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3 상급 레드몬 엘라스모테리움(Elasmotherium) =========================================================================
473. 상급 레드몬 엘라스모테리움(Elasmotherium)
이번 여행도 지난번 여행과 마찬가지로 결혼한 아내들과 결혼해달라고 조르는 여자들을 몽땅 데리고 왔다.
음식도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술 먹고 노는 것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결혼하고, 나이도 몇 살 더 먹었다고 지난번처럼 난장판을 만들진 않았다.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얌전하게 노네.”
“몇 달 있으면 아기들이 나오는데, 아이처럼 깽판 치며 놀 순 없잖아.”
“은비도 어른 다 됐네. 그런 생각을 다 하고.”
“엄마로서 품위를 지키자는 건데, 그게 어른스러운 생각이야?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가?”
“이럴 때 보면 오빠는 나를 어린아이로 보는 것 같아”
“이렇게 예쁘고 육감적인 아기도 있었나?”
“나 보면 생각나는 게 섹스밖에 없지? 머릿속에 온통 하고 싶은 생각뿐이지?”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언제나 툴툴거리면서도 품에 안겨 떨어지지 않은 은비를 보면 재밌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심심하지 않아 좋았다.
“이러고 있으니까 정말 좋다. 소연 언니랑 셋이 있을 때는 항상 이러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어 많이 아쉬워.”
“미안해!”
“미안한 줄은 알아?”
“그럼!”
“말만 미안하지. 소연 언니와 내가 여자 사귀는 거 막지 않겠다고 한 건 세상 여자 다 사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야. 서로 사랑하면서 맺어지지 못하면 가슴 아프니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사귀라는 뜻이었어. 그런데 오빠는 예쁜 여자만 보면 들이댔지.”
“크흠...”
“에휴~ 내 팔자야!”
은비가 사사건건 말대꾸를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말괄량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불만을 표시한 것이었다.
셋이 살 때 은비는 항상 오른팔을 베고 잤다. 그러다 아영과 서인, 한숙이 한가족이 되고, 상아와 아리, 마샤, 제니퍼, 은하, 소희, 로라까지 가족이 되자 은비가 있을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가뜩이나 상아와 아영, 마샤에게 밀리며 점점 소외당하자 관심받기 위해 일부러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 것이었다.
“은비야! 그동안 많이 서운했어?”
“몰라!”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우리 셋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 내버려둬도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소홀히 대한 것 같아.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게. 용서해 줘.”
“정말이야? 나 이제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응! 항상 옆에 있을게. 너는 내 첫 여자이자, 평생 친구처럼 함께 해야 할 조강지처니까.”
“흑~”
품에 안겨 서럽게 우는 은비를 등을 쓰다듬으며 내가 얼마나 무심하고 안일한 사람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은 은비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면서 아내들을 지키겠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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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월 20일
3박 4일의 짧은 휴가가 끝나자 상급 레드몬 검은 코뿔소를 잡기 위해 탄자니아 타보라 공항으로 날아왔다.
시골 버스 터미널 같은 낡은 공항은 정감이 있어 마음에 들었지만, 지글지글 타오르는 아스팔트는 참기 힘든 고역이었다.
탄자니아의 1월 날씨는 우리나라 한여름과 비슷한 수준으로 최저기온이 영상 23℃, 최고기온이 영상 32℃로 활주로는 계란프라이를 해먹어도 될 만큼 뜨거웠다.
“정초부터 삐질삐질 땀 흘리며 사냥하게 생겼네.”
“오빠! 사냥하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거 아니야?”
“쓰러지면 뒤통수 깨지지 않게 뒤에서 잘 잡아.”
“쓰러진다는 소리 하지 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니까.”
“역시 내 생각해주는 건 우리 은비밖에 없네. 쪽!”
“동생들 보기 창피하게 왜 이래. 그만해!”
“난 좋기만 한데. 흐흐흐흐~”
은비의 가느다란 허리를 바짝 끌어당겨 볼에 입을 맞추자 눈으론 웃으면서 입으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이래서 여자들을 내숭 덩어리라고 한다. 좋으면 좋다고 하면 되는데, 아닌 것처럼 튕기며 상대를 시험했다.
세계에서 31번째로 넓은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은 1961년 독립한 탕가니카와 1963년 독립한 잔지바르가 1964년 통합해 만든 나라였다.
탄자니아 북쪽의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 국립공원, 남쪽의 셀로우스와 미쿠미 국립공원은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서쪽의 곰베 국립공원은 제인 구달 박사의 침팬지 연구로 유명했다.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산,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빅토리아 호수, 아프리카에서 가장 깊은 탕가니카 호수 등 아름다운 자연이 넘쳐나는 나라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과 달리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 1880년부터 1919년까지 독일의 식민지였고, 1961년까진 영국의 식민지로 억압받았다.
가까스로 독립해 아프리카식 마르크스주의를 도입했지만, 집단농장이 실패하며 경제 파탄과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1979년엔 우간다의 침공을 받았고, 1995년까진 일당 독재에 시달리는 등 내란과 외란이 끊이지 않았다.
수쿠마, 냐메우지 등 120여 개의 부족과 기독교·이슬람교·토착 종교 등 민족과 종교 모두 매우 복잡한 것도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이 때문에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도 일 인당 국민 소득이 300불도 안 됐고, 산업의 80%가 농업에 치우쳐 국가 경쟁력이 바닥이었다.
“상급 레드몬을 공짜로 잡아주는데, 대가로 레드몬 5,000마리나 잡아달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레드몬도 자원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잖아. 특히 상급 레드몬의 가치는 웬만한 도시보다 크니까, 요구할 수도 있다고 봐.”
“은비야! 언제부터 마음이 그렇게 너그러워졌어?”
“오죽 먹고 살기 힘들면 그러겠어. 불우이웃돕기 하는 셈 치고 너그럽게 이해해줘. 오빠는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넓은 사람이잖아.”
“예에~ 예! 마님이 그러라면 그러겠습니다. 매일 쌀밥을 먹여주시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까르르~”
오키노시마 섬에 피크닉을 다녀온 후 낮이고 밤이고 시간 날 때마다 옆에 끼고 있자 은비의 성격이 온화하다 못해 천사로 바뀌었다.
짜증과 투정이 사라지며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고, 마음도 너그러워져 화를 내지도 않았다.
은비의 성격이 바뀌는 것을 보며 내가 천사를 악마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악플보다 더 무서운 건 무플이라고, 내 무관심이 은비의 짜증과 화를 불러왔다.
그렇다고 은비의 말괄량이 성격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장난이 심했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장난도 상대를 배려해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말도 상대의 기분을 즐겁게 했다.
‘은비만 옆에 끼고 있으면 서인이와 아리, 제니퍼가 또 소외당한다고 느끼는 거 아니야?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내가 그 꼴이네.’
엘라스모테리움을 처리하기 전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반경 30km 안에 있는 레드몬은 남김없이 사냥했다.
주변 정리가 끝나자 천리안 주얼을 사용해 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검은 코뿔소는 사바나와 관목림 지대에 서식해 관찰이 용이했다.
엘라스모테리움을 사흘간 관찰하며 느낀 점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지능이 높아 사람처럼 여가라도 즐길 줄 알았는데, 사고의 폭이 좁아서 그런지 먹고, 자고,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다.
“정말 아무것도 하는 게 없네. 지능이 높다고 발전하는 건 아닌가 봐.”
“사회에서 떨어져 혼자 살면 인간도 다를 게 없잖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지. 엘라스모테리움과 다른 게 있다면 집이 있고, 가전제품이 있다는 정도 아니겠어?”
머리가 좋아도 무리를 이루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다. 세상을 바꿔놓을 천재라고 해도 필요한 물건을 혼자서 모두 만들 순 없다.
짚신을 만들 사람, 종이를 만들 사람, 그릇을 만들 사람, 농사지을 사람, 가축을 키우는 사람, 집을 짓고 길을 낼 사람 등등 수많은 사람이 모여야만 마을이 만들어지고, 과학과 문명이 발전했다.
“더 볼 것도 없다. 내일 아침 사냥할 테니 준비하라고 해.”
“알았어.”
사흘 동안 지켜본 엘라스모테리움은 포식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가오는 동물과 레드몬이 없어 싸울 일이 없었다. 몇 달 지켜보면 싸우는 모습을 볼 수도 있겠지만, C급 상급 레드몬을 상대로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놈과 블랙맘바를 잡고 미스트 존을 공략해야 했다. 그래야 은하를 능력자로 각성시켜 예쁜 아기를 갖게 할 수 있었다.
“하람아! 너는 엘라스모테리움이 도망가지 못하게 뒤를 막아.”
“알았어.”
“우리 마나님들은 지킴이 안에서 있어요. 나오면 볼기짝 맞습니다. 아셨습니까?”
“오빠! 농담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얕보다가 다칠 수도 있어.”
“알았어.”
은비의 질책을 기분 좋게 들으며 파멸의 창을 소환했다. 아영의 4단계 정화 스킬을 받으며 C급 엘리트 레드스톤으로 포스를 가득 채웠다.
하람이 엘라스모테리움의 배후로 돌아가자 최대한 천천히 다가갔다. 파멸의 창 한 방으로 놈을 끝낼 생각이라 놈을 자극하지 않고 다가가야 했다.
파멸의 창을 등 뒤에 숨기고 살금살금 다가가자 엘라스모테리움이 멀리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풀을 뜯어 먹었다. 5년 넘게 탄자니아 타보라 지역의 왕으로 군림한 엘라스모테리움은 적수는 고사하고 수년째 도전조차 받아보지 못해 권태로움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검은 코뿔소는 흰 코뿔소와 달리 성격이 매우 난폭해 언제 돌변할지 몰라 조심해야 했다.
C급 엘리트 레드몬 검은 코뿔소
전투력 : 13649
지 능 : 156
상 태 : 적대감 최대 상승
효 과 : 순발력·민첩성·전투력 0% 하락
에너지 : 111,668
스 킬 : 알 수 없음
철갑 스킬로 몸을 보호하며 살기를 투사하자 적대감이 최대로 상승한 엘라스모테리움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놈이 거칠게 투레질하자 기다란 뿔이 하얗게 빛났다. 분노에 차 발로 땅을 긁더니 앞다리를 높이 들었다가 땅을 힘껏 차며 뛰어왔다.
발을 몇 번 내딛기도 전에 속도가 붙으며 한 줄기 빛이 되어 날아왔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감탄했지만,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지이잉~”
돌진만 할 줄 알았는데, 기다란 뿔에서 하얀 광선이 날아왔다. 옆으로 살짝 피하며 냉기탄을 발사했다.
“쩌저저저정~”
빠르게 날아간 냉기탄이 엘라스모테리움의 머리에 맞고 튕겨 나왔다. 몸을 감싼 하얀빛과 부딪치자 터지지 않고 튕겨 나와 애먼 땅만 얼렸다.
그사이 엘라스모테리움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분신 주얼로 허상을 만들고 재빨리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퍽!”
허상이 뿔에 걸려 산산이 부서지자 나를 처리했다고 생각했는지 엘라스모테리움이 급히 제동을 걸었다.
나를 죽였다고 착각한 엘라스모테리움이 땅에 큰 발자국을 남기며 멈춰 서자 등을 향해 파멸의 창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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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