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462화 (462/505)

00462  상급 레드몬 크라켄(Kraken)  =========================================================================

462.

1997년 11월 3일

나루토 해협에서 B급 리비아탄과 함께 망을 보던 솔피들이 크라켄의 접근을 알려왔다.

하리마 여울과 이요 여울로 들어오는 길목 세 곳에 리비아탄 한 마리와 솔피 3마리를 한 조로 묶어 크라켄이 다가오는지 감시했다.

오안네스는 인간이 사용하는 음향탐지기 소나(Sonar)보다 월등한 초음파를 사용해 크라켄이 다가오는지 감시했다.

오안네스에게 초음파로 소식을 전한 솔피와 리비아탄이 하루마 여울로 달아나자 크라켄이 물을 뿜어내며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다.

크라켄이 리비아탄 무리를 쫓아올 수 있었던 이유를 뛰어난 후각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다는 육지처럼 발자취와 흔적이 남지 않았고, 물 또한 쉼 없이 흘러 냄새도 금세 사라졌다.

이를 고려하면 크라켄이 냄새를 쫓아 세토 내해까지 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바로 쫓아오지 않고 일주일이나 걸렸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그런데도 모비 딕의 말을 믿은 건 상식이란 우리가 아는 짧은 지식에 근거하기 때문이었다.

지식은 불완전한 것으로 과학의 발전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었다. 또한,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일도 무수히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레드몬과 능력자였다. 현재의 과학 수준으론 이들이 왜 생겨났는지 그것조차 규명할 수 없었다.

나부터 비상식적인 존재인데, 크라켄이 냄새를 쫓아왔다는 걸 마냥 부정할 순 없었다.

그리고 모비 딕이 크라켄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와 상아처럼 레드몬과 능력자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크라켄이 나루토 해협을 통과하자 하람과 혈풍은 토굴 속에 몸을 숨겼고, 나와 아내들은 부서진 공장 지하에 숨었다.

“오빠! 크라켄이 미즈시마 여울을 통과했어요.”

“오안네스와 모비 딕은 어디 있어?”

“후쿠야마 앞 하우치 여울에서 크라켄을 기다리고 있어요.”

“적당히 싸우다가 빠지라고 해. 흥분해서 싸우다가 낭패 보지 말고.”

“네.”

크라켄이 마츠나 만 아래 하우치 여울로 들어오자 오안네스와 모비 딕이 초음파와 워터 캐논을 발사했다.

A급 엘리트 레드몬 두 마리가 달려들자 크라켄이 방향을 바꿔 오안네스와 모비 딕에게 달려들었다.

그사이 크라켄을 유인한 리비아탄과 솔피들이 마츠나 만이 안전한 아지트라도 되는 것처럼 크라켄이 잘 볼 수 있는 각도에서 허겁지겁 들어갔다.

크라켄이 다가오자 오안네스와 모비 딕도 뒤로 물러나며 마츠나 만 남쪽 입구로 놈을 유인했다.

하우치 여울은 수심이 100m에 불과해 길이가 500m에 달하는 크라켄이 움직이기엔 매우 불편한 곳이었다.

그러나 크라켄은 연체동물답게 수심이 얕은 곳에서도 유연하게 몸을 움직여 오안네스와 모비 딕에게 다가갔다.

오안네스의 초음파는 같은 등급의 백상아리도 기절시킬 만큼 강력했지만, 크라켄에겐 두통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에 불과했다.

모비 딕의 워터 캐논도 산을 허무는 강대한 힘이 담겨 있었지만, 크라켄의 촉수가 휘젓자 힘없이 사라졌다.

크라켄의 강력함에 겁먹은 오안네스와 모비 딕이 마츠나 만으로 들어가자 빠르게 접근하던 놈이 멈춰 섰다.

“다리만 간신히 물에 잠겨있네.”

“그렇게 커?”

“커다란 산이 새로 생긴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큰 레드몬이 생길 수 있지?”

“글쎄?”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동물 하면 사람들은 흔히 공룡을 생각했다. 그러나 정답은 현재 바다를 누비고 있는 흰긴수염고래였다.

거대 육식 동물이 가장 많았던 때는 중생대인 공룡시대가 맞지만, 단 하나만 꼽으면 현시대의 흰긴수염고래만큼 큰 동물은 없었다.

길이가 평균 25~30m에 몸무게 150톤에 달하는 흰긴수염고래는 중생대 공룡을 비롯한 고생물들까지 모두 뒤져도 덩치가 가장 큰 동물로 하루에 4ton에 달하는 크릴새우를 먹어치웠다.

이런 녀석이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하자 크기가 평균 200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괴물로 변했다.

다행히 레드몬으로 진화한 이후에도 크릴새우만 먹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흰긴수염고래보다 두 배 이상 큰 크라켄을 은비에게 산이라고 표현했지만, 산이라는 말마저 부족할 만큼 크라켄은 거대했다.

“들어왔어?”

“아니. 입구에서 멈춰 섰어.”

“왜?”

“무언가 수상하다고 느끼나 보지.”

“뭐가 수상해?”

“입구에 산처럼 쌓인 돌과 콘크리트 더미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나 보지.”

“흙으로 덮어놔서 이상하지 않을 텐데.”

바다에 밀어 넣을 돌과 콘크리트 더미를 흙으로 덮어놨다. 놈이 마츠나 만에 들어오지 않으면 처리할 방법이 없어 의심할만한 것은 최대한 없앴다.

그런데도 놈은 마츠나 만으로 들어오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의심의 눈을 지우지 않았다.

크라켄이 들어오지 오안네스와 모비 딕이 입구로 다가가 초음파와 워터 캐논을 쏘아댔다.

그러나 크라켄은 기다란 촉완으로 오안네스와 모비 딕의 잡으려고만 했지, 마츠나 만으로 들어가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영리하네요.”

“그러니까 상급 레드몬이 되겠지.”

“하긴 멍청했다면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살아남지도 못했겠죠. 남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어 지금과 같은 강자가 된 거겠죠.”

상아의 말처럼 멍청했다면 강자가 난립하는 바다에서 진화는 고사하고 목숨을 부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능이 높다고 무조건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고, 오래 살아남는 건 아니었다.

성공한 사람이 모두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닌 것처럼 레드몬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매사 조심하고, 뛰어난 판단력을 가져야만 강자가 될 수 있었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크라켄이 오안네스와 모비 딕의 공격을 촉완으로 막아내며 만으로 들어올 생각을 않자 흥분한 젊은 리비아탄 두 마리가 뛰쳐나갔다.

가족의 처참한 죽음을 지켜본 젊은 리비아탄들은 죽음보다 더 큰 분노에 이성을 잃고 크라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젊은 혈기이자 객기에 불과한 것으로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채 다리에 감겨 물 밖 구경만 실컷 했다.

크라켄은 리비아탄이 돌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리로 칭칭 감아 공중에 휘둘러댔다.

놀란 오안네스와 모비 딕이 온 힘을 다해 공격했지만, 크라켄은 60m에 달하는 B급 엘리트 레드몬 두 마리를 장난감처럼 휘두르며 이들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오안네스와 모비 딕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애처롭게 울어대는 젊은 리비아탄를 입으로 가져간 크라켄이 꼬리부터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삐이이이익~”

아주 조금씩 조금씩 아껴먹듯 꼬리부터 씹어 먹자 리비아탄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 소리를 들은 모비 딕과 리비아탄들이 흥분해 날뛰자 크라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의도가 통했음을 자축했다.

영리하고 교활한 크라켄은 좁은 마츠나 만에 들어가는 대신 리비아탄들을 밖으로 유인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러다 다 죽겠어요.”

“겁에 질려 도망치는 것처럼 우왕좌왕하다가 좌측 통로로 빠져나가라고 해.”

“네!”

상아가 오안네스와 모비 딕에게 텔레파시로 내 명령을 전달했다. 그러나 흥분한 리비아탄들이 명령에 따르지 않고 크라켄에게 달려들었다.

A급 엘리트 레드몬 모비 딕의 공격도 가볍게 막아내는 크라켄에게 흥분한 리비아탄들이 육탄돌격을 감행했다.

바다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리비아탄 무리는 세 번이나 가족을 잃고 도망치며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과 상처 입은 자존심으로 도망 다니는 내내 많이 괴로워했다.

그러다 잘근잘근 씹혀 먹히는 젊은 리비아탄의 모습에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어떻게 하죠?”

“오안네스와 솔피들 서쪽 통로로 빠져나가라고 해.”

“이대로 빠지면 리비아탄들 모두 죽을 수도 있어요.”

“놈들이 죽든 말든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솔피들의 안전과 크라켄을 잡는 거야.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마!”

“알았어요.”

리비아탄 무리가 죽는 걸 우리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크라켄에게 모두 죽는 게 나았다. 그래야 향후 생겨날 싸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범고래와 향유고래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철천지원수로 지금은 공동의 적에 대항해 싸우며 잠시 손을 잡은 것뿐이었다.

크라켄이 사라지면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져 목숨을 걸고 싸울 수도 있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싸운 전우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이들이 쌓아온 원한이 너무 깊었다.

그것이 솔피들의 잘못으로 생겨난 일이라도 향유고래 편을 들 수도 없었다. 솔피들은 냉혹한 정글의 법칙에 따라 향유고래를 공격한 것뿐이다.

인간처럼 더 많은 재화를 얻기 위해 상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인 것이었다.

물론 재미로 상대를 죽인 놈들도 있었다. 범고래는 인간만큼 영악하고 잔인한 동물로 아무 이유 없이 상대를 죽이고, 재미로 죽였다.

그렇다고 모든 범고래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의 일도 해결하지 못하며 동물의 일까지 관여하는 건 주제 파악을 못하는 짓이었다.

솔피들이 모두 서쪽 통로로 빠져나가는 사이 리비아탄 8마리가 모두 크라켄에게 잡혔다.

우두머리인 모비 딕을 빼고 리비아탄을 모두 잡자 크라켄은 만찬을 즐기듯 한 마리씩 입에 넣고 씹었다.

사로잡힌 리비아탄들이 뒤늦은 후회와 함께 비명을 질러댔지만, 거미줄에 달라붙어 퍼덕거리는 나비와 다를 바 없는 헛된 몸부림일 뿐이었다.

“모비 딕에게 전해. 돌격해 개죽음을 당하든지, 아니면 놈을 마츠나 만으로 유인해 원수라도 갚고 죽든지 알아서 하라고.”

“명령을 따를까요?”

“한 무리를 이끈 수장이야.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알 거야.”

“알았어요.”

상아가 텔레파시를 보내자 모비 딕이 눈물을 삼키며 크라켄을 유인했다. 가족들처럼 무작정 달려들어 봐야 개죽음만 당할 건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원수라도 갚고 죽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것이 가족을 책임지지 못 한 모비 딕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행복하세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