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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17화 (417/505)

00417  진화타겁(?火打劫)  =========================================================================

417.

도우미에게 하람을 불러오게 했다. 하람은 치료가 끝나자 풍산개 사육장 뒤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올해 말 타워가 완성되면 본관과 집이 텅텅 비게 돼 별관에 계속 머물라고 했지만, 숲에 있는 게 편하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불렀어?”

“당분간 기타큐슈에 가 있어.”

“규슈에?”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중국이 변종 모기 레드몬을 혼슈에 대량으로 풀었어. 시모노세키에도 왕창 풀었고. 네가 대원들을 지켜줘야겠다. 할 수 있지?”

“알았어.”

규슈에 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살육의 현장인 나가사키에 가는 건 아니지만, 같은 섬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꺼리는 눈치였다.

마음은 이해했지만, 무조건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아이가 수천 번 넘어져야 일어설 수 있듯이 하람도 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제 몫을 다할 수 있었다.

“미래 2공대 조은영 공대장과 3조를 붙여줄 테니 말벗이라도 해.”

“응.”

“1시간 후 출발이니 짐 챙겨서 나와.”

“알았어.”

어깨가 축 처진 채 터벅터벅 짐을 챙기러 가는 하람의 뒷모습에서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마음이 찡했지만, 그렇다고 결정을 번복할 순 없었다. 지금 이겨내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힘들어진다.

어렵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일일수록 먼저 해치우는 게 나았다. 그래야 뒤로 갈수록 일이 쉬워졌다.

“은영 언니는 왜 보내는 거야?”

“누가 알아? 전장에서 꽃이 필지.”

“미치코를 못 잊는데 은영 언니가 눈에 들어오겠어?”

“남녀 사이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며느리도 몰라.”

만나기만 하면 서로 헐뜯고 싸우던 사이가 어느 날 커플티를 입고 나타났고, 말도 섞지 않는 사이가 다음 날 같은 침대를 쓰는 게 남녀 사이였다.

남녀 사이는 며느리도 모르는 것으로 3조 조원인 이아윤이 짝이 될 수도 있었고, 정오연·정은지·김남주·정혜숙이 될 수도 있었다.

내 마누라만 아니면 하람과 누가 짝이 되든 상관없었다. 녀석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만 있다면 아줌마가 됐든, 할머니가 됐든 누구든 괜찮았다.

“아정 처제! 여긴 웬일이야?”

“아~ 형부!”

“배웅 나온 거야?”

“그게... 네!”

“누구?”

“하람 오빠요.”

“뭐라고?”

규슈로 떠나는 하람과 조은영을 배웅하기 위해 소연, 상아와 함께 나진 공항에 도착하자 생각지도 못한 아정 처제가 먼저와 있었다.

올해 18살인 처제는 고등학생으로 지극히 평범한 학교생활을 영위 중이었다. 형부가 미래 레드몬 회장이고, 언니가 미래 제약 사장이자 미래 아이 사랑 재단 이사장이란 게 조금(?) 특이했지만, 아무 문제 없이 지냈다.

괴롭히는 급우도 없었고, 돈을 요구하는 선생도 없었고, 부모가 없다고 놀리는 사람도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내 사랑하는 처제를 괴롭히고 욕보이는 놈은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아정과 아솔, 아림은 꼬맹이 때부터 함께해서 그런지 처제가 아니라 친동생이었다.

동생이 없는 내가 친동생으로 생각할 만큼 아정과 아솔, 아림은 내게 아주 각별한 가족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딸 같은 존재로 괴롭히거나 건든다면 그건 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처제가 왜 멧돼지 새끼를 배웅 나와?”

“한집에 사는 오빠잖아요.”

“저 자식 처제 집에 얹혀살아?”

“아니요. 저택에 같이 사는 식구라는 의미로 말한 거예요.”

“저 자식이 왜 우리 식구야? 저 자식은 식구가 아니라 멧돼지야. 식구는 처제와 나를 말하는 거야.”

“형부! 하람 오빠에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마음잡고 살려는 하람 오빠에게 멧돼지가 뭐에요? 그런 말은 인격모독이에요.”

“머.머.뭐라고? 이.이.인격모독?”

“하람 오빠가 멧돼지였다고 해도 이제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잖아요. 누구보다 하람 오빠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단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왜 그래요?”

“친구?”

“네! 친구! 하람 오빠는 세상에서 형부가 가장 좋대요. 말은 거칠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형부만 한 사람이 없다고 했어요.”

“저 자식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왜 처제가 저놈 배웅을 하는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돼.”

“말했잖아요. 같은 집에 사는 오빠라 배웅 나온 거라고.”

“지금 그 말을 나보러 믿으라는 거야?”

“형부가 안 믿어도 할 수 없죠. 사실이니까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아정 처제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처제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럴 수는 없다. 그리고 세상에 많고 많은 남자 중에 왜 하필 멧돼지 새끼를 좋아한단 말인가?

이건 분명 멧돼지 새끼가 처제에게 현혹 스킬을 쓴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선 아정 처제가 내게 이럴 수는 없었다.

“야이 새... 잠시 나 좀 보자.”

“무.무.무슨 일인데 그래?”

“좋은 말로 할 때 따라와.”

아정 처제가 째려보고 있어 화를 꾹 눌러 참고 하람을 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아정 처제가 큰일이 난줄 알고 소연과 상아에게 말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내들은 웃으며 괜찮다고 아정을 달랬다.

“너 이 새끼! 처제 건드렸지?”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아정 처제 건드렸잖아!”

“아닐세. 하늘에 맹세코 절대 그런 일은 없었네. 손끝도 닿은 적이 없어.”

“그런데 왜 아정 처제가 배웅을 나오고, 네 역성을 들어. 네가 이상한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럴 일은 일어날 수 없어.”

“맹세코 나는 모르는 일이네.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떤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내가 다른 여자가 눈에 보이기나 하겠나?”

“그걸 어떻게 알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돼지 새끼 속은 모른다고 했어.”

“진심이네. 믿어주게.”

“흐음... 너 오늘부터 아정이 근처에도 얼씬거리지도 마. 둘이 함께 있는 모습 보이면 그날이 네 제삿날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절대 그럴 일 없네. 걱정하지 말게.”

살기를 풀풀 풍기자 겁에 질린 하람이 손을 마구 내저으며 아람과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고 목청껏 변명했다.

기감을 통해 하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하람을 더욱 다그쳤다.

‘내 아내들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더니... 젠장! 이래서 말도, 생각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하람을 태운 A300-300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아정의 모습에 불길한 예감을 잔뜩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영아!”

“네?”

“너 아정이가 하람이 좋아하는 거 알았어?”

“네!”

“왜 말 안 했어?”

“그 나이 때는 좋아하는 사람이 수시로 바뀌잖아요. 처음엔 오빠 좋아하다가 안성기, 박중훈, 김민종 좋아하다가 얼마 전부턴 새로 데뷔한 H.O.T. 좋아해요. 수시로 바뀌어 얘기할 것도 없었어요.”

“에이치오티는 뭐야?”

“High-five Of Teenagers라고 남성 5인조 아이돌 그룹이에요. 데뷔하자마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람이를 좋아하는 것도 한때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 이거지?”

“네.”

“그래도 불안해. 이놈의 자식을 기타큐슈에서 평생 썩게 해야지 안 되겠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몇 년 처박아 놓으면 놈이 누군지도 모를 거야.”

“아영이 나이 때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해요. 그냥 자연스럽게 놔두면 흐르는 강물처럼 잊힐 거예요.”

“정말이지?”

“그럼요.”

아내들을 사귈 때도 이런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 소연과 은비를 만날 때 설렘에 잠 못 이루긴 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딸 갖은 아빠처럼 전전긍긍 앉아있질 못하고 왔다 갔다 하자 아내들은 재미있는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놈의 새끼! 처제에게 이상한 짓만 해봐. 멱을 따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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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람이 도착한 다음 날 간몬 해협 건너 시모노세키에서 신장 5m짜리 초대형 포베로미스가 출현했다.

후쿠오카에서 사냥한 2.5m짜리보다 두 배나 큰놈으로 방어탑에 찍힌 놈의 에너지양은 6963이었다.

6936은 B급 엘리트 레드몬에 해당하는 수치로 우리가 알던 포베로미스와는 궤를 달리하는 놈이었다.

놈을 빼고도 2.5m가 넘는 방사능 레드마우스가 수천 마리나 출현했고, 빠르게 번식하는지 하루가 다르게 수자가 불어났다.

다행히 하람이 상급 레드몬의 힘을 개방하자 5일 후 시모노세키를 떠나 도로를 타고 동쪽 야마구치로 이동했다.

이런 일은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됐고, 그때마다 하람이 강대한 힘을 개방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동쪽으로 이동한 변종 방사능 레드마우스와 포베로미스는 일본에서 인구가 11번째로 많이 살던 히로시마를 차지하고 빠르게 숫자를 늘려갔다.

“2주일 만에 숫자가 3배로 불어나?”

“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진화와 방사능, 변종 모기 레드몬까지 겹치며 헬 게이트가 열린 거죠.”

상아의 말처럼 지옥문이 열렸다. 2주 만에 10,000마리로 불어난 놈들은 기하급수적이란 표현에 딱 맞게 숫자를 불어났다.

일본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놈들의 숫자가 20,000마리로 불어났을 때였다. 급히 미군에 도움을 요청해 B52 스트래트포트리스(Strato Fortress) 전략폭격기 50대를 출동시켰다.

미국은 그에 대한 대가로 혼슈의 자원 채굴권을 요구했고, 궁지에 몰린 일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를 들어줬다.

미국은 변종 방사능 레드몬의 출현을 우리보다 먼저 알았다. 30분 차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찰기와 정찰위성으로 시모노세키를 24시간 감시하며 대형 포베로미스의 출현을 바로 포착했다.

미국은 놈들이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것도 알았고,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불어나는 것도 알았다.

이런 사실을 일본에 알려준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바짝 마른 오징어를 비틀어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짜낼 생각인지 일본을 사정없이 쥐어짜며 몽땅 털어먹으려 했다.

B52 전략폭격기 50대가 이틀 간 융단폭격을 퍼부은 히로시마는 부서진 건물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파괴됐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성과가 크진 않았다. 폭격기가 몰려오자 레드몬들은 잽싸게 숲으로 숨어들어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놈들은 도시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깊은 숲으로 숨어들었고, 그것도 안심이 안 돼 2~3일마다 동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새끼를 낳았다.

그렇게 동진에 동진을 거듭한 변종 방사능 레드마우스가 일본의 서남쪽 저지선인 효고 현에 나타난 건 10월 25일로 시모노세키에 출현한 지 정확히 한 달 만이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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