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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50화 (45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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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늑대인간

석 달 전 진회에게 쫓겨 다싱안링 산맥으로 도망친 혈풍은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더 넘긴 후에야 간신히 안정을 찾았다.

만신창이가 돼 산에 들어온 첫날 B급 엘리트 레드몬 아시아흑곰의 공격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수많은 전투를 통해 몸으로 체득한 경험과 진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간신히 아시아흑곰을 잡고 상처투성이인 몸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신고식이 조금 부족했는지 한밤중 C급 엘리트 레드몬 시베리아호랑이의 급습을 받았다.

아시아흑곰과 사투로 시체처럼 잠이 든 상태에서도 무언가 살금살금 다가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혈풍은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천근 같은 몸을 간신히 일으켜 시베리아호랑이와 마주 섰다.

몸이 멀쩡했다면 코웃음을 칠 상대였지만, 지금은 중급 레드몬한테도 잡아먹힐 만큼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시베리아호랑이의 커다란 앞발을 피하고, 바닥난 포스를 쥐어짜 화염탄을 날리며 무려 한 시간이 넘는 전투 끝에 C급 엘리트 레드몬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했다.

두 번의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다음에야 다싱안링 산맥에 자리를 잡은 혈풍은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실의에 빠진 혈풍은 한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깊이 고민했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A급 엘리트 레드몬인 혈풍은 인간만큼 뛰어난 지능을 지녔지만, 생각의 깊이는 늑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보고 듣고 배운 게 늑대의 삶이 전부라서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오지나 정글에 사는 원주민의 지능이 문명사회에서 사는 우리보다 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매우 잘못된 생각으로 보고 배운 것이 폭넓지 못하고, 거친 환경에 적응해 살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실제 지능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반대로 우리가 오지에서 생활하면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원주민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

혈풍도 이런 한계 때문에 예전처럼 무리를 짓고 세력을 키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삶에 순응하는 자세로 혈풍은 작은 레드울프 무리를 힘으로 굴복시켜 가족으로 만들었다.

그중 가장 튼튼한 암컷을 골라 짝짓기를 했다. 원하던 엘리트 레드몬 암컷을 구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이 생기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와 소박한(?) 삶에 혈풍은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항상 머릿속에 맴도는 진회의 모습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인간과 치른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혈풍은 인간의 신체와 문명을 열등하다고 믿었다.

인간이 만든 무기는 너무나 약해 피부에 상처도 나지 않았고, 조금 능력이 뛰어나다고 잘난척하는 인간들도 화염탄 한 방이면 수십 명이 녹아내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의 무기와 능력에 실망한 혈풍은 열등한 인간의 문명을 알려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인간의 모습을 한 진회에게 무참히 밟히며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회는 인간의 모습을 한 상태로 자신보다 월등한 능력을 사용했고, 인간을 이용해 무리를 공격하는 등 그동안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너무도 훌륭하게 사용했다.

그 모습에 자신이 상대를 무시하며 늑대 사회가 우월하다는 자만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생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혈풍의 고민이 늘어갈 즈음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암컷 레드울프가 새끼를 8마리를 낳았다.

그중 세 마리는 엘리트 레드몬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엿보이며 혈풍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좋은 일이 생기자 안 좋은 일도 따라왔다. 새끼를 낳고 5일 후 행복을 만끽하기도 전에 혈풍과 가족의 주위를 맴도는 놈이 나타났다.

놈은 A급 엘리트 레드몬 아무르표범(Amur Leopard)으로 밤낮없이 주위를 돌며 혈풍과 가족을 노렸다.

구명 스킬인 절대 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혈풍이 겁낼 상대는 아니었지만, 전투력이 급감한 지금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다.

아무르표범은 다싱안링 산맥의 진정한 터줏대감으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에 전술에 능했고, 험준한 산을 귀신같이 탔다.

또한, 기척을 숨기고 존재감마저 지운 채 숲과 동화되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어 일부러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면 찾을 수도 없었다.

일주일간 주위를 맴돌던 아무르표범은 혈랑을 제압할 자신감이 들자 먼저 가족들을 노렸다.

이틀 만에 암컷과 새끼들을 빼고 가족들을 모두 죽인 아무르표범은 잔인하게 죽은 가족의 사체를 나무에 걸어 놓는 등 고도의 심리전으로 혈풍을 자극했다.

그 모습에 격분한 혈풍이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주변과 동화돼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는 아무르표범을 잡지 못해 번번이 허탕만 쳤다.

혈랑은 신출귀몰한 아무르표범을 잡을 수 없다는 걸 통감하고 암컷과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남쪽으로 500km를 이동했다.

혼자라면 끝까지 남아 놈과 자웅을 겨루겠지만, 자신만 바라보는 가족을 외면할 수 없어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버리고 달아나는 쪽을 택했다.

남쪽으로 보금자리를 이동하고 사흘 동안 아무르표범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혈랑은 놈이 떨어졌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았다.

굶주린 가족을 위해 커다란 붉은 사슴을 잡아와 다 같이 나눠 먹고 드러누워 새끼들의 재롱을 보자 산속에 파묻혀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들었다.

무리를 모아 힘들게 지역의 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드몬으로 변이한 지 20년 된 혈랑은 5년 만에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하고, 다시 5년 만에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했다.

10년 만에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빠르게 진화한 혈랑은, 이때부터 커다란 벽에 막혀 10년간 답보상태를 거듭했다.

그러나 만주 5대 재앙 중 가장 큰 무리를 이뤄 동북 삼성의 패자로 군림하며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인간의 도전은 물론 레드몬의 도전도 모두 물리치며 거칠 것 없이 10년간 최고의 자리를 고수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 진회에게 처음으로 패해 산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20년 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단란한 시간을 갖게 되자 복수도, 패자의 꿈도 모두 허망한 것 같았다.

아이들의 재롱에 푹 빠져 감상에 젖어드는 순간 허공에서 불쑥 커다란 손이 튀어나왔다.

혈랑 가족을 고이 보내줄 마음이 없던 아무르표범이 혈랑이 몰래 뒤를 따라와 주위를 맴돌다 방심한 틈을 타 공격했다.

동화 스킬에 속아 크게 한 방 맞은 혈풍이 나가떨어지자 아무르표범이 암컷의 목을 가볍게 꺾고 배를 갈랐다.

분노한 혈랑이 고통을 참고 달려들자 비웃음을 날린 아무르표범이 커튼 뒤로 몸을 숨기듯 사라졌다.

암컷과 새끼가 없었다면 광역 화염 스킬인 지옥의 불길로 놈을 찾았겠지만, 그랬다간 새끼들이 죽어 그럴 수도 없었다.

목이 꺾이고 배가 갈라져 죽은 암컷에 혈풍의 시선이 가자 뒤에서 아무르표범의 발이 불쑥 튀어나와 옆구리를 후려쳤다.

“깨갱~”

강력한 충격에 혈풍이 100m 넘게 날아가 처박히자 아무르표범이 잔인한 미소와 함께 나타났다.

옆구리가 길게 찢긴 혈풍이 극심한 충격에 일어나지 못하자 아무르표범이 겁에 질려 바짝 엎드린 어린 새끼 두 마리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눈이 돌아간 혈랑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달려들자, 옆으로 슬쩍 피한 후 새끼 두 마리를 비틀어 죽이고 모습을 감췄다.

눈이 돌아간 혈풍이 사방으로 미친 듯이 화염탄을 날리고 주먹질을 했지만, 꼭꼭 숨어버린 아무르표범을 찾을 수 없었다.

“헉헉헉~”

제풀에 치진 혈풍이 거친 숨을 토해내자 허공을 열고 나온 아무르표범이 번개처럼 달려가 혈풍을 들이받았다.

강력한 몸통박치기에 300m도 넘게 날아간 혈풍이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쓰러지자 아무르표범은 남은 새끼 세 마리를 잡아 천천히 혈풍에게 다가갔다.

혈풍 앞에 선 아무르표범은 놀리듯 새끼들을 흔들며 잔인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빨이 부러지고, 한쪽 눈은 터져 피가 흐르고, 찢긴 옆구리에서 내장이 반쯤 튀어나온 혈풍은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다싱안링 산맥의 패자 아무르표범의 취미는 상대를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는 것으로 은신 스킬의 일종인 동화를 이용해 치고 빠지며 수많은 강자를 처참하게 죽였다.

혈풍이 일어나지 못하자 장난감이 사라져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아무르표범은 간식을 먹듯 새끼들을 입에 넣고 씹었다.

“끼잉~”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놈의 입에서 핏물이 흐르자 하나 남은 혈랑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진회에 이어 아무르표범에게 또다시 가족을 잃자 혈풍은 자신의 무능함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오오오오~~~”

자기 때문에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자책에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 모아 하늘을 향해 한 맺힌 절규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 순간 10년간 앞을 가로막은 단단한 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밝은 빛과 함께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했다.

갑작스러운 혈풍의 변화에 위기를 느낀 아무르표범이 양발에 포스를 가득 담아 연속으로 휘둘렀지만, 혈풍을 감싼 둥그런 빛에 가로막혀 공격이 모두 튕겨 나왔다.

그제야 혈풍이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한다는 걸 알아챈 아무르표범이 재빨리 동화 스킬을 사용해 모습을 감추려 했다.

아무르표범이 안개처럼 사라지기 직전 빛 속에서 튀어나온 손이 아무르표범의 목을 정확해 움켜쥐었다.

그리곤 달아나려 발버둥 치는 아무르표범을 환한 빛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무르표범의 짧은 비명이 한번 울리자 다시 숲에 평화가 찾아왔다.

밝게 비췄던 빛이 사라진 건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정오였다. 빛이 사라지자 신장 2m의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온몸이 단단한 근육질로 뒤덮인 남자는 20대 중반으로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었다. 특이하게 머리카락 전체가 밝고 산뜻한 선홍빛으로 허리까지 내려왔다.

자신의 손과 몸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남자는 급히 개울가로 가 물속에 비친 낯선 남자를 바라봤다.

해가 지고 아침이 올 때까지 그 모습을 바라본 남자는 긴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죽은 암컷과 피떡이 된 새끼 두 마리를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하아~ 이게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나?’

‘이제 어떻게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진회를 이길 수 있을까?’

삼 일 동안 무덤을 지킨 혈풍은 먼저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로 했다. 그래야 앞으로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 결정할 수 있었다.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한 혈풍은 지금 실력으론 진회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무르표범을 흡수하며 동화 스킬을 얻었지만, 온몸이 촉수인 진회는 물리적 공격에는 거의 타격을 입지 않았고, 화염탄으로도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고무공 같은 진회의 몸을 깨뜨리려면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그러나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며 배운 건 인간으로 변한 것과 동화 스킬이 전부였다.

화염탄과 지옥의 불길이 전보다 더욱 강력해졌지만, 진회에겐 어림도 없는 수준이었다.

마음을 정한 혈풍은 지린 성의 성도 장춘 시로 들어갔다. 원하면 어디서든 주위와 동화돼 모습을 숨길 수 있어 인간의 삶과 문명을 엿보는 건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말을 몰라 동작을 보고 무엇을 하려는지 자기 멋대로 유추하는 게 고작이라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답답함과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을 찾고 싶어 납치도 해봤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그것 역시 소용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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