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2 늑대인간 =========================================================================
452.
“우리 집이 갈 곳 없는 레드몬 받아주는 보호시설도 아니고, 왜 자꾸 기어들어 오고 지랄이야”
“많이 올수록 좋은 일 아닌가요?”
“하람 한 놈만 해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뭐가 좋은 일이라는 거야?”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얼굴에 대박이라고 쓰여 있어요.”
“아영아! 마냥 좋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야. 녀석이 미쳐서 날뛸 수도 있고, 앙심을 품고 중간에 달아났다가 공격할 수도 있어. 그럼 대박이 아니라 쪽박을 찰 수도 있는 거야.”
“그거야 오빠와 상아가 어떻게 하냐에 달렸죠.”
“내가 뭘 어떻게 해?”
“하람 오빠도 오빠가 잡았잖아요.”
“그 자식은 갈 곳이 없어서 눌러앉은 거지, 내가 잡은 거 아니야. 원하면 언제든지 보내 줄 거야.”
“상급 레드몬이 갈 곳이 없다니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집도 절도 없잖아. 가진 것도 없고. 그러니 갈 곳이 없지.”
“오빠! 아까 소희 얘기 못 들었어요?”
“무슨 얘기?”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세요. 기분 좋다고 표현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응! 어려워!”
“감정 표현이 이렇게 서툴러서야... 쯔쯔쯔쯔~ 그런데 언니들은 어떻게 꼬였어요?”
“컥!”
진회에게 부하를 모두 잃고 달아났던 혈풍이 우리 집 별장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늑대가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달달한 코코아를 마시며 쵸코칩 쿠키를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생식만 하던 늑대 새끼가 코코아와 쿠키가 입맛에 맞는 것도 신기했고, 자기 집 안방처럼 편하게 앉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도 신기했다.
‘이런 걸 바로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고 하는 건가?’
혈풍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건 대박도 보통 대박이 아닌 초대박으로 나라를 구한 것보다도 기분이 더 좋았다.
그러나 하람처럼 눌러앉지 않고 떠날 수도 있고, 성격이 맞지 않아 크게 사고치고 달아날 수도 있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손에 들어온 이상 요리하기 따라 하람처럼 영원한 똘마니로 만들 수도 있어 걱정부터 할 일은 아니었다.
“우리를 찾아온 이유가 고작 말과 글을 배우겠다는 거야?”
“말과 글을 배워 인간의 문명과 사고에 대해 깊이 알고 싶대요.”
“왜? 어째서? 뭐하려고?”
“진회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네요.”
“인간의 문명과 사고를 배우는 것과 복수가 무슨 상관이야? 복수하려면 놈을 찾아가 아구창부터 날려야지.”
“혈풍님은 오랫동안 상대에 대해 등한시한 것이 가족을 모두 죽게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리 있는 말이긴 하지만 진회에게 진 것과는 무관한 것 같은데?”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혈풍님의 얘기를 계속 들어보자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왜?”
“처음 인간을 우습게 봤을 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태해진 거예요.”
“흐음...”
“나태해진 것도 문제지만, 자신의 것만 옳고 강하다고 믿으며 혈풍님의 발전도 함께 멈췄죠. 안타깝게도 그건 혈풍님 혼자로 끝난 일이 아니었어요. 혈풍님의 우수한 인자를 받고 태어난 새끼들도 혈풍님처럼 자만에 빠져 정체된 채 발전하지 못했고, 혈풍단도 마찬가지였어요.”
상아의 얘기는 혈풍의 잘못된 판단으로 무리 전체가 도태됐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자 몸에서 한기가 일었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 최고의 자리에 있던 무리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나와도 무관하지 않은 얘기였다.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는 절대 자만해서도 안 되고, 나태해서도 안 되고, 독선적이어서도 안 된다.
자만하면 상대를 깔보고 자신만 옳다고 생각했고, 나태하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 뒤처졌다.
독선은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해 무리를 나쁜 길로 이끌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나한테 하는 소리네?”
“우리 모두에게 하는 소리예요.”
“그런가?”
“그럼요. 혼자서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다 같이 노력해야죠. 그리고 오빠는 지금까지 정말 잘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잘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고마워!”
내가 잘한 게 아니라 아내들과 직원들이 잘해서 미래 레드몬과 나진시가 이만큼 성장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처럼 레드몬을 죽이는 것이 전부였다. 굳이 잘하는 것을 하나 더 들자면 아내들과 직원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의 카를로스(Carlos) 국왕이 아들 펠리페(Felipe) 왕세자에게 군왕(君王)의 덕목을 가르친 편지가 있다.
‘아들아, 왕은 왕세자라는 태생적 신분만으론 될 수 없다. 매일의 언행(言行)으로 왕의 자리를 굳혀가야 한다. 친절하고 매력적이며, 유익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피곤할 때도 활기차 보여야 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을 때도 친절해야 한다. 관심이 없더라도 경청(敬聽)해야 하며, 수고스럽더라도 남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또한, 남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하며, 말을 할 땐 균형 있게 말해야 한다. 공적인 자리에선 말을 많이 하되 신중해야 하며, 결코 확언해선 안 된다.’
이것이 카를로스 국왕이 아들에게 준 조언으로 국왕이 아니라도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명확히 서술했다.
머릿속에 세상의 지식을 다 담고 있어도 노동의 고통을 모르면 죽은 지식이었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미친 벽창호였다.
나는 지도자의 자질은 없었지만, 단 하나 남의 얘기를 귀담아듣고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는 갖추고 있었다.
“상아가 고생 좀 해야겠다.”
“아니에요. 혈풍님에 대해 알아가며 제가 아는 지식을 알려드리는 시간은 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될 거예요.”
“그럼 다행이고.”
“진회 처리는 미리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네가 얘기해.”
“만약에 혈풍님이 직접 처리하고 싶다고 하면 어쩌죠?”
“기다릴 상황이 아니란 걸 설명해줘. 녀석도 그 정도 머리는 있을 거야.”
“네!”
코코아와 초콜릿 과자에 꽂혀 정신없이 입안에 쑤셔 넣는 혈풍에게 상아가 조만간 진회를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진회를 처리한다는 말에 혈풍의 손이 멈춰졌다. 혈풍이 누가 처리하느냐고 물어보자 상아가 내가 처리할 거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혈풍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녀석이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자 상급 레드몬을 사냥한 기록과 신문에 난 기사와 사진, 레드스톤까지 보여줬다.
그러자 혈풍의 눈이 불신에서 놀람으로, 경악에서 선망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상아는 혈풍의 기를 완전히 누를 생각으로 하람도 상급 레드몬이란 사실을 알려주며 나와의 승부에서 졌다는 것을 알려줬다.
하람도 확실히 고개를 끄떡이며 상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상급 레드몬 두 마리를 사진으로 보여주고, 미지의 세계 미스트 존도 사진으로 보여주며 조만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별장 거실을 자기 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사용하던 혈풍이 상아의 얘기를 듣자 쉬 마려운 강아지처럼 위축돼 잔뜩 움츠러들었다.
“아주 심하게 겁먹었네요.”
“잘했어! 흐흐흐흐~”
“오빠! 그 웃음의 의미는 뭐예요?”
“시작한 김에 데리고 나가서 정신 교육 좀 시킬까 하고.”
“정신 교육요?”
“응! 사고 치지 못하게 잡아 놔야지.”
“어떻게요?”
“몽둥이찜질!”
“그러다 앙심을 품고 숨어다니며 사고 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그런 생각 못 하게 먼지 나도록 패야지.”
잔뜩 움츠려든 혈풍을 데리고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 땅으로 넘어가 대련을 빙자해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
혈풍의 동화 스킬은 기감을 사용하면 눈으로 보는 것만큼 선명해 숨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위 손오공이었고, 화염 스킬은 하람만도 못해 철갑을 뚫지도 못했다.
바람 스킬로 귀신같이 따라붙으며 때린 데 또 때리고, 멍든 곳 골라 때리며 고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코코아와 초콜릿 쿠키를 다 쏟아내고 위액까지 몽땅 뿜어내 더는 뿜어낼 게 없을 때까지 두들겨 팬 후에야 대련을 끝냈다.
옆에서 지켜보는 하람이 두려움에 떨고, 아내들이 눈살을 찌푸릴 만큼 복날 개 패듯이 팼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파멸의 창으로 바위산에 커다랗고 깊숙한 구멍을 뚫어주는 시연으로 까불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줬다.
혈풍을 거칠게 다룬 건 놈이 개였기 때문이다. 개는 서열을 중시해 초반에 잡아두지 않으면 두고두고 화근이었다.
모습은 사람으로 변했지만, 본성은 여전히 늑대로 서열을 확실하게 매겨놔야 뒤탈이 없었다.
하람에게 이러지 않은 건 개가 아닌 멧돼지였기 때문이었다. 멧돼지를 두들겨 패는 건 잡아먹을 때나 하는 것이지 서열을 정할 때 하는 짓은 아니었다.
다른 말로 복날 개 패듯이 팰 날이 오면 그날이 하람을 잡는 날이라는 뜻으로, 내가 의미심장하게 웃자 하람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아리야! 치료해주지 마. 아픈 만큼 성숙해져야 해.”
“너무 심하게 때렸어. 이대로 두면 몇 달 누워있어야 해.”
“말 배우러 왔지 일하러 온 거 아니잖아. 그리고 죽지 않을 만큼 때렸으니까, 그냥 내버려 둬도 알아서 아물 거야. 명색이 상급 레드몬인데 그 정도 치유력도 없겠어?”
“이럴 때 보면 은근히 잔인해.”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고 했어. 흐흐흐흐~”
혈풍에게 다가가는 아리와 마샤, 아영을 불러 치료해주지 못하게 했다. 상처가 오래갈수록 나에 대한 두려움도 오래갔고, 사고 칠 위험도 줄었다. 또한, 자만심과 오만, 나태함도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자만심과 나태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은 놈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기어들어 왔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됐다.
자만심이 사라지기는커녕 아직도 뱃속에 가득 찬 놈이 입만 살아가지고, 상아에게 지난 일이 어쩌니,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느니 헛소리를 나불댄 것에 불과했다.
나 같으면 산속에 처박혀 죽으라고 훈련만 했다.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이를 악물고 훈련한 다음 기습으로 놈을 죽인 후 인간의 문화를 배울지 말지 결정했을 것이다.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진 녀석은 핑계를 대고 돌아다닌 것이지 깨달음을 얻어 나진시에 온 것이 아니었다.
‘이놈의 새끼! 입만 살아서. 주둥이를 확 찢어버릴까?’
생각할수록 열이 받아 눈에 힘을 주고 혈풍을 바라보자, 겁에 질린 녀석이 머리를 땅에 처박고 바들바들 떨어댔다.
그 모습을 보자 화가 눈 녹듯 사라지며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