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1 코요테 =========================================================================
501.
구조된 사람들의 상태가 좋았다면 번거롭게 의료진과 군인, 차량을 불러들일 이유가 없었다.
태반이 심한 탈진에 목숨이 위태로웠고, 상당수는 겁에 질려 구석에 웅크린 채 움직이지도 못했다.
또한, 가족과 애인을 잃고 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도 있어 자기 발로 멀쩡히 걸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10%도 안 됐다.
그리고 잘 훈련된 병사라고 해도 10분 만에 1만 명이 길이 200m의 통로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200m 세계 신기록이 20초도 안 됐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세계 기록이었지 일반인 기준은 1분은 달려야 할 거리였고, 100m도 달리지 못하고 쓰러져 숨을 헉헉댈 아줌마 아저씨도 많아 손잡고 걸어 나온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의료진들을 데리고 들어가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며 급한 사람들부터 차를 이용해 실어 나르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절묘하게 땅을 살짝 긁으며 날아간 파멸의 창이 짙은 안개에 폭 20m의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자 옆에 대기하고 있던 군용 트럭들이 가속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 미스트 존으로 쏜살같이 튀어 들어왔다.
10분 동안 커다란 군용 트럭 50대가 들어와 의료진과 먹을 것을 쏟아내고, 비워진 공간에 환자를 태웠다.
이렇게 하루 동안 4번의 구멍을 뚫어 차량이 두 번씩 오가며 사람들을 태워 나르고 물자를 싣고 들어왔다.
그러나 워낙 사람이 많고 시간이 짧아 뉴욕 인근에서 구조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데도 5일이 걸렸다.
4시간 간격으로 사용하면 몸에 큰 무리가 없어 하루 최대 6번 사용해도 됐지만, 전투는 언제나 돌발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보스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하자고 파멸의 창을 남발할 수 없었다.
뉴욕 시민들을 밖으로 나르는 사이 트럭을 타고 들어온 군인들이 하람, 이브와 함께 도시를 돌며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출했다.
군인들만 보내지 않고 하람과 이브를 같이 보낸 건 보스가 새끼를 소환해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날 뉴욕과 주변 도시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으는 도중 코요테 새끼 두 마리가 나타났다.
새끼 열 마리를 모두 처리한 지 정확히 24시간 후로 다행히 하람과 이브가 있는 지역에 나타나 피해 없이 놈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후 5일 동안 매일 두 마리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사라진 결계는 하루에 최대 두 마리, 사라진 지 24시간이 지나야 소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 마리당 각성의 씨앗이 2550이니까, 하루에 두 개면 이틀이면 한 사람을 인공 각성시킬 수 있겠네요. 이러면 보스를 잡을 이유가 없겠어요. 두고두고 각성의 씨앗을 뽑아도 되겠어요.”
“결계를 평생 공짜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분위기로 봐선 그럴 수도 있겠는데요.”
“세상에 공짜는 없어. 상급 레드몬도 먹어야 움직일 수 있고, 먹어야 포스가 생기는 거야.”
“이곳은 미스트 존이잖아요. 보스의 영역이니 먹지 않고도 결계를 만들 수도 있겠죠.”
억지를 부리는 소희를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투정이야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지만, 억지는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심할 경우 아내들 간에 분란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그럼 내 말이 맞는지, 네 말이 맞는지 내기할래?“
“무슨 내기요?”
“꿀밤 한 대 맞기.”
“저 죽이려고 그러는 거죠? 오빠 손에 꿀밤 맞으면 머리가 터질 수도 있어요.”
“네가 이기면 되잖아. 그리고 사랑하는 마누라 머리를 터뜨릴 만큼 세게 때리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때리는 척만 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이죠?”
“그럼”
“알았어요.”
소희와 내기한 다음 날 기다렸다는 듯이 새끼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곳에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소희의 말도 일리가 있어 삼일을 더 기다렸지만, 새끼들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딱!”
“으악~~~”
살살 어루만져주겠다는 약속대로 새끼손가락으로 힘을 최대한 빼고 살살 쳤지만, 맞은 소희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세상이 빙빙 도는지 서 있지도 못하고 쓰러져 품에 안겼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만약(?)을 위해 대기하던 아리와 마샤가 힐링 스킬로 치료해 고통만 잠깐 느꼈을 뿐 통증은 금세 사라졌다.
“절 죽이려고 그러신 거죠? 그렇죠?”
“새끼손가락으로 살살 때린 거야. 너도 봤잖아.”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는데, 살살이라니... 저 정신 잃고 쓰러지는 거 오빠가 받아놓고 딴소리 하실 거예요?”
“그렇게 아파할지 몰랐지.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죠?”
“아니야.”
“골탕먹이려고 일부러 때렸다고 얼굴에 쓰여 있어요.”
“그래?”
“네!”
“알았다니 다행이네.”
“뭐라고요?”
“네가 억지를 부려 그런 거야.”
“제가 무슨 억지를 부렸다고 그러세요?”
“먹지 않고도 새끼 코요테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잖아.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건... 으음...”
“할 말 없지?”
“죽도록 사랑한다면서 그것도 못 받아줘요?”
할 말이 없자 또다시 억지를 부렸다. 내가 우려했던 것이 바로 이것으로 억지를 한번 쓰기 시작하면 말이 막힐 때마다 버릇처럼 쓰게 된다.
억지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우기는 것으로 사사건건 핑계를 대며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았다.
이는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는 정치인들이 주로 하는 아주 못된 짓으로 신뢰를 잃게 하는 지름길이었다.
“투정은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어. 그러나 억지는 안 돼. 그건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불화의 씨앗이야.”
“제가 그렇게 심하게 굴었어요?”
“그렇진 않아. 그럴 가능성이 보여서 알게 해주려고 그런 것뿐이야. 소희야! 오빠는 네가 참 좋아. 내가 좋아하는 소희가 언니들에게도 사랑받길 원해. 무슨 뜻인지 알지?”
“알았어요. 앞으로 그러지 않을게요.”
“고마워!”
소희가 큰 잘못을 한 건 아니었다. 이제 겨우 22살인 소희의 나이를 생각하면 전혀 문젯거리가 될 게 없었다.
그러나 많은 식구가 함께하는 특성을 고려하면 억지를 부리는 행동은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단단한 둑은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작은 구멍과 균열이 생기며 서서히 무너졌다. 둑이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수시로 보수하고 관리해야 했다.
열흘 동안 미스트 존을 샅샅이 뒤져 4만 2,558명을 구조했다. 800만 명이 넘는 사람 중 고작 0.5%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미국의 건국 이후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보스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소환수들의 죽음을 무릅쓰고 지하철과 하수도에 들여보내 찾았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하수도를 통해 뉴욕을 빠져나갔거나, 하수도가 너무 복잡해 찾을 수 없는 것 둘 중의 하나였다.
“결계를 만들지 않는 게 아니라 굶어 죽어서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은비야! 꿀밤 맞고 싶어?”
“농담이야. 히히히히~”
새끼인 결계를 만들지 않는 건 만들어봐야 아까운 체력만 낭비한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 머리도 없었다면 숨지도 않았을 것이고, 열흘 넘게 모습을 감추지도 않았을 것이다.
“있어 봐야 놈을 찾을 수도 없으니 그만 철수하자.”
“클린턴 대통령이 가만있겠어요?”
“가만 않으면 어쩔 건데? 우리 아니면 뉴욕을 영영 찾을 수 없는데.”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미스트 존 안에 있어. 보스를 처리하기 전엔 문화재를 돌려받을 수 없어.”
상아가 걱정하는 건 문화재를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800만 명이 죽으며 분위기가 극도로 험악해진 상황에서 우리가 손을 떼면 그 원망이 우리에게 쏠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면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처럼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했다.
상아의 걱정처럼 미스트 존을 없애지 않고 돌아가면 우리가 고의로 코요테를 잡지 않았다는 루머부터 구조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루머까지 안 좋은 얘기가 쏟아질 것이다.
대부분 우리를 싫어하는 정치인과 사람들이 억지를 부리겠지만, 원망을 쏟아낼 존재가 필요한 상황이라 이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아니면 뉴욕과 필라델피아는 영원히 미스트 존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최악엔 히어로 레드몬이 튀어나와 주변 도시까지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싫든 좋든 미국은 앞으로 우리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진과 군인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우리도 미스트 존을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보스를 잡지 못하고 나오자 클린턴 대통령, 고어 부통령, 크리스 레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카터 헤이글 국방부 장관, 국가안보국 키스 알렉산더 국장, 중앙정보국 포터 고스 국장, 재난 안전청 그레그 크레이그 청장, 나이트사무국 존 파이크 국장 등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마 비둘기파인 사람들은 고생했다며 악수를 청해왔지만, 매파는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이번 일로 민주당은 타격이 엄청날 거예요.]
[다음번 대통령은 무조건 매파에서 나오겠네?]
[그렇겠죠. 미스트 존이 생긴 게 클린턴 대통령과 민주당의 잘못은 아니지만,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 생긴 일이니 책임을 피할 수 없죠.]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 우리를 적대시하겠지?]
[적대까진 아니라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겠죠.]
[싹을 자를까?]
[어떻게요?]
[미스트 존에서 얻는 검은 돌은 모두 미국에 던져 놓는 거야.]
[미국을 미스트 존의 나라로 만들려고 그러세요?]
[상대가 적이 되려 하면 적이 될 수 없게 싹을 잘라야지.]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사람이 적은 곳에 던져 놓으면 되잖아.]
[그래도 너무 사악한 짓이에요.]
[사악이 아니라 악랄해도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다면 해야지.]
육지에 있는 미스트 존은 총 10곳으로 미국에 모두 모아놓고 3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결계만 사냥해도 25명을 인공 각성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힘은 힘대로 빼놓고, 인공 각성 재료는 재료대로 빼먹는 일로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였다.
‘덤으로 군사기지 근처에 서식하는 엘리트 레드몬에 먹이면 군사력까지 왕창 주저앉힐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근사한 계획이 어디 있겠어?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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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