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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72화 (472/505)

00472  호문쿨루스(Homunculus) 이브(Eve)  =========================================================================

472.

“어때? 도망갈 만하지?”

“응! 백 번, 천 번이라도 도망가겠다.”

“너도 사진 보니까 욕심나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인 소연님이 옆에 계시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피이~ 거짓말!”

“진짜야! 네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 그리고 꽃같이 예쁜 아내들이 이렇게 많은데, 뭐가 아쉬워서 괴물 따위에 관심을 가져? 대가리에 총 맞았어?”

“입에 침은 바르고 거짓말하는 거지?”

“결혼식 이후로 다른 여자 쳐다본 적도 없어. 조만간 아이 아빠가 되는데, 그러면 안 되지. 안 그래?”

“정말 관심 없어?”

“당연하지! 지금 한 말이 거짓이면 벼락 맞아 죽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성이 내 앞을 지나가도 마누라와 함께 있으면 절대 고개를 돌려선 안 된다.

그건 맞아 죽어도 좋다는 동의서를 써준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고 또 참아야 한다.

당연히 ‘캬하~’ ‘죽이네!’ 같은 감탄사와 추임새를 넣어서도 안 된다. 소 닭 쳐다보듯 아주 무심하게, 아무것도 본 적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그래야 나이 들어 힘이 빠져도 쫓겨나지 않고, 식은 밥에 맛없는 국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

내 눈도 마음대로 돌릴 수 없고, 내 입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이 비참했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어디 있어?”

“리처드 르원틴 박사는 추적대 대장 손에 죽었고, 키메라도 부르키나파소 공화국으로 넘어가기 직전 국경 근처 정글에서 레드몬에 죽었어.”

“추적대가 아니라, 레드몬한테 죽어?”

“뒤를 쫓은 추적대 대장이 보고한 내용이야.”

“사체는 찾았어?”

“레드몬이 먹어치워 못 찾았대.”

“놓쳤을 수도 있다는 얘기네?”

“그럴 가능성도 크지.”

“엄청나게 요란했나 보네. 우리가 알 정도면.”

“엘리자베스 여왕이 알려준 거야.”

“이런 고급 정보를 왜 알려줘?”

“우리와 한편이란 걸 보여주겠다는 거겠지. 그리고 한두 달 지나면 우리도 알게 될 정보라 생색도 내려는 속셈이었을 거야.”

“일거양득을 노린 거네?”

“그렇지.”

“양다리에 일거양득까지 하려면 엄청나게 바쁘겠다.”

“줄타기가 원래 힘든 법이야.”

강승원 국장은 리처드 르원틴 박사가 신형 키메라에 조종당해 아프리카로 탈출한 것으로 예상했다.

달아난 박사와 키메라를 잡기 위해 다비드 로스차일드 회장은 5,000명이 넘는 쌍두독수리 공대를 동원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넘도록 키메라가 도망친 곳조차 찾지 못하자, 외부로 정보가 빠져나가는 것을 각오하고 정보원을 총동원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신형 키메라 탈출 사건을 알게 된 것도 이 때문으로, 정보를 입수한 여왕은 사건이 마무리되자 곧바로 우리에게 정보를 넘겼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절묘한 타이밍으로, 이때쯤이면 미국과 러시아도 정보를 입수한 상태라 로스차일드도 여왕이 정보를 넘겼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100명이 넘는 능력자가 따라붙고도, 생산된 지 얼마 안 된 키메라 한 마리를 못 잡아? 전투에 패했다면 못 잡을 수도 있지만, 싸우지도 않고 도망만 친 키메라를 잡지 못했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포위 공격은 기본 중의 기본 전술이잖아. 뒤만 쫓는다는 게 말이 돼?”

“말이 안 되는 소리지.”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키메라와 부관이 레드몬에 잡아먹혔는데, 대장은 무사히 돌아왔다는 거야.”

“부관이 잡아먹히는 동안 도망쳤을 수도 있잖아?”

“쌍두독수리 공대원 100명을 따돌린 키메라를 순식간에 잡아먹고, 부관까지 먹어치운 레드몬이 대장이 도망가는데 따라오지 않았다? 그런 레드몬 본적이 있어?”

“아니, 없어.”

“대장은 어떻게 됐어?”

“심문 중인가 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오판이 겹치고, 우연과 우연, 돌발적인 상황이 연속으로 일어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키메라를 발견하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포위가 아닌 뒤만 쫓고,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키메라가 레드몬에 잡혀먹히고, 부관은 죽고 대장만 살아남고, 레드몬은 따라오지 않고, 피해자가 달랑 부관 한 명밖에 없다는 것 등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5,000명이 넘는 능력자를 동원할 정도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도망친 키메라를 회수하거나,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키메라를 잡아먹은 레드몬을 잡아 증거를 가져와야 했다. 그래야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었다.

“변종 모기 레드몬을 이용했겠지?”

“그렇겠지. 능력을 올리는데 그것만큼 확실한 생체병기는 없으니까.”

“키메라가 무사히 정글에 숨어들었다면 일본과 중국의 변종 모기 레드몬 사태가 아프리카에도 재현될 수도 있겠다.”

“사태가 더 클 수도 있어. 아프리카 정글엔 중국과 일본보다 몇십 배나 많은 레드몬이 있잖아. 엘리트 레드몬과 상급 레드몬도 많고.”

“상급 레드몬이 있으면 자체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겠네. 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위험한 싹을 그대로 두진 않을 거야.”

“100명이 넘는 사람을 따돌리고 도망친 키메라야. 그리고 요코를 생각해야지. 요코도 변종 모기 레드몬에서 출발했어.”

“요코만큼 똑똑하면 살아남겠지. 그러면 아프리카는 쑥대밭이 될 거고.”

“아프리카가 문제가 아니야. 신형 키메라 생산에 성공한 게 더 큰 문제야.”

“그렇지. 우리에겐 그게 문제지.”

쌍두독수리 공대의 추적을 뿌리치고 달아날 정도면 최소 중급 피지컬리스트는 된다는 소리였다.

그런 키메라를 대량으로 생산하면 안 그래도 힘의 균형이 로스차일드 가문에 치우친 상태에서 한쪽으로 기울다 못해 저울이 망가질 수도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에겐 풍산이가 있잖아.”

“개똥에 약에 쓸 곳이 있다고 풍산이를 믿어야 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 크크크크~”

“그러게. 호호호호~”

로스차일드에 키메라가 있다면 우리에겐 풍산개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수컷 풍산이를 마지막으로 풍산개 8마리가 모두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했다.

풍연·풍비·풍영·풍아·풍인은 작년 2월에서 5월 사이에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했고, 풍리와 풍희도 9월 말에 진화했다.

그러나 씨를 뿌릴 풍산이는 도무지 진화할 기미가 없었다. 기다리기엔 놈의 자질이 형편없어 혀가 땅바닥에 끌리도록 돌리고, 포스샤워까지 해주는 등 정성을 쏟아 반강제로 진화시켰다.

이로써 풍산개 새끼를 얻을 준비를 끝냈다. 녀석들을 더 성장시킨 후 새끼를 낳는 것이 바람직했지만, B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성장하길 기다렸다간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군견과 경비견, 호위견으로 쓰기에 C급 엘리트 레드몬이면 충분했다.

중급 레드독을 호위견으로 갖는 게 꿈인 사람이 수억 명이 넘는데, C급 엘리트 레드몬을 부족하다고 하면 돌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일곱 마리 모두 임신했지?”

“응! 누구처럼 복이 터졌어. 여자를 일곱이나 얻고. 개도 주인 닮아가나 봐.”

“크크크크~ 새끼는 언제 나와?”

“다다음달이면 나올 거야.”

“한 배에 7~8마리만 낳아도 최소 35마리니까, 일 년이면 150마리네. 적은 수는 아니지만, 키메라 생산량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네.”

“시작은 그래도 몇 년 지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야. 그리고 수준도 우리가 훨씬 높아 수적인 열세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새끼들끼리 짝지으면 근친교배 아니야?”

“송골매가 연해주와 시베리아에서 풍산개 무리를 여럿 발견했어. 하람 오빠가 경호팀 데리고 갔으니까 그놈들 이용하면 괜찮을 거야.”

엘리트 레드몬 풍산개를 대량으로 생산하면 큰 소란이 일 것이다. 중급 레드몬을 길들였을 때 반응을 생각하면 경악을 넘어 까무러칠 게 분명했다.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 시기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적대적인 세력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아 겁먹지도, 넋 놓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풍산개를 1마리 생산하면 그쪽은 신형 키메라를 수백 기씩 생산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엘리트 레드몬 풍산개로 인해 군비 경쟁이 촉발될 수도 있었다. 군비 경쟁의 끝은 언제나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로마의 군사학자 베게티우스(Vegetius)가 말한 것처럼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야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막을 힘이 없다면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평화는 소리 없는 전쟁으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수많은 젊은 피를 먹고 자라났다. 평화를 얻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했다.

“오빠! 밥 안 해? 우리 다 굶겨 죽일 거야? 언니 놀러 와서까지 일 얘기를 해야겠어? 집에서 하면 안 돼?”

“미안!”

소연과 바닷가를 거닐며 한참 동안 도망친 키메라와 풍산개 이야기를 하자 은비가 다가와 심통을 부렸다.

놀러온 만큼 일은 접어두고 노는데 전념하는 게 맞았다. 때와 장소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면 꼴불견을 넘어 왕재수였다.

그러나 나는 놀러 온 게 아니었다. 노력 봉사, 식모, 뒤치다꺼리, 아내들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일하러 온 것이었다.

“하면 될 거 아니야. 내가 식모도 아니고, 잔소리는...”

“밖에 나오면 모두 남자가 하는 거라고 오빠가 말했잖아.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왜 이제 와서 딴소리야?”

“내가 미쳤지. 에휴~”

그래도 다행인 건 구미호와 백호가 사냥과 장작을 책임져 요리와 설거지, 뒤치다꺼리,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만 돼주면 됐다.

문제는 뒤치다꺼리와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이 전체 일의 절반이라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설거지와 뒤치다꺼리라도 시키게 혈풍을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아니지!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놈의 주둥아리에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어. 몸이 힘든 게 낫지 놈의 수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해!’

잠시 혈풍을 데려왔으면 편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속사포 같은 놈의 목소리를 상기하자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갔다.

몸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어도, 마음이 불편한 건 참을 수 없다. 혈풍은 상대의 기분은 생각지도 않고 수다를 떨어 마음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했다.

심장 박동을 어긋나게 할 요량인지, 상대의 혼을 뺄 생각인지, 그도 아니면 상대를 미치게 만들 생각인지 단 1초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은영씨도 대단해! 그 많은 말을 다 받아주고, 웃기까지 하니... 진짜 천생연분은 따로 있었네.’

============================ 작품 후기 ============================

오늘도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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