말 신생아 신세가 될 것 같아서 입술을 꽉 지르물었다.
씨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음, 좀 죄를 짓긴 했지만. 아무튼, 다시 살아난 것도 억울한데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냐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분명 죽었다.
방금 막 돌아온 기억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여기 멀쩡히 살아 있다는 건, 딱 두 가지 가능성을 의미했다. 첫째, 여기가 지옥이거나, 둘째, 혹은 지옥에 비견할 만한 현실이거나.
사실 전자나 후자나, 따지고 보면 같은 말이긴 했다. 왜,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지옥은 장소가 아닌 상태라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전자이기를 간절히 빌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제야 지금까지 내가 어떤 덩어리의 제일 꼭대기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건, 달리 말하자면 이제부터 내가 이 물컹거리고, 따듯하고, 비린내 나는 덩어리를 자력으로 기어서 내려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욕이 절로 나오는 것을 참으며 덩어리 아래로 기어 내려가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리를 뻗었다. 정말로 갓 태어난 아기가 된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대로 굴러떨어져서 목뼈가 또각 부러지는 건 아니겠지. 정신이 아찔해져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어떤 사람과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정확히는, 어떤 사람‘이었던 것’과.
죽은 동태처럼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부릅떠져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방금까지 손으로 짚고 있던 곳이 저 사람의 코인 모양이다. 엉망으로 뭉개진 얼굴은 지금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것과 같은 진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아마 피로 추정되는 것으로.
웨엑, 속이 메슥거렸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려다가 손을 헛디뎠다. 철퍼덕하고 꼴사납게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래도 다행히 팔부터 떨어져 목뼈가 꺾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눈만 들어 내가 굴러떨어진 곳을 쳐다봤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덩어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토막 난 시체들의 더미였다.
이게 다 몇 명일까. 토막토막 부위가 섞여 있어서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설마 세 자릿수를 넘기진 않겠지. 그 와중에 내가 아까 손으로 짚고 있던 얼굴이 나를 따라 꼭대기에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대가리만 똑 잘린 채였다. 하필이면 떨어져도 내 쪽을 노려보는 위치로 떨어졌다. 어쩐지 원망이 서린 듯한 그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눈앞의 시체 더미는 기분 탓인지 묘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부풀었다가, 꺼졌다가…….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집중해서 보니 확실했다. 토막이 얽히고설킨 덩어리는 꼭 고동하는 심장이나 숨을 쉬는 폐처럼 하나의 장기 같아 보였다. 시체에서 가스가 빠져나오기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움직임이 지나치게 규칙적이었다.
그러니까, 저 꼭대기에서 내가 궁둥이를 비비면서 누워 있었다는 거지……?
와르르, 어디서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다름 아닌 내 정신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소리였다.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건데, 나는 결코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독종 소리는 심심찮게 들었고, 자라면 자랄수록 삶은 더욱 험난해져서 나중에 가서는 나를 부르는 호칭이 이름 대신 미친놈이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이건 좀.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충격 때문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분노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 이런 정신 나간 짓을 벌일 인간은 이 세상에 나 말고 딱 한 명뿐이었으니까.
빌어먹을 새끼. 내가 지 때문에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으면 고이 보내 주지는 못할망정, 나한테 이런 수모를 겪게 해?
머리끝까지 열이 뻗쳤을 때였다. 갑자기 피비린내 가득한 이 음침한 공간에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이 들이닥쳤다. 제일 먼저 반응한 건 후각이었다. 그 바람을 타고 익숙한 냄새가 맡아졌다. 담배 냄새를 닮은 매캐한 향이었다. 꼭 겨울 자작나무가 다 타고 남은 재의 냄새가 이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다음으로 반응한 건, 청각과 시각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후광처럼 쏟아지는 빛줄기 속에 한 인영이 서 있었다. 빛을 등지고 나타난 나의 신은 서서히 내게로 몸을 숙였다. 가장 낮고, 지저분한 곳으로. 옷이 엉망이 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두 팔 가득 나를 껴안았다.
마지막으로 반응한 것이 바로 촉각이었다.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육체에 온몸의 털이 비죽비죽 곤두섰다. 내가 한 번도 바란 적 없는 구원은, 지나치게 폭력적인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 미친, 씨발, 돌은 새끼야…….”
나는 그제야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가 성대를 비집고 나왔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목이 따끔따끔 아팠다. 그러자 상대가 쉬이 하고 어르는 소리를 냈다. 그 낮은 목소리에 목뒤가 다 저릿저릿했다.
씨발, 고급 옷감이 망가지든 말든. 봐주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그 등에 힘주어 매달렸다. 부들부들하던 천이 순식간에 눈물, 콧물, 정체 모를 진액으로 질척해지는 게 느껴졌다. 제 옷을 휴지 대신 쓴 걸 알면서도 놈은 ‘응응, 우리 자기 서러웠어.’ 하고 달짝지근한 말을 내뱉었다.
그 목소리에 묘하게 웃음기가 서린 걸 눈치채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이 새끼, 웃을 상황 아닌 상황 분간 못 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내가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동안, 놈은 비위 좋게도 잔뜩 젖어 끈적거리는 내 뒤통수를 거리낌 없이 쓰다듬었다. 그러나 나는 그 다정한 손길에 안주하는 대신, 손을 뻗어 놈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았다.
“야.”
“응, 우리 자기. 왜 불렀어.”
“상황 설명에 딱 10초 준다.”
“…….”
“내 손속에 자비 없는 거 알지? 쓸데없는 말로 시간 까먹으면 10초 후엔 네 모발과 영원히 작별이다.”
그 말에 놈이 난감해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속지 않았다. 저건 지금 내 협박 때문에 난처한 게 아니라, 자기가 꼴려서 그러는 거였다. 씨발, 지금 상황에 꼴릴 포인트가 어딨다고? 저 새끼가 변태 새끼였다는 걸 간과한 내 실책이었다. 잡은 머리채를 포기하면서까지 몸을 물리려고 들자, 놈이 나를 껴안은 팔에 힘을 줬다. 있는 힘껏 버둥거려도 무슨 석상에 안겨 있는 것처럼 꿈쩍할 기색이 없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이거 놔라.”
“자기야, 10초 지났는데 내 머리 안 뜯어 줘?”
“내가 놓으라고 했다.”
심지어는 손수 머리채를 갖다 바치기까지 하는 것이, 이 새끼가 마조끼가 있었나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디 기질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역시 S와 M은 한 끗 차이라더니……. 나는 몰랐던, 아니, 영원히 모르고 싶었던 전 애인의 취향을 깨닫고는 더더욱 기겁하면서 손을 빼려 들었다. 그러자 놈이 이번엔 자연스럽게 손깍지를 껴 왔는데, 그게 현재 뒷배경이 토막 난 시체 더미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로맨틱했다.
“멜로 눈깔 저리 치워라.”
“싫어. 자기 이 눈깔 좋아하잖아.”
“그래, 좋아하긴 좋아하는데……. 너는 때와 장소라는 걸 가릴 줄 모르니?”
물어 놓고도 괜한 걸 물어봤다 싶었다. 이 새끼가 때와 장소라는 걸 가릴 줄 아는 새끼였다면 내가 이렇게 고통받지도 않았겠지. 짜증이 났지만, 힘겨루기를 해 봤자 나만 손해라는 걸 알았다. 애초에 힘이 잘 들어가지도 않는 몸이었다. 괜히 발악하던 걸 관두고 그 단단한 몸에 축 늘어졌다.
두근두근,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사실,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한테 안겨 있다는 게 묘한 안정감을 주는 탓도 있었다. 갑자기 얌전해진 나를 몹시 귀여운 것처럼 보던 놈이 남은 한 손으로 등을 슬슬 쓸었다.
“자기야, 보고 싶었어.”
알아, 아는데……. 이런 형태로 재회할 바엔 다신 안 만나는 게 나았다. 내가 무슨 각오로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 아는 놈이. 목 끝까지 원망이 차올라 울컥했지만, 쓸데없는 말씨름으로 진을 빼기는 싫었다. 무엇보다 그 보고 싶었다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에게서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치 않은,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걸 보면서 묘하게 통쾌함까지 느껴졌었는데, 이 미친놈이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던 과거의 내가 멍청이였다.
“몸 상태는 좀 어때. 아까 굴러떨어진 것 같던데, 늘 의젓하던 자기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꼴을 못 본 게 아쉽네.”
“말 같지도 않은 말 할 거면 그냥 아가리를 다물어.”
“으응, 이럴 거면 팔다리는 없이 만들 걸 그랬다 싶기도 하고. 자기 혼자 밥도 못 먹어서 낑낑거릴 거 생각하면 너무 귀엽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나를 빤히 쳐다볼 텐데, 차마 자기 입으로 도와 달란 말 할 생각은 못 할 거야. 그렇지? 수치심 때문에 얼굴은 섹스할 때처럼 벌겋게 익어서…….”
“너는 씨발, 한시라도 좆같은 소리를 안 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치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가 하는 소리가 단지 나를 놀리려고 하는 농담이 아닌 것을 알아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나 내가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고 해서, 나한테만큼은 그 누구보다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는 놈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자기야, 겁먹은 것도 귀엽지만……. 걱정하지 마, 네 팔다리가 늘씬하게 빠져서 얼마나 예쁜데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특히 허공에서 정처 없이 흔들릴 때는 어떻고.”
“그냥 너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겠다.”
그러면서도 내심 안심하는 내 처지가 서글펐다. 귓가에 한숨을 내쉬니 또 꼴린다며 헛소리를 늘어놓은 놈은, 내가 제발 1절만 하라고 구박하니 그제야 빙글빙글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몸 상태가 어떻다고?”
“힘이 안 들어가. 축축 처지고. 어질어질해.”
내가 왜 이런 새끼랑 사귀었을까, 그땐 잠깐 미쳤었지. 솟구치는 회한 다음에 오는 것은 언제나 같은 분노였다. 아니, 근데 그러면 이런 새끼가 옆에서 알짱거리는데 안 미치고 배겨? 내가 그러데이션 분노를 표출하는 동안 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 생각하는 꼴을 했다.
“아, 아직 막을 안 먹어서 그래.”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고? 내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놈을 바라보자 빙긋 웃는 꼬락서니가 불안함을 자극했다.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려고 저럴까. 놈은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을 안아 올렸다. 그냥 이대로 날 쉬게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얌전히 침대 위에 눕혀 주면 바로 곯아떨어질 자신이 있었으나, 순순히 그 바람을 들어줄 놈이 아니었다. 그의 걸음이 향한 곳은, 열려 있는 문 쪽의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러니까, 시체 토막이 잔뜩 쌓여 있는, 내가 방금 막 탈출한 그곳 말이다.
“왜, 왜 거기로 걸어가?”
내가 미쳤지, 이 새끼한테 얌전히 안겨 있었다니. 안정감이 어쩌고저쩌고했던 과거의 나를 마구 때려 주고 싶었다. 늦었지만 이제 와서라도 마지막 힘을 쥐어짜 발버둥을 치는데, 그렇다고 놔줄 놈이 아니었다. 놈은 가볍게 내 사지를 포박하고는 시체 더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놈의 팔을 부여잡았다.
“막 먹어야지, 자기야.”
“나아, 나, 그냥 그거 안 먹으면 안 돼? 막인지 뭔지……. 그냥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응?”
“정말 그렇게 먹기 싫어?”
“응, 먹기 싫어. 먹기 싫어어…….”
내가 그쳤던 울음을 다시 터트리려 하자 놈이 ‘흥 해, 흥.’ 하고 자기 소매를 내밀었다. 그 소매에 킁 하고 코를 풀자 놈이 안쓰러운 듯 말했다.
“그런데 어쩌지, 자기야. 나도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은데, 편식은 나쁘잖아.”
“왜, 왜 나빠. 내가 안 먹겠다는데, 네가 뭔데…….”
“그렇게 투정 부려도 안 돼. 막을 안 먹으면 애써 되살아난 자기 몸이 다시 무너질 텐데, 자기도 그건 싫지?”
씨발, 기대한 내가 바보지. 놈이 나한테만은 관대한 척, 무슨 말이든 다 들어줄 것처럼 굴다가 결국엔 자기 멋대로 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내 애원에도 결국 놈은 시체 더미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뜯어냈다. 찐득찐득한 소리가 들렸다.
내가 먹어야 한다는 ‘막’의 정체는 말 그대로 한 겹의 얇은 막이었다. 쌓아 놓은 시체 토막이 무너져 내리지 않고 한데 엉켜 있도록 하는 막. 놈은 손가락 잔뜩 들러붙은 막을 대수롭지 않게 떼어 내 입가에 갖다 댔다.
“자, 아 해 봐.”
그러니까, 방금까지 시체 더미를 싸고 있던 막을 나보고 먹으라고?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자기야, 이게 보기엔 이래도 보양식이야. 정력에 좋대.”
순간 솔깃했지만,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음, 이거 잘 먹고 나면 사탕 줄게.”
누굴 진짜 애새끼로 아나, 도리도리.
“사탕이 싫으면 내 키스?”
그건 더 싫다, 도리도리.
그러자 놈이 난감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내 입술에 찢어진 막을 비볐다. 미끌미끌하고 끈적끈적한 게 몹시 기분이 나빴다.
“자기야, 저기 있는 막 전부 다 자기가 먹어야 하는데 벌써 이러면 어떡해.”
뭐라고? 눈을 홉떴다. 덜덜 떨리는 고개를 간신히 틀어 봉긋이 솟아 있는 시체 더미를 쳐다봤다. 시체 더미는 아직도 부풀었다가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 조각도 아니고, 저걸 싸고 있는 막 전부를…… 내가 먹어야 한다고?
“이거 이렇게 보여도 다 영양분이야. 그 왜, 동물 중에도 있잖아. 태어나고 나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니까, 자기가 깨고 나온 알을 전부 먹어 치우는 애들.”
“개소리를 참 정성스럽게…… 읍.”
아, 방심했다. 무어라 대거리하려는 순간 놈이 입속에 손가락을 처박았다. 손가락에 휘감긴 얇은 막에서 참을 수 없는 비린내가 올라왔다. 욱, 우욱, 헛구역질하는 나를 뻔히 두고서 놈은 목젖까지 쑤실 기세로 그 기다란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손가락에 들러붙은 막이 잘 떨어지지 않자, 그것을 벗겨 내려 내 혀에다가 치덕치덕 굴렸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헛구역질하는 이유가 그 역겨운 막 때문인지, 놈의 손가락 탓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놈이 입 안을 쑤시는 이유도 막을 먹이기 위함인지, 자기 사심을 채우기 위함인지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을 짓씹으려고 이에 힘을 주자, 놈은 다른 손으로 턱관절을 붙잡아 입을 닫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턱이 얼얼할 정도로 한참 내 혀를 갖고 놀던 놈이 마침내 손가락을 빼냈을 때, 그 손가락에는 엉겨 있던 얇은 막 대신 내 타액만이 진득하게 묻어 늘어지고 있었다. 놈은 비위가 상하지도 않는지, 그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넣고 쪽쪽 빨았다.
“미친놈…….”
“응, 새삼스럽게. 나 미친놈인 거 지금 알았어?”
그렇게 말하면서 산뜻하게 웃는 꼬락서니가 매를 절로 불렀다. 저거, 딱 한 대만 때리면 여한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 실상은 코로 호흡할 정신도 없이 허덕이는 게 고작이었다. 놈은 숨을 헐떡이는 나를 가만 내려다보더니, 이번엔 자신의 입을 맞부딪쳐 왔다.
이미 손가락으로 잔뜩 들쑤셔진 내 입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채였다. 물론 목구멍까지 자기 혀를 처박고 싶은지, 놈의 아랫도리를 닮아 고약하게 움직이는 혀는 빈말로도 달다고는 하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어쨌거나 오랜만에 섞게 된 혀에 발가락이 저절로 움찔움찔 곱았다.
그러다 내가 정말 못 버틸 지경이 되면, 잠깐 입을 떼서 숨을 들이켤 틈을 주었다가 다시 입술을 붙여 오길 반복했다. 나는 산소가 부족해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깜빡였다. 간신히 잡힌 시야에는 눈깔을 번뜩이며 입술을 핥는 그가 보였다.
“역시, 우리 자기는 사탕보단 내 키스를 좋아할 줄 알았어.”
“씨발, 자기가 좋으니까 그렇게 발정 난 것처럼 구는 거면서……. 내 핑계는 뭔 내 핑계야…….”
억울함을 잔뜩 담아 말했지만 사실 말을 이어 갈 힘도 없어서 끊어질 듯 색색거리는 목소리였다. 그러자 놈이 눈가를 찌푸리며 웃었다.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짓궂은 미소였다.
“발정이 날 만도 하지, 자기 떠난 이후로 계속 수절했거든.”
“누가, 누가 그러랬냐고…….”
“응응, 우리 자기, 한마디를 안 져 주지. 그러니까 이거 다 먹고 나면 각오해야겠다, 그렇지?”
씨발, 산 넘어 산이었다. 이제 고작 막을 한 조각 먹었을 뿐인데 진이 다 빠진 건 둘째 치더라도, 안 그래도 괴물 같은 체력을 가진 놈이 내가 죽은 후로 쭉 수절했다고 하면 이번에 내 사인은 복상사가 될지도 몰랐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아는데도 일부러 골려 먹는 것인지 놈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이렇게 손 많이 가는 것도 좋아해.”
그 얼굴이 퍽 행복해 보여서, 할 말을 잃은 나는 그저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어쩌라고요,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