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5 히드라(Hydra) =========================================================================
475. 히드라(Hydra)
블랙 코뿔소 엘라스모테리움의 사냥이 끝난 다음 날 블랙맘바를 잡기 위해 남수단 서바르알가잘 주로 이동했다.
남수단은 국가가 아닌 수단 내 자치정부로 수단은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2차 대전이 끝난 지 11년이 지난 1956년 독립했다.
아랍계 이슬람교도가 이끄는 수단과 달리 남수단 자치정부 10개 주는 기독교와 토착 종교를 믿는 지역으로 수단 중앙정부와 오랫동안 마찰을 빚었다.
급기야 무력 충돌로 발전해 190만 명이 죽고, 40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비전투원 사망자가 가장 많은 분쟁 중 하나로 기록됐다.
수단 내전은 유럽의 식민지배가 아프리카를 어떤 식으로 망가뜨려 놓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로, 이는 수단과 남수단의 문제가 아닌 아프리카 전체의 문제였다.
“아프리카 국가 중 유럽 열강의 식민지배로 인해 고통받지 않고 사는 나라가 있을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곳은 단 한 곳도 없지.”
“왜 유럽 국가들은 남의 것을 빼앗지 못해 난리죠?”
“민족성이거나 백인우월주의 때문이겠지. 아니면 남의 것을 빼앗도록 뇌에 프로그래밍 되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간의 본성에 가장 충실한 종자라 맡은 바 소임을 다해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정말 그렇다면 유럽 국가들이 진정한 악의 축이네요.”
와우 시 주민들의 궁핍한 모습에 화가 많이 난 아영이 유럽 국가들을 모두 싸잡아 욕했다.
블랙맘바를 잡기 위해 도착한 서바르알가잘 주의 주도 와우(Wau) 시는 해발 438m의 고원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가 10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였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와 내전으로 산업시설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남수단의 흔한 도시 중 하나로 시내 중심가에 있는 건물조차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도심은 나은 편으로 외곽엔 나무와 풀로 얼기설기 만든 집이 가득했고, 상하수도 시설이 거의 없어 도시 전체가 오물로 뒤덮여 악취가 진동해 밖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가난한 마을과 도시를 수없이 돌아다녔지만, 와우 시는 그중에서도 아주 심한 편으로 넝마로 간신히 몸을 가린 사람들과 굶주려 뼈만 남은 아이들이 거리 곳곳에 너부러져 있었다.
아영이 급히 1단계 정화수를 만들어 먹이고, 아리와 마샤가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했지만, 며칠 머무르며 돌봐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아내들이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도시 주변을 돌며 동물과 레드몬의 씨가 마를 만큼 보이는 족족 잡아 모두 나눠줬다.
그러나 산업시설이 없어 당장 굶주림은 면할 수 있겠지만, 몇 달 지나면 다시 배를 곪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어설 힘도, 그물도 없는 사람들에게 방법을 가르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먼저 굶어 죽지 않을 방도를 마련해준 다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했다.
그래야 물고기를 잡을 힘이 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며 식민시대가 막을 내렸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아프리카는 자유와 번영의 시대가 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내전과 수탈의 반복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유럽 열강들은 종족 분포와 문화적 범위에 상관없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 국경을 정했다.
이로 인해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하나의 국가 안에 수많은 부족을 섞어 놓아 부족 간의 분쟁이 내전으로 발전했다.
검은 아프리카로 불리는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은 15세기 말부터 유럽 열강의 침입을 받아 19세기까지 노예무역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흑인이 미국과 유럽에 팔려나갔다.
19세기 말 베를린 회의 이후엔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배로 고통받았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독립한 후에도 여전히 유럽 열강의 손에 놀아나며, 원자재의 공급처와 제품 시장으로 이용당하고 있었다.
유럽 열강들은 미국과 러시아 등 식민지가 없는 강대국들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아프리카를 독립시켰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럴 뿐 열강에 아부하는 허수아비 정부를 세우고,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시민권을 나눠주어 꼭두각시 만들었다.
군사 고문단을 파견해 군부를 통제하고, 정치·경제·문화·언어·교육 등 생활 깊이 관여해 자립의 길을 걷지 못하게 방해했다.
심지어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면, 반군을 지원해 내전을 일으키고 정부를 전복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아프리카를 오직 수탈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겠는가?
“언제쯤 아프리카 국가들이 진정한 독립국이 될 수 있을까요?”
“유럽과 미국이 망하기 전에는 어렵다고 봐야지. 놈들이 가만 놔두질 않으니까.“
“독재자들이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아프리카가 유럽 열강의 손에 놀아나지는 않을 텐데, 너무 안타까워요.”
“독재자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유럽 열강과 미국에 알토란같은 이권을 넘겨주며 자기가 한 행동을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그 일로 국민이 고통받아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하고. 그리고 독재자가 생각을 바꿔도 달라지는 건 없어. 열강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새로운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힐 테니까.”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오빠 말처럼 유럽과 미국을 망하게 해야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그럴 힘도 방법도 없잖아.”
“에휴~ 남의 피와 땀으로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알까요?”
“알아도 모른 체하겠지. 몰라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거고. 수백 년간 그렇게 살았으니까 수탈이라고 느끼지도 못할 거야. 오히려 도와줬는데 왜 욕하고, 테러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겠지.”
유럽 열강의 학살과 수탈은 아프리카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남미와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백인 땅이 아닌 곳에선 어김없이 자행됐다.
그리고 백인만 이런 짓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일본도 대동아공영권이란 개소리를 떠들며 아시아인을 억압하고 죽였다.
대한민국은 일제의 식민지배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분단의 아픔과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렀다.
이로 인해 오랜 기간 피폐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36년간 조선을 수탈해 배부르게 먹고 산 것도 모자라 우리를 근대화시켰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친일파를 조종해 국정을 농단하고, 국론을 분열시켰다.
한 나라와 민족을 파멸로 몰아넣고도 일본은 미안한 감정 따위는 가져본 적도 없었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공통점은 언제나 입으론 인류애를 떠들지만, 뒤로는 약소국을 수탈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어 당한 것이니 그들도 할 말은 없지만, 열강들도 양심이 있다면 더러운 입으로 인권과 도덕, 윤리, 인류애는 말하지 말아야 했다. 그게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이게 블랙맘바야? 다른 놈 아니야?”
“주위에 상급 레드몬은 얘 밖에 없어요. 이사를 했다면 모를까 얘가 우리가 찾는 블랙맘바가 맞을 거예요.”
“머리가 둘도 아니고, 아홉 개 달린 놈이 블랙맘바라는 게 말이 돼? 자기가 물뱀 히드라라도 되는 줄 알아?”
“그러게요.”
와우 시에서 서쪽으로 150km 떨어진 블랙맘바 서식지를 헬기를 타고 돌아봤다. 반경 150km 이내에 레드몬이라곤 달랑 한 마리로 블랙맘바 혼자였다.
성질 더러운 놈이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거나, 태어난 레드몬은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두 잡아먹은 결과였다.
문제는 블랙맘바가 우리가 아는 블랙맘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길이 10.5m, 무게 948kg의 블랙맘바는 전설 속에 나오는 물뱀 히드라처럼 머리가 아홉 개였다.
판타지 만화에 등장하는 머리 여러 개 달린 드래곤과 아주 흡사한 형태로 다리와 날개만 없을 뿐 모양은 거의 같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히드라(Hydr)는 키마이라(Chimaera), 케르베로스(Kerberos), 오르토스(Orthrus)와 함께 티폰(Typhon)과 에키드나(Echidna) 사이에서 태어난 괴물이었다.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는 가운데 있는 목이 불사신으로 다른 목을 하나 잘라내면 거기에서 새로운 두 개의 목이 더 생겼다.
숨결과 피부에서 스며 나온 점액은 강력한 독으로 들이마시거나 피부에 닿으면 살이 썩어 신조차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처럼 머리를 잘라도 다시 생겨나는 건 아니겠죠?”
“엘라스모테리움도 재생 능력이 있었으니, 히드라도 있을 수 있겠지.”
“그러면 잡기가 쉽지 않겠네요.”
“상아가 옆에서 불로 지져주면 되겠네. 그러면 머리가 다시 안 생길 거 아니야.”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오빠! 담뱃불 좀 빌려주세요. 그걸로 지지게요.”
“하하하하~”
물뱀 히드라 처리는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제 중 하나, 네메아의 사자 가죽으로 몸을 보호한 후 히드라에 싸웠다.
그러나 목을 잘라도 죽지 않고 두 개씩 생겨나 히드라를 처리할 수 없었다. 이때 헤라클레스의 조카 이올라오스가 잘린 목을 횃불로 지져서 새로운 목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조카는 사자 가죽도 없는데, 히드라에게 어떻게 접근했죠?”
“불사신 사자를 목 졸라 죽이고, 불사신 물뱀을 바위로 깔아뭉개 죽이는데, 뭔들 못하겠어.”
“정말 그러네요. 어떻게 불사신을 죽일 수 있죠?”
“신화잖아.”
신화의 공통된 특징은 모순(矛盾)의 어원처럼 말이 안 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무엇으로 뚫을 수 없는 방패를 파는 상인과 어떤 방패든 다 뚫는 상인처럼 영웅은 불사신도 죽이고 신도 죽였다.
신화 속 얘기를 사실에 대입해 생각하는 것도 엄청난 모순이지만, 그래도 불사신을 죽이는 내용은 너무 허무맹랑했다.
“머리가 많은 것도 부담스럽지만, 그것보단 크기가 지난번 잡은 B급 블랙맘바보다 작은 게 더 신경 쓰이네.”
“머리가 많아서 몸이 작은 게 아닐까요? 무게는 더 나가잖아요.”
“그러면 다행인데, 하람처럼 진화하며 몸이 최적화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
“그렇다면 최초의 늑대인간인 혈풍 오빠처럼 최초의 파충류 인간 리자드맨이 탄생할 수도 있겠네요?”
“조만간 지구가 유사인류의 손에 떨어지겠네?”
“그럴 수도 있죠.”
몇 년 전 수단에서 사냥한 B급 엘리트 레드몬 블랙맘바는 길이가 16m로 히드라보다 길이가 5m 이상 길었다.
무게는 히드라가 머리가 많아 그런지 500kg 정도 더 나갔지만, 길이는 B급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담뱃불 신공을 사용하기엔 히드라의 목이 너무 두꺼운 상아 대신 하람을 파트너로 선정했다.
“구미호가 공중에서 놈의 눈을 노리는 동안 너는 화염탄으로 공격하다가 목이 잘리면 잘린 부위를 공격해.”
“머리를 자르면 새로운 머리가 나온다고 믿는 거야?”
“그거야 잘라보기 전엔 알 수 없지. 그래도 대비는 하는 게 낫잖아.”
“그렇긴 하지.”
“지난번 잡은 B급 엘리트 블랙맘바는 내가 이제껏 상대한 녀석들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빨랐어. 히드라는 그놈보다 더 빠를 거야. 조심해!”
“알았어.”
히드라는 유인하기 위해 행동을 취할 필요도 없었다. 놈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자 귀신같이 알고 나타났다.
B급 상급 레드몬 블랙맘바
전투력 : 25557
지 능 : 141
상 태 : 적대감 최대 상승
효 과 : 순발력·민첩성·전투력 0% 하락
에너지 : 256,449몬
스 킬 : 알 수 없음
“캬아악~”
살기를 투사하자 화가 잔뜩 난 검은 눈의 독사 히드라가 안개 같은 하얀 독무를 뿌려대며 총알처럼 튀어왔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