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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70화 (470/505)

00470  호문쿨루스(Homunculus) 이브(Eve)  =========================================================================

470.

“데랑제르님! 이번에도 거짓 제보가 분명합니다. 숨을 만한 곳은 모두 뒤졌지만, 놈들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이것들이 우리를 종이호랑이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 제보가 잇따를 수가 없겠죠.”

“돌아가는 즉시 거짓 제보를 한 놈들을 모두 소환해 목을 베야겠어.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지.”

“맞습니다. 일벌백계로 다스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쌍두독수리 공대를 기만하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줘 흐트러진 기강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전날 아침 바마코에 도착한 쌍두독수리 공대 100명과 블랙 나이트 20명은 출입문을 모두 막고 박사와 이브를 찾았다.

호텔부터 빈민가까지 숨을 만한 곳은 한 곳도 빼놓지 않고 뒤졌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백인을 찾는 건 쌀밥에 든 검은 콩을 골라내는 것만큼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빼면 백인이 많지 않아 원한다면 어디에 누가 사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나마 바마코는 말리의 수도라 인구가 190만 명이나 돼 찾는데 하루가 걸렸지, 작은 도시는 1시간이면 탐문만으로도 박사와 이브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정보원을 통해 박사와 이브를 찾자 제보가 쏟아졌다. 제보가 쏟아지자 끌로드 베리 비서실장은 추적대 규모를 열 배로 늘렸다.

쌍두독수리 공대 5,000명과 블랙 나이트 500명을 투입해 들어온 제보는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했다.

특히 도망갔을 가능성이 큰 이집트, 그리스, 스페인, 리비아, 루마니아는 각각 500명이 넘는 능력자를 투입했다.

그러나 모두 잘못된 제보로 허탕만 쳤다. 그러자 정보원을 믿을 수 없다는 불만이 쏟아졌고, 정보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추적대를 이끄는 블랙 나이트 대장 사무엘 윌슨은 정보원들에게 달랑 사진 한 장만 보내주고, 르원틴 박사와 이브를 무조건 찾아내라고 명령했다.

그것도 가장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며 하던 일을 모두 미루고 찾아야 한다고 명령했다.

만약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협박도 사진과 함께 보내줬다.

이러다 보니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면 제보할 수밖에 없었다.

“대장님! 3시간 전 탐바쿤다에서 넘어온 트력을 찾았습니다.”

“3시간 전? 왜 3시간이나 지나서야 알게 된 건가? 출입문을 지키는 대원들은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정오를 기해 모두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커험...”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바마코 추적대 대장인 데랑제르가 헛기침을 하자 상황을 보고하던 대원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실책인양 사과했다.

병력을 철수하라고 명령한 건 데랑제르였다. 이 때문에 박사와 이브가 타고 온 차를 3시간이 지나서야 발견했다.

그러나 프랑스도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모든 죄는 부하 직원이 짊어져야 해, 잘못이 없어도 상관을 대신해 잘못을 빌어야 했다.

“빨리 나가 찾지 않고 왜 꾸물거리고 있는 건가?”

“알겠습니다.”

“에잉~ 쓸모없는 것들!”

자기 잘못으로 박사와 이브를 놓칠 수 있는 큰 실수를 범하고도, 데랑제르 대장은 부하 직원이 일을 잘못 처리해 이 같은 일이 일어난 것처럼 행동했다.

트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30분쯤 가다가 내린 후 다른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트럭 운전사와 택시 기사 누구도 믿을 수 없어 일부로 두 번이나 차를 갈아탄 후 길가에 있는 모텔로 들어갔다.

골목 가장 안쪽에 있는 모텔이 숨기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발각되면 퇴로가 막혀 독 안에 든 쥐 신세였다.

길가는 노출이 잘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달아나기는 훨씬 쉬웠다. 토끼가 입구를 여러 개 파듯 탈출로가 많은 길가가 골목보다 안전했다.

르원틴 박사는 모텔비를 계산하고 열쇠를 받는 동안 계속 곁눈질로 힐끔거리는 모텔 주인의 행동에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백인 남성과 여성이 허름한 모텔을 찾아 그럴 수도 있지만, 호기심이 아닌 의심 가득한 눈이었다.

박사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브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골목 어귀와 모텔 주변을 둘러보자 삼삼오오 모인 흑인들이 모텔을 가리키며 쑤군대는 것이 보였다.

박사는 누군가 자신과 이브를 찾아 돌아다녔다는 걸 알아챘다. 그렇지 않다면 백인 남녀가 모텔에 투숙했다고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쑤군대지는 않을 것이다.

불순한 생각으로 이브를 노리고 모인 놈들일 수도 있지만, 벌건 대낮에 얼굴을 드러내고, 그것도 아줌마들까지 모여 수다를 떤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재빨리 모텔을 벗어난 박사와 이브는 택시를 잡아타고 남문으로 이동했다. 먼 곳까지 갈 차를 수소문할 시간이 없어 이브의 손을 잡고 남쪽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조금 있으면 추적대가 쫓아올 거야. 겁먹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알았지?”

“네!”

박사의 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거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뒤를 바라보자 십여 대가 넘는 자동차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다가왔다.

저 멀리 추적자들이 보이자 심장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브에게 겁먹지 말라고 해놓고 이러는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두려움은 마음먹은 대로 떨쳐지지 않았다.

그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동차를 바라보는 이브를 보자 연구소를 탈출했을 때 느꼈던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다.

열기가 몸에 퍼지자 떨리던 다리와 손이 금세 안정을 찾았다. 급히 이브 손을 잡고 관목이 우거진 숲을 향해 달렸다.

“이브! 있는 힘껏 달려!”

“네!”

트윈틴 박사의 달리라는 말에 이브가 지면을 강하게 차자 몸이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박사의 손을 꽉 움켜쥔 채 이브가 있는 힘껏 달리자 박사의 두 발이 공중에 붕 뜬 채로 딸려왔다.

박사와 이브가 관목 숲으로 들어가자 쌍두독수리 공대원들도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전력을 다해 뒤를 쫓았다.

추적대엔 데랑제르 대장을 포함해 총 3명의 중급 피지컬리스트와 1명의 중급 멘탈리스트가 있었다.

또한, 민첩형 하급 피지컬리스트가 30명이나 있어 전력을 다하자 이브와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갔다.

“이브! 먼저 가. 금방 따라갈게.”

“거짓말 마세요. 저보다 느린데 어떻게 따라와요?”

“거짓말 아니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그럼 내가 찾아갈게.”

“저 사람들이 박사님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 나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야. 너를 만든 게 누구야?”

“박사님이요.”

“그런 중요한 사람을 죽일 것 같아? 절대 그러지 않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요?”

“그럼. 내가 거짓말 한 적 있었어?”

“아니요.”

“그것 봐! 없잖아. 그러니까 이 손 놓고 먼저 가.”

“저를 어떻게 찾으려고요?”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느낌만으로 찾을 수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어. 금방 찾아갈게.”

“정말이죠?”

“그럼!”

“약속 꼭 지켜야 해요?”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네!”

사랑하는 이브를 위해 르원틴 박사가 해줄 수 있는 건 도망갈 수 있게 손을 놓아주는 것뿐이었다.

사랑하는 이브의 손을 평생 놓고 싶진 않았지만, 죽도록 사랑하기에 손을 놓아야만 했다. 그래야 이브가 살 수 있었다.

“박사님! 빨리 오셔야 해요. 쪽~”

순진한 이브가 박사의 손을 놓고 입을 맞췄다. 눈물이 흐르려는 걸 억지로 참고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입을 열면 울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러면 이브의 손을 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달리다가 멈춰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브를 향해 괜찮은 척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눈을 맞추며 예쁘게 웃는 이브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흐르는 눈물을 꾹 참고 가슴에 담았다.

‘이브! 사랑해!! 영원히!!!“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이브를 가슴에 담고 가방에서 베레타(Berreta) 92F 권총을 꺼냈다.

만약을 대비해 테슬라 박사가 준 것을 잊지 않고 챙겨왔다. 작은 관목에 몸을 기대고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권총을 조준했다.

쌍두독수리 공대원들이 총알에 죽을 나약한 사람들이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시간을 벌어주고 싶었다.

박사는 이브가 살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었다. 그러나 박사의 영혼은 이미 타락해 값어치가 없는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탕탕탕!”

평생 쏴본 적도 없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충격에 손이 하늘로 올라가며, 총알도 하늘로 날아갔다.

어차피 맞추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총소리로 발걸음을 늦추는 게 목적이라 하늘로 날아가도 상관없었다.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놀란 추적대가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 모습에 고무된 박사가 더 많은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총을 난사했다.

“탕탕탕탕탕~”

시간을 더 벌어주기 위해 팔이 빠지도록 총을 쏴댔지만, 달랑 권총 한 자루로 산전수전 다 겪은 능력자들을 상대로 시간을 번다는 건 애당초 지나친 욕심이었다.

“컥!”

“힘도 없는 놈이 꼴에 여자는 지키고 싶었나 보군.”

“그렇게 말입니다. 그래도 평생 실험실에서 연구만 한 놈치곤 용기가 가상합니다.”

“용기가 아니라 무모겠지. 주제파악도 못하는 놈! 까학~ 퀘!”

데랑제르 대장이 죽은 트원틴 박사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박사 때문에 냄새나는 호텔과 더운 아프리카를 뛰어다니며 짜증이 폭발한 데랑제르는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보는 눈이 많고, 테슬라 박사가 아끼는 수제자라 문책을 받을 수도 있어 모욕을 가득 담아 침을 뱉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새끼보다 계집이 중요해. 절대 놓쳐선 안 돼! 빨리 추적해!”

“알겠습니다.”

데랑제르 대장의 고함에 메뚜기가 날아오르듯 쌍두독수리 공대원들이 공중으로 몸을 날리며 이브를 쫓았다.

쌍두독수리 공대원이 떠난 자리엔 목이 꺾여 죽은 리처드 르원틴 박사의 싸늘한 시신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죽어서도 이브를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지, 눈을 부릅뜨고 죽은 박사의 손엔 여전히 베레타 권총이 쥐여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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