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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40화 (4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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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 구출

“함정 아니야?”

“상아가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했어요.”

“벤저민 로스차일드 회장의 충복이 왜 내게 도움을 청해?”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가 보죠.”

“그런 뜨뜻미지근한 말이 어디 있어? 나와 로스차일드 가문은 적이나 다름없는데,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둘이 정분이 나 도망쳤나 보죠.”

“고작 그게 이유야?”

“강승원 국장 말로는 둘이 어릴 적 단짝이었는데, 벤저민 로스차일드 회장이 엘리자베스를 어릴 적부터 아주 못되게 이용하며 멀어졌대요. 그러다 죽음을 앞둔 전장에서 다시 눈이 맞았나 보죠.”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인간이 살아남았죠.”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동물만 위기를 느꼈을 때 새끼를 많이 낳는 게 아니에요. 사람도 위기를 느끼면 종족 번식에 대한 강한 집착을 느끼죠. 그래서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거예요.”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한숙의 말을 부정할 순 없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면 상대가 더욱 아름답고 멋있게 보이는 법이었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남자가 백마 탄 왕자처럼 보이고, 밥숟가락을 던질 만큼 짜증 나는 추녀도 미스코리아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으면 석상과도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만큼 감성이 풍부해지며 애틋한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는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잠능자로 선발돼 로스차일드 훈련소로 끌려갈 때부터 함께한 사이로 누구보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남달랐을 것이다.

“사진으로 봐도 정말 예쁘긴 하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화신이라고 하더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네.”

“엘리자베스가 마음에 드세요?”

“아무리 예뻐도 임자 있는 여자는 관심 없어. 그리고 예뻐 봐야 우리 예쁜 마샤와 비교하면 보름달 앞에 반딧불이야.”

엘리자베스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자 마샤가 품에 안기며 눈을 빤히 쳐다봤다. 이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로 열심히 손바닥을 비비며 아부를 떨라는 주문이었다.

“그 말 정말이죠?”

“당연하지. 거짓말이면 벼락 맞아 죽어.”

“오빠 뇌전주얼 때문에 벼락 맞아도 안 죽잖아요.”

“그런가? 그럼 물에 빠져 죽는 거로 하자.”

“저 과부 만들려고 그래요?”

“그럼 어쩌란 말이야?”

“다시는 다른 여자에 관심 두지 마세요. 조만간 애 아빠가 될 텐데, 전처럼 이 여자 저 여자 찝쩍거리며 다녀서야 되겠어요?”

“아직 임신도 안 했는데 조만간은 무슨?”

“그럼 계속 이 여자 저 여자 건들고 다니겠다는 말이에요?”

“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안 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잖아요. 그러니 이 기회에 확실하게 못을 박으세요. 다시는 다른 여자를 탐내지 않겠다고. 지금 있는 아내들과 사귀는 여자들하고만 평생 같이하겠다고 다짐하세요.”

얌전하고 방긋방긋 웃기만 하던 마샤가 갑자기 사나운 암고양이로 변했다. 먀사의 성격으로 봐서 혼자 생각한 거 아닐 테고, 아내들이 나눈 의견을 부지불식간에 꺼낸 것 같았다.

“지금 해야 하는 거야?”

“싫으면 관두세요. 대신 저를 포함해 언니들과 잠자리를 다신 못할 거예요.”

“마샤야! 그거 너무 심한 협박 아니야?”

“협박이 아니라 오빠를 걱정해 말씀드린 거예요. 오빠가 계속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면 아이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린 거예요.”

“으음...”

“제 목숨보다 오빠를 더 사랑하는 거 아시죠?”

“응!”

“그럼 약속... 해주실 거죠?”

“하아~ 그래! 약속하마.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더는 여자를 늘릴 생각이 없었다. 아내들을 챙기는 것도 버거운데, 다른 여자를 또 끌어들이는 건 분란만 만드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캐서린과 아만다, 스텔라, 셀리나, 루나도 데리고 살아야 하는지 깊이 고민 중이었다.

“히히히히~ 고마워요.”

“마샤야?”

“네?”

“그런데 말이야. 음~ 기감으로 훔쳐보는 건 괜찮지?”

“뭐라고요?”

1997년 2월 25일, 도쿄가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에 함락됐다.

자정을 기해 총공격에 나선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의 파상적인 공격에 30만 명만이 간신히 도쿄를 탈출했고, 1,100만 명은 처참한 죽임을 당한 채 먹이로 전락했다.

아베 마사히코와 호소카와 총리를 포함해 가미카제 공대와 사무라이들이 모두 사망했고, 다웟 공대도 부상자 일부와 공대 업무를 보조하던 직원들만 구조됐다.

밤새 회의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 전투가 끝난 아침 5시가 돼서야 침실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아 잠시 TV 속보를 보고 있자 한숙의 전화기가 울어댔다. 예의 없게 아침 5시부터 전화할 사람도 없었고, 번호도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으려는 걸 이상한 예감에 받으라고 했다.

도쿄가 사라진 날은 구름이 짙어 위성으로 피해 규모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정확한 전투 상황은 알 수 없었다.

한숙이 전화를 받자 한국말도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가 흘러나왔다. 급히 프랑스어에 능통한 서인이 전화기를 건네받았고, 1분도 지나지 않아 상대의 신분을 알게 됐다.

상아가 서인 옆에 다가가 자신을 하워드 슐츠라 밝힌 남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했다.

상아가 거짓이 아니라고 말하자 그 길로 기타큐슈로 날아갔다. 비행기로 이동하며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어냈고, 위성으로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만 도망치는지 확인까지 했다.

기타큐슈 공항에선 마중 나온 하람에게 손만 한 번 흔들어주고 곧바로 MI-26 헤일로를 타고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 아유카와하마로 날아갔다.

아이작이 시간을 벌어준 사이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는 한숙에게 전화를 걸며 죽을힘을 다해 북쪽으로 달렸다.

간토 지방을 가로질러 태평양으로 흐르는 도네 강이 나오자 지체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어류형 레드몬이 있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지만, 그걸 따지다간 보스에게 따라잡혀 밥이 될 수 있었다.

도네 강은 강폭이 200~300m로 대형 레드몬이 살기엔 부적합했고, 도쿄 시가 주기적으로 산란방지제를 뿌려 레드몬이 없는 깨끗한 강이었다.

도네 강을 따라 15km를 이동해 냄새를 지운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는 해안 도로를 타고 이바라키 현과 후쿠시마 현을 지나 미야기 현으로 들어갔다.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를 미야기 현 아유카와하마로 오라고 한 건 주변에 섬이 많아 여차하면 섬으로 피신하라는 뜻이었다.

“오빠! 쥐는 헤엄을 잘 치지 않아요?”

“그래? 나는 물에 빠진 생쥐라는 소리에 빠지면 죽는 줄 알았는데.”

“그건 물에 흠뻑 젖어 몰골이 초췌하다는 뜻이지 빠져 죽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에요.”

“그러면 내가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를 막다른 골목으로 유인한 꼴이잖아? 젠장!”

“보스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도착해야죠.”

“최대한 밟으라고 해.”

“알았어요.”

기장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상아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래서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이라고 했다.

내가 고생하는 것도 아니었고, 둘을 꼭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없어 걱정할 건 없었지만, 아내들의 한심한 눈을 묵묵히 받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인아! 전화해서 장소 바꿔.”

“1시간 전 통화를 마지막으로 배터리 방전됐어요.”

“이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오십 분이면 도착하니까요.”

“지금 보스가 둘을 쫓고 있는 게 확실해?”

“네!”

“머리도 나쁜 놈이 추적술은 예술이네.”

아이작이 B급 한 마리를 죽이고 보스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끝까지 물 늘어졌지만, 1시간이 한계였다.

아이작은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를 살리기 위해 빠른 발로 치고 빠지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체력이 다하자 보스의 꼬리에 머리가 뚫리며 먹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아이작이 벌어준 천금 같은 시간 덕분에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는 도네 강까지 갈 수 있었다.

또한, 보스도 신경독을 치료하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다윗 공대원들을 시체를 먹느라 시간을 허비하며 2시간 후에야 추적에 나섰다.

새끼들이 심하게 다쳐 혼자 추적에 나선 보스는 흔적이 사라진 도네 강에서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15km 하류에서 발자국을 발견하고 엄청난 속도로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를 추격했다.

보스가 움직이자 서인이 곧바로 이를 알려줬고,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간다는 것을 말해주며 전화가 끊겼다.

“더 빠른 헬기로 바꾸든지 해야지 느려서 환장하겠다.”

“돈이 얼마가 들어갔는데 그런 소리를 해? 그리고 공격용 헬리콥터 아파치의 최대 순항속도가 시속 293km인데, 우리 헬기는 시속 320km야. 대체 뭐가 느리다는 거야?”

“비행기보다는 느리잖아.”

“그럼 세스나 208 타고 가든지. 그것도 비행기잖아. 내가 알기론 세스나가 헤일로보다 한참 느린 거로 아는데. 오빠는 좁은 세스나가 좋은가 보네.”

“야~ 다시는 그 이름 입에 올리지 마. 생각만 해도 짜증나 미칠 것 같으니까.”

은비의 악담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세스나 208 캐러밴을 타고 중국을 두 번 오간 후 다시는 탈 게 못 된다는 생각에 전용 헬기인 MI-26 헤일로를 대대적으로 개조했다.

레이더에 걸리지 않게 황금보다 비싼 A급 엘리트 레드몬 가죽으로 둘러싸는 만행을 저질렀고, 수십 대를 사고도 남을 돈을 처발라 개조가 아닌 새로 만들다시피 했다.

그것도 나진시와 규슈에서 사용할 기체를 두 대나 만들었다. 그래서 탄생한 녀석은 최대속도 365km, 순항속도 320km, 항속거리 2,500km로 멀리서 보면 MI-26 헤일로와 비슷했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혀 다른 괴물이었다.

이름만 MI-26 헤일로인 괴물을 타고도 미야기 현 아유카와하마까진 3시간이 걸렸다.

기타큐슈에서 아유카와하마까진 직선거리로 1,066km로 나진시에서 기타큐슈까지 이동한 1시간 20분을 더하면 총 4시간 20분이 걸렸다.

거기에 전화를 받고 공항까지 이동한 시간을 더하면 대략 5시간으로 아이작이 벌어준 시간과 도네 강이 벌어준 시간을 다 합쳐도 보스와는 1시간 거리 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문제는 보스가 시속 300km 이상으로 달려 아유카와하마까지 길어야 1시간이면 도착했다.

가까운 섬으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육지에서 600m 떨어진 긴카산 섬에 들어가도 놈이 따라올 수 있어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하워드와 엘리자베스가 안전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먼저 도착하거나, 놈이 어류형 레드몬을 두려워해 긴카산 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을 사람처럼 자유롭게 사용하는 놈이 하워드와 엘리자베스처럼 나무나 합판을 타고 건널 수 있어 안심할 순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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