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3 상급 레드몬 크라켄(Kraken) =========================================================================
463.
한 무리를 이끄는 수장답게 흥분을 가라앉힌 모비 딕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크라켄의 눈을 공격했다.
촉완에 공격이 모두 막혔지만, 실망하지 않고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워터 캐논을 발사했다.
모비 딕의 임무는 크라켄을 잡는 게 아니었다. 놈을 마츠나 만으로 유인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래야만 가족을 죽인 원수를 죽일 수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모비 딕은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심정으로 죽을힘을 다했다.
B급 엘리트 레드몬 세 마리를 먹어치운 크라켄은 배가 부르자 흡반에 붙은 다섯 마리를 칭칭 감아 숨통을 조여 죽인 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곤 모비 딕을 향해 사납게 촉완을 휘둘렀다. 충분한 먹잇감을 확보하고도 가장 맛있는 먹잇감을 잡지 못한 것이 서운했는지 크라켄은 더욱 사납게 촉완을 휘둘렀다.
그러나 300m밖에 안 되는 좁은 입구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모비 딕을 잡지 못했다.
모비 딕은 촉완이 다가오면 북쪽으로 달아났다가 재빨리 내려와 워터 캐논을 쏘고 다시 달아나며 크라켄의 화를 북돋웠다.
30분 넘게 사납게 촉완을 휘두르고도 모비 딕을 잡지 못하자 약이 바짝 오른 크라켄이 물 밖으로 몸을 일으켜 좌우를 훑어봤다.
지름이 10m나 되는 커다란 눈으로 한참을 훑어보곤 위험이 모두 사라졌다고 판단하자 모비 딕을 잡기 위해 마츠나 만 안으로 들어갔다.
바다의 지배자 리비아탄을 장난치듯 잡아먹은 크라켄은 심해에서 수많은 적을 물리치며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한 크라켄은 아주 특별한 능력을 얻었다.
접촉을 통해 상대의 기억을 흡수하는 능력으로 크라켄은 이 능력을 통해 아주 빠르게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했다.
세 번이나 달아난 리비아탄을 추적한 것도 기억을 흡수해 가능했던 것으로, 과거에 모비 딕이 무리를 이끌고 갔던 곳과 진행방향 그리고 희미한 냄새를 따라 세토 내해까지 따라올 수 있었다.
크라켄은 기억 흡수를 통해 남들은 평생 한 번도 볼 수 없는 매우 희한하고 경이로운 일들을 무수히 경험했다.
기억 흡수는 간접 경험이지만, 실제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해 크라켄을 빠르게 성장시키며, 엄청난 지식도 안겨줬다.
그러나 기억 흡수도 세상 모든 것을 알려주진 못했다. 평생 심해에서 산 크라켄이 상대한 적은 모두 깊은 바닷속 생물로 육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나마 리비아탄과 조우하며 육지, 인간, 배, 하늘, 새 등 그동안 모르던 것을 알게 됐지만, 리비아탄 무리도 능력자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레드문과 함께 인간에게 바다는 100년 전 미지의 세계이자,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시 돌아갔다.
여전히 화물선과 여객선, 어선 등이 바다를 활보했지만, 넓은 대양보단 좁은 근해를 위주로 운항했다.
이 때문에 대양에서 주로 활동하는 리비아탄도 인간을 구경할 기회가 드물었다. 또한, 인간에게 공격받은 적도 없어 기억 속에 인간에 대한 부분은 없다시피 했다.
이로 인해 크라켄도 인간이란 동물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크라켄이 마츠나 만에 들어가지 않은 건 오랜 기간 몸에 밴 조심성과 좁은 곳에서 모비 딕 일행과 싸우는 건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가 걱정했던 것처럼 출입구를 막고 인간이 공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뭇거린 것이 아니었다.
오직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크라켄의 조심성 때문에 그런 것이지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크라켄이 마츠나 만으로 진입하자 모비 딕이 궁지에 몰린 것처럼 허둥대며 북쪽으로 달아났다.
모비 딕이 달아나자 크라켄이 쥐를 구석에 몰 듯 다리를 넓게 벌린 채 북쪽으로 올라갔다.
[지금이야!]
모비 딕이 크라켄을 북쪽 부두까지 끌고 가자 하람과 혈풍에게 신호를 보내고 재빨리 지하실을 벗어났다.
토굴에서 뛰어나온 하람과 혈풍이 산처럼 쌓아놓은 돌과 콘크리트 더미를 양쪽에서도 동시에 바다에 밀어 넣었다.
상급 레드몬의 엄청난 힘으로 돌과 콘크리트 더미를 한꺼번에 밀어 넣자 입구가 빠르게 좁혀졌다.
아내들과 시랑, 백호, 풍산개들도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어 출구를 막는 사이 마츠나 만을 모두 얼릴 기세로 냉기탄을 쏘아댔다.
작전은 크라켄이 마츠나 만에 들어오면 입구와 출구를 막고 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놈의 크기를 기감으로 확인하자 입구와 출구를 막는 것으로는 크라켄을 가둘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생각한 게 냉기탄으로 마츠나 만을 얼려 시간을 버는 사이 아내들과 하람, 혈풍, 시랑, 백호, 풍산개들이 출입구를 막고 물을 빼내는 것이었다.
물을 빼내는 건 이미 계획된 작전으로 양수기 10,000대도 냉기탄을 신호로 마츠나 만의 물을 미친 듯이 빼냈다.
그렇게 시간을 벌며 물을 빼내고, 화염탄으로 물을 증발시켜 크라켄을 고사시키는 것이 새로운 작전이었다.
“쩌저저저정~”
개미처럼 작은 인간들이 나타나 바다를 얼리고, 출입구를 돌로 막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크라켄이 정지화면처럼 멈춰 섰다.
조심성이 백 단인 크라켄의 약점은 물밖에 모른다는 것과 물을 떠나선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남의 기억을 흡수해 방대한 지식을 쌓으며 세상에 모르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크라켄이 멍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건 세상에 모르는 일이 없다던 자만심이 무너지며 멘붕이 왔기 때문이었다.
[시간 없어. 놈이 넋 놓고 있을 때가 유일한 기회야. 쉬지 말고 밀어 넣어.]
아내들과 하람, 혈풍을 독려하며 마츠나 만을 얼리는데 집중했다. 놈을 공격하지 않는 건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놈이 달아날 수 없게 길목을 막고 물을 뺄 시간이었다. 이것만 완성하면 놈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오징어는 물 밖에 나오면 얼마 못 가 죽었다. 놈이 상급 레드몬이지만, 자연의 법칙에선 자유로울 수 없어 물을 벗어나면 놈도 죽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먹을 수도 없는 엄청난 크기의 대왕오징어 한 마리를 공짜로 줍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꿈같은 생각으로 3분의 1쯤 얼리자 정신을 차린 크라켄이 기다란 촉완을 뻗어왔다.
“삐용삐용~ 삐용삐용~”
촉완을 피해 북쪽으로 달려가자 구미호가 날아가 크라켄의 눈을 공격했다. 재빨리 4단계 정화수를 들이키고, B급 엘리트 레드스톤으로 포스를 보충한 후 미친 듯이 냉기탄을 쏘아댔다.
[모비 딕에게 숨어있지 말고 공격하라고 해!]
[네!]
부두 구석에 몰려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난 모비 딕에게 크라켄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그건 모비 딕에게 죽으라는 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이지만, 모비 딕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빠져나갈 구멍도 없었고, 운 좋게 산다고 해도 산 것이 아니었다. 혼자 남아 평생 바다를 떠돌며 고통을 받느니 명예롭게 죽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모비 딕의 목표는 크라켄을 죽이는 것이었다. 크라켄을 마츠나 만으로 끌어들이는 임무를 완수했지만, 크라켄을 죽이지 못하면 소용없는 짓이었다.
모비 딕이 물속에서 워터 캐논을 쏘고, 구미호가 하늘에서 눈을 노리자 크라켄의 시선이 세 곳으로 분산됐다.
대왕오징어의 다리가 열 개라도 눈은 두 개였고, 눈이 좌우에 달려 폭넓게 볼 수 있어도 세 곳을 동시에 공격할 순 없었다.
촉완이 구미호를 따라가고, 다리가 모비 딕에게 집중되자 마츠나 만을 얼리는 일에 집중했다.
모비 딕이 크라켄을 북쪽으로 유인해 출입구 부근 남쪽과 서쪽 바다는 손쉽게 얼릴 수 있었다.
중간 역시 구미호와 모비 딕이 시선을 끌어줘 빠르게 얼리며 이제 크라켄이 있는 북쪽만 남게 됐다.
마지막 남은 북쪽을 향해 냉기탄을 집중하고 있자 시랑이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달려와 바닥에 내려놨다.
자루를 열자 본스틸 합금강에 쌍봉낙타의 산성용액을 주입한 창이 50개 나왔다. 던지기 좋게 일렬로 꽂아준 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아내들에게 돌아갔다.
상급 레드몬을 상대로 B급 엘리트 레드몬의 산성용액을 쓴다는 게 우스운 생각이지만, 대왕오징어는 피부에 염화암모늄이 많아 산성용액이 닿으면 몹시 괴로워할 수도 있었다.
“저희 왔어요!”
“친구! 우리 왔네.”
“벌써 입구를 막은 거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아정씨가 3단계 정화수를 두 병이나 주셔서 끝냈지, 그거 없었으면 한참 걸렸을 거예요.”
“하여간 엄살은 알아줘야 해.”
“정말이에요. 쓰러질 만큼 힘들었어요.”
“알았어. 수고했어.”
입구를 틀어막은 하람과 혈풍이 다가왔다. 상급 레드몬답게 엄청난 괴력을 발휘한 하람과 혈풍은 1시간 만에 입구를 완벽히 틀어막았다.
“혈풍은 동쪽, 하람은 서쪽으로 이동해 중앙부터 증발시켜.”
“직접 공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랬다간 우리가 먼저 지칠 수도 있어.”
“전투력이 얼마나 되는데 그래요?”
“몰라. 그러나 코모도왕도마뱀보다 세다는 건 확실해.”
“덩치만큼 능력도 엄청나네요.”
크라켄의 시선을 끌면 안 돼 살기를 투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놈의 전투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구미호의 레이저를 막은 촉완에 긁힌 상처 하나 없는 것만 보아도 B급 이상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라켄을 최소 A급 상급 레드몬으로 가정하고 상대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 B급 정도로 생각하고 달려들었다간 포스가 고갈돼 놈을 놓칠 수도 있었다.
맹수를 잡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다치는 것보다 놓치는 것이었다. 특히 상처 입은 맹수를 놓치면 절대안 됐다.
독이 바짝 오른 놈을 놓이면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이때 맹수가 강할수록 입게 될 피해는 더욱 컸다.
크라켄은 지금껏 만난 맹수 중 가장 강한 상대로 놓치면 인명 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고, 최악엔 대한민국 전체가 영원히 바다로 나가지 못한 채 육지에 갇혀 살 수도 있었다.
동서로 갈라진 하람과 혈풍이 화염탄을 쏘아대자 꽝꽝 언 바닷물이 녹는 대신 타서 없어졌다.
[둘 다 들어가서 광역 스킬로 태워.]
[알았어.]
[시간 없어 빨리 움직여!]
하람의 대답에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했다. 화염탄을 쓰라고 한 건 얼음이 녹으며 증발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엄청난 고열에 얼음이 증발할 줄은 몰랐었다. 화염 폭풍과 지옥의 불길로 물을 태우는 것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물이 녹고, 다량의 수증기가 발생하면 크라켄과 함께 물에 갇힐 수도 있어 원거리에서 화염탄을 사용하라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얼음이 녹지 않고 타서 사라지자 작전을 바꿨다. 얼음에 뛰어든 하람과 혈풍이 광역 화염 스킬로 얼음을 태우자 순식간에 바닷길이 생겼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