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37 사라진 도쿄 =========================================================================
437.
보스가 달아난 일주일간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다윗 공대와 미국이 계약서를 갖고 설전을 벌였다.
한쪽은 A급 엘리트 레드몬을 물고 늘어졌고, 한쪽은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 전체를 잡는 것이 계약 내용이라며 우겼다.
다윗 공대와 미국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사이 일본과 미군은 살아남은 해상자위대 소속 수송선, 미군 7함대 소속 수송선, 컨테이너선, 식량 운반선, 자동차 운반선 등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배는 모두 동원해 홋카이도로 사람들을 날랐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른 덕분에 일주일 만에 650만 명을 홋카이도 날랐다. 그러나 아직도 애타게 배를 기다리는 민간인이 600만 명에 달했다.
또한, 강제 징집된 자위대 병력 500만 명도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아베 마사히코 회장의 후퇴 명령이 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러나 아베 마사히코 회장은 도쿄를 떠날 수 없었다. 아베 회장은 A급 엘리트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가 나타나자 도쿄를 버리고 홋카이도로 달아나고 싶었다.
그러나 세르쥬 갱스부르 비서실장이 아베 마사히코와 사무라이가 도쿄를 떠나면 그 즉시 다윗 공대와 함께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도쿄에 남게 됐다.
로스차일드만 이런 협박을 했다면 코웃음을 치며 홋카이도로 날랐겠지만, 미국도 아베 회장이 직분을 다하지 않으면 전범재판소에 세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
이 때문에 세계에서 자기애가 가장 강한 아베 마사히코는 도쿄를 떠나지 못한 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심각한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며 미쳐가고 있었다.
아베 마사히코는 평화의 시대엔 유능한 인물일지 몰라도, 온실 속의 화초로 어려움이 닥치면 두려움에 벌벌 떠는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아베 마사히코가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자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우익의 단결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스위스 은행에 숨겨둔 돈을 뇌물로 주고 유럽으로 가족을 데리고 달아난 가신, 밀항선을 구해 동남아시아로 달아난 우익인사, 미국과 세르쥬 갱스부르 비서실장에 충성을 맹세하는 가신까지 생겨나며 일본은 구심점마저 사라졌다.
1997년 2월 25일
도쿄 도를 포함해 인근 8개 현만 일본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벤저민 로스차일드 회장에게 모두 넘기는 것으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일본은 간신히 숨을 돌렸지만, 다윗 공대는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하워드 슐츠와 아이작 스턴,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보스가 끝까지 싸울 마음이 없어 물러난 것이지 달아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이 사실을 세르쥬 갱스부르 비서실장에게 말한 하워드는 다윗 공대의 철수를 요청했다.
그러나 벤저민 로스차일드 회장은 일본을 삼키고 심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 시간을 질질 끌다가 고스 국장의 말에 홀딱 넘어가 혼슈 북부를 추가하는 것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벤저민 로스차일드 회장은 충분한 실전을 쌓아 A급 엘리트 레드몬인 보스도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윗 공대가 2년 넘게 세계를 떠돌며 사냥한 B급 레드몬만 15마리가 넘었다. 고의로 A급을 피해서 그렇지 상급 능력자 3명이면 A급도 문제없다는 게 벤저민 회장의 생각이었다.
세르쥬 갱스부르 비서실장도 보스만 잡으면 나머지는 시간이 걸릴 뿐 큰 어려움이 없다는 생각이라 하워드 슐츠의 말을 엄살이라 생각했다.
“안자고 여기서 뭐 해?”
“잠이 안 오네.”
“사실은 나도 잠이 안 와서 나왔어.”
하워드만 보스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도 보스의 강대함을 눈으로 확인한 후 잠이 오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호텔 옥상에 올라오자 하워드가 어두운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워드 옆에 바짝 붙은 엘리자베스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깊이 들이마셨다.
“휴우~ 살 것 같다. 한 대 줄까?”
“아니!”
“샌님처럼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마시지 않고, 여자도 멀리하고, 오직 훈련과 사냥만 반복하고 살면 재미있어?”
“아니. 그냥... 사는 거야.”
하워드의 그냥 산다는 말에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하워드가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사는지 엘리자베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그 일만 없었어도 하워드는 지금보다 100배는 유쾌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맺어졌다면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게 확실했다.
“심심하면 나랑 연애라도 할래?”
“진담이야?”
“아니! 심심해서 농담한 거야.”
그러나 다시 생각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엘리자베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이자, 가장 미워하는 남자가 하워드였다.
언제나 다정했고 힘이 되어줬지만, 진짜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줬다면...
자신을 무참히 짓밟고 이용하는 벤저민 로스차일드보다 사랑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조차 못하는 하워드가 100배는 더 미웠다.
“우리가 보스를 이길 수 있을까?”
“우리 셋으론 어림도 없어. 중급 나이트들이 모두 달라붙어야 놈을 잡을 수 있어.”
“전에도 봤다시피 혼자 움직이지 않는데, 그게 가능하겠어?”
“아니!”
“어쩔 생각이야?”
“모르겠어.”
“언제까지 벤저민 회장이 시키는 대로 살 거야? 이제 스스로 판단할 때도 됐잖아.”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살아왔어.”
“이번엔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야. 6,000명이 내 생각에 따라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어.”
“흐음...”
“쾅쾅쾅~~~”
“이게 무슨 소리야?”
“북쪽에서 난 폭음 소리. 방어벽이 공격받고 있어.”
“어쩔 거야?”
“모두 장비착용 후 현관으로 모이라고 해.”
“놈들과 싸울 거야?”
“일단 모인 다음 결정하자.”
“알았어.”
엘리자베스가 공대원들을 부르러 내려가자 하워드는 책임자인 세르쥬 갱스부르 비서실장를 찾아갔다.
VIP룸에 머물고 있는 세르쥬 갱스부르 비서실장 현재 상황을 이해시키고 철수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VIP룸은 텅 비어있었고, 수행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급히 1층 로비로 내려가 알아본 결과 어제저녁 도쿄만 아래 오시마 섬의 비행장을 통해 이미 프랑스로 도망친 후였다.
“규모가 얼마나 되나?”
“북쪽 사이타마, 남쪽 가와사키 두 곳에 3,000마리가 넘는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가 나타났습니다.”
“보스는?”
“북쪽 사이타마에 있습니다.”
“가미카제 공대와 사무라이들은 어디 있나?”
“아베 마사히코의 저택에 모여 있습니다.”
“놈들을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말은 없었나?”
“그에 관한 말은 없었습니다.”
부관 디디에 베자스에게 상황을 전달받은 하워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미카제 공대가 보스를 잡으러 움직인다면 큰 희생이 따르더라도 벤저민 로스차일드 회장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보스를 처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베 회장을 끼고 움직이지 않는 건 포베로미스를 상대하기보단 도망칠 확률이 높았다.
힘을 합쳐도 놈들을 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위기에 제 한 목숨만 살겠다고 도망치려는 게 확실했다.
“이제 어쩔 거야? 여기 남아 싸우다 개죽음을 당할 거야?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을 거야?”
“우리에게 새로운 삶이 있을 것 같아? 도망치는 순간 섀도 헌터에게 평생 쫓기게 될 거야.”
“시도도 해보지 않고 안 된다는 말부터 하지 마. 어차피 이곳에 남아 놈들과 싸우면 죽기는 매한가지야.”
“방어력이 형편없는 놈들이라 보스만 잡으면 물리칠 수 있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자리만 잘 잡으면 가능해. 그리고 달아날 곳도 없어. 항구는 이미 사람들로 꽉 들어찼고, 육로밖에 길이 없는데, 혼슈는 섬이야. 어디로 달아날 거야?”
“지바 시로 내려가면 배를 구할 수 있을 거야.”
“구한다고 해도 나이트 6,000명과 우리를 보조하는 직원 30,000여 명이 탈 배는 없어. 그리고 세르쥬 갱스부르 비서실장이 말없이 떠났다는 건 놈들을 무조건 잡으라는 회장님 지시야.”
하워드의 말에 아이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도쿄 항은 홋카이도로 탈출하는 일본 사람들로 일주일 전부터 만원이었다.
놈들이 쳐들어오기 전이라면 자신들이 탈 배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살기 위해 아우성치는 수백만 명이 몰린 항구에서 배를 구한다는 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헬기가 20대 있지만, 이걸로는 최대 140명밖엔 탈출할 수 없었다. 중급 나이트들만 태우고 탈출하면 모를까 36,000명이 탈출할 순 없었다.
“디디에!”
“네!”
“부상자들을 헬기에 태워 오시마 섬으로 보내라. 직원들은 차량에 태워 남쪽 끝인 지바 현 다테야마 시로 보내고. 미군에 도움을 청해 그곳으로 배를 보내달라고 해. 다윗 공대는 이치하라 시로 이동해 놈들과 일전을 벌인다.”
“알겠습니다.”
하워드가 빠르게 명령을 내리자 부관 디디에 베자스가 사람들을 불러 하워드의 명령을 전달했다.
헬기가 다친 나이트들을 싣고 오시마 섬으로 날아오르자, 다윗 공대를 보조하던 직원들도 버스와 트럭에 콩나물시루처럼 꾸역꾸역 나눠 타고 다테야마 시로 출발했다.
직원들이 떠나자 다윗 공대는 속보로 지바 시 아래에 있는 이치하라 시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 시간 사이타마와 가와사키 방어벽을 뚫은 포베로미스들이 도시로 쏟아져 들어와 닥치는 대로 건물을 부수고, 달아나는 자위대원들을 잡아먹었다.
이번엔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인지 보스는 엘리트 레드몬으로 성장한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를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두 동원했다.
30분 만에 방어벽을 지키던 자위대 병력을 일소한 보스는 신선한 먹잇감이 잔뜩 몰려 있는 도쿄 시내와 도쿄 항으로 새끼들을 몰아갔다.
“호소카와 총리!”
“네, 회장님!”
”다윗 공대는 어쩌고 있나? 놈들을 잡으러 갔나?”
“아닙니다.”
“그럼 뭐 하고 있나?”
“장비를 모두 갖추고 호텔 로비에 집결했습니다.”
“도망갈 생각이군? 그렇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아니야. 도망가려는 게 분명해. 나쁜 놈들! 혼슈를 몽땅 차지했으면서 레드몬을 잡기는커녕 술 마시고 계집질이나 하는 쓰레기 놈들! 우리도 이대로 있을 순 없어. 놈들이 도망치기 전에 홋카이도로 가야 해.”
“다윗 공대가 장비를 갖추고 로비에 집결한 건 우리 움직임에 맞춰 레드몬을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다윗 공대에 연락해 같이 레드몬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공격하면 시간을 벌게 됐다고 얼씨구나 하고 좋아할 거야. 그사이 미군에 도움을 청해 달아날 게 분명해.”
“그랬다면 미군 헬기가 호텔에 도착했을 겁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만날 수도 있어. 놈들은 그러고도 남아.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겁에 질린 아베 마사히코는 겁에 질려 다윗 공대를 핑계로 달아날 생각만 했다. 호소카와 총리가 설득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 아베 회장은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