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469화 (469/505)

00469  호문쿨루스(Homunculus) 이브(Eve)  =========================================================================

469.

“이브! 내 말 똑바로 들어. 우리가 추적대에 발각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아나야 해. 놈들이 따라올 수 없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는 거야. 그리고 기회를 봐서 아까 말한 나진시로 가 박지홍을 만나.”

“혼자는 싫어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명령이요?”

“그래! 명령!”

명령이란 말에 이브가 울상을 지었다. 평생(?) 르원틴 박사의 명령을 듣고 산 이브에게 르원틴 박사의 명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절대적 규칙이었다.

르원틴 박사의 명령을 어기는 건 세상이 무너지는 것으로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었다.

“마지막 명령이니까 절대 어기면 안 돼. 이것만 지키면 다시는 명령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명령을 끝으로 어느 누구의 말도, 명령도 따라선 안 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야 해.”

“정말 다시는 명령하지 않을 거예요?”

“응!”

“왜요?”

“사랑하니까.”

“그럼 박사님 말씀대로 할게요. 히히히히~”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이상 달아나라는 말은 절대 어길 수 없는 명령이었다.

이브는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르원틴 박사가 다시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아 겁이 났다.

키가 180cm의 이브는 날씬하지만, 육감적인 몸매로 겉모습만 보면 성인이 맞았다. 그러나 생각은 열 살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것도 도시가 아닌 두메산골에서 사는 순박한 아이였다. 르원틴 박사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이지만, 교육만으로 성격이 순박하게 변하지는 않았다.

이브는 순수한 아이의 인자를 갖고 태어난 것처럼 박사와 연구원들의 말을 의심하거나, 거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리바리한 사람도 타인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진 않았다.

타인을 경계하는 것은 인간의 잠재된 본능이자 최소한의 방어적 행동으로 본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브는 그런 본성조차 없는 것인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어떤 말이든 곧이곧대로 믿었다.

르원틴 박사가 다시는 누구의 말도 따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라고 한 건 자신이 죽은 후 이브가 사람들에게 이용당할 것을 걱정해서였다.

그리고 추적대가 따라오면 무조건 도망치라고 한 건 자신은 도망칠 능력이 없지만, 이브는 도망칠 능력이 있어 달아나라고 명령한 것이다.

써커와 상급 피지컬리스트의 생식세포를 결합해 만든 호문쿨루스 이브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하급 피지컬리스트로 성장했고, 한 달 후에는 하급과 중급의 중간 수준까지 성장했다.

하급 나이트까지 빠르게 성장한 능력자도 이때부터 성장 속도가 크게 둔화돼 중급 나이트에 도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생식세포로 사용한 마이클 쿠삭과 써커가 각각 상급과 중급 피지컬리스트라 빠르게 성장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엘리트 레드몬의 새끼도 이렇게 빠른 성장을 보이긴 어려웠다.

그러나 걱정보다는 기쁨이 앞섰다. 이브는 영생의 그릇을 만들기 위한 실험체로 능력이 뛰어날수록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다비드 회장이 바라는 건 단순히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니었다. 능력자들처럼 강한 힘을 갖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이브의 성장은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이브의 몸에 이상이 발견된 건 태어난 지 정확히 150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상적으로 결합한 것으로 판단했던 마이클 쿠삭의 세포와 써커의 세포가 균형을 잃고 써커의 세포가 마이클 쿠삭의 세포를 빠르게 잠식했다.

눈에 띄는 외형적·성격적 변화는 없었지만, 갑자기 대식가로 변해 하루에 소 한 마리를 먹어치웠다.

특이한 건 먹는 양이 늘어날수록 이브의 능력도 빠르게 향상한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빠른 성장 속도가 음식을 섭취하자 속도가 두 배로 증가하며, 한두 달 안에 중급 능력자를 성장할 기세였다.

헤니 테슬라 박사가 걱정하는 부분은 써커의 세포가 마이클 쿠삭의 세포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릇만 튼튼하면 세포는 누구 것이든 상관없었다. 문제는 써커들이 보여준 지나친 공격성과 특이한 음식 섭취 구조 등 인간과 극명하게 구별되는 성향이 나오는 것이었다.

또한, 인간의 유전자와 결합해 전혀 새로운 모양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도 있어 아깝지만, 이브를 포기하게 됐다.

그러나 르원틴 박사의 생각은 달랐다. 생애 최초로 찾아온 사랑은 열병보다 더 강해 이브가 괴물로 변한다고 해도 놓을 수 없었다.

시칠리아 섬에 도착한 르원틴 박사와 이브는 돈을 주고 화물선에 숨어 바다 건너 튀니지로 밀항했다.

튀니지 남부의 상업도시 스팍스에 도착한 다음 경비행기를 빌려 모로코의 서북부 항구도시 카사블랑카로 숨어들었다.

대서양에 있는 모로코의 최대 도시 카사블랑카도 안전하지 않아 이틀간 모텔을 전전하며 어렵게 배를 구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Dakar)까지 내려갔다.

3~4일이면 추적대가 따라붙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추적대가 나타나지 않자 가슴이 더 조마조마했다.

파리에 간 테슬라 박사가 다음 날 돌아오면 자신을 찾을 게 분명해 길어야 하루밖엔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추적대를 속이기 위해 택시를 계속 갈아타고 이탈리아 반도를 종단한 것이었다.

르원틴 박사가 이브를 데리고 아프리카로 도망친 건 다비드 로스차일드 회장의 능력을 어렴풋이나마 알기 때문이었다.

스승인 테슬라 박사를 통해 다비드 회장이 유럽을 꽉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르원틴 박사는 유럽과 미국 등 백인국가에 숨어드는 건 자살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최악엔 이브를 밀림으로 도망가게 할 생각이었다.

위험한 밀림으로 이브가 달아난다고 살아날 보장은 없지만,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는 게 확실해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는 밀림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진시의 박지홍을 찾아가라고 한 것 역시 밀림과 같은 생각으로 이브의 정체를 알면 살려줄 확률이 없었지만, 로스차일드와 사이가 나쁜 만큼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 것이다.

“박사님!”

“왜?”

“남녀가 사랑하면 아이가 생기는 거죠?”

“그.그.그렇지.”

“그런데 왜 우리는 아이가 없는 거죠? 박사님도 저를 사랑하고, 저도 박사님을 무지무지 사랑하는데, 아이가 왜 안 생기죠?”

“그.그.그건 말이야. 가.가.같이 자야 새.새.생기는 거야.”

“같이 잤잖아요.”

“음... 그.그.그냥 자는 게 아니라, 오.오.옷을 다 버.버.벗고 자야 생겨.”

“아~ 그런 거구나. 그럼 오늘 밤은 옷 다 벗고 자요. 아기 생기게. 알았죠?”

“그.그.그래. 꿀꺽~”

일주일 동안 이브와 1초도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있었지만, 숙맥인 르원틴 박사는 고작 손을 잡은 게 전부였다.

그것도 번잡한 도심을 걷는 게 불안해 보여 잡은 것이지 어떻게 해보려고 손을 잡은 건 아니었다.

마음은 밤마다 콩밭을 뛰었지만, 용기가 없어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차려진 밥상도 챙겨 먹지 못했다.

그렇게 밤마다 끊어질 듯 죽어라 뻗쳐대는 남성을 부여잡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대던 박사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고, 상상만으로도 아랫도리가 터질 것 같아 배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마음은 만세를 만 번이라도 부를 만큼 기뻤다.

“박사님! 저 배고파요.”

“뭐.뭐.뭐 먹을까?”

“고기요.”

“아.아.알았어. 가자!”

당장에라도 옷을 벗고 아름다운 이브를 안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는 박사는 이브의 부드러운 손을 잡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모텔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밤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미치겠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 점심을 코로 먹었는지 귀로 먹었는지도 모른 채 식당을 나온 박사는 이브를 데리고 코트디부아르로 갈 배를 구하러 항구로 걸어갔다.

“박사님!”

“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게 아니라 아까부터 누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요.”

“어디?”

“저기 뒤에 모자 눌러쓴 남자요.”

“다른 사람은 없어?”

“네!”

“빨리 가자.”

꼬리가 잡혔다는 것을 안 박사는 택시를 잡아타고 수도 다카르에서 동남동 쪽으로 450㎞ 떨어진 탐바쿤다(Tambacounda)으로 달아났다.

다행히 이브를 주시한 사람은 능력자가 아닌 정보원으로 박사와 이브를 따라오진 않았다. 그러나 꼬리가 밟힌 이상 추적대가 나타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내가 며칠 전 내린 명령 기억하지?”

“네!”

“절대 어기면 안 돼.”

“알았어요.”

탐바쿤다에 도착한 르원틴 박사와 이브는 지체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말리의 수도 바마코(Bamako)로 향했다.

하지만 큰돈을 주고 구한 낡은 트럭은 잦은 고장으로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바마코까진 무려 삼일이 걸려 도착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었다. 또한, 주위가 온통 관목과 초원이라 동물이 우글대 걸어서 이동할 수도 없었다.

힘들게 바마코에 도착한 박사와 이브는 모텔에 들어선 순간 범의 아가리로 기어들어간 것을 알았다.

쌍두독수리 공대와 블랙 나이트들은 박사와 이브보다 하루 먼저 공항을 통해 바마코에 도착했다.

3일이나 지체하는 바람에 박사와 이브의 흔적을 놓친 추적대는 조를 50개로 나눠 유럽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계속 택시를 바꿔 타며 이동한 르원틴 박사와 이브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차나 비행기를 탔다면 CCTV에 찍힐 수도 있었지만, 택시는 일일이 탐문 수사로 찾아내기 전엔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추적술의 대가들이 있어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으로 들어간 것까진 어찌어찌 찾아냈다.

여기서 아프리카로 갔을지, 그리스를 거쳐 중동으로 갔을지 알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정보원들을 이용해 박사와 이브를 찾았다.

이브의 존재가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려 정보원을 동원하지 않았지만,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숨어들면 놓칠 수도 있어 위험을 감수하고 동원하게 됐다.

그러다 사흘 전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르원틴 박사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과 여성을 발견했다는 제보를 받고 쌍두독수리 공대 200명과 블랙 나이트 40명이 세네갈로 날아왔다.

이들은 박사와 이브를 탐바쿤다까지 데려다준 택시운전사를 잡아 누구와 접촉했는지 알아냈다.

말리의 수도 바마코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낸 추적대는 조를 2개로 나눠, 한 조는 세네갈에 남고, 한 조는 바마코로 날아왔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행복하세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