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4 미스트 존 공략 =========================================================================
494.
다른 사람도 아닌 아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뭐라 할만이 없었다. 이래서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것이었다.
한번 정해진 이미지는 여간해선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과거를 청산하고 착하게 살려 노력해도 예전 이미지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보단 예전의 행동을 잊지 않고 가자미눈을 뜨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나 역시 이런 경우로 여자를 힐끔 쳐다만 봐도 오해를 받았다. 그래서 사회 초년병에게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회사에 입사한 첫날 보여준 이미지가 평생 따라다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대인 관계가 좋을 순 없었다.
낯가림이 심하거나, 말주변이 없어 대인 관계가 서툰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들 멋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현대 사회에선 이런 것도 흠이라며 트집을 잡았다.
사람마다 성격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선후배란 이상한 계급이 존재해 선배가 후배를 무시하고 막 대해도 된다는 잘못된 관행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이런 관행은 군대, 경찰, 운동선수가 특히 심했다.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대 학생들이 군기를 잡는다고 후배를 두들겨 패고 얼차려를 시켰고, 군대에 몇 달 일찍 입대했다는 이유만으로 후임을 괴롭혔다.
같이 땀 흘리며 고생하는데,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후배에게 잡일을 시키고 운동을 방해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자연스럽게 행해졌다.
“마음에 있어? 없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묻는 말이나 답해.”
“내 마음이 중요한가? 이브 마음이 중요하지.”
“마음에 있다는 소리네?”
“.......”
미치코의 죽음에 오랫동안 아파하던 하람이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죽은 미치코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그게 삶이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산다면 세상은 슬픔에 빠져 인류는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아정이는 어쩌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나 때문에 상처받을 수도 있는데.”
“지랄 옆차기 하는 소리 하고 있네. 정신 차려 자식아!”
“갑자기 정신 차리라니 무슨 말이야?”
“아정 처제! 너에게 마음 떠난 지 오래됐어. 더 정확히 말하면 관심도 없어. 어쩌면 너란 존재 자체를 기억 못 할 수도 있어.”
“뭐라고?”
“지금 처제 한석규, 정우성, 류시원에 빠져 종일 방송국에서 살아.”
“저.저.정말이야?”
“그래. 바보야! 처제는 너를 사랑한 게 아니라 호기심에 잠시 관심을 둔 것뿐이야. 그것도 모르고 처제가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바보 팔푼이 같은 자식!”
“.......”
충격이 많이 컸는지 하람의 눈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치코만 사랑한 하람은 순정파라 사랑이 옮겨간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한번 사랑하면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믿는 하람에게 처제의 행동은 충격을 넘어서 세상의 종말과도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하람이 처제를 사랑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놈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람이 처제를 생각한 건 처제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이 돼서 그런 것이지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정 처제는 깨끗이 잊고 이브하고 잘해봐. 상아가 다리 놔줄 거야.”
“죽은 르윈틴 박사를 잊지도 못하는데, 내가 눈에 들어오겠어?”
“시간을 갖고 천천히 다가가면 돼. 그러면 네 마음이 풀어진 것처럼 이브의 마음도 풀릴 거야.”
“알았어.”
자식을 잃는 고통 다음으로 배우자를 잃는 고통이 크다고 한다. 하람과 이브는 그런 큰 고통을 당했다. 그것도 타인의 손에 참혹하게 잃으며 고통이 배가 됐다.
아파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나이 들어 죽어도 상처가 큰데, 배우자가 살해됐으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치도록 아프겠지만,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포용력이 넓은 하람과 성격도 잘 맞아 연결되면 평생 위로하며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니야? 그러면 하람만 들쑤셔 놓는꼴인데... 이러다 뺨 석 대 맞는 거 아니야?’
다음 날 아침 하람의 제안대로 동쪽과 서쪽에서 화염 폭풍과 지옥의 불길로 어린 버드나무를 공격했다.
하람과 혈풍이 양쪽에서 광역 공격 스킬로 공격하는 사이 이브와 소환수들은 반씩 갈라져 기회를 엿봤다.
밤새 에너지를 보충한 버드나무들은 완벽한 방어준비를 맞췄는지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하람과 혈풍의 강력한 화염 공격에 줄기들이 터져나가자 준비한 힘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까맣게 타죽을 위기에 처했다.
화염 폭풍과 지옥의 불길은 파도처럼 퍼져나가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스킬로 화염탄처럼 가지를 폭발해 막을 수 없었다.
새끼들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어미인 보스의 가지가 우산처럼 넓게 펴지며 화염을 가로막았다.
“펑펑펑~”
어제 구미호의 레이저를 흡수한 것처럼 화염 폭풍과 지옥의 불길을 모두 흡수해 에너지로 전환할 줄 알았다.
그러나 준비가 안 됐는지 30%만 흡수하고, 나머지 70%는 새끼들과 마찬가지로 가지를 폭발시켜 하람과 혈풍의 공격을 막았다.
“30%밖에 흡수하지 못했지만, 땅에서 흡수한 에너지와 합치면 하람 오빠와 혈풍 오빠의 공격은 무난히 막아낼 수 있을 거예요.”
“땅속에 생명력이 무한대로 있다면 그렇겠지.”
“공기 중에서도 에너지를 보충하잖아요.”
상아의 말처럼 버드나무 보스는 땅과 하늘에서 동시에 에너지를 흡수했다. 한쪽만 흡수해도 방어막을 뚫기 어려운데, 양쪽에서 에너지를 동시에 흡수하고 있어 하람과 혈풍만으론 역부족이었다.
그린란드의 미스트 존 보스는 완벽한 방어형 레드몬으로 공격력은 하람에 미치지 못해도 방어력은 훨씬 뛰어났다.
창과 방패를 뜻하는 모순처럼 둘은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어 상대를 죽일 수도 죽을 수도 없었다.
[파멸의 창으로 보스를 공격할 거야. 놈의 시선을 최대한 끌어.]
[알았어.]
하람과 혈풍에게 계속 공격하라는 텔레파시를 보내고 파멸의 창을 소환했다. 생명의 나무 안은 치료와 정화 효과가 3배나 뛰어나 소모된 포스가 빠르게 차올랐다.
그러나 파멸의 창을 소환하면 피지컬 포스와 멘탈포스를 합쳐 70%가 소모돼 인위적인 생명력을 보충하는 방법 이외엔 답이 없었다.
아영이 4단계 정화 스킬로 피로 물질과 활력을 보충하고, B급 엘리트 레드스톤으로 소모된 포스를 보충했다.
그사이 어미의 보호 아래 기운을 차린 어린 버드나무들이 나뭇잎으로 하람과 혈풍을 공격했다.
“슉슉슉슉슉~”
하지만 화염 폭풍과 지옥의 불길에 나뭇잎이 재가 되어 사라지며 아까운 포스만 소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린 버드나무들은 장난을 치듯 계속 나뭇잎을 뿌려댔다. 한두 개도 아니고 한 그루당 한 번에 수백 개씩 나뭇잎을 쏘아내고 사라진 나뭇잎을 재생하자 포스 소모가 극심했다.
부모의 후광 아래 어려움이라곤 모르고 무럭무럭 자란 새끼들은 전투경험이 거의 없었다.
어제 중급 레드몬에 불과한 목각인형을 무더기로 만든 것도, 쓸데없이 나뭇잎으로 공격해 포스를 소모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놈들은 포스가 모자라면 어미에게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행동은 어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새끼들이 포스를 소비해도 어미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새끼들에게 포스를 계속 나눠줬다.
“마마보이는 사람한테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레드몬에도 있었네.”
“마마보이가 나오는 건 지능적인 문제 같아요.”
“지능이 높으면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가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야?”
“그렇죠. 지능이 낮으면 본능으로 자식을 키워 마마보이가 나올 확률이 낮지만, 지능이 높으면 생각도 많고 다양해져 아이들을 망치는 일도 생기겠죠.”
상아의 말처럼 동물과 레드몬도 지능이 높으면 인간처럼 본능보단 이성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확률이 컸다.
문제는 바른 이성으로 키우면 훌륭한 아이로 성장하지만, 반대로 이성이 지나쳐 아이를 과잉보호하며 망칠 수도 있었다.
좋은 것만 입히고,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라 과잉보호를 탓할 순 없지만,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면 힘들고 어려운 일도 체험하게 해야 했다.
그렇다고 자식을 강하게 키운다고 절벽에서 떨어뜨리라는 말이 아니었다. 적어도 세상이 어떤 곳인지는 제대로 알려줘야 아이가 바르게 자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우리 애들도 저렇게 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아니면 기분 좋은 말만 할까요?”
“이왕이면 입에 가장 쓴 거로 부탁해.”
“가장 이성적인 소연 언니도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인데, 다른 언니들은 오죽하겠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환경이 지나치게 좋은 것도 아이들을 망칠 수 있는 요인이에요.”
“부자인 게 문제다?”
“네! 금수저, 다이아몬드수저보다 더한 세계 최고 갑부의 수저를 물고 태어나 남보다 두 배, 세 배 혹독하게 교육해도 제대로 된 사람 만들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100%는 아니지만 첫째가 유독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많았다. 이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와 첫째에 대한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하루 이틀 만에 생긴 현상이 아니라서 쉽게 고칠 수도 없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상아의 말처럼 세계 최고 갑부의 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었다.
이러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노력이 남들보다 수백 배에 달하지 않으면 아이를 망치게 된다.
부모가 혹독하게 아이를 교육해 바른길로 이끌려 노력해도 주변에서 아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음식에 더러운 파리가 꼬이듯 한 몫 챙기려는 기생충들이 달라붙어 아이를 못된 길로 인도했다.
‘외딴 섬에 가둬놓고 키워야 하나? 그건 사회성이 결여돼서 안 돼. 그럼 아기 때부터 가난한 집에 보내 위탁 교육을 할까? 그건 또 아내들이 애를 떨어뜨려 놓는다고 가만있지 않겠지? 젠장! 이러다가 내가 가장 혐오하는 행동을 하는 놈을 자식으로 두게 될 수도 있겠네?’
미련한 자식들의 행동에 보스가 에너지를 소모하는 걸 기감으로 확인하며 타이밍을 노렸다.
보스의 새끼들이 허튼짓만 하지 않으면 땅과 하늘 그리고 화염 공격에서 흡수한 에너지로 하람과 혈풍의 공격을 무난히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새끼들이 장난치듯 나뭇잎을 쏘아대고, 어설프게 어미를 돕는다고 줄기를 뻗어내는 통에 에너지가 빠르게 소모되며 궁지에 몰렸다.
“위이잉~”
보스가 몸을 떨자 가벼운 울림과 함께 어린 버드나무의 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빛이 점점 강해지자 10초 후 열 그루 중 다섯 그루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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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