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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51화 (451/505)

00451  늑대인간  =========================================================================

451.

어떻게 하면 인간의 언어를 빠르게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혈풍은 우연히 TV에서 인간과 함께 뛰노는 레드몬을 발견했다.

온통 하얀 털로 뒤덮인 호랑이와 개들은 크기만 봐도 레드몬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놈들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들 사이에서 애교를 부리고, 아이들을 태운 채 사진을 찍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레드몬과 인간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못 죽여 안달 내는 원수 사이였지, 다정하게 웃고 떠드는 친구가 아니었다.

레드몬과 함께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답답함을 풀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길가는 행인 세 놈을 잡아다가 족쳐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손짓 발짓으로 어디 사는지 지도를 통해 알아냈고,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됐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간사회에 머물며 하나씩 배워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야. 늑대도 무리마다 언어와 행동이 다른데, 알려주는 사람도 없이 어느 세월에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와 생각마저 알 수 있겠어? 그때쯤이면 진회는 다가갈 수 없는 상대가 됐을 거야. 기다릴 시간이 없어.’

‘부딪쳐보는 거야. 일단 부딪쳐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도 늦지 않아. 동화 스킬이 있는 한 놈들에게 발각될 염려는 없어.’

동화 스킬을 믿고 무작정 나진시에 도착한 혈풍은 촘촘히 세워진 방어탑과 레드몬 탐지 레이더를 비웃듯 나진시를 활보했다.

그래도 레드몬을 길들인 주인을 바로 찾아가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에 일단 주변을 기웃거렸다.

항구와 공항, 박물관, 공연장, 연구소, 방송국, 체육관, 우주센터 등 나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자 창춘 시에선 볼 수 없었던 활기에 자신도 모르게 매료됐다.

크기는 창춘 시가 훨씬 컸지만, 다양한 볼거리, 인종, 사람들의 표정 등은 나진시가 월등히 앞섰다.

특히 레드몬인 솔피와 백호, 풍산개, 해달이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과 어울려 사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레드몬과 인간을 적으로만 알고 있던 혈풍은 솔피에 올라다 바다를 질주하고, 백호와 풍산개에 매달려 사진을 찍고, 해달의 재롱에 박수를 보내는 인간들의 모습에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첫날 레드몬도 사람도 모두 미쳤다고 생각했다. 미치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자 이질적인 느낌은 사라지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부심과 행복, 즐거움이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에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찾아온 이유도 잊고 진짜 관광객이 되어 나진시를 구경했다.

“오빠! 시간 없어요. 빨리 나오세요!”

“나도 꼭 가야 하는 거야? 너희끼리 다녀오면 안 돼?”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거 몰라요?”

“나는 남자 아이돌 싫어. 여자면 모를까.”

“여자 가수도 나온다고 했어요.”

“누구?”

“가보면 알아요.”

“트로트 가수 나오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갔는데 없으면 정말 화낸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지 언니 나온다고 했어요.”

“정말?”

“네!”

단국 방송국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에 남자 5인조 아이돌 그룹 H.O.T.가 출현한다는 정보에 아침부터 상아와 아영, 마샤, 소희가 난리였다.

넷이 갔다 오라고 하자 내가 삐질까 봐 억지로 끌고 가려 했다. 싫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잡아끌어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됐다.

“소희야! 남자 아이돌 어디가 좋아?”

“멋있잖아요. 인기도 많고.”

“인기는 네가 더 많아. 팬클럽 수를 봐. 최소 열 배는 더 많은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춤을 잘 추잖아요.”

“그게 춤이야? 흐느적대는 거지.”

“질투하는 거예요?”

“질투?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돈도 내가 훨씬 많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고추도 큰데 질투라니? 비교돼야 질투를 하지.”

“그런데 왜 계속 짜증이세요?”

“억지로 끌고 가니까 그렇지.”

“오빠도 여자 연예인 좋아하잖아요. 특히 댄스 가수 나오면 TV에 들어갈 것처럼 바짝 다가가 보잖아요.”

“생사람 잡지 마. 나는 음악만 들었을 뿐이다.”

“1km밖에서 떨어진 바늘 소리도 듣고, 30km 떨어진 곳에서 여자 팬티 색깔도 맞추면서, 볼륨은 고막이 터지도록 키우고, TV에 얼굴을 박고 보는데 음악만 들었다고요?”

“좀 더 정확히 듣고 보려고 그런 거야.”

“쯔쯔쯔쯔~ 그냥 좋아한다고 하면 될 것을... 남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가 된다더니 오빠를 두고 한 말이었네요.”

“뭐라고?”

생방송이 한창 준비 중인 무대 밑에는 아침부터 줄을 서서 어렵게 들어온 여학생들로 이미 만원이었다.

여학생 수백 명이 무대 밑에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차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연호하며 목이 터지라고 외쳐댔다.

상큼한 모습에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지만, 은비 덕에 평안한 2층에서 우리끼리 조용히 볼 수 있어 여학생들과 부비부비할 기회마저 사라졌다.

‘젠장!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왔으면 파릇파릇한 아이들과 젊음을 불사를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까악~~~”

생방송이 시작되자 여학생들의 비명이 무대를 가득 메웠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올 때마다 여학생들은 고막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상아야! 오빠 고막 터지겠다. 나갔다 오면 안 될까?]

[이왕 온 거 조금만 참으세요. 오빠 나가면 소희가 많이 섭섭해 할 거예요.]

[하아~ 알았어.]

기감으로 귀를 막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소리가 사라지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음악도 없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가수들, 그 밑에서 환호하는 여학생들, 내 옆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손을 흔드는 마샤와 소희의 모습까지 따로 노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소리 대신 기감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들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열광하는 여학생들의 흥분도 느꼈다.

‘이것도 재밌네.’

귀 대신 기감을 사용하자 귀로 들을 수 없었던 열정이 느껴졌다. 무대에 서기까지 흘린 땀방울, 누군가를 사심 없이 좋아하며 즐거워하는 마음이 느껴지자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소리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건 또 뭐야?’

기감을 집중하자 무대 옆 구석진 곳에서 멍한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낯선 남자가 느껴졌다.

2m 장신에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뭐에 홀린 듯 입을 벌린 채 정신없이 무대를 보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과 뜨거운 분위기, 가수들의 열창을 대하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로 이상할 것도 없지만, 유령처럼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상아야!]

[네?]

[반경 3km 안에 레드몬 있는지 확인해봐.]

[없어요.]

‘상아의 탐지 스킬에도 걸리지 않는다. 흐음... ’

살기를 투사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 상대가 레드몬이란 걸 알았다. 그것도 하람보단 못하지만, 상당한 수준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목적으로 나진시에 왔는지 궁금했지만, 방송국에서 드잡이질을 벌이면 엄청난 인명피해가 우려돼 일단은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놈은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처음 TV를 본 아이처럼 무대에 홀딱 빠져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처음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생방송이 끝나자 10분쯤 멍하니 서 있던 남자는 얼이 빠진 모습으로 천천히 방송국을 빠져나가 사람이 없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봤다.

[어쩌려고요?]

[잡아야지.]

[나쁜 뜻으로 온 것 같진 않은데요? 그랬다면 방송국에서 아이돌 공연을 볼 리가 없잖아요.]

[좋은 뜻으로 왔다고도 할 수 없지. 그랬다면 숨어다니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선자불래(來者不善) 내자불선(善者不來)이라고 온자는 선하지 않고, 선한 자는 오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 하람을 불러 뒤를 든든히 한 다음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인기 가요 무대의 여운이 컸는지, 아니면 문화적 충격 때문인지 녀석은 내가 다가가는 것도 몰랐다.

[어이! 거기!]

텔레파시로 부르자 깜짝 놀란 녀석이 번개같이 일어나 전투자세를 취했다.

“싸울 생각이면 바로 덤비고, 다른 생각이 있어서 왔다면 모습을 드러내.”

천천히 다가가며 말하자 녀석이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다행인 건 적의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놀람과 당황스러움만이 얼굴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말 몰라?”

말을 못 알아듣는지 말을 걸면 움찔거리며 눈동자가 좌우로 돌아갔다. 하는 행동으로 보아 인간으로 변신한 지 얼마 안 된 초짜 같았다.

“상아야! 이리와 봐!”

“네!”

손을 잡고 녀석이 어디 있는지 알려준 다음 상아의 기감을 인도했다. 기감력을 터득한 지 5년 된 상아는 한 번에 20개의 물체를 동시에 기감할 수 있지만, 몸을 숨긴 녀석을 찾아내진 못했다.

녀석의 은신 능력은 상아의 탐지 스킬을 속이는 것은 물론 구미호의 정찰 능력도 완벽히 속였다.

“느껴져?”

“네! 이제 보여요.”

“왜 왔는지 물어봐.”

“네!”

[안녕하세요. 저는 손상아라고 해요. 제 옆에 있는 분은 미래 레드몬 박지홍 회장님이세요.]

[헉!]

[놀라게 했다면 죄송해요.]

[어떻게 우리말을 할 수 있지?]

[저는 마음을 통해 대화할 수 있어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제약이 없어요.]

[그 능력으로 레드몬을 길들였나?]

[길들인 건 아니고요, 서로 배려하고 아끼며 가족이 됐죠.]

[가족?]]

[네?]

[레드몬과 가족이 됐다고?]

[네, 이름도 있는 걸요. 호랑이는 백호, 풍산개는 풍연·풍비·풍영·풍아·풍인·풍리·풍희·풍산요. 솔피들도 각각 이름이 다 있고, 해달들도 친한 친구들은 이름을 지어줬어요.]

[이름을 지어준다고 가족이라고 할 순 없지.]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이름을 지은 건 부르기 편하라고 한 게 아니라 평생 서로 소중하게 아끼며 함께 하자는 의미에서 지은 거예요.]

상아의 설명에 혈풍이 잠시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나진시에 온건 레드몬을 길들인 사람을 이용해 빠르게 언어를 배워 인간의 문화와 문명을 배우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간신히 억눌러놓은 슬픔이 되살아나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같은 늑대끼리도 가족이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물며 인간과 레드몬이 가족이라 생각하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에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상아의 태도에 혈풍은 혼란을 빠졌다.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네요. 죄송해요. 실례가 안 된다면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혈풍! 인간들은 나를 혈풍이라고 부르더군.]

[혹시 제가 아는 혈풍님과 같은 분이세요?]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나진시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온 것이 반갑지 않을 텐데?]

[몰래 들어온 건 그렇지만, 악의적인 감정은 없는 것 같아 환영해도 될 것 같아요.]

[재미있는 아가씨군.]

[저 아줌만데요. 호호호호~]

[.......]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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