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2 불씨 제거 =========================================================================
422.
장자커우 시 외곽을 돌며 기감을 최대한 좁혀 건물 지하를 수색한 끝에 북쪽 허름한 농가에 숨은 연구소를 찾아냈다.
농가 지하에 숨겨진 모기 레드몬 연구소와 배양 시설은 사람의 왕래도 거의 없고, 차량도 별로 오가지 않는 한적한 곳에 있었다.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근처 농가 10곳을 통해 연구소로 내려갈 수 있게 통로를 만들어놔 왕래가 없는 것처럼 꾸며놓았다.
“이곳은 시에서 최외곽이라 네가 미쳐 날뛰지만 않으면 일반인이 죽을 염려는 없어. 연구소에 있는 연구원과 경비 병력은 자신들이 한 짓을 똑똑히 아는 놈들이야. 죽어도 마땅해. 그러니 양심의 가책 따윈 가지지 않아도 돼.”
“그런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다행이고. 시작하자.”
집으로 돌아가던 연구원 한 명을 붙잡아 신분증과 옷을 빼앗았다. 하람이 변신 주얼로 얼굴과 신체 사이즈를 비슷하게 변신한 후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자전거를 타고 농가로 다가갔다.
농가 주변엔 선인 5명과 군인 30명이 몸을 숨긴 채 다가오는 사람을 감시했다. 이놈들이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들락거리는 사람의 얼굴과 체형으로 신분을 확인했다.
연구원 진역유로 변장한 하람이 태연하게 자전거를 세우고 농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경비병들은 하람의 모습이 연구원 진역유와 일치하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하람이 알려준 대로 지하실로 내려가 철문 옆 단말기에 신분증을 밀어 넣었다.
“철컥~”
철문이 열리자 총을 든 경비병 세 명이 하람을 바라봤다. 하람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자 경비병들도 평소 알던 얼굴이라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신분확인을 대신했다.
놈들은 2시간 전 퇴근한 진역유가 다시 돌아온 것에 관해 묻지도 않고, 몇 시에 나가고 몇 시에 들어왔는지 그것만 종이에 기록했다.
하람이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자 두꺼운 철문이 닫히며 기감이 끊겼다. 이제부턴 하람 혼자서 대응해야 했다.
내가 아는 건 연구소 윤곽과 놈들이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이 전부로 하람이 텔레파시로 물어봐도 더는 알려줄 게 없었다.
“서인아! 괜찮아?”
“네, 참을 만해요.”
아침 일찍 장자커우에 도착해 온종일 쉬지 않고 돌아다니자 목이 칼칼하다 못해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장자커우는 모래바람이 매우 심한 도시로 마스크를 쓰고 옷으로 칭칭 입과 코를 감아도 미세한 먼지가 들어와 입안이 퍼석퍼석했다.
아리와 아영은 상급 멘탈리스트로 서인보다 체력이 월등히 앞섰고, 힐러 계열이라 틈틈이 힐링과 정화 스킬을 사용해 서인보다 고통도 덜했다.
아내 중 소희 다음으로 능력치가 낮은 서인을 데려온 건 침묵 스킬 때문이었다. 하람이 신호를 보내면 침묵 스킬을 사용해 폭발 소음을 없앨 계획이었다.
상급 레드몬이 사용한 스킬을 상급 멘탈리스트에도 도달하지 못한 서인이 완벽히 막아낼 순 없지만, 지하에서 폭발해 충격이 작았고, 아리와 아영이 도우면 힘들어도 막아낼 순 있었다.
서인의 침묵 스킬로 연구소와 배양시설이 날아간 걸 놈들이 모를 때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변수가 없다는 가정에서 짜인 작전으로 연구소와 배양 시설이 더 있다면 변경을 불가피했다.
“여기에 비하면 나진시는 천국이에요. 눈이 좀 많이 오는 게 흠이지만, 먼지가 날리지도 않고, 공기는 깨끗하고, 하늘은 청명해 살기가 참 좋아요.”
“그렇지. 이곳과 비교하면 나진시는 정말 살만한 곳이지. 호주 태즈메이니아 섬에선 나진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 지금은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야.”
“저는 호주보다 우리 집이 있는 나진시가 백 배 더 좋아요.”
“우리 집이 있어서?”
“네.”
“우리 집만 있으면 어디든 좋겠네?”
“맞아요. 우리 집만 있으면 추운 남극도 좋고, 벌레가 들끓는 정글도 좋아요.”
“나도 그래.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옆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지.”
“저도 그래요. 지홍씨와 언니·동생들만 있으면 그게 어디든 상관없어요.”
하람이 연구소로 들어가자 1km 떨어진 야산 위에 올라 대기했다. 길게 잡아 30분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들어간 지 2시간 넘도록 연락 한 번이 없었다.
[아직 멀었어?]
[출타한 황준지우 박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저녁 9시에는 돌아온다고 했으니 좀 더 기다려야겠어.]
[발각되진 않았지?]
[경비가 워낙 허술해 걸리진 않았어.]
[왜 다시 돌아왔는지 물어보지도 않아?]
[인사만 하고 끝났어.]
[아주 형식적이네?]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야. 연구에 집중하기보단 시간 보내는데 급급해.]
[다른 문제는 없고?]
[없어. 황준지우 박사 확보하면 바로 연락할게.]
[알았어. 조심해.]
[걱정해줘서 고마워!]
[작전 실패할까 걱정해서 한 말이야. 이 자식아~]
[하하하하~]
일주일 만에 북경어를 알아듣는 수준까지 연마한 하람의 능력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급 레드몬의 지능이 뛰어나다는 건 알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렵고 난해한 중국어를 일주일 만에 알아듣고, 기초적인 회화까지 한다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누구는 머리가 나빠 같은 단어를 1,000번 넘게 외워도 기억이 나지 않아 써먹지를 못하는데, 멧돼지 새끼는 4~5번만 읽으면 문장을 통째로 외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암기능력에 비하여 이해능력은 많이 떨어졌다. 지능이 발달하며 암기능력은 크게 향상했지만, 이해능력은 세상을 배워가며 발달하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암기력이 천재적이라 사법고시도 한두 달이면 통과하고, 외무와 행정고시까지 길어도 6개월이면 모두 취득할 만큼 시험에는 최적화한 두뇌였다.
“변종 방사능 레드마우스는 문스톤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도쿄를 공격한 변종 레드몬은 방어선이 뚫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돌아 나왔지만, 오사카를 공격한 변종 방사능 레드마우스는 오사카 시내까지 진입했잖아.”
“오사카가 작은 문스톤 여러 개로 안전지대를 구축해서 그럴 수도 있어.”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가 시내까지 진입했는데, 그걸 어떻게 다 피해 가?”
“그건 그러네.”
“방사능에 오염돼 돌연변이를 일으킨 레드몬 전체가 문스톤의 전파를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닐까?”
“살기에 걸리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응!”
“그럴 수도 있겠네.”
아리가 말한 대로 변종 방사능 레드마우스들은 문스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짜는 극심한 통증에 B급 엘리트 레드몬도 다가서지 않는 안전지대를 유유히 통과했다.
이 때문에 방어선이 뚫린 곳을 통해 변종 방사능 레드마우스가 난입하며 오사카 시내가 엉망이 됐고, 인명 피해도 막대했다.
규슈에서 상대한 방사능 레드몬의 특징 중 하나는 공포 면역이었다. 놈들은 살기투사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살기투사는 공포심을 유발해 전투력을 떨어뜨리고, 움직임을 제어하는 스킬로 뇌파를 자극해 두려움을 주는 문스톤과도 일맥상통했다.
아리가 방사능 레드몬이 문스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규슈는 조만간 우리가 처리하면 되고, 시모노세키도 몇 달 지나면 방사선 수치가 크게 떨어져 방사능 레드몬이 나타나진 않을 거야. 문제는 기후 현에 숨어든 포베로미스와 놈의 잔당인데... 그건 일본과 중국, 미국이 알아서 하겠지.”
“체르노빌은 괜찮은 거야?”
“그곳도 100% 안전하다곤 할 순 없어. 사고 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콘크리트로 덮어 놓은 것에 불과해 방사성 물질이 지금도 흘러나오고 있으니까.”
“그럼 우크라이나에도 방사능 레드몬이 많겠네?”
“그렇진 않아. 외부 위험에 민감한 레드몬은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체르노빌 근처에 다가가지 않아. 사고 당시 피폭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레드몬과 놈들이 낳은 새끼들이 소란을 떨었지만, 소련 정부가 블러디 나이트와 군대를 동원해 대부분 청소했어. 그 이후 아주 가끔 발견되긴 하지만 많지는 않아.”
규슈와 혼슈를 빼고 방사능 레드몬이 쉽게 발견되지 않은 건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레드몬 스스로 방사성 물질에 접근하는 걸 꺼리기 때문이었다.
레드몬은 방사성 물질처럼 유독한 물질을 오감으로 알아내 될 수 있는 한 피해 다니며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달아난 변종 방사능 레드마우스들이 금세 불어나겠지?”
“레드마우스도 문제지만, 포베로미스와 새끼들이 더 문제야. 놈들이 성장해 새끼를 낳으면 그땐 대책이 없어.”
“도쿄도 안전하지 않겠네?”
“도쿄뿐만 아니라 혼슈 전체가 안전하지 않지. 그래도 엘리트 레드몬으로 성장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 아직은 기회가 있지.”
“미국과 중국, 일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겠네?”
“당연히 알겠지.”
“근데 왜 아무도 나서지 않는 거야?”
“누군가 피해를 대신 보기를 원하니까 그렇지.”
“그러다 놈들 숫자가 불어나면 어쩌려고 그러지?”
“원래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올 때까진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해. 턱밑까지 위험이 닥치면 그때야 아차 하고 움직이는 거야.”
일본과 중국은 포베로미스가 번식해 레드마우스처럼 새끼를 생산하면 그땐 자기들 힘만으론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았다.
먼저 나서면 상대보다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어 몸을 사렸다. 미국만 몸이 달아 레드몬 킬러와 정찰기, 인공위성을 총동원해 놈들을 찾았다.
그러나 찾아도 중국과 일본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폭격으로 수를 줄일 수 없다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중국이 몸을 사리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혼슈가 탐나도 이길 수 없는 상대로 목숨을 걸고 지킬 만큼 대단한 곳은 아니니까. 그러나 일본은 중국 눈치 볼 때가 아닌 것 같은데. 피해가 커도 무조건 달려들어 잡아야 하잖아. 눈치 보다가 혼슈 전체를 잃을 수도 있는데,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되네.”
“권력을 잡아 놈들의 정신이 올바로 박혔다면 나라가 그 지경이 됐겠어?”
“아~ 맞다. 네가 잠시 일본을 정상적인 나라로 생각했어. 미안해!”
미안하단 말과 함께 아리가 혀를 쏙 빼물었다. 귀여운 모습에 번개같이 혀를 낚아채 강하게 빨자 많이 아픈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입술을 삐죽 내미는 아리를 소중한 보물처럼 꼭 안자 허리에 팔을 둘러 꼭 안겨왔다.
가장 이상적인 건 중국과 일본이 상잔해 혼슈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게 어렵다면 변종 방사능 레드마우스가 날뛰어 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놈들이 간몬 해협을 건너올 수 있어 번거로움이 많겠지만, 일본이 사라진다면 그 정도 수고로움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친구!]
[말해.]
[황준지우 박사를 잡았네. 정확히 10초 후에 시작하겠네.]
[알았어.]
“서인아! 침묵!”
“네!”
“아리야! 지킴이!”
“알았어.”
“아영이는 전력으로 서인이를 도와줘.”
“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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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