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7 멸문(滅門) =========================================================================
487.
태어날 아이가 능력자가 아니란 말에 소연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연이 아기가 능력자이길 바라는 건 아이의 건강 때문이었다.
아이가 돈을 많이 벌기를 바라서도 아니었고, 나처럼 유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서도 아니었고,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되기를 바라서도 아니었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나이가 들어서도 젊고 오래 살기는 바라는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었다.
소연이 능력자 아이를 바라는 걸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이가 건강하길 원하는 건 세상 모든 엄마가 바라는 것으로 소연 혼자만의 욕심은 아니었다.
아이가 밤새 감기로 아프면 엄마의 마음은 찢어졌고, 아이가 넘어지면 엄마의 무릎이 부서질 듯 아팠다.
세상 어느 엄마가 아이가 아프기를 바라겠는가? 엄마들이 공부 공부 노래를 부르지만, 가장 첫째는 건강이었다.
기억 흡수를 통해 레드몬에 관한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자 각성과 진화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씩 풀렸다.
이를 토대로 인간이 잠능자로 각성하는 이유도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됐다. 능력자는 엄마가 아기를 가진 순간 결정되는 것으로, 후천적인 노력으로 각성하는 건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로 성공확률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동물은 목숨을 건 끊임없는 투쟁과 대자연의 기운을 인간보다 쉽게 받아들여 부모가 레드몬이 아니어도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쉽게 레드몬으로 각성했다.
사람도 대자연에서 숨 쉬며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 동물처럼 쉽게 각성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험난한 자연 속에서 대자연을 이겨내며 생식한다는 건 일반인에겐 꿈 같은 얘기였다.
각성과 진화에 관한 구조를 이해하자 잠능자로 각성하기 전인 아이가 능력자가 될 재목인지 아닌지도 기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런 능력을 사장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서 미래 보육원 아이 중에서 능력자가 될 아이들을 찾아내 따로 모아 체계적인 교육 중이었다.
마음 같아선 전 세계를 돌며 아이들을 선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로스차일드가 감별기를 이용해 잠능자를 쓸어 담은 비열한 짓이라 깨끗이 포기했다.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주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능력이 발현돼 각자의 길을 갈 인재를 중간에 가로채는 것으로, 야구선수와 축구선수처럼 재목이 될 아이들을 발굴해 육성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차후 인공 각성을 통해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면 돼 남의 떡에 욕심을 낼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소수의 강력한 능력자를 보유하는 것이 머릿수만 늘리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은하 언니 아이도 능력자가 아니야?”
“응!”
“하아~ 언니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거야?”
“아니! 우리 셋 다 문제없어.”
“그런데 왜 둘 다 능력자 아니야?”
“동물은 100% 유전이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해서 그래.”
“왜?”
“왜 그런지 나도 몰라. 인간이 너무 오랜 세월 지구를 지배해 신이 배가 아파 장난치나 보지.”
“무조건 확률이야?”
“응,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 부모가 둘 다 능력자면 확률이 100% 올라가. 0.1%에서 0.2%로 올라간다는 게 문제지만.”
“결국, 나이트 인공배양 연구소가 했던 것처럼 많은 아이를 생산하는 길만이 많은 능력자를 양산하는 방법이네?”
“그렇지.”
“그럼 중국과 인도는 뭐야? 인구가 10억이 넘는데, 능력자 수는 인구수와 비교하면 형편없이 적잖아?”
“유전적인 문제겠지. 아니면 아까 말한 것처럼 신이 질투했거나.”
“같은 사람인데 그럴 수 있나?”
“소연아! 나 유전공학자 아니야. 나도 아는 게 거의 없어.”
“테슬라 박사의 기억을 흡수했는데 그걸 몰라?”
“기억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별개라고 말했잖아. 나 머리 나쁘다고~”
“혹시... 아빠 머리가 나빠서 아이들이 평범해진 게 아닐까?”
“컥!”
소연의 말에 뒷목 잡고 쓰러질 뻔했다. 가장 믿었던 소연에게 가장 심한 말을 듣자 충격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다비드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마음! 하아~ 억장이 무너졌겠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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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하자 필립 로스차일드가 직접 제니퍼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창구가 단일화돼 있을 때 계약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브를 처리하는 대가로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주식 전부와 땅을 요구했다.
너무도 엄청난 요구에 필립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5분쯤 지나자 정신을 차렸는지 잠시 후 다시 통화하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잠시 후 전화하겠다는 필립은 하루가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성질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건 필립이라 우리가 몸이 달아 매달릴 이유가 없어 전화 오기를 기다렸다.
3일째 되는 날 새벽부터 전화를 걸어온 필립은 너무 과한 요구라며 금액을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배짱장사라 싫으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전화를 끊자 곧바로 전화를 걸어 제니퍼를 괴롭혔다.
“남자 새끼가 열라 쪼잔하네.”
“쪼잔하다고 말하긴 그렇죠. 돈이 얼만데 그래요.”
“죽고 나면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다 소용없어.”
“그렇긴 하죠. 싸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제니퍼의 말처럼 억만금이 있어도 죽으면 무일푼이었다. 인간에게 단 하나 공평한 것이 있다면 그건 죽어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부의 승계를 막는 절대적 평등원칙으로 죽어야 이루어진다는 게 흠이지만, 이것만큼 확실하게 지켜지는 것도 없었다.
법이 이렇게 공평하게 지켜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법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몇 년 이하 징역, 얼마 이하의 벌금, 기소유예 처분이었다.
동일한 범죄를 저질러도 돈과 권력이 있는 놈에겐 최저 형량 또는 기소유예 처분을,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에겐 최고 형량을 때린다.
엉터리로 법을 만들어 놓고 재판관의 재량에 따라 심판했다는 개소리나 떠들어댔고, 심지어 형량을 다 채우지도 않고 가석방, 특별 사면 등으로 풀려났다.
이러니 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역사적인 말을 남긴 것이다.
법률소비자연대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 정도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에 동의했다.
이건 대한민국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10대 재벌 총수 7명이 죄를 저질러 총 2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평균 9개월 만에 사면받고 풀려났다.
이렇게 개판인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죽음만이라도 공평하다는 것이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됐다.
‘그러고 보니 나도 재벌이네. 이런...’
“우리 요구가 과한가?”
“많이 과하죠. 뉴욕 연방준비은행 주식만 해도 몇 개 나라는 사고도 남을 거예요.”
“조금 깎아줄까?”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필립 목숨 하나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거예요.”
“얼마나?”
“땅은 포기하고 주식만 받죠. 목적이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잖아요. 뉴욕 연방준비은행 주식이면 충분해요.”
“알았어. 잘해봐.”
“네!”
존 록펠러 회장의 상술을 물려받은 제니퍼는 조금씩 조건을 완화하며 결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주식을 손에 넣었다.
급할 게 없는 제니퍼와 1분 1초가 급한 필립의 승부는 시작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른 대안이 있다면 필립이 승자가 될 수도 있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마저 필립의 편이 아니라서 이길 수가 없었다.
[주식부터 넘기세요.]
[이브를 처리하면 바로 넘겨드리겠습니다.]
[주식을 넘기기 전에는 안 돼요.]
[저도 믿을 수 없어 그렇게는 안 됩니다.]
[믿지 못하면, 다른 곳을 알아보세요.]
[그럴 수 없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도와주십시오.]
[미래 레드몬 공대는 지금껏 약속을 어긴 적이 없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우리가 약속하고 지키지 않은 일이 있는지.]
[저도 압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화급을 다투는 일입니다. 늦장을 부리면 목숨도 잃고 주식까지 날리게 됩니다.]
우리가 늦장을 부릴 거라는 걸 알기라도 하듯 필립은 이브를 처리하면 주식을 넘기겠다고 버텼다.
[우리가 맡은 일 중 화급하지 않은 일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어요. 사냥을 의뢰한 나라 전부 최대한 빨리 레드몬을 잡아달라고 성화였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브가 살아있는 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레드몬 사냥의뢰는 어디나 마찬가지예요. 이브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이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레드몬이 셀 수 없이 많아요. 이브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계속 그럴 거면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전화 안 받을 거니까.]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으니까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이렇게 신뢰가 없어서 무슨 계약을 하겠다고...]
[후유~ 알겠습니다. 제니퍼님 말대로 하겠습니다.]
[정말이죠? 두말하지 않는 거죠?]
[대신 공증인을 세워주십시오.]
[그거야 당연하죠. 클린턴 대통령과 옐친 대통령을 공증인으로 세울게요. 이 정도면 만족하시죠?]
[그분은 박지홍 회장님과 친한 사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젠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도 믿지 못하는 거예요? 마약왕을 증인으로 세워야 믿겠어요?]
[아.아.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없다 보니 말이 헛나왔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정말 마지막이에요. 허튼 소리 한 번만 더하면 계약이고 뭐고 다 끝이에요.]
[알겠습니다.]
[계약서 보낼 테니 서명하고 주식과 함께 보내세요. 주식이 도착하면 이브를 처리해드릴게요. 이제 됐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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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