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6 물의 지배자와 기억 흡수 =========================================================================
466. 물의 지배자와 기억 흡수
모비 딕과 비버의 레드주얼을 흡수한 크라켄 주얼은 크기가 5.5cm로 커지며, 성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물의 지배자라고 명명한 스킬은 내가 원하는 곳의 반경 1km 이내의 물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능력으로, 그 안에선 소용돌이를 만들 수도 있고, 물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물을 얼리거나 펄펄 끓게 할 능력은 없었고, 액체인 물 상태에서 물리적인 힘만 가할 수 있었다.
“물속에 들어가 사용하는 스킬 아니죠?”
“응, 물 밖에서 사용하는 거야.”
“잠영 주얼까지 흡수했는데, 수영과 관련된 능력이 없다니... 정말 오빠는 물과는 상극이네요.”
“그런 것 같다.”
상아의 말처럼 선천적으로 물과는 상극이라 그런지 물의 지배자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물 밖에서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C급 상급 레드몬까진 소용돌이를 이용해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었고, B급은 잡아두는 것까지 가능했다.
A급은 움직임을 방해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것만 해도 대박으로 더는 해양 레드몬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다.
더군다나 물에 들어가지 않고 물 밖에서 레드몬을 공격할 수 있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상아의 말을 듣자 반쪽짜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 밖에서 사용하는 만큼 물의 지배자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땅과 안전이 보장된 배밖에 없었다.
이건 기감이 미치는 않는 곳엔 레드몬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기감으로 바닷속을 살필 수 있는 거리는 고작 60m였고, 기감을 좁혀 일직선으로 탐지해도 100m가 최대로 깊은 바닷속에 숨은 레드몬은 찾을 수 없었다.
레드몬이 가까이 다가오면 그때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급부턴 원거리 공격 스킬을 갖춘 놈들이 태반으로 물의 지배자를 사용하기도 전에 배가 산산이 조각나 빠져 죽을 수도 있었다.
“야! 최은비~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반쪽짜리로 변한 게 은비가 입을 놀려 그렇게 됐다는 생각이 들자 눈에 불이 일었다.
입이 화근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했는데, 또다시 입을 놀려 이 모양을 만들었다.
“화를 낼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처구니없는 스킬이 나왔는데, 고마워해? 제정신이야?”
“물속에 들어가서 사용하는 스킬이 나왔다면 오빠가 좋아했겠어?”
“아!”
“그것 봐! 물을 무서워하는 오빠가 물속에서 스킬을 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발만 담가도 빠져 죽을까 봐 벌벌 떨면서. 안 그래?”
“그렇지.”
“내 덕분에 물에 빠져죽지 않아도 되고, 고마워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생겼네?”
“에휴~”
은비의 말처럼 물속에서 사용하는 스킬이 나왔어도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의 지배자가 있는 한 빠져 죽을 염려는 없겠지만,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 상태에선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실력이 아니라 겁에 질려 헛되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물의 지배자가 있다고 물에 대한 공포심을 이겨낼 순 없었다.
‘평생 물엔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네. 에휴~’
크라켄 주얼엔 물의 지배자 외에도 스킬이 하나 더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와 신체접촉을 통해 상대의 기억을 흡수하는 능력이었다.
상대의 기억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복사하는 것으로 1분이면 상대의 기억을 내 뇌에 저장하듯 완벽히 기억했다.
“기억 흡수 스킬만 있으면 천재가 될 수도 있겠네요.”
“내 머리는 그럴 용량이 안 돼.”
“인간의 뇌는 무궁무진해요. 개발하기에 따라 슈퍼컴퓨터보다 더 많은 용량을 기억할 수 있어요.”
“과부하로 터지는 거 아니야?”
“설마요~”
“나 같은 둔재는 평생 뇌의 10%도 못 쓴다고 하던데, 무리하면 이상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거 잘못된 내용이에요. 뇌의 사용량, 용량 같은 건 없어요.”
“정말?”
“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일단 부딪혀 보세요. 그럼 요령이 생길 거예요.”
“알았어.”
사람들은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했고, 일반인은 3%도 사용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내용으로 뇌 사용량이 10%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윌리엄 제임스 교수가 천재와 보통 사람의 뇌 사용량이 다르다고 주장한 내용을 미국 작가 로웰 토머스가 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잘못 전달하며 유포한 내용이었다.
100억 개의 뉴런(Neuron)으로 구성된 인간의 뇌는 동시에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는 2~5% 정도에 불과했다.
이를 바탕으로 뇌 사용량이 10% 미만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매 순간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바뀌기 때문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뇌 신경세포는 거의 없어 뇌를 10%, 20% 사용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었다.
“지홍아!”
“응?”
“되도록 사람의 기억은 흡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누구나 감추고 싶은 기억이 있잖아. 그걸 들키면 큰 수치심을 느끼게 돼. 그러니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빼고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너희에게 사용할까 봐 그래?”
“나는 언제든 상관없어. 네가 원하면 지금 기억을 읽어도 돼. 그러나 언니들과 동생들에겐 사용하지 마. 부탁이야!”
소연이 언니와 동생들에겐 기억 흡수 스킬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소연의 요구가 없어도 아내들에게 사용할 마음은 없었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대단한 게 아니라도 본인에겐 매우 수치스러운 일로 나 역시 아내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
이는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로 꼭 지켜줘야 한다. 그것이 아내들에 대한 존중이자, 배려였고, 사랑이었다.
“내가 애도 아니고 마누라 과거나 엿볼 것 같아?”
“미안해!”
“아니야! 호기심 때문에 실수할 수 있어 확실하게 정해두는 게 맞아.”
“이해해줘서 고마워. 대신 내건 지금 봐.”
“숨기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있긴 한데... 네가 원하면 보여줄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소연이 코 찔찔 흘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환상이 깨지면 안 되잖아! 안 그래?”
“나 코 안 흘렸어.”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던데... 코 엄청나게 흘렸나 보네. 설마 오줌까지 싼 건 아니겠지?”
“아니라니까~”
상아의 조언을 받아들여 부담이 적은 작은 풀과 꽃의 기억부터 흡수했다. 뇌가 없는 풀과 꽃은 기억하는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희미하게나마 바람과 태양, 구름, 비, 흙 등을 기억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태양, 비와는 달리 매우 추상적인 형태지만, 풀과 꽃이 이런 것들을 느끼고 기억한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풀과 꽃은 태양이 비추면 하늘로 고개를 들고, 비가 오면 싱그럽게 피어나고, 밤이 오면 몸을 숙이는 것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느낌이 아주 좋은데.”
“어떤데요?”
“구체적이진 않지만, 아주 신비로워.”
풀과 꽃의 기억은 자연 그대로를 느낀 걸 기억한 것으로 기감으로도 느껴보지 못한 순수 그 자체였다.
“우리가 명상을 통해 느끼고 싶었던 자연의 느낌을 풀과 꽃이 기억하는 것 같아.”
“저도 그게 어떤 느낌인지 느껴보고 싶어요.”
“풀과 꽃잎의 기억을 떠올릴 테니까 교감으로 읽어봐.”
“네!”
재생장치를 다시 돌리듯 풀과 꽃의 기억을 떠올리자 상아가 교감 스킬을 이용해 기억을 읽었다.
상아도 나처럼 신비하고 황홀한 느낌에 한참이나 눈을 감고 꽃과 풀이 기억하는 바람, 빛, 어둠, 비, 대지를 느꼈다.
“어때?”
“오빠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경이로운 느낌이에요.”
“우리만 느끼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네, 모두 함께 느끼면 좋겠어요.”
“그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좀 더 많은 꽃과 풀, 나무의 기억을 흡수한 다음 알려주자.”
“네!”
기억 흡수는 몸을 쓰는 게 아니었고, 식물을 대상으로 사용해 몸에 무리가 오진 않았다.
그래도 모르는 일이라 주치의인 마샤와 아영의 감시 속에 상아와 소희를 옆에 끼고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식물의 기억을 흡수했다.
처음 사흘 동안은 꽃과 풀을 위주로 했고, 그다음엔 작은 나무에서 큰 나무순으로 옮겨갔다.
기억을 흡수하면 바로 상아에게 보여주고, 상아는 다시 아영과 마샤, 소희에게 보여주며 반응을 살폈다.
다들 나와 상아가 느꼈던 느낌을 느끼며 자연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자 명상의 깊이가 달라졌다.
효과가 있자 은하와 한숙, 소연, 은비, 서인, 아리, 제니퍼에게도 식물이 가진 기억을 나눠줘, 자연이 지닌 참모습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눈에 띄게 기감력이 발전했다. 나뿐만 아니라 기감력을 터득한 아내들 모두 빠르게 실력이 향상됐고, 오랫동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던 마샤와 제니퍼, 소희도 실마리를 찾고 기감력을 터득했다.
“이제 몸도 다 회복했으니 동물로 넘어가야겠다.”
“동물의 기억은 식물하고는 많이 다를 거예요. 좀 더 시간을 갖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마샤야! 오빠 그 정도 이겨낼 정신은 돼.”
“오빠가 강한 정신을 가졌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러나 지금은 회복한 지 얼마 안 돼 무리하면 두통이 다시 재발할 수 있어요.”
“알았어. 대신 일주일 후에는 허락해줘?”
“네!”
마샤의 걱정하는 마음을 뿌리치지 못해 일주일을 더 참기로 했다. 아내들이 말릴 때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걸 무시하는 건 사랑과 걱정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들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들어주는 것이 사랑에 대한 보답이었다.
일주일 후 토끼의 기억을 흡수했다. 지능이 낮아 기억하는 것이 많진 않았지만, 풀과 꽃보다는 훨씬 많았다.
거의 오래된 고목 정도의 기억으로 두서도 없고, 내용도 비슷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식물처럼 자연을 느끼게 해주는 기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살기 위해 끊임없이 뛰어다니는 것, 순간순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죽음의 공포, 종족 번식을 위한 노력이 대부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 살기 위해 노력하고,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모습만 다를 뿐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네. 이러면 내 삶이 토끼와 다를 게 없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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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