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8 인과(因果) =========================================================================
428. 인과(因果)
황준지우 박사의 가족이 죽든 말든, 선인 인공 배양 프로젝트 수용소에 끌려가 평생 애를 낳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모른 체하고 싶었다.
내 가족도 아니고, 내 나라 내 민족도 아니고, 우연히 모기 레드몬을 만들었다고 해도 죄가 없는 것도 아니라서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측은지심이 발동한 아내들이 온종일 매달리며 애원해 어쩔 수 없이 구하러 가는 것이지, 원해서 가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도살장에 끌려 소처럼 아내들에게 질질 끌려 나와 또다시 좁은 세스나 208 캐러밴에 몸을 실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무정한 비행기는 프로펠러를 힘차게 돌리며 가볍게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어두운 밤하늘을 뚫고 중국으로 날아갔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지린 성과 랴오닝 성을 지나 내몽골 자치구로 빠져나간 후 후허하오터 시를 지나 남쪽으로 기수를 틀어 옌안 시로 접근했다.
이번엔 아리와 서인, 상아, 아영, 마샤, 시랑만 데려왔다. 황준지우 박사의 아내와 두 딸을 데려와야 해 아내들을 몽땅 데려갔다간 정원초과로 비행기 밖으로 사람을 던져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박사의 아내와 두 딸을 창문 밖으로 살포시 던질 것이다.
내게 있어 박사의 아내와 딸들은 쓸데없는 일을 하게 한 장본인들로 증오의 대상이자, 짜증의 원흉이었다.
산시 성 옌안 시는 중국 공산당 홍군(紅軍)이 장개석의 국민당군 포위망을 뚫고 370일 동안 9,600km를 걸어 탈출한 혁명의 성지로 1935년부터 1948년까지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였다.
옌안 혁명 기념관, 충칭 중앙서기 고적, 마오쩌둥의 집, 마오쩌둥이 항일 전선을 지휘한 옌안의 석굴 등 혁명 관련 관광지와 황제릉, 바오타 산, 옌안 민족문화촌, 뤄촨 민족박물관 등 역사·문화 관광지가 많아 매년 많은 중국인이 찾는 도시였다.
그러나 대륙성 기후 탓에 겨울은 무척 춥고 건조했고, 내몽골 자치구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까지 기승을 부려 관광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정에 출발한 비행기는 낮 4시가 돼서야 사람이 없는 황량한 구릉지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비행기가 내린 곳은 옌안 시에서 동쪽으로 8km 떨어진 잡초와 잡목만 가득한 쓸모없는 땅이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겨우 2,000km를 날아오는데, 열여섯 시간이나 걸린다는 게 말이나 돼?”
“그렇다고 큰 제트 비행기를 타고 올 순 없잖아. 이렇게 몰래 착륙할 수도 없는데.”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되잖아.”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건 삼생의 덕을 쌓는 일이야. 삼생의 인과 몰라?”
“몰라~”
“이왕 하는 거 기분 좋게 해. 그래야 없는 복도 굴러오지.”
삼생(三生)의 인과(因果)란 현보, 생보, 후보를 말하는 것으로, 금생에 지은 과보(果報, 인과응보)를 금생에 받는 것을 현보(現報)라고 하고, 금생에 지은 과보를 내생에 받는 것을 생보(生報)라 한다.
금생에 지은 과보를 매래의 생이나 그 후생에 받는 것을 후보(後報)라 한다. 후보는 결과가 나타나는 시기가 일정하지는 않지만, 불교에선 자기가 지은 업보는 받듯이 받는다고 했다.
아리는 황준지우 박사의 아내와 두 딸을 구하는 것을 삼생의 덕을 쌓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덕이 정말 있는지, 착하게 살라고 만든 거짓말인지 알 순 없지만, 남을 돕는 건 좋은 일인 건 확실했다.
그러나 짜증이 날 대로 난 나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좁은 좌석과 칸막이도 없는 비행기를 타고 16시간을 가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 넘게 해외 원정을 다녀도 비행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걸로 화난 적은 없었다.
나와 아내들만 함께할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조금 불편하고, 오래 걸려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짜증을 불러왔다.
“계속 잔소리하면 이대로 돌아가는 수가 있어.”
“알았어. 잔소리 안 할 게. 그러니 기분 풀어.”
“나 정말 열 받았으니까 건들지 마. 알았어?”
“네에~”
날이 어두워지자 시랑을 남겨 비행기를 지키게 하고 안가가 있는 옌안 혁명 기념관으로 잠입했다.
박사의 가족은 혁명 기념관 뒤 높은 담에 둘러싸인 작은 집에 갇혀 있었다. 기감으로 살피자 선인 2명과 국가안전부 요원 5명, 공안 20명이 안과 밖에서 박사의 가족을 지키고 있었다.
[전력 끊어.]
[네!]
상아와 아영을 보내 안가와 주변 경계 초소로 들어오는 전력을 모두 끊었다. 사람을 배치했다고 CCTV와 몰래카메라, 도청장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놈들은 누군가 황준지우 박사의 가족을 탈출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가 내부와 밖에 CCTV와 도청장치를 20개나 깔아놓았다.
[서인아! 침묵!]
서인의 침묵 스킬이 발동하자 안가와 그 주변의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두꺼운 콘크리트 방에 갇힌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자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수면 주얼을 발동해 안가와 주변 일대를 깊은 잠에 빠져들게 했다. 아내들을 뒤에 남겨둔 채 재빨리 다가가 CCTV와 도청장치를 뇌전 주얼의 힘을 최소화해 모두 파괴했다.
기감을 통해 살아있는 전자기기가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한 후 천천히 안가로 진입했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든 사람, 의자에 기대어 잠든 사람, 바닥에 나동그라져 잠든 사람 등 박사의 가족을 지키던 사람 모두 깊은 잠에 취해있었다.
품에 감춰뒀던 기다란 회칼을 꺼냈다. 시장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특별할 게 없는 아주 평범한 칼이었다.
세상 모르고 잠에 취한 선인과 국안부 요원, 공안의 심장에 칼을 쑤셔 넣었다. 한 방에 한 명씩 정확히 숨통을 끊어 놨다.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죽이고 싶진 않았다. 이들도 꿈과 희망이 있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와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들로 박사의 가족만 아니었다면 평생 얼굴을 마주칠 일도 없었다.
우리가 다녀간 흔적을 남길 수 없어 27명을 모두 죽였다. 이들을 살려두면 전기가 끊긴 것, 전자기기가 파괴된 것, 갑자기 소리가 사라진 것, 정신을 잃고 잠이 든 것 등 수없이 많은 흔적이 남게 된다.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박사의 아내와 두 딸을 구하기 위해 나와 원한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 27명을 죽였다.
잠든 세 여자를 메고 나와 아리와 상아, 아영에게 넘기고 다시 안가로 돌아가 시체를 안가에 모두 집어넣고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렀다.
시체까지 훼손하자 기분이 더욱 나빴다. 최대한 고통을 줄여주려 한 방에 심장을 찔러 죽였지만, 이 또한 증거가 될 수 있어 시체까지 불태웠다.
‘내 가족도 아닌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살인까지 해야 하다니... 젠장!’
나뭇가지로 발자국까지 완벽히 지운 후 코까지 살살 골아대는 박사의 가족을 짐짝처럼 떠메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만약을 위해 북쪽 방어벽을 넘어 한참을 돌아 비행기를 숨겨둔 동쪽 구릉지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말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아내들도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 알아 죄인처럼 얼굴을 들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난 박사의 아내와 두 딸도 무거운 분위기에 여기가 어딘지, 우리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지도 못한 채 불안에 떨었다.
“미안해!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혼자 있고 싶어.”
“알았어.”
집에 돌아와 씻지도 않고 서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자 소연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박사 가족을 구하자고 한 일을 사과했다.
소연과 아내들은 박사의 가족을 구해야 한다는 측은지심만 있었지, 가족을 구할 때 벌어질 일은 생각하지 못했다.
수면 주얼로 재우고 몰래 데리고 나오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와 관련된 흔적이 남으면 중국은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다. 그러면 우리만 표적이 되는 게 아니었다.
아내들 친척 모두, 미래 레드몬 직원 전체, 나진시 주민 전체, 대한민국 모두가 표적이 될 수 있었다.
“지홍아!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뭐가?”
“삼생의 덕을 쌓는 일이라고 말한 거. 정말 미안해!”
“알았으니까 혼자 있고 싶어.”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아리도 나가라고 했다. 아리도 박사의 가족을 구하는 것만 생각했지, 가족을 감시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 삼생의 덕을 쌓는 일이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삼생의 악업을 쌓는 일이겠네?’
“황준지우 박사님과 가족들이 구해준 은혜 평생 잊지 않겠대요.”
“알았어.”
“오빠!”
“왜?”
“벌써 이틀째 식사도 거르시고, 서재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고 계세요.”
“그런데?”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잘못했어요.”
“알았으니 나가 봐.”
“오빠! 언니들도 이틀째 잠도 못 자고,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오빠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어요.”
“후유~”
“오빠! 다시는 생각 없이 행동하지도 않을게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흑흑흑~~~”
“이리와!”
팔을 벌리자 상아가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이틀 동안 서재에 있었던 건 아내들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 자신에 화가 나서 그런 것이었다. 옌안 시로 떠나기 전 회칼과 휘발유를 준비할 만큼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옌안 시로 가서 박사 가족을 구했다. 그럼 마음속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다.
결심했으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속으로 꽉꽉 눌러 담고 남자답게 행동했어야 한다.
그걸 못 참고 표출한 내가 바보 같고, 한심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죽였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 것이다. 그 중에는 꼭 죽여야 할 사람도 있고, 죽이지 않아도 될 사람도 있고, 죽여선 안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상대를 죽여야 한다면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그건 나 혼자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아내들과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이었다.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정말요?”
“그래.”
상아의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가자 아내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렸다. 초췌한 모습의 아내들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배고프지 않아?”
“지홍아! 우리 때문에 네가...”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가자! 밥 먹으러.”
축 처진 아내들을 모두 데리고 식당으로 내려가 이틀 동안 못 먹은 음식을 보상받듯 정신없이 쑤셔 넣었다.
밥과 함께 술까지 한잔 걸치자 꿀꿀했던 기분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내 표정이 풀리자 아내들의 표정도 풀리며 평소처럼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웃고 떠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더욱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아내들은 오직 나 하나만을 보고 이 자리에 있었다.
한 명 한 명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미모와 몸매를 갖춘 재원들이 못난 나를 위해 서로 양보하며 같이 살았다.
남자 하나를 두고 여자 여럿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누구나 독점욕을 갖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나눈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언젠가 또 이런 우울한 날이 찾아오겠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사람인 이상 그런 날이 또 올 거야. 그럼 서로 화합하려 애쓰는 아내들을 생각하자. 못난 남편을 위해 욕심을 꾹꾹 참고 희생하는 아내들을 생각해서라도 아이처럼 행동하지 말자. 남자답게 행동하는 것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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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