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9 분노의 화신 이브 =========================================================================
479.
“이브를 찾으려면 박지홍을 감시해야 합니다. 분명 놈 주변에 있습니다.”
“알겠네. 그건 내가 조치하겠네.”
“회장님도 박지홍이 이번 사건에 깊숙이 관련됐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박지홍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적입니다. 이대로 두면 가문에 큰 화가 될 수 있습니다.”
“흐음...”
“두각을 나타냈을 때 제거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건 우리가 정할 일이 아니네. 입 조심하게.”
“죄송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온건파에 속하는 다비드 회장은 무력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힘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믿는 강경파 벤저민 로스차일드 회장과는 정반대로 힘은 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스스로 무릎 꿇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박지홍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다비드 회장의 심복 중 사무엘 윌슨 대장을 비롯한 강경파는 불만이 팽배한 상태였다.
다비드 회장의 연약한 성격이 강대한 적을 키워줘 작금의 사태를 만들었다고 불평을 늘어놨다.
대놓고 떠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알음알음 이런 소리가 나오며 다비드 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나도 박지홍이 더 크는 건 반대네. 놈이 클수록 로스차일드 가문에는 손해니까. 그런 이유로 자네가 원하는 대로 보고하겠네.”
“감사합니다.”
“회장님은 관대한 분이네. 그러나 입을 함부로 놀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이점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끌로드 베리 비서실장의 의미심장한 말에 사무엘 윌슨 대장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척살대를 이끄는 대장답게 사무엘 윌슨은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그중에는 배신, 도망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죽은 사람도 많았다.
다비드 회장의 치부와 약점을 이용하려다 죽은 사람도 있었고, 버릇없이 굴다가 비명횡사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처럼 입을 함부로 놀리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사무엘 윌슨은 끌로드 베리 비서실장의 말에서 다비드 회장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걸 알고 겁이 덜컥 났다.
상급 피지컬리스트라 무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비드 회장의 말이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괴물 같은 쿠삭 형제만 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고, 숨겨둔 상급 나이트에 자다가 목이 잘릴 수도 있었다.
다비드 회장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무엘 윌슨은 배신할 마음을 품거나, 입을 잘못 놀리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다고 이브처럼 아무것도 모르면 객기라도 부리겠지만, 감히 넘볼 수 없는 강대한 힘을 알면서 덤빌 수는 없었다.
상급 피지컬리스트는 신이 아니었다. 피와 살로 된 인간이었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세지만, 먹고 마시고 자야 움직일 수 있는 인간이었다.
척살 명령이 떨어지면 잘 시간도, 먹을 시간도 없었다. 블랙 나이트와 쌍두독수리 공대, 키메라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이브처럼 정글로 달아날 용기라도 있다면 모를까 세상천지에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불만을 표시한 건 다비드 회장에게 반기를 들려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황색 원숭이에게 밀리는 게 참을 수 없어서였다.
끌로드 베리 비서실장도 사무엘 윌슨의 마음을 알기에 경고한 것이지, 불순한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다면 조용히 처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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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의 눈길이 심해졌다?”
“그렇습니다.”
“누굽니까?”
“의심 가는 곳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로스차일드 등 20여 곳 이상입니다. 이중 가장 유력한 곳은 다비드 회장입니다.”
“갑자기 왜 그런 겁니까?”
“스위스 아델보덴 연구소가 이브에게 공격받은 후 감시가 심해진 것으로 보아 회장님을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의심하다니... 뭘 의심한단 말입니까?”
“회장님이 이브를 돕는다고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미친놈들! 내가 뭐가 아쉬워서 키메라 따위를 돕는단 말입니까? 제2의 요코가 될 수도 있는데, 보이는 즉시 잡아 죽이면 모를까.”
“로스차일드와 대립하는 세력 중 이브를 도울만한 곳은 우리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적수로 생각할 만큼 높이 평가해주는 건 눈물 나게 고맙군요. 그런데 평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할 생각은 않고, 우리를 적으로만 생각하는지 참으로 답답하군요.”
“다비드 회장은 회장님과 미래 레드몬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거나, 적대감을 표출한 적은 없습니다. 공개적으로 우리를 싫어한 사람은 강경파인 벤저민 로스차일드 회장이었습니다.”
강승원 국장이 내가 잠시 혼동한 부분을 바로잡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우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맞지만, 차이가 있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대표하는 다비드, 벤저민, 필립 이렇게 셋을 중심으로 우리에 대한 태도가 극명하게 달랐다.
가주이자 실세인 다비드 회장은 온건파로 우리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예의주시하지만, 다툴 마음은 없는지 감시만 했다.
음흉한 성격의 막내 필립은 철저한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럴 뿐 바티칸과 손을 잡고 우리를 이단으로 생각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강경파인 벤저민 회장은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며 공개석상에서 우리를 깔아뭉개고, 비하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인터뷰와 기자회견만 하지 않았을 뿐 사교 파티와 모임에 참석하면 어김없이 나를 씹어댔다.
하나는 철저하게 우리를 싫어하고, 하나는 음흉하게 우리를 싫어하고, 하나는 경계의 눈으로 바라봤다.
여기서 공통점은 셋 다 우리를 적대한다는 것으로 정도의 차이만 있었지 나와 아내들을 싫어하는 건 같았다.
“이번 일로 다비드 회장의 심경에 변화가 크겠군요?”
“감시의 눈이 많아진 만큼 적대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워낙 신중한 성격이라 우리가 관여했다는 확실한 물증이 없으면 무력을 동원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모르니 경계 단계를 올리세요.”
“알겠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덕분(?)에 달아난 키메라가 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것과 스위스 베른의 생체병기 연구소가 파괴된 것을 알게 됐다.
여왕은 줄타기의 원칙에 따라 사무엘 윌슨이 정보원들을 총동원해 이브를 찾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정보를 넘겼다.
이브가 돌아오자 우리를 감시하는 눈이 전보다 열 배로 늘어놨다. 첩보위성과 관광객을 위장한 첩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정보부를 통한 자료수집 등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나와 아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덕분에 조용히 미스트 존을 방문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감시의 눈길이 워낙 심해 조용히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았고, 하루에 한 번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놈들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일부러 싸움을 만들 필요는 없어 하루에 한 번 관광객들에게 얼굴을 비추고, 나머지 시간은 아내들과 놀아주며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아프리카에 있는 이브가 나랑 어떻게 만납니까?”
“공교롭게도 이브가 쌍두독수리 공대를 피해 정글로 숨어든 시기와 상급 레드몬 사냥 시기가 일치합니다. 그 때문에 회장님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참외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자두나무 아래에서 갓을 바로 잡지도 말라고 하더니 그 말이 나를 두고 한 말이군요?”
“상황이 그렇게 됐습니다.”
강승원 국장의 말처럼 이브가 탈출한 시기와 사냥 시기가 겹치며 다비드 로스차일드 회장의 의심을 사게 됐다.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하자 나라도 그런 의심을 했을 것 같았다.
도화선에 불만 붙이면 언제든 치고받고 싸울 수 있는 사이로 상대를 의심하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우리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브가 없다고 해도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다비드 회장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추가 피해는 아직 없는 겁니까?”
“네!”
“르원틴 박사가 몸담았던 아델보덴 연구소 직원을 모두 죽인 것으로 원한을 갚은 모양이군요?”
“그럴 수도 있지만,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라면 진짜 복수를 위해 숨어서 준비 중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로스차일드와 키메라 연구소가 연관이 있다는 걸 모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르원틴 박사는 탈출을 결심한 순간 죽음을 예견했을 겁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박사가 쌍두독수리 공대의 추격을 피해 달아날 수 없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테니까요. 이는 이브를 데리고 아프리카로 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레드몬이 우글대는 정글에서 박사가 살 수 있는 확률은 없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프리카로 간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브를 살리겠다는 의도라고 봐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이브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박사가 로스차일드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신형 키메라 이브가 외부로 유출되면 다비드 회장은 인간과 레드몬을 이용해 생체병기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
이 일로 로스차일드 가문 전체가 욕을 먹게 되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벤저민 회장에게 가문의 수장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 만든 키메라에 대한 정보까지 유출될 수 있었다.
정보가 유출되면 키메라의 약점이 노출될 수도 있고, 유사품과 복제품이 나올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을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증거이자 화근인 이브를 무조건 죽여야 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르원틴 박사가 로스차일드 가문과 다비드 회장에 관해 이브에게 알려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강승원 국장은 생각했다.
“요코처럼 써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써커를 만들 능력이 있다면 혼자 연구소를 찾아가진 않았을 겁니다.”
“써커도 아니면 게릴라전을 펴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다비드 로스차일드 회장은 유럽과 미국에 백여 개가 넘는 기업을 소유했습니다. 나이트 인공 배양소와 양성소도 20개가 넘고, 쌍두독수리 공대 소속 레드몬 사냥팀도 100여 개 이상 운영 중입니다. 이들을 모두 방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이브는 이점을 노릴 겁니다.”
“아프리카 정글에서 살아남을 정도면 능력은 충분하겠지만, 머리까지 따라줄지는 의문이군요.”
“이브는 우리가 알던 멍청한 키메라와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지능도 높고 침착하고 매우 영악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베른 연구소를 공격한 다음 날 다른 시설을 공격해 위치가 노출됐을 겁니다. 이브는 경비가 강화된 것을 알고 좀 더 효율적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숨어든 게 확실합니다.”
나 역시 강승원 국장의 생각처럼 이브가 매우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브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다비드 회장은 쌍두독수리 공대를 동원해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이 잡듯이 뒤지며 나까지 감시했다.
그런 삼엄한 감시를 피해 숨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만 봐도 이브가 기존의 멍청한 키메라와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란 걸 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