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4 슬픈 사랑 =========================================================================
454.
“바보야! 도망쳐야지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싫어! 너를 두고 혼자 도망칠 순 없어.”
“그럼 너까지 죽어.”
“멍청아! 너 없으면 나도 없는 거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어서 도망쳐!”
“싫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요코의 얼굴을 쇼타가 어루만졌다. 힘이 없어 간신히 들어 올린 손을 요코가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주자 슬픈 눈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왜 나를 좋아해?”
“유치원 때 일 기억나지 않아?”“
“무슨 일?”
“아이들이 우리 엄마 새엄마라고 놀릴 때 너만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줬잖아.”
“이런 바보! 불쌍해서 편들어준 거야.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었어.”
“알고 있어. 그래도 좋았어.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게. 그때부터 너를 좋아하기로 결심했어. 죽을 때까지 영원히.”
“바보!”
“쇼타! 쇼타! 흑흑흑~”
바보라는 말을 끝으로 쇼타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쇼타와 요코가 괴물이 된 건 이들의 탓이 아니었다. 일본의 욕심이, 중국의 욕심이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다.
인간을 공격한 것도 쇼타와 요코의 잘못이 아니었다. 쇼타와 요코의 기억을 흡수한 변종 모기 레드몬이 이들에게 시킨 것이었다.
쇼타와 요코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불행으로 몰아갔지만, 이들도 피해자였다.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일지도 몰랐다.
구슬피 우는 요코를 보며 파멸의 창을 소환했다. 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 해도 살려둘 순 없었다.
그리고 지금 쇼타를 끌어안고 눈물을 떨구는 요코는 진짜 요코가 아니었다. 모기 레드몬에 숙주가 된 순간 쇼타와 요코는 죽었다.
내 앞에 있는 건 요코의 가면을 뒤집어쓴 괴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말없이 조용히 기다리자 요코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너무나 슬픈 요코의 눈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본 요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차오스 주석과 아베 마사히코에게 저주를 내리며 파멸의 창을 던졌다.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간 파멸의 창이 요코와 쇼타를 집어삼켰다. 이 땅에 왔다 갔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가루로 변해 사라진 둘의 모습이 화인처럼 가슴에 남았다.
요코와 쇼타를 세상에서 영원히 지우고 돌아오는 길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날 중 하루였다.
죽여 마땅한 존재였지만, 자신의 생명보다 쇼타를 더 깊이 사랑한 요코를 내 손으로 죽였다는 것이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지하 창고에서 눈물을 흘리던 아내들은 헬기에 타자 눈물을 멈췄다. 내가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들은 내가 슬퍼하지 않도록 눈물을 삼켰다.
그러나 그 모습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요코와 쇼타도 우리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을 것이다.
매일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줬겠지만, 마음속 깊이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한 미래를 키웠을 것이다.
그들이 레드몬이라고 해도, 그들이 인간을 수없이 죽인 살인마라고 해도 그들의 꿈을 밟을 권리는 내게 없었다.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꿈을 빼앗고, 짓밟을 권한은 없었다. 이는 신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용당하는 것보다 죽는 게 나았을 거야. 그러니 마음 쓰지 마.”
“나도 처음엔 이용당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용당한 게 아니었어.”
“모기 레드몬이 뇌를 빨아먹으며 기억을 흡수해 사람처럼 행동한 것뿐이야. 껍데기만 사람이라고.”
“맞아. 껍데기만 사람이지. 그러나 요코와 쇼타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꿈꾸게 한 건 그들의 기억이야. 그들의 기억이 없었다면 서로 사랑하지도 않았고, 야망을 갖지도 않았을 거야.”
“본능에 따라 움직였을 수도 있어.”
“본능대로 움직였다면 요코가 쇼타를 위해 희생하려 하진 않았겠지.”
“오빠!”
“응?”
“사람이 왜 이렇게 답답해?”
“뭐가?”
“기분 풀어주려고 말하는 거 알면서 꼭 그렇게 꼬치꼬치 따져야겠어? 그럼 기분이 나아져?”
“미안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주러 온 은비의 마음을 알면서도 곧이곧대로 말하고 말았다.
멍청해서 그런지 아내들이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일부러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바보처럼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려 했다.
이는 융통성과 처세가 부족한 결과로 능력자로 성공했기에 망정이었지, 그렇지 못했다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엄청나게 맞았을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네가 이해해줘. 원래 주변머리가 없잖아.”
“이런 남자가 어디가 좋다고... 내가 미쳤지.”
“싫어졌어? 물려줄까?”
“융통성 없고, 눈치도 떨어지고, 속은 밴댕이고, 인내심은 매미 날개보다 얇고, 원한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질투는 하늘을 찌르고, 욕심은 바다만큼 넓고, 성욕은 전 우주만큼 크지. 안 좋은 건 빠짐없이 다 가졌지만, 그래도 내게는 둘도 없는 사랑인데 물리다니? 내가 미쳤어?”
“칭찬이야 욕이야?”
“알아서 생각해.”
은비가 한바탕 휘젓고 가자 응어리졌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요코의 슬픈 사랑이 마음 아프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선 무조건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
다른 사람의 꿈을 짓밟을 권리는 없지만, 그 꿈이 내 꿈을 위협한다면 나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막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뒤를 돌아봐선 안 돼. 그건 나약한 놈이나 하는 짓이야. 내 뒤엔 나를 사랑하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이 있어. 절대 나약해져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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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28일
요코가 죽은 삼 일 후 지하 VIP 방공호에 숨어 있던 태자방 잔당들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석달개의 회유에 넘어간 베이징 군구 소속 장성들이 태자방을 모두 죽이고 성문을 열었다.
이로써 내전이 발발한 지 5개월 만에 중국 지도부가 모두 죽었다. 아직 동북 삼성을 차지한 진회가 건재했고, 요코가 사라지며 소수민족과 호족의 알력이 점점 커지며 커다란 불씨로 남았지만, 사실상 내전은 끝이 났다.
내전이 끝나자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대한민국 등 분할협정에 서명한 국가들이 상하이에 모였다.
약속대로 산둥 반도와 톈진, 상하이를 대한민국이 차지하고, 동북3성은 진회를 정리한다는 조건으로 우리가 갖기로 했다.
미국은 광시좡족자치구와 광둥 성, 저장 성, 장쑤 성 등 남부와 동부 해안 지역의 소수민족, 호족과 동맹을 맺고 재건을 약속했다.
러시아는 내몽골자치구와 허베이 성, 산시 성, 허난 성에 친러시아 정부를 수립했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인도, 스페인 등 힘을 가진 나라는 너나 할 것 없이 중국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들었다.
“요코가 죽으면 남은 써커들이 미쳐 날뛸 줄 알았는데, 왜 모두 멀쩡한 거죠?”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조용하네. 개판을 만들 수 있었는데... 젠장!”
요코와 쇼타가 죽자 살아남은 써커와 숙주 레드몬들은 자유의 몸이 됐다. 풀려난 순간 원래 성질대로 난폭하게 날뛰며 사람들을 공격할 줄 알았는데, 요코의 몸을 거치며 순화됐는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했다.
요코는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조직을 이끌기 위해 소수민족과 호족 지도부를 모두 숙주로 삼았다.
조만간 생명이 다해 죽거나 정체가 밝혀져 목숨을 잃겠지만, 지금은 필요한 존재들로 열강들은 이들을 이용해 빠르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허수아비 정부를 수립했다.
“써커들이 날뛰지 않아도 소수민족과 호족, 열강들이 땅과 이권을 놓고 혈투를 벌일 거예요. 알아서 엉망이 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럼 다행이고.”
은하의 말처럼 땅을 나눈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화가 잔뜩 난 시위 군중들이 군정 사령부로 몰려가 몸싸움을 벌였다.
열강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땅을 나누자 민족이 하나로 합쳐지지 못했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잃어버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프리카를 나눈 것처럼 땅을 일직선으로 긋진 않았지만, 중국이 나눈 것처럼 성에 따라 지역을 나누며 불만이 폭주했다.
땅이란 것이 서로 뺏고 빼앗기다 보면 내 땅이 될 수도 있고, 네 땅이 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국경을 마주한 나라는 어느 나라든 영토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소수민족과 호족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조상들이 차지했었다는 이유로, 현재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며 핏대를 세웠다.
이 문제는 동북 3성을 차지할 계획인 우리도 자유롭지 못했다. 수천 년을 차지했다고 해도 그 전에, 그 이후에 차지한 민족들도 자기 땅이라 우길 권리가 있었다.
“살아남은 써커들이 요코처럼 세력을 만들거나 그러진 않겠죠?”
“최정준 박사와 황준지우 박사가 그럴 일은 없다고 했으니 살 만큼 살다가 죽으면 사라지겠지.”
“진회는 언제 처리하실 거예요?”
“지금 어디 있어?”
“일주일 전 선양 시로 돌아왔어요.”
“아직도 잡을 엘리트 레드몬이 남았나?”
“내몽고의 다싱안링 산맥까지 간 것으로 보아 동북 3성엔 남은 게 없나 봐요.”
“알뜰히도 챙겨 먹네.”
혈랑을 아깝게 놓친 진회는 엘리트 레드몬에 한이 맺혔는지 동북 삼성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니며 C급, B급을 가리지 않고 씨를 말렸다.
항카 호를 따라 하바롭스크 바로 아래까지 올라간 후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 아무르 강을 따라 다싱안링 지구까지 올라갔다.
그리곤 남쪽으로 내려오며 내몽고자치구인 다싱안링 산맥을 샅샅이 뒤져 엘리트 레드몬은 하나도 남김없이 흡수했다.
다행히 우리를 의식해 한반도 국경을 넘거나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 접근하는 일은 없었지만, B급 상급 레드몬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아내들을 긴장시켰다.
“촉수를 사용해 레드몬을 흡수한다고?”
“네, 손가락은 물론 온몸이 촉수로 변해 고무줄처럼 쭉쭉 늘어난다고 했어요. 그리고 촉수에 달린 빨판으로 생기를 흡수해 엘리트 레드몬도 순식간에 껍데기만 남으니 조심해야 한대요.”
“고무공처럼 탄력이 넘친다는 건 뭐야?”
“예기를 머금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있는 힘껏 내리쳐도, 탱탱한 고무공을 친 것처럼 튕겨 나왔대요.”
“화염 스킬도 안 먹혔어?”
“네!”
“아주 재미있는 녀석이네. 흐흐흐흐~”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