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0 코요테 =========================================================================
500.
“오빠! 이브가 돌아오고 있어요.”
구미호와 미스트 존 중앙으로 날아간 이브가 2시간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탐지거리가 30km인 구미호는 중간에서 헤어져 주변을 수색했고, 이브만 보스를 찾아 계속 직진했다.
시속 800km가 넘는 속도로 날아다니는 이브는 거리가 고작 100km에 불과한 중앙까지 갔다 오는데, 20분이면 충분했다.
2시간이나 걸렸다는 건 중앙에 보스가 없었다는 뜻으로 이브는 보스를 찾아 미스트 존을 돌아다녔다.
이브가 보스를 찾은 곳은 고층 빌딩이 가득한 뉴욕의 중심가 맨해튼이었다. 보스는 새끼 다섯 마리를 이끌고 아수라장이 된 시내를 돌아다니며 숨어 있던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몸길이가 3.5m래요. 그래서 보스가 맞는지 확인하느라 늦었대요.”
새끼이자 결계가 8.5m가 넘는데, 어미이자 보스인 코요테가 절반 크기도 안 된다는 건 하람과 혈풍처럼 자연에 맞게 몸을 최적화했다는 뜻이었다.
“맨해튼으로 가실 거예요?”
“도심에서 싸우는 건 너무 위험해.”
“그럼 뉴욕 서쪽 모리스 타운 아래 공원으로 유인해요. 뉴욕에서 좀 멀지만 넓은 잔디밭이라 싸우기는 이곳이 가장 적당해요.”
상아가 지도에서 짚어준 위치는 맨해튼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진 지점으로 좀 멀다는 게 흠이지만, 건물과 나무가 없어 보스를 상대하기엔 가장 좋은 곳이었다.
“이브와 혈풍은 놈을 유인해와. 정확히 두 시간 후 놈을 유인해오면 돼. 무리해서 싸우지 말고.”
“알았어.”
이브와 혈풍이 보스를 유인하기 위해 떠나자 아내들과 하람을 이끌고 모리스 타운으로 이동했다.
펜실베이니아에 생긴 미스트 존은 뉴욕, 필라델피아를 비롯해 뉴어크, 트렌턴, 베들레헴, 에디슨, 스크랜턴, 윌크스배리 등 수십 개의 도시를 집어삼켰다.
도시가 한두 개면 사람부터 구하겠지만, 수십 개의 도시에 사람들이 숨어 있어 보스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길만이 사람들을 구하는 길이었다.
“보스가 새끼 두 마리를 잃은 걸 알겠죠?”
“미스트 존은 놈의 영역이니 그렇겠지.”
“그러면 우리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새끼를 보낼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지.”
상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방 2km 지점에 검은 소용돌이가 생겼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있던 곳으로 혈풍이 끌고 온 새끼를 잡은 곳이었다.
소용돌이가 생긴 지 3초도 지나지 않아 새끼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놈들은 하람의 화염 폭풍에 재가 된 코요테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은 후 주변을 돌며 우리 흔적을 찾았다.
“잡을 거예요?”
“아니.”
보스에게 더는 경각심을 줘선 안 된다. 놈이 겁을 집어먹고 복잡한 도심에 숨거나 지하로 들어가면 아주 골치 아파진다.
보스는 몸길이가 3.5m밖에 안 돼 미로 같은 지하철과 좁은 하수도에도 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놈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상아의 탐지 스킬과 내 기감력으론 두꺼운 철근 콘크리트가 층층이 쌓인 뉴욕의 지하는 뚫을 수 없었다.
엘리트 레드몬이면 구미호를 보내 잡을 수도 있지만, B급 상급 히어로 레드몬을 상대하기엔 구미호도 역부족이었다.
“소희야! 히드라로 우리가 지나온 흔적을 모두 지워.”
“네!”
“하람아! 선두를 맡아.”
“알았어.”
상아, 소희와 함께 맨 뒤에 처져 히드라의 눈보라로 새끼 코요테에게 혼선을 주며 일행의 뒤를 따랐다.
냄새와 흔적을 따라 빠르게 쫓아오던 새끼 코요테들이 눈보라에 흔적을 놓치고 주변을 서성였다.
강한 바람에 냄새가 날아가고 눈에 흔적마저 사라지자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제자리만 맴돌았다.
커다란 덩치와 전투력은 A급 엘리트 히어로 레드몬이 맞았지만, 경험이 전혀 없어 작은 속임수에도 잘 속아 넘어갔다.
그래도 지능이 높아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따라올 수 있어 눈보라를 최대한 넓게 뿌려 주변 일대를 눈의 나라로 만들었다.
북동쪽으로 130km 떨어진 모리스 타운까지 가는 동안 중소도시 세 개와 작은 마을 다섯 곳을 지나왔다.
다 합치면 못해도 30만 명은 살았을 마을과 도시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부서진 건물과 자동차가 도시를 가득 메웠고, 거리 곳곳엔 뜯긴 팔다리와 잘린 머리, 부서진 내장 조각, 말라비틀어진 핏자국만 가득했다.
그 흔한 개와 고양이도 볼 수 없는 완벽한 유령도시로 끔찍한 일을 수없이 본 아내들도 겁이 나는지 으스스 몸을 떨어댔다.
“배가 고파서 그런 걸까?”
“글쎄.”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심하잖아. 내가 보기엔 원한 같아. 원한이 아니라면 이렇게 심하게 행동할 순 없어.”
“그럴 수도 있겠지.”
코요테는 매우 영리하고 재빠른 동물로 알래스카에서부터 코스타리카에 이르는 넓은 영역을 활동무대로 삼았다.
프레리도그, 토끼, 다람쥐, 쥐 등 소형 포유류와 곤충, 갑각류도 가리지 않고 먹는 코요테는 먹이가 귀한 가을과 겨울에는 과일과 채소도 먹었다.
늑대, 여우와 달리 사람이 놓은 덫과 독이 든 음식을 피해 다녔고, 새를 사냥할 때 죽은 척해서 속이기도 하는 등 매우 영리한 동물이었다.
환경적응력에 뛰어나 인간의 거주 지역 근처에도 잘 살았고, 번식력도 뛰어나 개와 생식을 통해 코요도그(coyodog)를 낳기도 했다.
이토록 총명한 코요테가 유해동물로 낙인찍힌 건 가축과 인간이 사냥할 동물을 마구 잡아먹었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서 비롯됐다.
설치류와 토끼를 잡아먹는 코요테가 인간의 가축을 잡아먹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로 영리한 녀석들은 사람을 공격하지도 않았다.
그런 코요테를 인간은 유해동물로 분류해 마구 죽였다. 특히 레드문이 뜨며 도심과 부도심 근처에 숨어든 코요테를 박멸했다.
어쩌면 보스는 인간에게 공격당했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거나, 부모가 참혹하게 죽는 모습을 목격한 새끼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을 먹이로 생각하지 않는 코요테가 집요하게 인간을 잡아먹을 일이 없었다.
“둘 중 어느 것이든 상관없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사람들이 저지른 일 때문에 생긴 일일수도 있잖아.”
“이미 그에 대한 대가를 치렀어. 그리고 그런 일은 미국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 대한민국과 나진시에서도 매일 반복되는 일이야. 레드문이 뜨는 순간 동물과 레드몬을 죽이는 일은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일이 됐어.”
인간의 잘못된 행동이 수백만 명의 죽음을 불렀다는 은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레드문과 함께 동물은 인간의 적이 됐다. 언제 레드몬으로 진화해 인간을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과 농장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물을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사람을 죽인 것도 죄가 안 되는 세상에서 동물을 죽인 걸 탓한 순 없잖아.”
“나도 누구를 탓하자는 건 아니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아 말한 것뿐이야.”
“레드몬이 없을 때도 세상은 미쳐 돌아갔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레드몬이 없을 때도 인간은 서로 죽고 죽였고, 레드몬이 생겨난 후에도 서로 죽고 죽였다.
공동의 적이 나타났지만, 이기적인 인간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
레드몬 때문에 그런 사실이 조금 묻힌 것뿐이지 미쳐 돌아가는 세상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약속한 2시간이 지나자 이브와 혈풍이 코요테를 몰아왔다. 그러나 보스는 보이지 않고, 새끼 8마리만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브가 다가가 새끼를 공격하자 보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꽁지를 말고 지하로 숨었어. 일부러 시간을 끌며 약한 척 행동했지만, 머리도 내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새끼들만 데려왔어.”
“맞대응도 한번 하지 않고 바로 숨었어?”
“응!”
“너도 공격에 가담했어?”
“아니.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어.”
“후유~”
가장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스는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면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숨었다.
우리는 상대가 맞대응을 피하고 숨으면 약하거나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해 상대를 우습게 봤다.
그러나 그건 매우 잘못된 생각으로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를 피하고 이길 수 있는 상대와 싸우는 건 아주 당연하고 총명한 행동이었다.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위의 부추김과 만용으로 덤벼드는 것은 우둔함의 극치로 죽음과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길 시고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했다.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 코요테는 영악하게 우리를 이길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뒷짐을 지고 보스를 끌어낼 방법을 생각하는 사이 하람과 혈풍, 이브, 구미호, 히드라, 현무, 설표, 딩고, 퓨마, 불곰이 새끼들을 모두 모두 처리했다.
새로운 먹이 출현에 반가워하며 달려든 새끼들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강력한 스킬에 3분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레드스톤과 각성의 씨앗을 빼내고 가죽을 벗긴 후 하람의 화염 폭풍으로 살과 뼈를 깨끗이 태워버렸다.
본스틸 값만 해도 엄청났지만, 사람의 피와 고기로 살을 찌우고 뼈를 튼튼히 한 놈들의 본스틸을 세상에 남겨두긴 싫었다.
놈을 견제하는 사이 뉴욕과 주변 도시에 숨은 사람들부터 구출하기로 했다. 상급 레드몬도 먹지 않곤 살 수 없었다.
현재 놈의 식량은 숨어 있는 사람으로 이들을 구출하는 것이 놈을 불러내는 길이었다.
맨해튼 지하에 숨은 보스를 감시하며 하루 동안 뉴욕과 인근 도시에서 1만 1,120명을 구출했다.
모두 피폐한 모습으로 먹지 못해 야윈 것도 있지만, 극심한 공포에 잠을 이루지 못해 상태가 매우 나빴다.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는 동안 아리가 먼저 나가 클린턴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우리 계획을 설명했다.
뉴욕과 인근 도시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1만 명을 간신히 넘는다는 말에 클린턴 대통령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더군다나 군대와 능력자는 살아남은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충격이 심했는지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보스가 지하에 숨어 언제 일이 마무리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 결정타였는지, 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다친 사람들이 먹고 마실 음식과 음료수, 이들을 돌볼 의료진과 군인들 그리고 차량을 준비해주세요.”
“걸려서 데리고 나오는 게 빠르지 않겠습니까?”
“미스트 존이 열리는 시간은 고작 10분이에요. 모두 심한 탈진 상태라 걸어서 나오면 백 명도 빠져나올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