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0 상급 레드몬 크라켄(Kraken) =========================================================================
460. 상급 레드몬 크라켄(Kraken)
“오빠! 규슈와 시코쿠 주변의 레드몬을 청소하러 갔던 오안네스 언니와 솔피들이 돌아왔어요.”
“상아가 나 대신 고생했다고 전해줘.”
“문제가 생겼어요.”
“무슨 문제?”
“세토 내해에 엘리트 레드몬 무리가 나타났어요.”
“솔피들이 처리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놈들이야?”
“네, 향유고래 무리에요.”
향유고래는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 모비 딕〉에 나오는 고래로 머리가 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크고, 모양도 사각형으로 고래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온대와 열대 바다에서 서식하는 향유고래는 차가운 바다에서 단독으로 생활하는 수놈도 있지만, 대부분은 15~20마리 정도의 무리를 이뤄 생활했다.
수컷은 17m~21m, 암컷은 18m, 몸무게는 수컷이 35~74ton, 암컷은 20~36ton 정도로 이빨을 가진 동물 중 지구에서 가장 컸다.
향유고래보다 큰 고래는 흰긴수염고래와 긴수염고래 두 종류가 있지만, 이빨이 없는 수염고래아목으로 귀신고래를 빼곤 성정이 온순해 포식자로서의 기질은 없었다.
최대 3,000m 심해까지 잠수하는 향유고래는 바다의 포식자인 대왕오징어를 주로 잡아먹었다.
레드문 이전까진 경랍과 용연향을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냥당해 한때 멸종 위기까지 몰렸다.
경랍(鯨蠟)은 고래와 참돌고래의 머리와 지육에서 추출되는 고체 상태의 경유로 머릿기름인 포마드, 연고, 화장용 크림, 고급양초의 연료로 사용했다.
용연향(龍涎香)은 향유고래의 장에서 생성되는 고체 물질로 향신료와 향수의 향기가 휘발하는 것을 막아주는 용도로 주로 사용했다.
향유고래도 역시 레드문과 함께 포경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 빠르게 레드몬으로 진화하며 현재 범고래, 백상아리와 함께 최강의 바다 레드몬으로 군림 중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향유고래가 지구에 존재하는 최강의 레드몬이었다. 범고래와 백상아리를 최강자로 꼽는 사람이 있지만, 1:1로 싸우면 향유고래를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
범고래가 향유고래보다 무리 지어 다니는 수가 많고, 지능이 뛰어나 유기적으로 공격해서 그렇지 한 마리씩 비교하면 향유고래가 월등히 앞섰다.
“오안네스! 안녕!”
“삐이~”
손을 흔들자 오안네스가 초음파를 발사해 반갑게 맞아줬다. 나선 항과 대초도, 알섬을 근거지로 삼은 솔피들은 무리를 반을 나눠 돌아가며 동해를 순찰했다.
순찰 목적은 새로 진화한 레드몬을 처리하는 일과 동해로 들어온 레드몬을 처리하는 일, 동해가 자신들의 영토임을 다른 범고래 무리와 고래, 상어에게 각인하는 일이었다.
솔피들이 우리 친구가 된 후 작년 한 해 동안 동해에서 레드몬에 습격당한 선박이 열 척도 안 됐고, 이 중 침몰한 선박은 단 한 척도 없었다.
덕분에 화물선과 여객선 운항에 숨통이 트여 산업 전반에 활기가 돌았고, 어업활동도 활발해져 어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더불어 천정부지로 뛰었던 생선 가격이 낮아지며 식탁도 풍성해져 많은 사람이 오안네스와 솔피들을 사랑했다.
올 3월부턴 규슈와 시코쿠 근해, 세토 내해까지 진출해 해양 레드몬을 소탕하고 자신들의 영토로 삼기 위해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솔피들은 아침과 저녁은 스스로 해결하고 점심은 우리가 제공한 신선한 물고기를 나선 항에서 먹었다.
이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매일 수만 명이 부두로 몰려들었고, 일부는 유람선을 타고 직접 먹이를 나눠주고, 솔피 등에 타고 바다를 질주하는 등 평생 잊지 못할 짜릿한 추억을 쌓았다.
“리비아탄이 세토 내해에 왜 나타난 거야? 그놈들 주로 대양에서 활동하는 고래 종류 아니야?”
“맞아요. 근해에 가끔 나타나기도 하지만, 먹이 때문에 주로 대양에서 생활해요.”
“몇 마리나 왔어?”
“아홉 마리요.”
“등급은?”
“오안네스 언니와 비슷한 수준의 리비아탄 한 마리와 B급 여덟 마리요.”
“그 정도면 해볼 만하잖아?”
“싸우러 온 게 아니에요.”
“그럼 뭐야? 놀러 온 거야? 관광 온 거야?”
“아니요. 대왕오징어에 쫓겨 세토 내해까지 도망쳐 온 거예요.”
“대왕오징어? 혹시... 크라켄?”
“네!”
“이런...”
은비와 아영이 농담으로 말했던 크라켄(Kraken)이 정말 나타나자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말이 씨가 된다고 말조심하라고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 은비의 바람대로 신화 속 괴물 크라켄과 마주하게 됐다.
“정말 크라켄이야?”
“남태평양 해저에서 대왕오징어를 잡다가 마주쳤대요. 리비아탄 무리가 원래 스물다섯 마리였는데, 크라켄에게 잡아먹히고 아홉 마리만 남은 거라고 했어요.”
향유고래를 리비아탄 멜빌레이(Livyatan melvillei), 줄어서 리비아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현존하는 레드몬 중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리비아탄은 성경에 나오는 바다 괴물 리워야단(레비아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종명인 멜빌레이는 백경의 작가 허먼 멜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리비아탄 멜빌레이는 신생대에 살았던 거대 육식 향유고래로 당시 최강의 포식자로 군림한 거대 상어 메갈로돈(Megalodon)도 리비아탄을 두려워할 만큼 바다에선 적수가 없었다.
레드몬으로 진화한 향유고래는 B급 엘리트 레드몬의 경우 길이가 60m, 몸무게가 150ton에 달했고, A급은 길이 100m, 몸무게 300ton을 훌쩍 넘겼다.
“크라켄이 얼마나 크기에 A급 엘리트 레드몬이 포함된 리비아탄 무리가 도망을 다녀?”
“오안네스 언니의 말론 500m가 넘는다고 했어요.”
“헉!”
500m란 말에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까지 사냥한 레드몬 중 가장 큰 놈은 아나콘다의 일종인 야쿠마마로 길이가 130m였다.
야쿠마마만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로 고전했는데, 500m면 다리 길이만 해도 야쿠마마보다 두 배나 길었다.
이 말은 팔을 대신하는 기다란 촉완의 길이가 500m가 넘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신축성을 생각하면 최소 1km, 최대 3km까지 늘어나 강력한 흡반으로 물체를 잡아챌 수 있었다.
나머지 다리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경우 야쿠마마 같은 놈 10마리와 싸우게 될 수도 있었다.
신화 속 괴물에 비견될 대왕오징어와 마주 설 걸 생각하자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설마 리비아탄를 잡겠다고 크라켄이 세토 내해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언니 말로는 리비아탄 무리가 세 번이나 숨었는데 찾아왔다고 했어요. 이번에도 찾아올 것 같아요.”
“바다가 얼마나 넓은데, 왜 하필 세토 내해에 와서 지랄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일본과 중국을 처리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기자 화가 치밀었다.
“그 때문에 오안네스 언니가 오빠를 보자고 한 거예요.”
“크라켄을 잡을 수 있냐고?”
“네.”
“우리가 꼭 나설 필요가 있을까?”
“네?”
“리비아탄 다 잡아먹으면 다시 북태평양으로 돌아갈 수도 있잖아?”
“리비아탄과 솔피들이 접촉해 냄새를 따라 동해로 올라올 수도 있고, 세토 내해에 계속 머물 수도 있어요. 언니 말로는 심해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벗어난 이상 다시 돌아가진 않을 거래요.”
“왜? 일이 끝나면 다들 자기 집으로 돌아가잖아. 놈도 그러지 않을까?”
“먹잇감을 손쉽게 구할 곳을 알아냈잖아요. 그리고 근해는 지나다니는 배도 많아 크라켄의 흥미를 끌 수도 있고요.”
“놈이 돌아가지 않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깊은 바닷속에 사는 놈을 무슨 재주로 공격해.”
“크라켄을 얕은 바닷가로 유인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어요.”
말이 좋아 얕은 바닷가지 오안네스만 해도 수심이 30~40m는 되어야 움직일 수 있었고, 리비아탄은 최소 60m, 크라켄은 유연한 연체동물이라도 크기가 워낙 커 최소 100m는 넘어야 움직일 수 있었다.
100m면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았고, 수압도 엄청나 산소통을 메고 들어갔다간 그 길로 저승행 열차를 타게 된다.
최상급 피지컬리스트라 몸이 워낙 단단해 수압은 견딜 수 있겠지만, 물속에선 잠수부보다 못해 바다에 뛰어든 순간 크라켄의 뱃속에서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상아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나도 굴뚝같아. 그러나 물이 발목까지 차면 모를까 그 이상은 어림도 없어. 오빠 바다에 빠져 죽는 거 보고 싶어?”
“아니요.”
“그럼 오안네스와 솔피들에게 당분간 남쪽은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해.”
“그래도 만약을 생각해 리비아탄를 만나보고, 크라켄도 대비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해변에 어슬렁대지 않고, 배를 타지 않고, 안전한 육지에 머물며, 하늘로 날아다니면 크라켄과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상아의 염려처럼 나진시와 후쿠오카와 기타큐슈 셋 다 해안 도시로 언제 크라켄의 공격을 받을지 몰랐다.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와 방사능을 모두 제거하자 후쿠오카와 기타큐슈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문스톤은 없지만, 신기전 방어탑과 신기전 장갑차로 보호받는 후쿠오카와 기타큐슈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건물과 공장을 싸게 임대하자 CEO를 꿈꾸는 젊은 청년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비자 없이 출입할 수 있고, 전기, 수도, 가스 등 기본시설을 미래 레드몬 그룹에서 책임져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든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이는 대한민국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서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이 몰리며 하루가 다르게 예전 모습을 찾고 있었다.
정말 크라켄이 나타나면 꿈을 좇아 후쿠오카와 기타큐슈에 정착했던 사람들의 희망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상아가 만약을 대비하자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으로 크라켄을 내버려 두면 꿈과 희망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목숨까지 위험했다.
“리비아탄들은 지금 어디 있어?”
“하리마 여울에 있어요.”
“크라켄은 언제쯤 올 것 같아?”
“도망치면 늦어도 일주일 안에 찾아왔다고 했으니, 길어야 육일이에요.”
“리비아탄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 크라켄도 놈들을 따라가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죠. 그러나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솔피들의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리비아탄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기타큐슈와 후쿠오카를 발견할 수도 있어요.”
“넓은 바다를 두고 왜 하필 세토 내해야? 하아~ 미치겠네.”
땅이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도 않았다. 놈의 크기가 5km라고 해도 두려움 없이 나가 싸웠다.
게릴라전술로 치고 빠지며 다리를 하나씩 끊어내든, 파멸의 창으로 구멍을 숭숭숭 뚫어놓든 기어코 놈을 사냥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상황이 달랐다. 마음대로 손발을 놀릴 수도 없었고, 스킬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다.
시야는 좁고, 숨은 막히고, 특기인 빠른 발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선 최하급 레드몬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상급 레드몬이 확실한 크라켄을 상대하라고?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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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