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9 코모도왕도마뱀 =========================================================================
459.
약한 척 너스레를 떨던 구미호가 숨겨뒀던 실력을 발휘해 눈을 노리자 코모도왕도마뱀이 얼굴을 푹 숙여 공격을 피하며 골편을 쏘아댔다.
구미호를 죽이겠다고 모질게 마음을 먹었는지 한 번에 300개씩 다섯 번을 연달아 발사했다.
그러나 고개를 땅에 처박고 쏘아대는 골편에 맞을 만큼 구미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반격을 예상하던 구미호는 폭우를 피해 날아다니는 모기처럼 골편을 요리조리 피하며 레이저를 발사해 코모도왕도마뱀을 괴롭혔다.
구미호가 코모도왕도마뱀의 시선을 막는 사이 생명의 나무를 재빨리 벗어나 놈의 옆구리로 다가갔다.
피해 면역으로 몸을 보호하고 100m까지 다가가 옆구리를 향해 파멸의 창을 던졌다.
“쒸우웅~”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파멸의 창이 날아들자 코모도왕도마뱀이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며 입을 크게 벌리고 부패성 병원균을 토해냈다.
코모도왕도마뱀은 내가 숨통을 끊기 위해 가까이 다가올 것을 알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 쏟아낸 부패성 병원균은 피해 면역에 막혀 놈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사이 번개처럼 날아간 파멸의 창이 코모도왕도마뱀의 배를 뚫고 하늘 높이 솟구쳐 사라졌다.
코모도왕도마뱀은 파멸의 창이 일직선으로만 날아다니는 줄 알고 몸을 높이 띄워 창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놈이 생각과 달리 파멸의 창은 유도탄처럼 물체를 따라 고속으로 기동하는 스킬이었다.
이런 기능을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용할 때 보여주지 않은 건 결정적인 순간 놈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였다.
전투는 머리싸움으로 기술을 섞는 방법에 따라 위력이 달라졌다. 찌르기와 베기, 내려치기의 단 세 가지 기술이 전부라도 효율적으로 조합하면 얼마든지 상대를 벨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기술을 다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기만하다가 한 방에 끝내는 것도 전투 기술 중 하나였다.
강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란 말은 내가 상대보다 약해도 머리를 이용해 상대를 죽일 수 있다는 뜻도 포함된 말로, 자신의 강함을 과신해 곧이곧대로 싸우다간 한참 아래 하수에게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코모도왕도마뱀의 배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고 재빨리 뒤로 물러나 보호막 안으로 들어갔다.
코모도왕도마뱀이 온 힘을 기울여 뿜어낸 부패성 병원균은 피해 면역이 끝나면 높은 스킬 저항력과 정화수로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부패성 병원균은 부식성이 매우 강해 숨결이 닿는 곳은 모두 시커멓게 말라 죽었다. 심지어 흙과 바위도 까맣게 타들었다.
이런 현상은 생명의 나무 효과가 미치는 반경 300m도 예외가 아니었고, 지킴이의 보호막이 작동하는 반경 10m만이 코모도왕도마뱀의 지독한 숨결을 막아냈다.
1시간 정도 흐르자 헐떡거리던 코모도왕도마뱀의 숨이 멎었다. 가슴과 머리만 남은 상태에서도 놈은 살기 위해 끝까지 발버둥 쳤다.
평소 같으면 숨통을 끊어 고통을 줄여줬겠지만, 코모도왕도마뱀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부패성 병원균을 쉬지 않고 뿜어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날뛰는 바람에 고통받는 시간만 더 늘어났네요.”
“나라도 그랬을 거야. 순순히 죽기엔 너무 억울했을 테니까.”
“그렇겠네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느닷없이 나타나 목숨을 빼앗았으니 많이 억울했겠네요.”
“그렇지.”
내가 코모도왕도마뱀이라도 억울하고 화가 나 끝까지 발광했을 것이다. 날뛸수록 고통받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알아도 순순히 목을 내밀 순 없었다.
어차피 죽을 것 나를 이렇게 만든 상대를 죽이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근성도 없다면 레드몬과 싸워 이길 수 없다.
자신의 살을 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독한 마음이 있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아주 지능적으로 잡았는데.”
“지능적이라니?”
“돈 되는 레드주얼과 가장 중요한 레드스톤을 모두 건졌잖아. 사체가 반이나 날아가 수천억 원을 날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100% 남겼다고 봐야지.”
“칭찬이야?”
“오빠도 가끔은 칭찬받아야지. 그래야 좋은 아기 아빠가 되지.”
“은비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네가 안 하던 칭찬을 다 하고 눈물 나게 고맙다.”
“고마운 거 알면 나는 쌍둥이로 부탁해. 세쌍둥이면 더욱 좋고.”
“크윽~”
코모도왕도마뱀에서 나온 레드주얼은 크기가 4cm로 두 발로 일어선 왕도마뱀이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질러대는 모습이었다.
주인은 서인으로 양손에 꼭 쥐고 포스를 주입하자 목에 걸린 야쿠마마의 레드주얼을 흡수해 크기가 5cm로 커졌다.
레드주얼에 내장된 기능은 두 가지로 광역 스킬인 정신 붕괴와 소리 계열 스킬의 효과를 2배로 향상해줬다.
정신 붕괴는 반경 100m 안에 있는 모든 물체에 고통을 가하는 스킬로 코모도왕도마뱀이 삐이~ 소리를 냈던 바로 그 스킬이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엄청난 통증을 일으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죽게 하는 스킬로 한 번에 포스를 500이나 소모했지만, 효과는 끝내줬다.
B급 상급 레드몬과 A급 엘리트 레드몬의 레드주얼이 합쳐지며 능력이 배가되어, C급 상급 레드몬에도 큰 고통과 함께 전투력을 20%나 감소시켰다.
중급 레드몬 이하는 스킬을 사용하면 100% 죽었고, C급 엘리트 레드몬은 전투력 90% 하락과 동시에 기절, B급은 전투력 75% 하락과 정신 혼미, A급은 전투력 50% 하락과 극심한 고통을 유발했다.
소리 계열 스킬 효과 2배 향상은 아쉽게도 죽음의 비명이 사라지며 침묵 스킬에만 적용됐다.
그러나 침묵 스킬 하나만으로도 소리를 무기로 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고, 은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등 효용이 무궁무진해 아쉬울 게 없었다.
[다친 곳은 없어?]
[어! 없어.]
[아프거나 불편한 곳도 없고?]
[원거리에서 파멸의 창으로 공격해 다치지 않았어.]
[정말 다행이다. 휴우~]
[한숙과 네가 걱정해준 덕분이야. 고마워!]
사냥이 끝나자 곧바로 소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동생들은 괜찮은지 오만가지 걱정에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불안에 떨게 분명해 코모도왕도마뱀 사냥이 끝나자마자 바로 전화했다.
[지홍씨! 정말 괜찮은 거죠? 동생들도 다치지 않은 거죠?]
[응! 걱정해준 덕분에 모두 무탈해.]
[흑~ 보고 싶어요.]
전화기를 넘겨받은 한숙이 울음을 터뜨렸다. 임신하면 예민하고 불안해져 곁에 있어 줘야 하는데, 한 달 넘게 집을 비우며 그러질 못했다.
임신 때 조금만 서운해도 평생 마음에 담아두고 원망한다고 하는데, 나는 조금 서운한 게 아니라 한 달째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예전에야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나처럼 행동하면 나이 먹고 밥도 못 얻어먹었다.
[지홍아! 미안한데...]
[바로 집으로 갈게.]
[정말?]
[응!]
[흑~ 고마워!]
소연의 우는 소리에 가슴이 먹먹했다.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차마 오라는 소리를 못하고 머뭇거리는 소연의 안타까운 심정이 수천km 떨어진 코모도 섬까지 절절히 느껴졌다.
나와 아내들이 원정길에 오르자 소연과 한숙은 한방을 썼다. 나진 타워로 옮기고도 한숙과 은하는 불편하다는 말로 동생들을 위해 각자 따로 방을 썼다.
그러다 둘만 남게 되자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같이 지내게 됐다.
같이 있자 처음 며칠간은 위로가 됐다. 하지만 둘이 붙어 있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남편인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허전한 자리를 채워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돌아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억지로 삼키며 원망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먼저 집에 간다고 하자 소연과 한숙의 응어리졌던 마음이 눈 녹듯 녹으며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다.
“짐 싸! 집에 가자.”
“잘 생각했어. 레드몬 사냥도 중요하지만, 지금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한숙 언니와 소연이 옆이야.”
“아리야!”
“응?”
“너도 아기 갖고 싶어?”
“응~ 나도 갖고 싶어. 너 닮은 예쁜 아기!”
“나 닮으면 절대 안 예뻐. 너 닮아야 예쁘지.”
“못생긴 얼굴도 계속 보면 정든다고 했어. 그리고 못생겼으면 성형수술 시키면 되잖아. 그런 걱정하지 말고 애만 만들어줘.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키울게. 자기야! 사랑해~”
아기를 갖고 싶냐는 질문에 아리가 품에 매달려 입을 쭉 내밀고 아기처럼 애교를 부렸다.
아리는 동갑내기 소연이 아기를 갖자 축하한다는 말을 수십 번도 넘게 했지만, 마음속엔 나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도 있었을 것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쯤이면 아리도 아이를 갖겠지만, 다 같이 없으면 모를까 누군 있고, 자신은 없다면 참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밝은 웃음으로 대하는 아리와 아내들이 정말 고마웠다.
‘이럴 거면 모두 한꺼번에 임신시킬 걸 그랬나? 그럼 한 방에 끝내고 좋잖아. 아니지! 그렇게 되면 사냥은 누구랑 다녀? 하람, 혈풍과 다녀? 헉!!! 그건 절대 안 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돼~~~’
집에 돌아오자 소연과 한숙이 버선발로 달려왔다. 죽었다던 낭군이 살아서 돌아온 것처럼 눈물, 콧물 다 짜낸 소연과 한숙은 3일간 회사도 출근하지 않고 옆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침착하고 사명감 높은 소연과 성질은 더럽지만 맡은 바 일은 철두철미한 한숙이 이러니 마음이 더 아팠다.
덤벙거리는 은비가 이랬다면 당연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활달한 성격 때문에 구김이 없을 것 같지만, 속은 여리디여려 하루만 떨어져 있어도 울고불고 야단을 칠 것이다.
은비뿐만 아니라 서인, 상아, 아영, 마샤, 소희 모두 마찬가지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건 은하와 아리, 제니퍼, 로라 김 정도였다.
“오빠!”
“왜?”
“미리 말해두는데 나 임신했다고 떼어놓고 다니면 콱 혀 깨물고 죽는다.”
“넌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냐?”
“그러니까 떼어놓고 다니지 말란 말이야. 나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살다 살다 별의별 협박을 다 받는구나.”
“농담 아니야. 나 무서워 죽을 수도 있어.”
“알았어. 그러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분명 약속한 거다. 뒤에 가서 딴소리하면 정말 죽는 거야.”
“알았으니까 그만해!”
‘애만 가지면 되는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라 시작이네. 에휴~ 내 팔자야!’
============================ 작품 후기 ============================
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