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6 멸문(滅門) =========================================================================
486. 멸문(滅門)
“완전히 예상 밖이네. 그렇지?”
“그러게요. 가문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다비드 회장이 가문을 공격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만큼 상처가 컸다는 거겠지.”
“그 많은 사람이 등을 돌렸으니 오죽하겠어요.”
“이래서 사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고 하는 거야.”
“그런 말도 있어요?”
“없으면 이 기회에 하나 만들어. 사상가와 철학자만 멋진 말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
“와우~ 조만간 명언집 내시겠는데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앞으로 내가 하는 말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받아 적어. 자서전 낼 거니까. 하나라도 빠뜨리면 볼기짝 백대 맞을 줄 알아. 알았어?”
“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당해하는 은하를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강승원 국장이 가져온 자료를 뒤적였다.
필립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새로운 수장이 된 지 삼일 후 다비드의 진정한 힘이자 마지막 남은 힘인 쿠삭 형제와 쌍두독수리 공대가 낭트를 공격했다.
루아르아틀랑티크 주의 주도이자 프랑스에서 6번째로 큰 도시 낭트는 필립 로스차일드 회장의 집이자 회사가 몰려 있는 본거지로 며칠 전 성대한 수장 등극식이 열린 도시였다.
달도 없는 어두운 밤 낭트에 은밀히 침투한 쌍두독수리 공대는 가슴에 쌓인 울분을 토해내듯 필립의 추종자인 사울공대와 바티칸에서 파견한 인퀴지터 소속 팔라딘들을 도살했다.
순식간에 밀려버린 사울 공대와 팔라딘들은 변변히 저항도 못하고 도살장에 끌려간 개돼지처럼 처참하게 죽었다.
사울 공대와 팔라딘들이 일방적으로 밀린 건 기습을 당한 것도 이유지만, 사울 공대의 상급 멘탈리스트 마리 라포레가 존 쿠삭, 마이클 쿠삭 형제에게 순식간에 목숨을 잃으며 싸움의 추가 쌍두독수리 공대로 기울어져서였다.
인퀴지터의 대장이자 상급 팔라딘인 디오클레스가 상급 멘탈리스트 루이즈 보르고앙의 머리를 박살내며 분전했다.
그러나 마리 라포레를 처리한 쿠삭 형제의 화려한 합격술에 허리가 잘리며 필립을 지키던 사울 공대원 4,500명과 팔라딘 300명 전원이 사망했다.
그러나 인원차가 16배에 달해 쌍두독수리 공대도 200명이 넘게 죽었고, 살아남은 100여 명도 심한 부상을 입어 거동조차 여의치 않았다.
더군다나 부하들이 죽음으로 시간을 번 사이 필립이 비밀통로로 달아나 낭트에 온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쿠삭 형제는?”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살아 돌아간 것 같아요.”
“힐러도?”
“아니요. 프랑수아 아르디는 몸이 두 쪽 난 채로 발견됐어요.”
“양패구상이네?”
“그렇죠. 둘 다 핵심전력을 거의 다 잃은 거죠.”
“로스차일드 가문에 남은 능력자가 몇이나 돼?”
“2,000명이 안 될 거예요. 수준도 대부분 하급이고요.”
“천하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완전히 개털 됐네.”
“그래도 잠능자가 많아 10년이면 다시 예전 모습을 찾을 거예요. 이브가 살려준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얘기지만요.”
“다비드가 떠났는데, 필립을 왜 공격해? 이브의 원수는 다비드잖아.”
“그건 지홍씨는 여자를 잘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마누라가 몇 명인데 여자를 몰라? 큰일 날 소리하고 있네.”
“보여주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여자는 숨기고 있는 게 훨씬 많아요.”
“그럼 은하도 내게 숨기는 게 있겠네?”
“당연하죠!”
“이런...”
여자는 알다가도 모를 존재라고 마음을 송두리째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 다르고, 점심 다르고, 저녁 다르다고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성격이 변해 내 마누라라가 맞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
“이브는 처음부터 다비드 회장만 죽일 생각이 아니었을 거예요. 로스차일드 가문에 소속된 사람은 모두 죽일 생각이었을 거예요.”
“필립이 수장 자리에 앉을 때 나타나지 않았잖아.”
“제가 이브라도 그랬을 거라는 말이에요.”
“왜?”
“복수는 잔인할수록 달콤하니까요.”
“무슨 소리야?”
“가족끼리 죽이는 모습을 구경하면 통쾌하잖아요.”
“이브가 다비드 회장을 충동질했다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를 위해 저라면 그랬을 거예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하더니 정말 무섭다. 죽이려면 그냥 죽이지 가족들끼리 상잔하게 이간책까지 쓴 거야?”
“저라면 그랬을 거란 얘기에요. 이브가 그랬다는 보장은 없죠.”
“은하야!”
“네?”
“살다가 내가 실수하는 일 있으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말해. 사과하고 바로 고칠게. 알았지? 나 미워하면 안 돼!”
“제가 무서우세요?”
“응! 열라 무서워. 떨리는 거 안 보여?”
“호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 은하의 모습에서 사악함이 물씬 풍겼다.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온몸의 털이 삐죽삐죽 곤두섰다.
‘빨리 미스트 존 공략해야지. 괜찮다고 말하지만 분명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을 거야. 앙심품기 전에 서둘러야겠어. 으으으으~ 무섭다.’
은하의 예상대로 낭트가 공격받은 지 3일 후 이스라엘에 숨겨둔 잠능자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몽펠리에가 공격받자 다비드 회장이 급히 이집트와 루마니아로 빼돌렸던 잠능자들로, 필립이 수장이 되자 아이들을 관리하던 교관들이 필립에 붙으며 이스라엘로 모아 훈련 중이었다.
잠능자를 모두 죽인 이브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로 날아가 벤저민과 측근들도 모두 죽였다.
벤저민의 가족과 측근은 물론 벤저민이 머무는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까지 한 명도 남김없이 심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났다.
이러자 필립과 가문의 원로들은 이브가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은 한 명도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겁에 질린 필립과 원로들은 유럽에 남아 있으면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미국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이브가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이 탄 비행기와 배를 하나도 빠짐없이 공격하겠다고 신문과 TV에 짧은 영상을 보내 특보로 전달하자 항공사와 선주들이 기겁해 이들의 승선을 거부했다.
평생 로스차일드란 이름으로 호의호식하던 이들은 유럽을 빠져나갈 수도 없었고, 머무를 호텔과 집도 없이 눈에 띄지 않는 허름한 모텔과 농가에 숨어야 했다.
그러나 귀신같이 이들의 소재를 파악한 이브는 밤마다 소리 없이 날아와 심장에 구멍을 뚫어 놓고 사라졌다.
“오빠!”
“왜?”
“클린턴 대통령이 이브를 처리해달라고 요청해 왔어요.”
“미국이 왜 이브를 처리해 달라는 거야?”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 이유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뉴욕 연방준비은행 대주주라서 그럴 거예요.”
“필립이 압력을 행사한 거야?”
“그렇죠.”
“해산일이 얼마 남지 않아 집을 비울 수 없다고 전해.”
“정말 그렇게 전해요?”
“응!”
“미국 대통령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빠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대박~”
“흐흐흐흐~”
배가 남산만큼 부른 한숙을 대신해 대외소통창구를 맡은 제니퍼가 입이 찢어질 만큼 벌어져 서재를 나갔다.
필립 로스차일드와 다비드 로스차일드가 죽기 전엔 절대 이브를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난번 은하와 토의한 대로 둘 중 하나라도 살아남으면 구심점이 사라지지 않아 로스차일드 가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이브를 처리하는 대가도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을 요구할 계획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보유한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주식 전부와 유럽, 미국의 토지 전체를 넘겨받는 조건이 아니면 이브를 처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처리도 만나보고 죽일지 말지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은하의 말처럼 이브가 괴물이 아닌 인간의 인성을 갖고 있다면 하람과 혈풍처럼 든든한 조력자로 삼아 미스트 존 공략에 활용할 생각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를 데리고 있다고 욕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건 로스차일드 가문과 이브의 문제이지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었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신분을 세탁해 이브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게 할 생각이었다.
그게 이브에게 이로웠다. 이브가 인간이 아닌 괴물로 산다면 이브로 계속 살아도 되지만,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 사람들이 모르는 모습으로 사는 게 새롭게 인생을 출발할 수 있었다.
“소연아! 많이 힘들지?”
“아니! 괜찮아.”
“몸도 무겁고, 아기가 계속 배를 차 아프다고 했잖아?”
“아픈 정도는 아니야. 잘 때 차면 깜짝 놀라서 그렇지.”
“그럼 다행이고. 또 불편한 곳은 없어?”
“없어.”
해산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소연과 한숙은 배가 남산만큼 불러 걸어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능력자라 아프고 불편한 곳은 없었고, 잠도 잘 자고, 먹기도 잘 먹었다. 뱃속 아기도 별 탈 없이 잘 자라 걱정이 없었다.
“우리 아기 능력자야?”
“궁금해?”
“응!”
“궁금해도 참아. 열 살 넘어야 알 수 있어.”
“거짓말하지 말고 알려줘.”
“거짓말 아닌데.”
“지홍아! 내가 너 거짓말하는 거 모른다고 생각해? 나는 네 기분이 어떤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 너도 알고 있잖아.”
“그렇게 속속들이 알면 좋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속일 생각이 없으니까 기분 나쁠 것도 없어.”
독심술에 능통한 소연은 말투 하나, 작은 움직임 하나만 봐도 내 기분이 어떤지 속속들이 꿰뚫어 속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소연을 속일 생각도 없었다. 주머니를 따로 찰 일도 없고, 아내들 몰래 바람피울 일도 없으니 속일 일이 없었다.
“아기가 능력자인 게 그렇게 중요해?”
“우리 아이가 위험한 레드몬 사냥을 하는 건 싫지만,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튼튼하게 오래 살려면 능력자라야 하고.”
“능력자가 아니어도 상관없잖아. 인공 각성시키면 되는데.”
“인공 각성은 성인이 되기 전엔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럼 자라는 동안은 많이 아파야 한다는 뜻이잖아.”
“잠능자도 각성하기 전엔 일반인과 똑같아서 감기도 걸리고 아프기도 하잖아.”
“알아. 그래도 우리 아이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좋은 거 많이 먹이면 잔병치레는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능력자가 아니구나? 그렇지?”
“응! 아니야!”
============================ 작품 후기 ============================
사과말씀 드립니다.
낮에 잘못 올린 부분은 수정이 안 된 초고로 부득이하게 내리고 다시 수정해 올립니다.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능력이 없어 하루 세 편은 어렵습니다. ;;;
신작 구상을 마무리 중이라 하루 두 편도 버겁습니다. ;;;
죄송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