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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32화 (432/505)

00432  사라진 도쿄  =========================================================================

432.

“나고야 서남쪽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를 모두 처리해주십시오.”

“그 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미국 영토로 편입됩니다.”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는 우리가 처리하는데, 미국이 왜 혼슈를 차지하나요?”

“네?”

“그렇잖아요. 미국은 하는 일도 없는데, 우리보다 더 큰 땅을 차지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건 모르셔서 하는 말씀입니다. 미국이 그동안 일본에 들인 돈이 300억 불이 넘습니다.”

“미국이 각종 명목으로 일본 정부에 뜯어낸 돈이 수천억 불이 넘는데, 겨우 300억 불 썼다고 혼슈의 3분의 2를 차지하겠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단장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막대한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일본을 도우며 비용 일부를 받은 것뿐입니다. 그것도 대부분 자원 채굴권과 토지 사용권입니다. 그리고 작전 중 죽고 다친 병사들에게 지급해야 할 위로금이 천문학적이라 미국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며 일본을 돕는 것입니다.”

“일본이 미국에 투자한 자본과 세계은행, IMF 등 금융기관에 맡겨놓은 돈과 금을 미국이 모두 차지했는데, 손해라고요? 그 돈만 해도 지금까지 쓴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겠네요.”

“그건 제가 아는 바가 없어서...”

“홋카이도와 규슈, 시코쿠에 차지한 땅만 해도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엄청난데, 손해라... 작전 중에 죽거나 다친 병사가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상군은 단 한 명도 투입하지 않고, 해군과 공군 그리고 지상군 소속 공격헬기와 지상 공격기만 투입했는데, 지급해야 할 위로금이 천문학적이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얘기만 하시네요.”

한숙이 쉬지 않고 몰아붙이자 고어 부통령의 얼굴이 빨갛게 익다 못해 땀을 뚝뚝 떨어뜨렸다.

고어 부통령이 나진시를 찾은 건 우리를 꼬드겨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를 처리하러 온 것이지, 미국이 일본에 빼앗은 돈이 얼마인지, 작전 중 죽은 군인은 몇 명인지를 설명하러 온 건 아니었다.

그리고 고어 부통령이 말한 것처럼 아는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두루뭉술하게 들은 건 있지만, 클린턴 대통령처럼 자세하게 보고받는 위치가 아니라서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고어 부통령님!”

“네?”

“제안하려면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걸 하세요. 우리가 재주 부리는 곰도 아니고, 미국이 돈 챙기는 왕 서방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용할 생각만 하세요?”

“그런 적 없습니다.”

“부통령님은 아닐지 몰라도 미국은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네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회의가 길어지면 말이 더 거칠어질 것 같네요. 그만 일어나시죠.”

“회의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미국은 박지홍 회장님께 제안할 게 아주 많습니다.”

“그래요?”

“네!”

“음음음~ 오늘은 기분이 아닌 것 같네요. 내일이나 모레 다시 하죠.”

“시간이 없습니다. 변종 방사능 포베로미스들이 언제 도쿄와 나고야, 오사카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오사카는 중국 선인과 인민해방군이 막으면 되고, 도쿄와 나고야는 사무라이와 자위대가 막으면 되잖아요.”

“그들은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군인만 수백만 명이고, 선인과 사무라이도 수천 명을 보유했는데 그걸 못 막겠어요? 안 그래요?”

“숫자만 많았지 놈들을 막을 능력이 없습니다. 레드몬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단장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오늘은 그만하죠. 피곤해서 더는 안 되겠네요. 먼저 일어날게요.”

한숙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하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처음부터 회의를 질질 끌며 도쿄와 나고야, 오사카가 사라지길 기다릴 계획이었다.

또한, 미국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어 최대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기로 사전에 입을 맞췄다.

“잘했어.”

“고어 부통령이 완벽한 핑계를 만들어준 덕분이죠.”

“그래도 미국 부통령을 상대로 그렇게 막대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지.”

“저는 잘난 남편 믿고 그런 거예요.”

“남들이 들으면 욕해.”

“내 남편 잘났다고 하는데 누가 욕을 해요? 욕할 사람 있으면 나오라고 하세요. 명년 오늘을 제삿날로 만들어줄 테니까요.”

“참으세요. 조만간 애도 가져야 하는데, 성격이 그래서 애를 키울 수 있겠어?”

“네?”

“애 낳기 싫어?”

“아.아.아니요. 갖고 싶어. 아주 많이 갖고 싶어요.”

“그럼 얌전하게 굴어. 그래야 예쁜 아이를 낳지.”

“어.어.언제 아이를 갖게 해주실 거예요?”

“일본 문제 해결하고 바로.”

“정말이죠? 약속한 거죠?”

“응!”

“언니 축하해요.”

“축하해요 언니!”

“고마워! 정말 고마워! 흑~”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를 갖게 해준다는 말을 하자 한숙이 기쁨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원래 계획은 몇 년 더 있다가 아이를 가질 계획이었다. 은하까지 능력자로 각성시키면 살아갈 날이 한참 남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아내들의 생각은 나와는 많이 다른지 하루가 멀다고 후세가 있어야 한다고 졸라댔다.

나는 후세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 보통 혼자 남겨지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이를 빨리 가진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들과 죽는 날까지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는 게 내 유일한 희망이었다.

아이에게 사랑하는 내 여자를 뺏기는 것도 싫었고, 함께하는 시간을 뺏기는 것도 싫었다.

언젠가 조일 일본 기자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많은 아이를 낳아 국가와 민족에 보탬이 되는 건 어떻겠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불덩이가 솟구쳤다. 화가 난 걸 알아챈 소연과 상아가 말리지 않았다면 놈의 아가리를 찢었을 것이다.

사육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아 국가와 민족에 보탬이 되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망언인가?

국가와 민족이 아이가 잘 클 수 있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노예가 아이를 낳아 주인집 생산력을 키우는 것처럼 보탬이 되라는 말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도구는 보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는데, 그 말을 듣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래서 섹스 전에는 멸균하듯 정자를 모두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돌아가면서 한 명씩 낳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

“순서도 정했어?”

“응!”

“나는 몇 번째야?”

“넌 특별히 한숙과 같이 낳게 해줄게.”

“정말?”

“그래!”

“고마워!”

“언니 축하해요.”

“소연아! 축하해.”

“한숙 언니 고마워요! 상아야! 미안해!!”

“아니에요. 당연히 언니부터 낳아야죠.”

“아직 애도 안 가졌는데 왜들 난리야. 그만 좀 해. 시끄러워~”

소연도 한숙과 같이 임신시키려는 이유는 소연의 아이를 집안의 기둥으로 키울 생각에서였다.

누가 뭐래도 소연은 내 첫 번째 사랑이고,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여자였다.

집에 돌아온 상아가 아내들을 모두 소집해 조만간 소연과 한숙이 아이를 가질 거라고 말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내들은 미친년처럼 얼싸안고 웃고 울고 뛰어다니며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게 그렇게 좋은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능력자라 아이를 낳아도 몸매가 망가질 일은 없지만, 아이 하나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지 생각하면 마냥 좋아만 할 일은 아니었다.

‘왜 여자들은 애를 낳고 싶어 난리지? 종족 번식의 사명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의 분신을 갖고 싶은 욕망? 그것도 아니면 이 세상을 자신이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구?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재미있게 살면 그만이지, 애는 왜 낳아서 힘들게 키우려고 하는지 아무리 이해가 안 되네.’

“그만 떠들고 모두 모여봐!”

“네에~”

“하도 졸라서 결심한 거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지켜. 하나라도 어기면 그때부터 아이는 없어.”

“세상 어느 남편이 아이를 낳는 거로 아내를 협박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은비는 아이 낳을 생각이 없는 거로 알겠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가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말이 헛나왔어. 오빠! 다시는 안 그럴게. 한 번만 용서해줘~”

“정말 마지막이다. 다음엔 국물도 없어.”

“알았어. 입에 자물쇠 채우고 있을게.”

아이를 무기로 내밀자 천방지축 은비도 꼼짝을 못하고 순한 양이 되었다. 가련한 표정을 짓는 게 마음에 걸려 손을 내밀자 잽싸게 품에 안겨 새끼고양이처럼 품을 파고들었다.

“첫째, 무슨 일이 있어도 내게 소홀하지 마. 첫째도 남편, 둘째도 남편이야. 아이는 그 다음이야. 알았어?”

“네에~”

“둘째, 모유 수유 금지. 내 아내의 육체는 나만 가질 수 있어. 아이와도 공유할 수 없어. 너희 몸은 내 거야.”

“지홍아! 모유 수유는 두뇌 발달과 건강을 위해 허락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리와 같은 생각인 사람 손 들어?”

손들라는 말에 눈치를 보던 아내들이 하나씩 손을 들었다. 내 마음을 정확히 읽어낸 소연과 상아를 빼고 모두 손을 들었다.

“소연과 상아 빼고 모두 없던 일로...”

“오빠~ 저 손 내렸어요.”

“지홍씨! 어깨가 아파 그런 것이지 손 올린 거 아니에요.”

“오빠! 저는 팔만 올렸지 손은 안 올렸어요. 이것 보세요?”

“다들 잘 들어. 토 달지 마.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 그게 내 조건이야.”

“네에~”

“모두 아이를 한 명씩 낳으면 그때 둘째를 가질지 고민한 거니까, 둘째 갖고 싶다고 떼쓰지 마. 그리고 은하는 미스트 존 공략하는 대로 바로 아이를 갖도록 해줄 거니까 실망하지 말고.”

“저는 천천히 가져도 돼요.”

“얼굴에 아니라고 쓰여 있으니까 거짓말하지 마.”

“히히히히~”

“마지막으로 아이 때문에 집안에 파벌이 생기거나 후계자 문제로 싸우면 누구를 막론하고 쫓아낼 거니까 명심해. 후계자는 내가 알아서 정할 거고, 단 한 명도 소외됨이 없이 돌봐줄 거야. 그러니 욕심을 버려. 그래야 내가 결심을 바꾼 게 잘한 일이 되는 거야. 알았어?”

“네에~”

아내들이 늘어나며 가장 걱정됐던 게 암투였다. 다행히 소연이 잘 이끌어주고 아내들이 협조해 아직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면 달라질 게 확실했다. 아이가 없을 땐 오직 나만 바라보고 살았지만, 아이가 생기면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게 된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고 아이가 생기는 순간 말 잘 듣고, 얌전하고, 사랑스럽던 내 여자는 사라지고, 억척스러운 아줌마만 남게 된다.

아줌마로 돌변한 여자는 시기심과 질투, 욕심, 욕망에 휩싸여 자신의 아이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후계자는 아무것도 아니야. 재산을 더 많이 주지도 않을 거고, 특별하게 대우하지도 않을 거야. 그냥 상징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아. 그걸 갖겠다고 싸우면 내 사랑까지 모두 잃게 된다는 걸 명심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너희지 아이가 아니야. 그걸 잊지 마.”

아이를 갖게 됐다고 좋아 방방 뛰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급속 냉동 창고만큼 싸늘하게 변했다.

아내들은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라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짧은 기쁨보다 긴 악몽을 걱정해 마음에 상처가 날 만큼 강하게 말했다.

그래야 내가 말한 내용이 화인처럼 가슴에 깊이 남아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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