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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29화 (42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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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결혼

1997년 1월 11일

고대하던 날이 마침내 찾아왔다.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 미뤄왔던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혼인법 수정안이 드디어 발효됐다.

작년 초 법사위원회를 통과해 중순경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했던 혼인법 개정안은 선거와 맞물려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렇게 해를 넘길 것으로 생각했던 혼인법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곧바로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결혼식장은 며칠 전 완공한 새집 나진 타워 꼭대기 정원에서 하기로 했고, 손님은 아내들 가족만 불러 조촐하게 치르기로 했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옐친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변병석 대한당 대표 등 저명인사들의 참여 요청이 빗발쳤다.

클린턴 대통령을 시작으로 각국 정상과 국왕들, 부호들이 앞다투어 초대장을 보내달라고 한숙에게 전화를 걸었고, 언론사들도 세기의 결혼식을 촬영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전부터 결혼식은 가족들만 초대해 조용하게 치르기로 아내들과 약속했다. TV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 남들 보기엔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축하받아야 할 당사자들은 결혼식이 아닌 한바탕 쇼를 치른 느낌밖에 없었다.

이런 취지를 설명하고 감사의 마음만 받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럴 순 없었다.

다른 사람은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옐친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여왕, 변병석 대표는 핑계를 댈 수가 없어 특별히 초대했다.

“오빠!”

“왜?”

“나 너무 떨려. 다리가 후들거려 죽겠어.”

“걱정하지 마. 내가 손 꼭 붙잡고 있을게.”

“옆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돼?”

“알았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날이 오자 담대하고 쾌활한 은비도 마음을 진정할 수 없는지 사시나무 떨듯 떨어댔다.

그러나 얼굴엔 기쁨이 가득해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은 소연, 은하, 한숙, 서인, 아리, 제니퍼, 로라 김, 상아, 아영, 마샤, 소희까지 모두 같았다.

결혼식을 올리는 아내들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해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신부 입장!”

사회자의 입장 소리에 맞춰 12명의 아름다운 신부가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걸어 나오자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았다.

가슴이 파진 드레스를 입은 마샤·제니퍼·로라 김, 무릎까지 오는 귀여움과 발랄함을 강조한 상아·아영·소희,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함을 강조한 은하·한숙·서인, 화관과 레이스로 화사하게 치장한 은비와 아리, 민무늬와 단순함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소연까지 각자 개성을 살려 웨딩드레스를 맞췄다.

12벌이나 되는 웨딩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모두 나진시로 몰려왔다.

열흘 만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밤을 새웠고, 아내들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천사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결혼식은 집안 어른들에게 평생 함께하겠다는 혼인서약과 결혼반지를 끼워주는 것으로 간략하게 끝났다.

대신 최고의 음식, 최고의 술, 최고의 음악, 최고의 분위기로 즐거운 결혼식을 이어갔다.

결혼식이 끝나는 동시에 시작된 파티는 결혼식이 열린 정원에서 했다. 지상 300m에 있는 정원은 아름다운 나무와 식물이 가득했고, 투명한 유리 너머로 나진시와 동해가 한눈에 보여 맛있는 음식과 함께 경치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높이 350m의 나진 타워는 기둥과 첨탑을 빼고 총 5층으로 1층은 창고와 기계실, 2층은 식당과 도우미 숙소, 3층은 거실과 손님방, 각종 부대시설이 자리했다.

4층은 침실과 서재, 목욕탕 등이 있었고, 5층은 통째로 나무와 식물이 가득한 정원이었다.

기둥과 첨탑을 뺀 1층부터 5층까지 외벽은 모두 특수 강화유리로 방음, 방탄은 기본이었고, 도청방지 장치와 투시가 안 되도록 3중으로 설치됐다.

“형부! 축하해요.”

“고마워 처제.”

“언니! 드레스 정말 예쁘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아.”

“고마워!”

“나도 빨리 커서 결혼하고 싶다. 그런데 형부 같은 멋진 남자를 어디서 구하지?”

“아림 처제! 멋진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나 같은 사람을 찾아?”

“형부만큼 멋진 남자가 어디 있다는 거예요? 있으면 알려주세요?”

“시랑이만 해도 나보다 훨씬 잘생겼고, 미래 레드몬 직원들도 하나같이 미남이잖아. 그중에서 처제 마음에 드는 남자로 한 명 골라.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연결해줄 테니까.”

“얼굴만 곱상하면 뭐해요. 마음이 진국이어야죠. 그리고 저는 형부처럼 남자답게 생긴 사람이 좋아요. 시랑이처럼 곱상한 남자는 딱 질색이에요.

“나는 남자다운 게 아니라 평범한 거야.”

“어쨌든 저는 형부가 좋아요. 그리고 아무리 둘러봐도 형부만 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요. 형부랑 결혼해야지 다른 사람은 안 될 것 같네요?”

“머.머.뭐라고?”

아림 처제의 황당한 말에 턱이 빠지는 줄 알았다. 어릴 적부터 특이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야이 바보야~ 언니가 결혼했는데, 네가 어떻게 형부랑 결혼해?”

“스텔라, 셀리나, 루나 언니 형부랑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 세쌍둥이도 결혼하는데, 내가 형부랑 결혼하는 게 무슨 잘못이야?”

“형부!”

“어?”

“스텔라, 셀리나, 루나 언니와 결혼할 거예요?”

“그.그.그래야겠지.”

“그것 봐. 내 말이 맞잖아.”

“언니들도 결혼하면 너도 상관없겠다. 그럼 나도 형부랑 결혼할까?”

“컥!”

막내 아림 처제의 말에 아솔 처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결혼식에 참석한 스텔라, 셀리나, 루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로 참석한 스텔라, 셀리나, 루나는 기분 좋은 잔칫날 인상을 구길 수 없어 억지로 웃었지, 속은 타들어 가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

내가 다음을 기약하는 언질이라도 줬다면 세쌍둥이는 들러리가 아니라 서빙이라도 웃으며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언질도 없이 결혼식에 초대하자 서운함을 넘어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내들은 조만간 날짜를 잡을 것이라고 세쌍둥이를 위로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내가 말이 없자 자매는 불안함과 서운함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불안함을 아림과 아솔이 한 방에 날려주자 스텔라, 셀리나, 루나의 얼굴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세쌍둥이를 다 데리고 살라고? 데리고 노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데, 결혼까지? 환장하겠네.’

“조급해하지 마.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당연히 알지. 자기 여자는 절대 놓치지도, 놓아주지도 않는 사람이란 거.”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결혼하지 않았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결혼식을 올리니까 우리만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해 미치겠어.”

“아만다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같은 마음이야. 잠도 안 오고, 물도 안 넘어가.”

결혼식에 소외된 건 스텔라, 셀리나, 루나만이 아니었다. 아만다와 캐서린도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야 했지만, 자기 코가 석 자라 그러지도 못했다.

제니퍼는 침착한 아만다까지 불안해하자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내 손을 잡아끌어 맥없이 서 있는 아만다와 캐서린에게 데려갔다.

“오빠!”

“응?”

“아만다와 캐서린은 어쩌실 거예요?”

“뭘 어째?”

“스텔라, 셀리나, 루나 언니와 결혼식 올릴 때 아만다와 캐서린도 함께 올려주세요.”

“....”

“왜 대답이 없으세요? 아만다와 캐서린은 데리고 놀다가 버리려고 하셨어요?”

“아.아.아니야.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그럼 제가 말한 대로 할 거죠?”

“알았어.”

“들었지?”

“응!”

“오빠는 한 번 내뱉은 말은 꼭 지키니까 이제 걱정할 거 없어. 지금부터 마음 놓고 파티를 즐겨. 알았지?”

“고마워 제니퍼!!!”

‘결혼식 날 또 다른 결혼식을 약속하는 게 말이나 돼? 후유~’

“이제 결혼식도 올렸으니 천방지축으로 나대지 말고, 얌전하게 굴어. 남편 말도 잘 듣고, 소연이 마음고생 그만 시키고.”

“할아버지는 결혼식 날까지 잔소리하면 기분 좋아?”

“이런 덕담을 결혼식 날 하지, 이혼하는 날 할까?”

“그게 덕담이야? 내 욕하는 거지. 흥~”

“손주 사위가 이해하게. 부모 없이 커서 버릇이 없네. 덩치만 컸지 애나 다름없네.”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론 저래도 마음 씀씀이가 넓어 항상 저를 챙겨주고, 위로해줍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쁘게 봐주니 고맙네. 앞으로도 그 마음 변치 말게.”

“알겠습니다.”

입술을 삐죽이는 은비의 손을 꼭 잡자 할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할아버지는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올해 78살인 할아버지는 정화수와 은행 열매, 산에서 나는 진귀한 약초를 장복하자 신체 나이가 거꾸로 돌아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누군지 몰라보게 젊어졌다.

올해 58살인 소연의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정화수와 은행 열매의 덕을 톡톡해 봐 30대 중반으로 보였고, 불편했던 다리도 아리와 마샤의 치료로 완치돼 활기찬 인생을 살았다.

이런 모습은 두 분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아내들의 직계 가족은 한 명도 빠짐없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처럼 피부에 탄력이 넘치며 어려 보였다.

“지홍아!”

“응?”

“지영이, 연희, 민영이, 희은이, 은미, 선희, 진숙이는 왜 보이질 않아?”

“안 불렀어.”

“왜? 네가 부른다고 했잖아.”

“부르지 않았어. 부를 이유가 없어서.”

“너 정말 다 내보낼 생각이야?”

“응.”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같이 산 지 벌써 오 년이야. 5년 동안 같이 살았으면서 갑자기 나가라는 게 사람이 할 짓이야.”

“그녀들을 위해선 그게 나아.”

“조작된 기억으로 너를 사랑하게 됐지만, 이미 5년이 지났어. 5년간 너를 목숨처럼 사랑했어. 그런데 이제 와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떠나보내면 그녀들은 뭐가 돼?”

“지금까지 데리고 있던 건 신변의 위험 때문이야. 이제 일본은 지영이와 연희, 민영이를 위협할 힘이 없어. 중국도 조만간 그렇게 될 거고. 그럼 더는 잡아둘 명분도 이유도 없어. 신분을 세탁한 후 미국이나 유럽으로 보내 새 출발 할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야.”

“네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너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 그녀들에게 물어본 다음 결정하는 게 맞아.”

“조작된 기억을 가진 사람에게 물어서 뭐하려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과거를 잊고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다면, 그 사랑 가짜야?”

“기억상실증과 기억조작은 전혀 다른 문제야.”

“다르지.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같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기회를 주자는 거야. 또한,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하아~”

“판단은 그녀들의 몫이야. 너는 그녀들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면 돼. 그것이 죄를 지은 사람의 최소한의 양심이야.”

“알았어.”

소연의 말이 맞았다. 5년간 아내들처럼 품에 안고 살진 않았지만, 옆집이나 다름없는 곳에 모셔놓고 수시로 들락거리며 욕심을 채웠다.

그래놓고 인제 와서 조작된 기억이라 진짜 사랑이 아니니 내보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건 정말 양심 없는 행동이었다.

사실대로 말하고 용서를 구한 후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조금이라도 죄를 더는 길이었다.

‘조금 전엔 결혼식을 약속하고, 이제는 계속 살지 말지를 물어봐야 하는 거야? 내가 벌 받을 짓을 엄청나게 많이 했구나. 후유~’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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