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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68화 (468/505)

00468  호문쿨루스(Homunculus) 이브(Eve)  =========================================================================

468.

“호문쿨루스 연구는 얼마나 진행됐나?”

“정신을 담을 그릇을 만드는 작업은 80% 이상 진행됐습니다.”

“그래?”

“자잘한 문제점이 몇 가지 있지만, 2~3년 안에 보완할 수 있습니다.”

“역시 믿을 사람은 박사밖에 없군. 하하하하~”

“이번에 만든 호문쿨루스의 그릇을 키메라로 활용하는 방법도 연구 중입니다. 조만간 성과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머리가 될 모기 레드몬 연구는 지지부진한 실정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지금 보여준 성과만 해도 아주 흡족하네.”

“감사합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게. 박사가 원한다면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겠네. 그러니 내 소원을 꼭 이뤄주게. 내가 믿을 사람은 박사밖에 없네.”

“.......”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는 것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말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고3 수험생을 둔 엄마가 ‘아들! 엄마는 믿어! 우리 자랑스러운 아들이 서울대 갈 것을 믿고 있어!’라고 말한다면 아들은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을 것이다.

서울대가 아니라 하버드, MIT 공대, 스탠퍼드 대학에 갈 실력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고3 수험생 99.9%에겐 꿈같은 얘기로, 엄마가 이런 얘기를 한다면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회장이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나도 전임자들처럼 조용히 사라지겠지? 후유~’

다비드 회장을 만나고 온 헤니 테슬라 박사가 비밀 연구소에 도착한 건 자정을 훨씬 넘긴 새벽 2시였다.

돌아오는 내내 입을 굳게 다문 테슬라 박사는 지하 연구소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마음이 무거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띠잉~”

경쾌한 소리와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누군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깜짝 놀란 박사가 가까스로 피하자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도망치듯 뛰어갔다.

뒷모습을 보자 연구소 부책임자이자 수제자인 리처드 르원틴이 분명했다. 르원틴 박사와는 30년을 함께 일해 발가락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테슬라 박사는 제자의 다급한 모습에 휴대전화기를 꺼냈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연구소로 내려갔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겨 저리 허둥대는지 궁금했지만, 다비드 회장의 강력한 압박에 르원틴 박사의 일은 금세 잊어버렸다.

수제자라고 해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르원틴 박사의 작은(?) 고민을 걱정하기엔 박사의 고민이 너무나 깊었다.

르원틴 박사는 너무 다급한 나머지 스승인 테슬라 박사와 부딪칠 뻔했다는 것도 모르고 허겁지겁 차에 올라 연구소를 빠져나갔다.

연구소를 빠져나간 르원틴 박사는 엔진이 터질 만큼 과격하게 차를 몰아 연구소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낡은 집에 도착했다.

이 집은 헤니 테슬라 박사와 보안 책임자 스테판 커트 그리고 리처드 르원틴 박사 이렇게 셋만 아는 비상 탈출구로, 박사는 소각하라는 테슬라 박사의 지시를 어기고 이브를 몰래 이곳으로 빼냈다.

“이브! 어서 타!”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이탈리아로 갈 거야. 그런 다음 밀항해 알제리로 넘어가 아프리카 서부나 중부로 이동할 거야.”

“그러면 안전해요?”

“응!”

“박사님! 저 무서워요.”

“나만 믿어. 내가 끝까지 지켜줄게.”

“네!”

테슬라 박사는 자신의 개인 연구실로 들어가 독한 위스키 한 병을 몽땅 입에 쏟아 부었다.

평소 술을 가까이하지 않지만, 이렇게 기분이 우울한 날에는 술만큼 좋은 친구도 없었다.

헤니 테슬라 박사도 리처드 르원틴 박사처럼 고독한 사람이었다. 아내와 사별한 지 20년이 넘었고, 장성해 가정을 꾸린 아들과 딸은 3~4년에 한 번 보면 다행이었다.

밖에선 레드몬 분야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지만, 하는 일은 절대 알려져선 안 될 비밀 연구로 외부와 연락을 끊고 살았다.

로스차일드 연구소로 옮기기 전인 가코나 연구소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로 가족들과 거의 떨어져 지내며, 아내는 물론 자식들과도 사이가 소원했다.

헤니 테슬라 박사와 리처드 르원틴 박사는 그 스승에 그 제자답게 연구밖에 몰랐고, 성공한 과학자였지만, 성공한 남편과 애인은 아니었다.

아침이 돼서야 간신히 잠이 든 박사는 밤이 돼서야 일어났다. 그리곤 심한 숙취로 다음 날까지 변기통을 잡고 씨름하며 제자의 일을 까맣게 잊었다.

르원틴 박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건 엘리베이터에서 헤어진 지 3일이 지난 후였다.

“리처드는 어디 갔나? 며칠째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급한 일이 있다고 며칠 자리를 비운다고 했습니다.”

“급한 일?”

“네.”

“이유는 말하지 않았나?”

“네, 급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빨리 연락해보게.”

헤니 테슬라 박사는 리처드와 연락이 닿지 않자 사고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급히 보안책임자 스테판 커트를 불러 리처드를 찾도록 했다.

박사는 두 달 전 연구원들이 이브의 미모에 끌려 연구에 방해된다는 리처드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소각로 담당자를 불러 이브를 처리했는지 물었다. 박사는 파리로 떠나기 전 이브를 소각하라고 지시했고, 르원틴 박사는 자신이 직접 처리하겠다며 소각로 담당자를 일찍 퇴근시켰다.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맞았다. 한 시간 후 리처드가 비상 탈출구를 거쳐 베른으로 갔다는 것을 보안책임자 스테판 커트가 알아냈다.

“비상 탈출구를 통해 빼낸 것 같습니다.”

“베른에서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있겠나?”

“차를 버리고 달아나 우리 힘으론 찾기 어렵습니다.”

“차를 빌렸거나 기차를 이용했으면 신용카드 기록이 남았을 것이고, 주변 CCTV에 찍혔을 수도 있잖은가?”

“신용카드는 집에 모두 버렸고, 통장 잔액도 없는 것으로 보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것 같습니다. 달아난 지 이미 삼 일이 지나 우리 힘으론 찾을 수 없습니다. 본사에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하아~ 어리석은 친구!”

방법이 없자 헤니 테슬라 박사는 떨어지지 않는 손으로 휴대전화기를 꺼내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비드 로스차일드 회장의 오른팔이자 비서실장인 끌로드 베리는 알았다는 단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시간 후 쌍두독수리 공대 소속 나이트 500명과 배신자를 전문으로 추적·소탕하는 블랙 나이트 부대원 100명이 연구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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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를 데리고 연구소를 빠져나온 르원틴 박사는 베른을 거쳐 서남부 도시 로잔으로 갔다.

로잔에 도착하자 주택가 뒷골목에 차를 대고 이브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다음 준비한 가발과 모자를 씌웠다.

이브의 머리카락은 한 번 보기만 해도 잊지 못할 만큼 탐스러운 금발로 허리까지 내려와 그 상대로 돌아다니면 어디 있는지 광고를 하는 것과 같았다.

골목에 차를 버리고 나온 르원틴도 모자를 뒤집어쓰고 택시를 잡아탄 다음 제노바로 이동 후, 다시 택시를 갈아타고 프랑스 샤모니로 이동했다.

샤모니에서 이탈리아의 튜린, 제노아, 피사, 로마, 나폴리를 거쳐 시칠리아 섬까지 이동하며 택시를 10번 넘게 갈아탔다.

평생 연구밖에 모르던 르원틴은 사랑에 눈이 멀자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해 탈출에 필요한 일을 단 사흘 만에 준비했다.

먼저 20년간 저축한 돈을 몽땅 찾고, 대출까지 받아 현금을 최대한 많이 준비하고, 여행에 필요한 작은 가방과 선글라스, 모자, 가발 등을 샀다.

그리곤 여성 연구원의 신분증과 여권을 훔쳐 이브의 사진으로 바꿔치기하고, 밤새 도망갈 경로와 방법을 찾는 등 영화와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을 그대로 흉내 냈다.

“하늘도 아름답고, 바다도 아름답고, 도시도 아름다워요, 눈에 보이는 건 뭐든지 아름다워요.”

“그렇게 예뻐?”

“네, 책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도 안 돼요.”

“이브는 앞으로 뭘 하며 살고 싶어?”

“좀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어요.”

“여행이 끝나면?”

“응... 박사님과 작은 집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박사님은요?”

“나도 이브와 평생같이 살고 싶어.”

“히히히히~ 그럼 소원이 이루어진 거네요.”

“그러려면 놈들의 손에서 벗어나야지.”

“왜 저를 쫓는 거죠? 박사님과 행복하게 살게 내버려두면 안 되나요?”

이브의 천진난만한 말에 르원틴 박사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다비드 로스차일드 회장은 절대 자신과 이브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이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 써커와 변종 모기 레드몬을 이용해 호문쿨루스를 만들려 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다.

인간을 이용해 만든 생체병기 키메라만 해도 손가락질받을 일인데, 호문쿨루스까지 세상에 알려지면 천하의 로스차일드 가문도 용서받을 수 없었다.

일본과 중국이 변종 모기 레드몬으로 사라지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모기 레드몬을 이용해 생체병기를 만드는 행위는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로 악의 축으로 규정해 공격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거짓이라고, 로스차일드 가문과는 무관하다고 잡아떼면 그만이지만, 사람들에게 한 번 의심을 사면 그때부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세계를 암중 지배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민심과 평판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일로 세계정복을 꿈꿨던 수많은 제국과 나라가 민심이 떠나며 급격히 무너졌다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자선활동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며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자신과 이브 때문에 사라지고, 인류의 공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둘이 행복하게 살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이브!”

“네?”

“만약에 말이야... 내가 죽으면 나진시의 박지홍을 찾아가. 너를 보호해 줄 곳은 그 밖에 없어.”

“박사님이 왜 죽어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저 박사님 없으면 못 살아요.”

“만약이라고 했잖아.”

“만약이라는 말도 하지 마세요. 무서워요.”

겁에 질린 이브가 품에 안기자 르원틴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쉬지 않고 달려 이틀 만에 시칠리아 섬까지 도착했지만, 이미 자신과 이브가 도망친 것을 알고 사냥개들이 출발했을 것이다.

쌍두독수리 공대엔 추적에 특화한 전문가들이 있어 금세 따라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운 좋게 아프리카 중부에 도착해도 추적을 피하긴 어려웠다.

놈들은 자신과 이브가 있는 곳이 지옥이라도 따라올 것이었다. 절대 살려둘 수 없는 만큼 그곳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올 게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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