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6 슬픈 사랑 =========================================================================
456.
“으아악~”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진회가 악을 쓰며 촉수를 뻗었다. 100개는 넘는 촉수가 그물처럼 펼쳐지자 달아날 곳이 뒤밖엔 없었다.
뒤로 물러서며 가시창을 연속으로 던져 놈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심리전으로 씨익~ 비웃음까지 흘려주자 뚜껑이 열린 놈이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살살 물러서며 파멸의 창을 소환했다. 파랗게 빛나는 창이 소환되자 피해 면역을 사용하고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서자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놈이 300개가 넘는 촉수를 만들어 나를 감쌌다.
“쒸우웅~”
촉수가 몸에 닿는 순간 파멸의 창을 던졌다.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파멸의 창이 날아들자 촉수가 창을 쳐냈다.
그러나 가시창과 달리 파멸의 창은 닿는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며 거침없이 날아갔다.
놀란 진회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가슴에 있던 촉수를 모두 동원해 파멸의 창을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닿는 족족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안 돼~~~”
파멸의 창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자 종이가 불타 재가 돼 부서지듯 진회의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 갔다.
“소교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살려주면 안 될까?”
“다른 여와는 모두 소모품으로 취급하면서 소교는 왜 살리고 싶은 건데?”
“이지를 갖고 만난 사람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움직인 여자니까.”
“하아~”
진회의 말에 요코와 쇼타가 떠올랐다. 독하고 매몰차게 거절해야 했지만, 요코의 슬픈 눈이 기억나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영아!”
“네, 오빠!”
“저기 쓰러진 여와! 예전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는지 정화해 봐.”
“네!”
소교에게 다가간 아영이 4단계 정화 스킬을 사용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세포도 다시 살리고, 말기 암과 난치병도 치료하는 4단계 정화 스킬을 사용했지만, 세포가 바뀐 건 되돌릴 수 없는지 반응이 없었다.
“어려울 것 같아요.”
아영은 안 된다는 말 대신 어렵다는 말을 사용했다. 죽어가는 진회에게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어렵다는 말로 가망이 없다는 말을 대신했다.
“선천 지기와 함께 사용해봐.”
“네!”
4단계 정화 스킬의 효과가 남은 상태에서 선천 지기를 사용하자 서서히 세포에 변화가 일어났다.
5단계 정화 스킬 선천 지기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기운을 북돋아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주는 스킬로 소교의 몸속에 남아있던 인간의 기운이 선천 지기에 반응해 원래의 몸을 돌아가려 했다.
“오빠! 꾸준하게 치료하면 될 것 같아요.”
아영의 외침에 진회의 몸이 빠르게 타들어 갔다. 소교가 걱정된 진회는 부서지는 몸을 강대한 포스로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소교가 살 수 있다는 말을 듣자 살이 타들어 가는 지독한 고통을 참던 진회가 편안한 마음으로 삶의 끈을 놓았다.
“소교를 부탁하네. 들어줄 수 있지?”
“그래.”
“친구로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다음 생엔 친구로 만나면 좋겠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잊지 말고 찾아와.”
“고맙다!”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진회의 육체가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녀석이 죽은 자리엔 부서진 까만 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여와들이 죽자 정신을 지배당한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 동북 3성의 성주와 공산당 서기, 고위 공무원, 대지주, 심양 군구 지휘관 등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눈과 코, 입, 귀에서 피를 뿜으며 죽었다.
진회를 처리한 다음 날 아침 상하이 회담에서 약속한 대로 동북 3성이 우리 품에 들어왔다.
발표가 있자 하람과 혈풍이 심양 군구와 공안을 모두 무장해제 시켰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3여단이 헤이룽장 성, 8여단은 지린 성, 9여단은 랴오닝 성으로 이동해 군정 사령부를 설치하고 치안유지에 나섰다.
그러나 부대당 인원이 1,150명밖에 안 돼 성도인 하얼빈과 장춘, 선양, 지린, 다롄 시 등 10여 개 대도시만 간신히 통제할 수준이었다.
급히 전역자를 중심으로 대원들을 뽑고 있었지만, 개인이 감당하기에 동북 3성은 너무 넓었다.
정권이 바뀌면 대한민국 군대를 동원해 치안을 유지하고, 한족을 몰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박지홍 회장님은 이번 선거에서 제대로 된 대통령이 당선되면 늦어도 3년, 빠르면 1년 안에 동북 3성 전체를 대한민국 품으로 돌려드릴 계획이에요.”
“동북 3성 전체를 말입니까?”
“네.”
“땅에 대한 소유권도 모두 넘기는 겁니까?”
“물론이에요. 단, 땅이 몇몇 사람에게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고팔 수 없게 묶어둘 생각이에요.”
“묶어둔다는 건 박지홍 회장님이 소유한다는 뜻입니까?”
“그렇진 않아요. 그렇게 되면 국가에 넘겼다고 할 수 없죠. 동북 3성은 토지공개념을 적용해 국민 전체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할 방침이에요. 이를 위해 누구도 땅을 사고팔 수 없게 법으로 제정할 계획이고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개인적 소유권은 인정하되, 그 이용을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규제하는 제도였다.
토지는 유한해 수요가 증대하면 지가가 상승하고, 이를 악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갔다.
이를 차단해 공공의 이익에 최대한 이용하자는 취지로 공익성과 사회성을 강조한 토지공개념을 동북 3성에 도입할 계획이었다.
우리는 이 제도를 좀 더 강화해 소유도 차단할 생각이었다. 오직 계약에 따라 한시적으로 임대해 사용하고, 팔거나 양도할 수 없게 할 생각이었다.
이건 혼슈와 시코쿠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생각으로 땅 투기를 막아 빈부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제대로 된 대통령이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바른 생각,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대통령을 말하는 거죠.”
“대한당 변병석 후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진 않아요. 누가 됐던 과거가 깨끗하고, 올바른 사고, 미래를 향한 비전만 있으면 돼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친일후손과 친일파, 매국노는 아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네요.”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군요.”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해 일할 일꾼을 뽑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것도 대한민국을 책임질 대통령인데, 최소한의 조건을 갖춰야죠. 언제까지 어중이떠중이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
미래 레드포스가 동북 3성에 들어간 다음 날 한숙이 단국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 형식으로 만주를 대한민국에 양도할 것을 발표했다.
랴오닝 성 145,900㎢, 지린 성 187,400㎢, 헤이룽장 성 460,000㎢로 동북 3성의 총 면적은 793,300㎢였다.
이는 한반도의 3.55배에 해당하는 넓이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땅을 아무런 조건 없이 국가를 위해 내놓는다고 하자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놀랐다.
땅 한 평을 차지하기 위해 칼부림이 나는 세상에서,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가난한 자를 쥐어짜는 세상에서, 재산 때문에 형제자매가 등을 돌리는 세상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대한민국을 세 개나 만들 수 있는 넓은 땅을 내놓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전으로 중국이 사라지는 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외교적 역량이 바닥인 현 정권은 내전 내내 미국과 러시아의 눈치만 살폈다.
심지어 정권 연장을 위해 대통령 선거에만 관심을 가지며 하늘이 준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산둥 반도와 톈진, 상하이를 얻었다. 정부가 노력해 얻은 게 아니라 우리가 요코와 진회를 처리하는 대가로 대한민국이 받은 것이다.
이는 상하이 회담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으로 대한민국 국민 중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자기가 한 일처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자기가 미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땅을 받아낸 것처럼 자화자찬을 늘어놨고, 큰 치적을 이뤘다며 광고까지 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욕을 해도 눈과 귀를 닫은 대통령과 정부는 자기들끼리 축하파티를 여는 등 잘못된 지도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보여줬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산둥 반도와 톈진, 상하이에도 내 허락 없인 땅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고, 물자와 인력을 빼 올 수도 없게 제약을 걸어 놨다.
안 그랬다면 얼씨구나 하고 건물과 땅을 자기 이름으로 바꿔놓고, 혈세만 잔뜩 낭비할 사업을 강행해 돈을 갈취하는 등 비리를 저지를 수도 있었다.
“이제 미뤄두었던 인도네시아 코모도 섬의 코모도왕도마뱀과 남수단의 블랙맘바, 탄자니아의 검은 코뿔소를 잡으러 가야겠다. 그거 잡고 미스트 존 공략해야지.”
“하반기 원정은 어쩌시려고요?”
“하람과 시랑 보내서 하면 되지.”
“둘 만요?”
“응!”
“하람씨가 가면 잡는 건 문제없지만, 찾는 건 어쩌라고요?”
“탐지 레이더가 달린 헬기를 함께 보내면 되잖아.”
“사냥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만날 사람도 있고, 재능 기부도 해야 하고 할 일이 산더미에요.”
“재능 기부는 하람이 해도 되고,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은하가 만나면 되잖아.”
“지홍씨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어쩌려고요? 레드몬을 잡아 나눠주는 건 누가해도 상관없지만, 지홍씨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아이들은 그럴 수 없잖아요.”
“으음... 그게 문제네.”
“다른 곳은 몰라도 거긴 지홍씨가 가야죠.”
“알았어. 보육원 잡힌 나라는 우리가 가고, 나머지는 하람과 시랑을 보내. 그러면 되지?”
“네.”
한숙의 정색에 반씩 나누는 것으로 합의했다. 작년 상반기 원정부터 방문하는 나라에 들러 꼭 하는 일이 있었다.
사냥한 레드몬을 빈민가에 기부하는 일과 보육시설을 찾아 자매결연을 하고 평생 도와주기로 약속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이 일은 빠지지 않고 꼭 했다. 보여주기 위한 행동 같아 싫었는데, 아이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그만두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부에선 속 보이는 행위라고 매도했지만, 신문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 기자는 얼씬도 못하게 했고, 누구처럼 라면 상자 몇 개 쌓아놓고 현수막 걸고 사진 찍고 달아나는 짓도 안 했다.
어릴 적 가난하게 자라서 그런지 부모 없이 크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졌다.
이 때문에 아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아 같이 사진도 찍고, 학용품도 나눠주고, 원하는 소원도 들어주는 등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계획이 정해지자 하반기 해외 원정 계획이 일사천리로 짜졌다. 캐나다·미국·영국·독일·프랑스는 하람과 시랑이 돌고, 브라질· 에콰도르·터키·이란은 나와 아내들이 돌기로 했다.
사냥이 끝나면 바로 코모도 섬으로 이동해 코모도왕도마뱀을 잡고, 탄자니아로 이동해 검은 코뿔소를 사냥하기로 했다.
“혈풍은 어쩌죠? 하람 오빠와 함께 다니라고 할까요?”
“아니. 그 자식 뺀질거려서 하람에게 붙여놓으면 언제 사고 칠지 몰라. 원정 내내 내가 끌고 다닐 거니까 튼튼한 목줄이나 준비해줘.”
“목줄은 왜요?”
“개새끼니까 끌고 다녀야지. 질질~”
“헉!”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