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1 상급 레드몬 크라켄(Kraken) =========================================================================
461.
“크라켄을 피하고 싶은 오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그러나 바다도 우리 땅이에요. 그리고 오안네스 언니와 솔피들을 생각하셔야죠.”
“알았어.”
상아의 말에 더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후쿠오카와 기타큐슈는 잃어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솔피들이 우리를 위해 지금껏 노력해준 것을 생각하면 무섭고 겁이 난다고 꽁지를 뺄 순 없었다.
나는 받아먹을 줄만 아는 놈들을 가장 경멸했다. 인지상정이라고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했다.
이는 당연한 이치로 논할 가치도 없었다. 그러나 이놈의 세상은 처먹을 줄만 아는 놈들로 득실거려 착하고 바르게 살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런 놈을 가장 경멸하는 내가 솔피들에게 받기만 하고, 정작 도와줘야 할 때 꽁무니를 뺄 순 없었다.
문제는 싸워야 할 장소가 바라만 봐도 몸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바다라는 것이었다.
이건 마음을 다잡아도 극복할 수 없는 일로 나에게 물은 원초적 공포였다. 원초적 공포는 노력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극복하고자 노력할 순 있어도, 죽을 때까지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츠나 만으로 크라켄을 유인할 거야.”
“크라켄이 순순히 들어갈까?”
“태평양 한가운데서부터 줄기차게 따라왔으니 이번에도 따라오겠지.”
마츠나 만(Matsunaga Bay)은 후쿠야마 시 근처에 있는 가로세로 4km 정도의 만(灣)으로 입구가 두 곳이었다.
“남쪽 입구에서 유인한 다음 리비아탄과 오안네스가 서쪽 통로로 빠져나가면 입구와 출구를 봉쇄한 다음 물을 퍼내는 거야. 그러면 싸우지 않고도 놈을 잡을 수 있어.”
“길이가 300m나 되는데, 놈이 나타나기 전에 입구와 출구를 막을 준비를 끝낼 수 있겠어?
“마츠나 만 주변이 공장이라 입구와 출구를 막을 재료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 장비를 최대한 투입하면 가능할 거야.”
“수심은 얼마나 되는데?”
“평균 50m.”
“너무 낮잖아?”
“여기가 아니면 세토 내해에선 크라켄을 가둘 곳이 없어.”
“규슈에도 없어?”
“오무라 만이 깊이도 깊고 유인하기도 좋지만, 너무 넓고 핵폭탄이 터진 오무라 시 바로 옆이라 방사능 오염이 심각해 더 큰 사고를 불러올 수도 있어.”
육지는 정화 작업이 끝났지만, 바다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틈나는 대로 생명의 나무를 소환해 정화하고 있지만, 물이 흐르는 바다는 육지보다 오염지역이 수십 배나 넓어 최소 10년은 작업해야 했다.
“크라켄이 안 들어가면 어쩌려고?”
“들어가기를 바라야지. 지금으로선 그 길만이 놈을 잡을 유일한 방법이니까.”
바다에 서식하는 레드몬을 잡는 무기는 폭뢰였다. 어뢰는 속도가 너무 느려 레몬을 잡을 수 없었고, 집속폭탄을 떨어뜨릴 수도, 미사일을 쏠 수도 없어 폭뢰만이 유일한 무기였다.
그러나 폭뢰도 배나 항공기에서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레드몬이 알아채고 도망갈 수 있었고, 위력도 약해 하급 레드몬이 한계였다.
“소연아!”
“응?”
“혼자 몸도 아닌데 은하에게 맡기지 그래?”
“내가 벌써 쓸모없어진 거야?”
“그런 뜻이 아니야. 신경 쓰다가 잘못될까 봐 그래.”
“걱정하는 거지?”
“그럼!”
“임신했다고 가만히 있는 게 더 나빠. 평소처럼 운동하고, 일하는 게 아이한테도 좋고 나한테도 좋아.”
“무리한 운동과 스트레스는 피해야 하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무리하지 않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다행이고.”
“그래서 말인데, 출산하기 전까지 나도 따라다녀야겠어.”
“탄자니아와 남수단에 따라오겠다고?”
“크라켄 사냥도 따라갈 거야.”
“크라켄 사냥은 가까우니까 괜찮지만, 아프리카는 장시간 이동해야 해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어.”
“내가 일반인이야?”
“그건 아니지만...”
“보기 싫어 떼놓고 다니는 거 아니지?”
“그렇지 않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소연이 넌데,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면 내 말대로 해. 능력자가 임신했다고 집안에 갇혀 있는 게 말이나 돼? 그리고 연리지 주얼이 있는데, 고작 비행기 탄다고 피곤하지 않아. 그렇게 몸이 약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은비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거 아니지?”
“은비가 협박을 해서 알았다고 했지, 아직 약속한 거 아니야.”
“은비 불러서 물어볼까?”
“아니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고마워!”
‘물고기 한 마리가 연못을 흐린다고 하더니 바로 그 짝이네. 이놈의 물고기를 잡아먹든지 해야지 종일 사고만 치고 다니네,’
계획이 수립되자 중장비들이 화물기에 실려 기타큐슈로 날아갔다. 초대형 수송헬기 MI-26 헤일로도 기타큐슈와 마츠나 만을 오가며 중장비를 실어 날랐다.
굴착기 수십 대의 몫을 하는 하람과 혈풍도 손을 보탰고, 백호와 풍산개들도 일을 돕는 등 거들 수 있는 손은 빠지지 않고 돌을 날랐다.
“뭐래?”
“오안네스 언니가 한 말과 같아요.”
“전투는?”
“다리 열 개를 촉완처럼 자유자재로 쓴대요. 길이도 최대 고무줄처럼 쭉쭉 늘어나고요. 빨판의 흡인력도 엄청나 한번 달라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빨판으로 생명력도 흡수해?”
“그렇지 않은가 봐요. 먹이는 모두 입으로 가져갔대요.”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 물어봤어?”
“소용돌이와 보호막, 먹물을 사용한대요.”
리비아탄이 알려준 스킬은 세 가지로 보호막은 지킴이처럼 투명한 막을 만들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스킬로 리비아탄의 육탄돌격도 퉁겨낼 만큼 단단했다.
소용돌이는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크라켄의 특기로 강력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상대가 다가올 수 없게 하는 동시에 중심을 무너뜨렸다.
소용돌이에 휘말려 상대가 빙빙 돌며 무력화되면 촉완을 사용해 낚아챘다. 이때 크라켄은 소용돌이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손쉽게 상대를 옭아맸다.
먹물은 연막탄처럼 주위를 까맣게 물들여 시야를 가리는 스킬로 먹물을 흡입하면 몸이 굳어지는 중독 현상도 일어났다.
“크라켄이 마츠나 만으로 들어가면 너희 둘이 입구를 막아.”
“저랑 하람 형님 둘이서요?”
“못하겠어?”
“아니요. 할 수 있어요. 잘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놈이 다시는 나올 수 없게 꽉꽉 틀어막을게요.”
인상을 쓰자 혈풍이 잘할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코모도왕도마뱀을 사냥하고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작전에 들어갔다.
먼저 하람과 혈풍, 조은영을 저녁에 초대해 푸짐하게 먹인 후 하늘 공원으로 올라가 술 파티를 열었다.
60도짜리 독한 보드카와 양주를 상자로 쌓아놓고 혈풍과 술 대결을 벌였다. 사전에 언질을 받은 하람과 아내들은 공모자가 되어 분위기를 띄웠다.
상급 레드몬은 술에 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놈도 피와 살로 된 생명체라 계속 마시면 취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나처럼 별종도 있지만, 나도 계속 마시다 보면 언젠간 취했다. 남보다 취하는 속도가 느릴 뿐 술에 취하지 않는 동물은 세상에 없었다.
더군다나 혈풍은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술을 자주 먹는다고 술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이 없다는 건 조절을 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은 혈풍은 생각보다 적은 보드카 20병에 인사불성이 됐다.
아내들의 덫에 걸린 조은영도 혈풍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로 반쯤 눈이 풀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별관 침실에 둘을 눕혔다. 그리곤 술이 절반쯤 깨도록 아영이 1단계 정화 스킬을 살짝 걸어주고 잽싸게 빠져나왔다.
예상대로 묘약에 취한 혈풍과 조은영은 밤새 육체를 불살랐고, 다음 날 조용히 혈풍을 불러 남자가 지켜야 할 일을 살기를 섞어 말해줬다.
협박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혈풍은 하람의 도움을 받아 그날 저녁 조은영에게 정식으로 프러포즈했다.
조은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에 응했고, 미래 2공대 대원들도 드디어 꽃 피는 춘삼월이 찾아왔다.
남쪽을 하람과 혈풍에게 맡기고 서쪽은 나와 시랑, 백호, 막심, 미래 2공대 대원들이 맡기로 했다.
“놈이 들어오면 입구를 막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화염탄을 계속 쏴. 물 밖으로 나와 방파제를 넘어 바다로 도망칠 수도 있어.”
“알았어.”
“촉완이 최대 3km 뻗어 나오는 놈이야. 조심해야 해!”
“걱정하는 거야?”
“그래 이 자식아.”
“고마워!”
걱정한다는 말에 크게 감동했는지 하람의 눈이 촉촉해졌다. 아내들만큼 하람도 감성적이었다.
여자로 태어났다면 노을만 봐도 눈물을 질질 짤 만큼 여렸다. 그래서 아내들 잊지 못해 밤마다 부두를 서성였다.
“혈풍!”
“네!
“너는 촐싹대지 말고 하람이 시키는 대로 해. 헛짓하다 걸리면 죽을 줄 알아.”
“알겠습니다.”
하람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바짝 얼은 혈풍에겐 눈을 부라리고 다시 하리마 여울로 돌아가 리비아탄 무리의 수장 모비 딕을 만났다.
리비아탄의 수장을 모비 딕이라 이름 지은 건 백경에 나오는 모비 딕처럼 몸이 하얗기 때문이었다.
이는 백호의 엄마 쉬어 칸이 앓은 알비노 증후군으로 모비 딕도 선천성 색소결핍증(Congenital albinism)을 가지고 태어났다.
알비노에 걸린 동물들은 수명이 대체로 짧았다. 특이한 생김새로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무리에서 쫓겨나 굶어 죽거나 공격받아 죽었다.
모비 딕은 이런 역경을 딛고 무리의 수장이 된 레드몬으로 눈빛만 봐도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모비 딕이 이끄는 무리가 쫓길 정도면 크라켄이 얼마나 강한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모비딕과 오안네스 언니에게 작전을 설명했어요.”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네?”
“그렇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니 이제 하늘의 뜻을 기다릴 차례였다.
‘정말 하늘이 있긴 할까? 있다면 세상이 이토록 지저분하지는 않겠지? 아니야! 있어도 놈들은 인간 따위에겐 관심도 없을 거야. 놈들이 보기에 인간은 벌레나 다름없을 테니까.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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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