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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38화 (438/505)

00438  전장에 피는 사랑  =========================================================================

438. 전장에 피는 사랑

“주군! 놈들이 5km 근방까지 접근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지금 즉시 홋카이도로 이동한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가미카제 공대 공대장 하야시 리스케가 힘차게 대답하고 밖으로 나가자 비서들이 아베 회장의 짐과 옷을 챙겼다.

서류를 챙기는 비서, 금고에서 보석과 돈을 가방에 담는 비서, 준비해둔 옷과 가방을 들고 헬기로 달려가는 비서까지 저택은 도떼기시장처럼 정신없이 돌아갔다.

“회장님! 재고해 주십시오. 혼슈를 구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미 혼슈는 끝났어. 망할 미국과 박지홍, 다윗 공대 때문에 망했다고. 놈들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됐어. 놈들이 나의 왕국 일본을 망쳐났어. 어서 빨리 홋카이도로 들어가 왕국을 재건해야 해. 시간이 없어!”

“회장님의 왕국이라 하셨습니까?”

“그래! 내 왕국!”

호소카와 총리는 눈이 돌아가 흰자위만 보인 채 악을 쓰는 아베 회장의 모습에서 일본이 끝났음을 느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나쁜 짓을 다 한 호소카와 총리는 나라가 풍비박산 나자 그제야 허망한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자 남은 건 난민으로 전락한 나라와 굶주린 국민, 부모를 잃고 울부짖는 아이들 그리고 어린아이만도 못한 늙은이가 한 명이 있었다.

젊은 시절 일본을 미국을 능가하는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갖고 정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아 번번이 낙선하며 뜻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게 아베 마사히코 회장이었다. 그렇게 아베 회장의 밑에 들어가 조금씩 조금씩 타락했고, 어느 순간 꿈도 잊은 채 더러운 욕망만 남게 됐다.

“내가 이렇게 타락한 게 당신 책임은 아니야. 모두 내 책임이지. 그리고 일본이 이렇게 된 것도 모두 당신 책임은 아니야. 내 책임도 있으니까. 그러나 당신과 내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순 없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장 홋카이도로 떠나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놈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도 우습군.”

“놈이라? 지금 내게 놈이라고 했나?”

“역시 개가 맞았군. 사람 말은 못 알아듣고 자기를 욕하는 개소리는 알아들으니.”

“호소카와! 지금 뭐하자는 건가?”

“네가 홋카이도에 가면 살아남은 일본 국민이 또다시 악몽을 꾸겠지. 그럴 바엔 나와 함께 죽자. 그게 네가 조국에 끼친 패악을 조금이라도 더는 일이야.”

“살려줘! 살려줘! 살고 싶어! 제발 살려줘!!!”

호소카와 총리가 품에 숨겨온 권총을 꺼내 머리에 겨누자 겁에 질린 아베 마사히코가 오줌을 질질 싸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너 같은 놈을 믿고 따랐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다음 생엔 절대 일본인으로 태어나지 마라. 그게 일본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탕탕탕~”

총성과 함께 아베 마사히코의 머리가 날아갔다. 반쯤 머리가 부서진 아베 회장이 바닥에 쓰러졌지만, 아무도 방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베 마사히코 회장의 서재는 미사일 공격을 받아도 안전할 만큼 완벽하게 방호된 건물이었다. 또한, 회장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우익의 성지였다.

“누릴 건 다 누렸으니 아쉬울 건 없군. 민족을 파멸로 몰아넣은 매국노로 남는 게 아쉬울 뿐이지!”

“탕~”

한 발의 총성과 함께 호소카와 총리의 관자놀이가 터져나가며 옆으로 쓰러졌다. 패망을 넘어 일본을 역사 속으로 지워버린 아베 마사히코와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가 죽었다.

이들의 시신은 15분 후 떠날 시간이 넘었는데도 나오지 않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 가미카제 공대장 하야시 리스케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며 알게 됐다.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아베 회장의 죽음에 철저한 충복으로 키워진 하야시 리스케는 어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부하들과 비서들도 한동안 멍한 상태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땐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들이 담을 넘고 있었다.

아베 회장의 죽음으로 반쯤 정신이 나간 사무라이들은 포베로미스들의 공격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정신을 차린 하야시 리스케가 가미카제 공대를 지휘해 선두에 선 B급 엘리트 2마리를 처리하자 어지럽던 상황이 간신히 정리됐다.

그러나 보스와 함께 나타난 1,500마리가 벌떼처럼 달려들자 한 명도 저택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원 놈들의 먹이가 됐다.

그래도 악착같은 근성으로 C급 450마리와 B급 4마리를 죽이며 다윗 공대의 짐을 덜어줬다.

도쿄를 접수하고 도쿄 항까지 피바다로 만든 보스는 살아남은 2,000여 마리를 끌고 하워드의 냄새를 쫓았다.

“아베 회장과 가미카제 공대가 당했습니다.”

“남아서 끝까지 싸운 건가?”

“그게 좀 이상합니다.”

“뭐가?”

“달아나기 직전 갑자기 움직임이 정지했고, 한참 동안 움직임이 없다가 놈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미군에선 내부 반란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 중입니다.”

“반란?”

“그럴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이지 미군도 장담하진 못했습니다.”

“놈들 피해는?”

“1,000여 마리가 죽고, 2,000여 마리가 건물로 숨어든 자위대원들을 공격 중입니다.”

“이곳으로 오겠지?”

“냄새를 맡고 올 겁니다.”

주위를 둘러본 하워드가 대열을 정지시켰다. 지바 시를 지나 6km를 내려오자 넓은 논이 나왔다. 겨울이라 벌판이나 다름없어 싸우기엔 도심보다 이곳이 나았다.

“복잡한 도심보단 논밭이 낫겠지. 이곳에 지뢰를 심고 놈들을 기다린다.”

“알겠습니다.”

디디에 부관에게 명령을 내린 하워드가 화염이 충천하는 도쿄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비명이 들리진 않았지만, 지금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고 자란 하워드는 죽음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부하들이 죽는 걸 안타까워했지만, 그건 자신의 지휘가 부족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지 죽음 자체를 애도하진 않았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네?”

“훈련소에 들어간 날부터 언제나 그랬어.”

“하긴 그러네.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으니.”

“오늘도 잘 이겨낼 거야.”

엘리자베스가 불안해하자 하워드가 조금은 무덤덤한 말로 달랬다. 따뜻한 말은 아니었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하워드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마음이 놓였다.

“하워드! 이번에 살아나면 나랑 사귈래?”

“나를 용서할 수 있겠어?”

“용서가 별건가? 잊으면 그만이지.”

“그건 용서가 아니잖아.”

“세상에 완벽한 용서는 없어. 잊으려 노력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거야.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용서야.”

엘리자베스가 손을 내밀자 하워드가 떨리는 손으로 하얀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았다.

어릴 적 매일같이 잡던 손이었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자주 잡던 손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벤저민 회장에게 악몽 같은 시간을 겪으며 한 번도 잡지 못한 손이었다.

그토록 잡고 싶던 손을 잡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듯 양손으로 포개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손을 잡고 싶었던 건 하워드보다 엘리자베스가 더했다. 수천 명의 남성이 짐승처럼 헐떡이며 육체를 탐할 때도 하워드의 눈에 슬픔만 쌓였지, 질투·증오·혐오 따위의 감정은 없었다.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슬픈 눈을 볼 때마다 엘리자베스는 하워드를 원망했다.

자신을 구하지 않고 말없이 서 있는 하워드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그러나 손을 잡자 자신만큼 하워드도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워드의 가슴에 묻힌 손을 통해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자 엘리자베스의 가슴에 쌓였던 원망도 눈 녹듯 녹아내렸다.

“프랑스로 돌아가면 결혼하자!”

“정말?”

“그래!”

“내가 어떤 여자인지 알잖아.”

“너는 어두운 훈련소에서 처음 만났던 모습 그대로야.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하지만...”

“나만 믿고 따라와. 그럼 다시는 손을 놓는 일이 없을 거야.”

“알았어.”

하워드의 품에 안긴 엘리자베스의 눈에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함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죽게 생겼는데, 인제 와서 신파극 쓰냐? 하려면 일찍 좀 하지.”

“죽긴 왜 죽어? 살아서 돌아가면 되지.”

“우리 결혼식 올리려면 꼭 살아야 해. 그러니 게으름 피우지 마.”

“지금 상황이 게으름 피울 상황이야?”

“알면 몸이 부서져라 싸워. 그래야 내가 하워드랑 결혼하지.”

“알았어.”

옆에 다가온 아이작이 하워드와 엘리자베스를 질투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부러움과 잘되기를 바라는 눈으로 바라봤다.

오해와 케케묵은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댔지만, 그래도 하워드와 엘리자베스가 아이작에겐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공대장님! 놈들이 이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얼마나 걸리지?”

“15분이면 도착합니다.”

“전투준비!”

“전면방독면착용! 대형을 갖춰라~”

디디에 베자스 부관의 외침에 지뢰 지대 뒤로 방패를 든 체력형 피지컬리스트들이 서자, 그 뒤에 파워형 피지컬리스트들이 섰다.

민첩형 피지컬리스트들과 멘탈리스트들은 원거리 공격을 준비하며 지형지물 뒤에 몸을 숨겼다.

“두두두두두~~~”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포베로미스들은 멈추지도 않고 다윗 공대를 향해 돌격했다.

“폭파!”

“쾅쾅쾅쾅쾅~~~”

하워들의 명령에 디디에 베자스 부관이 스위치를 누르자 고막이 터져나갈 것 같은 굉음이 연달아 울리며 고성능 폭약이 장착된 레드몬용 지뢰 3,000발이 일제히 터졌다.

5m 간격으로 매설된 지뢰가 한꺼번에 터지자 맹렬하게 달려들던 포베로미스 800여 마리가 사지가 찢겨 날아갔다.

로스차일드 연구소에서 개발한 레드몬용 지뢰는 기존 지뢰와는 차원이 다른 무기로 폭발력이 세 배 컸고, 파편도 중급 본스틸과 텅스텐 합금강으로 만들어 관통력도 매우 뛰어났다.

문제는 매우 비싼 게 흠으로 한 발에 1,000만 원이 넘었다. 그리고 중급 레드몬에 사용하면 가죽이 걸레가 돼 건질 게 없어 위급할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지뢰가 터진 자리에 녹색 연기가 피어오르자 순식간에 땅이 검게 변하며 사방에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졌다.

화염과 함께 독기가 일부 사라졌지만, 레드몬용 지뢰는 파편에 중점을 둔 무기로 화염은 그리 크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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