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1 전쟁 =========================================================================
481.
“이렇게 대놓고 감시하는데, 몰래 빠져나갈 수 있어?”
“재운 다음 암시 걸어놓고 갔다 오면 되지.”
“그러다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데, 걸려도 어쩔 수 없지.”
“코르시카 섬을 공격하는 순간 전쟁이 시작되는 거지?”
“그렇지.”
“그럼 죽이는 게 깔끔하겠다. 전쟁인데 살려둘 이유가 없잖아?”
“우리를 의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살려둬야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고 이브를 만난 적도 없는 우리를 의심하는데, 퍽이나 그렇겠다.”
은비 말처럼 키메라 생산시설을 공격하는 순간 로스차일드 가문과 전쟁이 시작된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키메라 생산시설을 없애도 다비드 회장은 무조건 우리를 의심하고 범인으로 지목할 것이다.
감시의 눈이 늘어난 순간 다비드 회장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이브와 관련이 없다는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우리를 범인으로 확신한 이상 절대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우리가 해외 원정을 시작한 순간 전쟁은 시작됐다.
우리 뜻과는 상관없이 로스차일드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본 순간 전쟁은 시작됐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고, 물러선다고 끝날 전쟁도 아니었다. 둘 중 하나가 죽어 영원히 사라져야 끝날 전쟁이었다.
1998년 5월 11일
이집트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B급 엘리트 레드몬 뿔살무사를 사냥하고, 알제리의 수도이자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알제(Alger)로 날아갔다.
“몇 시 도착이야?”
“저녁 10시쯤 도착할 거야. 몇 시에 출발할 거야?”
“새벽 1시.”
“알았어. 준비해 놓을게.”
산달이 7월이라 배가 점점 불러오는데도 소연은 중요한 일에 빠지면 안 된다고 기어코 원정에 따라나섰다.
배가 불러오며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 텐데, 자기 몸은 돌보지도 않고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직접 챙겨줬다.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라는 말 한마디 불안한 마음을 달래준 소연이 씽긋 웃어주곤 장비를 점검하러 화물칸으로 내려갔다.
큰일부터 작은 일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살뜰히 챙기는 소연에게 정말 미안했다.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평생 사랑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산더미 같은 일과 줄어들지 않는 걱정만 계속 안겨줬다.
‘정말 미안하다! 너에겐 뭐라 할 말이 없다. 후유~’
“지홍씨!”
“응!”
“프랑스 몽펠리에와 보르도 외곽에 있는 나이트 훈련소가 공격받았어요.”
잠시 감상에 빠져있는 사이 헐레벌떡 뛰어온 은하가 습격 소식을 알려줬다. 프랑스 남부 에로 주의 중심 도시 몽펠리에(Montpellier)는 프랑스에서 여덟 번째로 큰 도시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잠능자를 훈련시키는 나이트 훈련소가 있다.
보르도(Bordeaux)는 포도주로 유명한 프랑스 남서부 항구 도시이자 아키텐 주의 주도로 이곳에도 역시 나이트 훈련소가 있다.
나이트 훈련소는 프랑스에 다섯 곳, 스페인·이탈리아·벨기에·스위스에 각각 한 곳,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알제리·모로코에 각각 한 곳씩 총 열두 곳이 있었다.
인원은 대략 4만 명 정도로 정신교육과 체력훈련을 통해 로스차일드 가문의 충복으로 거듭나는 곳이었다.
“언제 공격받았어?”
“2시간 전에요.”
“한꺼번에 공격받은 거야?”
“아니요. 몽펠리에가 공격받은 지 1시간 후 보르도가 공격받았어요.”
“이브 혼자 공격한 거야?”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요.”
“혼자 했다면 1시간 만에 380㎞를 이동한 건데... 뭘 타고 이동했어?”
“인근 주민들의 진술에 따르면 폭발음만 들었을 뿐 헬기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했어요. 동력형 행글라이더는 속도가 느려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고, 경비행기도 뜨고 내린 기록이 없어요.”
“날아서 이동했다는 거야?”
“아프리카에서 베른까지 이동한 흔적도 찾지 못했고, 연구소를 파괴하고 사라졌을 때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했어요. 이 때문에 우리가 의심받았죠. 모기 레드몬의 유전자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 만큼 써커처럼 날개가 있을 수도 있어요.”
“날개라... 피해규모는 얼마나 되는데?”
“프랑스 경찰이 상부에 보고한 무전 내용에 따르면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어요. 두 곳 모두 건물도 남김없이 모두 파괴됐고요. 잠능자와 교관, 직원들의 수를 계산하면 적어도 만 명 이상은 죽었을 거예요.”
“어린아이들까지 다 죽인 거야?”
“네!”
“인정머리 없네.”
은하의 추리처럼 이브는 날개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날 수 있는 튼튼한 날개가 분명했다.
400km를 1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써커의 얇은 잠자리 날개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바람도 해안에서 육지로 강하게 불어 약한 날개로는 바람을 뚫고 날아갈 수도 없다.
써커는 기동력이 뛰어나지만, 날개가 매우 부실해 체공시간이 10~15분 사이로 요코와 쇼타도 공중에 1시간을 머물지 못했다.
“날짜 기가 막히게 골랐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왜 하필 오늘이야? 시작부터 안 맞아. 악연이 분명해!”
“어떻게 하실 거예요?”
“흐음...”
이번 기회가 아니면 하반기 원정까지 최소 4~5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이면 신형 키메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중국과 일본처럼 거리가 가까우면 돌아갔다가 며칠 후 잠잠해지면 다시 올 수도 있지만, 코르시카 섬은 나진시에서 9,000㎞ 떨어진 아주 먼 곳에 있었다.
9,000㎞면 MI-26 헤일로를 타곤 올 수 없는 거리로 대형 비행기가 아니면 한 번에 도달할 수 없는 거리였다.
다시 오려면 이번처럼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한다는 뜻으로 아무도 모르게 들어올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확실한 이유 없이 코르시카 섬 인근에 오면 다비드 회장은 우리와 이브가 생산시설을 노린다고 생각해 경비를 강화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시간만 낭비하는 것으로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게 옳았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 다비드 회장 편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은 혈랑을 이용한 기습과 강공뿐이었다.
“예정대로 내일 새벽 공격할 거야. 그렇게 전해.”
“알았어요.”
아델보덴의 키메라 연구소를 파괴하고 이탈리아로 숨어든 이브는 두 달 만에 1,000명이 넘는 추종자를 모았다.
이브의 신비한 마력에 빠져든 사람들은 나이와 국가, 성별에 상관없이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이브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만큼 충성을 다했다.
이브는 이들을 이용해 쌍두독수리 공대와 블랙 나이트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며, 르원틴 박사의 죽음과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을 파헤쳤다.
추종자가 된 사람 중에는 세계포스협회 관계자,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대기업 CEO, 종교지도자, 교수, 연예인 등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칠 사람들이 총망라돼 있었고, 능력자도 100여 명에 달했다.
능력자 중에는 쌍두독수리 공대 소속 능력자도 10명이나 됐고, 포스협회 관계자 중엔 프랑스 지부장도 있었다.
이들을 통해 로스차일드 가문의 주요인사와 시설, 위험인물 그리고 막강한 힘까지 알게 된 이브는 게릴라전술로 다비드 회장을 상대하기로 결심했다.
원래 계획은 추종자를 모아 정면 승부로 통쾌하게 복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의 막강한 힘을 알게 되자 게릴라전으로 상대의 힘을 빼놓은 다음 다비드 회장의 목을 치기로 계획을 바꿨다.
이브는 사랑하는 르원틴 박사의 죽음을 로스차일드 가문 전체에게 물을 생각이었다.
르원틴 박사의 죽음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권력욕과 끝을 모르는 욕심에서 생겨난 생체병기가 원인으로 다비드 회장 개인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에게 책임이 있었다.
이브는 그 죄를 로스차일드 가문과 가문에 협조하는 모든 사람에게 받아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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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지중해를 건넌 MD 500 디펜더가 코르시카 섬 북쪽 야산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서인의 침묵 스킬로 조용히 알제(Alger)를 빠져나온 침투 헬기는 시속 400km의 빠른 속도로 2시간 만에 코르시카 섬에 도착했다.
“먼저 테슬라 박사와 연구원들, 신형 키메라 자료부터 찾아. 그 다음에 생산시설과 경비 병력을 남김없이 처리하면 돼.”
“박사와 연구원들 살려서 데려와야 해?”
“아니!”
“시체는?”
“필요 없어. 남기지 말고 다 태워.”
“알았어.”
혈풍이 동화 스킬로 몸을 숨기고 기지로 들어가자 기감으로 기지 주변을 훑었다. 산 중턱을 뚫어 만든 키메라 생산기지가 주변에 능력자 1,000명과 키메라Ⅲ 1,000기가 은폐물에 숨어 있었다.
키메라를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으로 기감으로 살펴본 놈들은 영혼 없는 인형, 마리오네트를 보는 것 같았다.
파나마 두꺼비의 세포를 인간의 몸에 주입해 만든 키메라는 팔과 다리가 일반인보다 두껍고 살결이 거칠다는 것만 빼면 인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처럼 초점 없는 칙칙한 눈과 무표정한 얼굴, 시체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테슬라 박사는 없고 연구원들만 있어. 어쩌지?]
[자료는 찾았어?]
[자료도 박사 사무실에 있어.]
[어디 갔는지 몇 놈 족쳐서 알아내.]
[알았어.]
두 달 만에 프랑스어를 마스터한 혈풍이 신형 키메라 연구에 깊이 관여한 아델보덴 생체병기 연구소 연구원들과 자료를 찾아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헤니 테슬라 박사가 없었다. 박사를 놓치면 연구원과 자료를 없애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키메라를 테슬라 박사 혼자 개발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50% 이상은 박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 한두 달이면 자료를 복구할 수 있었다.
[박사가 없으면 어쩌죠?]
[생산시설이라도 없애야지. 그러면 당분간 시간을 벌 수 있잖아.]
[겁을 먹고 깊이 숨으면 다시 찾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못 찾으면 대가리를 쳐야지. 그러면 팔다리는 자연히 떨어져 나가잖아.]
[진짜 시작이네요.]
[오빠가 다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근심 가득한 상아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후 긴장해 손이 축축이 젖은 서인과 마샤의 손을 꽉 잡아줬다.
전쟁이란 말을 입에 담은 게 벌써 두 달 전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먼 나라 이야기처럼 공허하게 들릴 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생각됐다. 그러다 전쟁이 시작되는 사건의 현장에 있자 긴장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전쟁터에 마누라를 끌고 다니는 게 남자가 할 짓일까? 정말 한심하네. 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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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